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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비의 책

후쿠시마 이후의 삶




후쿠시마 이후의 삶


역사, 철학, 예술로 3·11 이후를 성찰하다



후쿠시마 2주년!

왜 비판적 지식인은 지금, 후쿠시마를 논의해야 하는가?

역사, 철학, 예술을 대표하는 한일 지식인들의 연속 좌담!


비전문가들이 1년여의 기간에 걸쳐 후쿠시마, 합천, 서울, 도쿄, 제주, 오키나와를 오가며 좌담을 나눈 것은 핵 문제의 해결을 이른바 전문가 집단에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에서였다. 핵무기가 사용되는 형태이든, 핵 발전소에서 발생한 심각한 사고이든 간에 일단 문제가 터지면 그 피해를 입는 것은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광범위한 일반 대중이다. 핵 문제에 관한 이른바 전문가의 절대 다수는 이 책에서 ‘원자력 마피아’ 또는 ‘원자력 마을’이라고 비판받은 집단에 속해 있다. 핵무기와 핵 발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핵으로부터 이익을 보는 집단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되는 일반 대중 속에서 보다 많이, 보다 크게 나와야 할 것이다.—한홍구



원자력 마피아를 넘어,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후쿠시마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한일 지식인들의 자기 성찰!


  2011년 3월 11일에 동일본 대지진, 이른바 3·11이 일어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자연재해로 시작해, 원전 사고라는 더욱 큰 인재를 동반한 이 사건은 전 세계에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겼고, 사건 직후 전 세계적으로 탈핵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세계적으로 원전이 집중된 동아시아 3개국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원전 재개를 꾀하려는 ‘원자력 마피아’들의 전방위적 공세가 날로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는 그렇게 지나가버리면 그만인 사건이 아니다. 다른 자연재해나 인재와 매우 다른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이후 우리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야 할 정도의 파급력을 지닌 사건이다. 후쿠시마 사고가 갖는 다양한 함의에 주목한 한일의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 한홍구, 서경식, 다카하시 데쓰야는 원전 사고 후 3개월이 지난 2011년 6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약 2년간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지며 이 사건이 갖는 의미와 파장, 이후의 미래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해왔다. 저자들은 특히 원전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현지, 스리마일 섬과 히로시마 등의 피폭자들의 증언 대회가 열린 합천비핵평화대회, 원전 문제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기지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제주 강정 마을, 그리고 오키나와까지 주요 ‘현장’을 직접 답사함으로써 현장감과 함께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이끌어 내고자 했다.

  저자들은 후쿠시마 사고 자체에 대한 임상적 진단에 머물지 않고, 20세기 동아시아의 현대사를 되짚으며 한일의 정치적 흐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한미일 동맹의 방향, 원전과 기지 문제의 공통성, 원전과 윤리, 나아가 일본 천황제 및 평화 헌법과 원전의 관계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원전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후쿠시마 사고가 우리의 삶의 방향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조목조목 짚어낸다.

  2년여 간, 논의를 거듭하면서 세 학자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던 것이 있다면 바로 ‘평화에 대한 실천적 희구’이다.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전 문제가 ‘동네 문제’로 폄하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탈핵과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지 실천적인 대안을 모색한다.



1. 원전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다!

  세 학자는 역사학, 철학, 예술의 각 분야를 대표하는 학자지만, 원전에 대해서는 비전문가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들이 모이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세 학자는 정치가, 관료, 기업, 그리고 미디어까지 이른바 ‘원자력 마피아’들이 쳐놓은 전문성의 벽을 넘는 것이 원전 문제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단 사고가 일어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일반 시민이므로 핵 문제에 대한 결정권은 주권자인 시민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믿음이다.

  그런 점에서 원전이 ‘희생의 시스템’에 기반해 있다는 분석은 원전과 국가주의의 문제, 원전과 차별의 문제가 뿌리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애초에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가 야스쿠니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인 ‘희생의 시스템’은 원전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그 핵심은, 국가가 국민을 속이고, 버리고 국민 이외의 존재를 무시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타인의 생활이나 생명, 존엄 등을 희생한 위에서만 이익을 내고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거기서 이득을 얻는 자는 국가권력과 자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이 포기되지 않는 것은 원전은 핵무기와 일란성쌍둥이이기 때문이다. 원전을 보유한다는 것은 핵무기 제조 기술과 그 재료를 보유한다는 것, 즉 잠재적 핵 능력을 보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이 4만 명의 피폭자를 보유한 피폭 국가라는 것이 철저히 잊힌 이유, 일본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사태가 일어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저자들은 한국과 일본의 각종 사료들을 근거로, 원전을 확산시킨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기치가 사실은 자기기만에 불과함을 명백히 한다. 나아가 인류의 지속적 생존을 가능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원전은 비윤리적이라고 단언한다.

  

이 사람은 2차대전 때 해군 장교였는데, 어느 글에서 보니 예전에 히로시마에서 이런 말을 했다더군요. “나는 히로시마의 원폭 구름을 보았을 때 앞으로는 원자력 시대라고 생각했다.” 그 원폭 구름의 아래는 어땠습니까? 피폭을 입은 사람들로 지옥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원자력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죠. 원자력이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아직 원전이 없었기 때문에 원폭을 생각하면서 원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가 열린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버섯구름을 보고 핵분열이나 핵융합 기술을 갖고 싶다고 생각한 나카소네는 결국 후에 원전 예산을국회에서 통과시켰는데, 이때 내걸었던 것이 핵의 평화적 이용입니다.(38쪽)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자민당 방위 우선론자들의 대장이라 할 수 있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의원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원전을 보유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핵의 잠재력, 억제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원전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런 것도 동시에 포기하는 것인데, 그러면 되겠습니까?” 결국 전에 있었던 맥락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지요. 핵의 ‘평화적 이용’이란 결국 따옴표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114쪽)




2. 원전부터 군사 기지까지, 동북아시아의 평화로운 삶을 위협하는 것들

  

 원전 문제를 기지 문제와 연결해보는 시각은 동북아시아의 현대사를 다시 근본적으로 되돌아보며 현재의 체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후쿠시마에서 출발한 좌담이 도쿄와 서울을 거쳐, 제주 강정 마을과 오키나와까지 가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제주는 대한민국 국가 건설 과정에서 4·3이라는 학살이 일어난 현장으로 대한민국의 제한적 정당성을 드러내는 장소이며, 오키나와는 주일 미군의 75%가 밀집된 지역으로 그 존재 자체로 일본이 전후에 추구해온 평화주의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장소이다. 그리고 지금 제주는 강정 마을의 해군 기지 건설과 관련한 논란이, 오키나와는 수직 이착륙기 오스프레이의 배치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다. 당장의 군사 기지 문제는, 우발적이고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이 두 섬이 거쳐 온 현대사에서 이어지는 뿌리 깊은 문제이다. 저자들은 제주와 오키나와를 찾아가 직접 현장을 둘러보며, 한일 현대사를 되짚어나감으로써 국가의 역할을 성찰하고 냉전 이후의 체제를 고민한다.

  강정 해군 기지는 국가에 의해 강요된 원전과 기지가 어떻게 동일하게 평화를 위협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소이다. 사실 원전을 건설하려는 지역에 국가가 동원하는 논리는 기지 건설 지역에 동원하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저자들은 강정 해군 기지가 절차적인 문제를 넘어, 그 자체로 중국의 부상이라는 정세 변화 속에서도 한국의 역할을 기존의 냉전적 구도에 고정시킨다는 점에서, 원전만큼이나 한반도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것을 조목조목 밝혀낸다.

  또한 저자들은 헌법 9조를 개정하려는 일본 우익의 움직임, 야스쿠니 문제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부재 등이 어떻게 오늘날 원전 문제와 맞닿아 있는지 도 분석한다.


  일본이 평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핵무기가 일본 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그것을 받아들인 건 바로 분단 국가 한국이었습니다. 그 핵무기가 미국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미일 세 나라의 위계질서, 혹은 전 세계적 냉전 체제에서의 역할 분담이 형성된 셈이지요.(105쪽)


  오키나와는 미군의 베트남 폭격의 거점이었어요. 이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전쟁 수행을 할 때도 오키나와에서 출발했지요. 그런 식으로 오키나와 사람들은 원치 않지만 미군의 적에게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이 오키나와를 희생물로 삼아 미군의 전쟁에 협력해왔다고 할까요? 오키나와라는 거울로 보면 ‘허구의 평화주의’라는 것도 명확해집니다.(244쪽)



3. 우경화와 퇴행의 시대, 지식인의 자기 성찰


  오키나와에서 진행된 마지막 좌담은 일본은 총선이, 한국은 대선이 막 치러진 직후에 이루어졌다. 한일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으로서, 특히 원전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저자들은 동아시아 전체가 퇴행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선거 결과를 앞에 두고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대중적 무관심이 낳은 결과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원전과 평화 문제를 좀 더 실감 나게 우리 삶의 문제로 설명해내지 못한 지식인의 문제라는 점을 통렬히 반성한다. 그리고 일국적 차원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가 우경화되고 보수화되는 현실 앞에서, 향후 어떤 ‘희망’을 가지고 평화를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과거사 문제, 원폭, 원전,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레퍼토리가 낡아간다는 느낌, 아니 레퍼토리보다 전달 방식이 낡아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계몽의 시대에 살고있었나 하는 반성이 듭니다. 말하는 방식에 있어 반대쪽 세력과 비슷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요. 특히 원폭이나 원전 문제를 말할 때 저쪽 세력이 공포를 팔아먹으며 안보 장사를 하듯, 우리도 ‘이런 어마어마한 재앙이 다가오고 있는데 지금 뭐하고 있느냐’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도 이 변화된 환경에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할지 고민해야 합니다.(259쪽)



본문 속으로

  우리 세 사람의 공통점을 들라고 하면, 바로 평화에 대한 실천적 희구를 들 수 있겠다. 그런 우리들이 포스트 3·11이라는 시대의 물음에 응답하기 위하여 대화를 거듭해온 결과가 이 책이다. 우리 세 사람이 서로 다른 문맥을 참고하며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나눈 것은, 포스트 3·11이라는 상황을 단순히 실용주의적으로 또는 임상적으로 진단해서 만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좌담이 보다 넓은 시야와 긴 안목으로, 그리고 여러 다양한 시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보다 깊게 사회를 고찰하는 데 유용하리라 믿는다.(13쪽)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졌을 당시의 피해 상황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서 참 가슴 아팠던 것이 있습니다. 일본인 희생자는 구체적인 숫자가 한 명 단위까지 정확하게 나와 있는데, 조선인은 거기에 몇 명 있었는지조차 정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략 10만 명, 혹은 5만 명이 있었다 하는 정도이고 사망자 역시 히로시마에서 3만 명, 나가사키에서 1만 명으로 전체 4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어요. 폭사자를 만 명 단위로밖에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거친 추산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피폭자 중 사망자 수예요. 일본인의 경우 피폭자 총수에서 죽음에 이른 사람이 차지하는 비율이 1/3 정도인 반면, 조선인의 경우는 1/2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조선인 피폭자의 사망률이 높은 것은, 똑같이 피폭을 당했어도 사후에 구호 조치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참 서글픈 일이지요. 게다가 이런 사실이 한국 내에서 완벽하게 잊혔습니다.(29쪽)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한 피폭 국가임을 강조해왔잖아요. 그 때문에 평화 헌법을 갖고 있고요.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핵무기 피해를 입었고 그 피해를 지금까지 안고 살아가야 하는 나라로서 강력한 반핵 정서가 있을 것 같은데, 거꾸로 현재 세계에서 원전이 가장 많이 들어선 나라 중 하나가 되었죠.(38쪽)


  원전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극구 부인하지만, 사실 원전은 원자폭탄의 다른 얼굴일 수 있어요. 이 둘은 마치 일란성쌍둥이처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핵 발전과 핵폭탄 모두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핵 발전은 핵분열의 속도를 늦췄을 뿐이지요. 둘은 같은 기술, 같은 원리에 입각해 있습니다. 또 핵 발전소에서 사용한 핵연료는 핵무기의 원료로 사용되지요. 그래서 원자폭탄을 갖고 싶은 열망이 원전을 자꾸 짓게 만드는 측면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점이 전 세계에 포진해 있는 원자력 마피아들이 원전에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42쪽)


  오늘 이 좌담의 특징 중 하나가 핵 문제에 대해 문외한들이 모여서 얘기한다는 점이에요. 두 분 선생님은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지만 핵 문제의 전문가는 아닙니다. 저야 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 셋 모두 핵 전문가가 아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개입하고 발언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우리가 모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 사회에서 핵 문제에 대한 결정권은 주권자인 민주 시민들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핵 발전소와 관련된 사고라도 나면 피해를 입는 것은 주권자인 시민들이지요. 후쿠시마에서도 도쿄의 원자력 마피아들이 마음대로 정한 것에 의해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잖아요.(53쪽)


  한국의 원폭 피해자들은 마이너리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흔히 자국이 세계 유일의 피폭국이라며, 국가와 민족을 동일시해서 일본인들이 원자폭탄에 희생되었다고들 하죠. 그런데 피폭자들을 살펴보면 무려 7만 명의 조선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됐고, 그중 4만 명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 피폭자 문제는 한국에서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죠. 그 중에서도 원폭2세들은 또 다른 마이너리티라고 할 수 있습니다.(70쪽)


  저는 이러한 것들을 포괄해서 원전 시스템을 ‘희생의 시스템’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타인의 생활이나 생명, 존엄 등을 희생한 위에서만 이익을 내고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여기서 그 이익을 취하고 유지하는 자들은 결국 국가권력이나 자본입니다.(77쪽)


  고리 1호기의 수명이 연장되는 과정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2012년 1월에 지식경제부 차관이 원자력수출산업회의의 신년 하례회에 가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원자력 업계에서 일하는 방식이 있지 않느냐, 앞으로 다른 원전의 수명 연장을 다 해야 할 것 아니냐, 수명 연장이 안 되면 여기 모인 사람 중에 올해 연말부터 집에 가서 애 볼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이건 정말 꼭 수명 연장을 해야 한다.”(87쪽)


그 후 한국전쟁이 나자 맥아더(Douglas MacArthor) 장군이 핵무기를 쓰겠다고 주장합니다. 무려 핵무기 26발을 1차로 북한과 만주에 투하하자고 했는데 이런 사실은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요. 제가 ‘국민학생’ 때인 1960년대에는 맥아더 장군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해임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정서가 있었습니다. ‘맥아더 장군 말대로 그때 원자폭탄을 투하했다면 지금 통일돼 있는 건데 아쉽다, 맥아더가 해임된 게 너무나 아쉽다’ 하는 정서였지요.(98쪽)


  미국에서는 원폭 투하를 통해 수많은 미국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논리로 투하를 정당화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원폭 덕분에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났다고 했으니 훨씬 더 강력한 지지 논리가 퍼진 셈이죠. 원폭 사용을 이보다 더 잘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겁니다. 원폭 때문에 하루아침에 히로시마에서 조선인 3만 명이 죽었다는 얘기는 꺼낼 여지조차 없을 정도지요. 그런 점에서 한국은 수만 명의 피폭자를 낸 피해 국가이자 동시에 원폭을 가장 잘 정당화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102쪽)


  일본의 헌법 9조는 사실 이중성을 가진 산물이고 미국의 극동 전략에 따라 전술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생겨난 면이 있지만, 그렇더라도 중국이나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의 피침략 국가들이 희생을 통해 얻어낸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시아 사람들이 헌법 9조의 평화 이념은 우리들이 싸워서 얻어낸 것이므로 일본이 버리면 안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122쪽)


  원전 문제를 시작으로 기지 문제까지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그 둘을 잇는 고리로, 국가가 있습니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특정 지역을 선택해서 원전이나 기지를 지을 때는 그 지역 주민들에게 억압, 회유, 보상 등이 가해집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 내에 갈등이 생겨나게 되죠. 어제 활동가들과 지역 주민들을 만나면서 들은 이야기 중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이 ‘국가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였습니다.”(143쪽)


  강정 해군 기지 문제는 단순히 현재 강정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 환경 파괴 문제, 절차상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강정에서 민주적인 절차가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어서 절차 문제 등을 제기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한반도의 선택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가, 한반도의 통일 문제까지 포함해서 21세기 동아시아의 질서 재편에 우리가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데, 강정 기지가 기정사실화해버린 측면이 있죠.(165쪽)


  4·3은 일본 제국주의가 물러나고 미국 주도의 냉전 질서를 만드는 가운데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일어난, 즉 국가 세우기 과정에서 일어난 학살입니다. 동아시아에서 냉전 질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비극이 일어난 곳이 오키나와, 대만, 제주도였습니다. 즉 섬에서 섬으로 학살이 흘러갔던 것이죠.(191쪽)


  원전은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았음은 물론이거니와 비용상으로도 손해라는 게 명백해졌는데도 그럴수록 더욱 노골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릴 수 없다, 유지하겠다’는 세력의 본심이 드러나고 있는 듯합니다. 그 본심이라는 것은 경제 효율, 즉 이윤인데 여기서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이 군사력이지요. 세계 일등 국가로서 핵 기술을 유지해야 한다, 혹은 플루토늄을 소유함으로써 핵클럽의 일원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들 합니다. 이런 것들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국민적 반발이 있을 줄 알았는데 선거 결과를 보니 오히려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었지요.(239쪽)



차례

책을 펴내며 5

1. 원전과 원폭, 그리고 민주주의 22

— 원전 사고의 현장, 후쿠시마에서

과연 누가 피폭자인가

홀로코스트 앞에서 떠날 수 없는 유대인의 심정

히로시마를 겪은 일본에 왜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났나

원전과 원폭은 일란성쌍둥이

원자력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

2. 원전이라는 희생의 시스템 64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비핵평화대회를 다녀와서

내 고통의 근원, 원자폭탄

국가가 국민을 속이고, 버리고, 무시하는 시스템

국가를 의심하지 않는 시민

고통의 연대를 가로막는 것들

3. 원전과 동아시아의 현대사 94

—현대사가 집적된 도쿄에서

해방을 가져다준 ‘고마운 원폭’

평화 국가 일본, 핵 전진기지 한국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자기기만

일본의 평화 헌법은 아시아 공통의 것

4. 원전과 기지 134

—해군 기지가 건설 중인 제주 강정 마을을 다녀와서

원전과 기지를 잇는 고리, ‘국가’

제주와 오키나와, 비극은 섬으로 흐른다

강정 해군 기지는 어떻게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가

대미 자립을 지향한 정권은 왜 단명했을까

추모와 기념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들의 이름으로 복수하지 말라

5. 원전과 동아시아의 평화 214

—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을 다녀와서

동아시아 전체의 퇴행

주변인들이 평화 헌법을 지키는 아이러니

히로시마 식 추모와 야스쿠니 식 추모

원전에 대한 노골적인 본심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재앙들

원전은 윤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지은이

한홍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으며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상임이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사』 1~4권, 『지금 이 순간의 역사』, 『특강』,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공저), 『직설』(공저),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공저) 등이 있다.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1974년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學) 문학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도쿄게이자이대학(東京經濟大學)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 중 『소년의 눈물』로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받았고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그 외에 『나의 서양미술 순례』,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청춘의 사신』,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만남』, 『언어의 감옥에서』,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등의 저서가 있다. 2012년에 민주주의 실현과 소수자들의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제6회 후광 김대중학술상을 수상했다.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일본 후쿠시마에서 태어나 도쿄대학(東京大學) 교양학부 프랑스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도쿄대학교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로, 일본의 역사 왜곡과 인권 문제를 통렬하게 지적하는 대표적인 학자이다. 저서로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 『일본의 전후 책임을 묻는다』,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공저),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공저), 『글로벌화와 인권·교과서』(공저) 등이 있다.


책임 번역 이령경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대구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 모임’ 창립 멤버로 활동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를 만났다. 서울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관한 연구와 관련 단체 활동을 했다. 2011년에 일본 릿쿄대학(立教大學)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현재 릿쿄대학, 도쿄외국어대학(東京外国語大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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