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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에디터김의 워킹데이즈

위대한 탄생 Top5에게 주선하는 책 소개팅 (3) ~ 이태권 편

참 오래 버텼다. 이제 고지가 멀지 않았다. 조금만 더 지나면 최후의 1인이 결정된다. 잔혹한 서바이벌 게임에서 이만큼 버텨낸 이들에게 축하의 뜻을 담아 이쯤에서 책 선물을 해야겠다. 책? 책이라고? 생방이 낼모렌데 책 읽을 정신이 어디 있나? 차라리 ‘샾 버튼 누르고’ 문자를 보내라! 라고 외치고 싶은 그 심정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인생은 위탄보다 길다. 위탄이 끝나도 멘토는 쭉 필요하다. 이 재주 많은 청춘들이 위탄 이후의 삶에 불현듯 찾아올 공허감을 메우고 새로운 멘토로 삼을 수 있도록 각자에게 적절한 책을 찾아보았다. 물론 반비의 책 소개팅은 언제나 일대일 맞춤 서비스다.

위대한 탄생 Top5에게 주선하는 책 소개팅 
(1) 백청강 편 / (2) 데이비드 오 편에 이어서...


이태권

“싸움을 잘할 것 같은데요.”

남자 눈엔 그렇게 보이나? 이태권의 첫인상을 보고 김태원이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조금 의아했다. 내 눈에 이태권은 싸움보다 공부를 더 잘할 것 같아 보였다. 이태권은 반에서 적어도 10등 안에는 들 것 같은 범생이의 외모다. 성격도 차분하고 진지하니 여러 모로 타인에게 신뢰감을 주기 때문에 반장 선거에 나가면 의외로 표를 많이 받는다. 첫눈에 반해서 연애를 걸고 싶은 외모는 아니지만 신랑감으로 데려갔을 때, 아마 예비 장인장모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며 딸내미를 기특해할 것이다. 유일한 문제는 이태권이 하고 싶은 게 공부가 아니라 노래라는 점이다. 요즘처럼 비주얼이 중요한 세상에서 말이다.


하지만 일단 노래 실력을 인정받고 나면, 이태권은 그 진중하고 경박스럽지 않은 태도로 관객에게 큰 신뢰감을 주는 가수가 될 것 같다. 그러려면, 그런 신뢰감이 쌓이려면 꽤 오랫동안 꾸준히 노래해야 한다. 그래서 이태권에게 제일 먼저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추천한다.

이태권 같은 실력 있고, 개념 있는 가수들이 ‘비주얼만 최고로 치는 더러운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어떻게 딴따라질을 지속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젊은 음악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앞으로 이태권이 오버에서 노래하든, 언더에서 노래하든 관계없이 이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음악적 동료가 있다는 것을 알아 두면 큰 힘이 될 것이다. 혹시 한 십 년쯤 후엔 이태권이 후배들을 위해 ‘이태권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란 책을 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태권은 그런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태권의 저음의 미성은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가사를 읊조릴 때 더 돋보인다. 기왕 아이돌이 되지 못할 바에야 제대로 음유시인이 되어 보면 어떨까? 이태권이 자작곡도 쓰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가사를 쓴다면 부활 3집의 김태원처럼 문학적이고 깊이 있는 가사를 써내려갔으면 좋겠다.

그런 멋진 가사는 가벼운 말장난에서 나오는 게 아니므로 지금부터 조금씩 깊이 있는 사유를 해 두면 좋다. 사유를 위한 삽질에는 철학책을 뒤적거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평생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는 멘토 김태원의 삶을 여기에서만큼은 따르지 마시길. 김태원의 경지는 아무나 쉬이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 터이니.)

그래서 이태권에게 현대철학자들의 깊고 곧은 사유의 세계를 구경시켜주고 싶다. 출간하자마자 위탄만큼이나 큰 화제가 되고 있으며 조만간 초대박 베스트셀러로 등극할 조짐이 보이는 반비의 첫 책 <철학 연습>을 이태권에게 권한다. 반비의 첫 책을 TOP5 중 오직 이태권에게 권하고 있다는 사실을 영광으로 받아들여......웁쓰! 미안하다. 오버했다.

홍보의 흑심이 담기긴 했지만 <철학 연습>은 구조주의와 현상학을 중심으로 스피노자부터 들뢰즈까지 현대철학자들의 면면을 소개하고 있어서 이태권이 현대철학에 가볍게 입문하기에 좋은 책임은 틀림없다. 저자 서동욱은 철학자이자 시인이어서 그 문장이 매우 정갈하고 문학적이므로 이태권이 문장력, 표현력을 기르는 데에도 보탬이 될 것 같다.

이태권이 철학책을 많이 읽고 멋진 가사를 읊조리는 가수가 되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착한’ 음유시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이태권이 너무 착한 나머지, 그 선한 성품을 악용하려 드는 사람들에게 너무 만만하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억울할 때는 제대로 분노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 그런데 제대로 분노해야 하는 타이밍을 어떻게 찾을까?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서 약간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이태권과 비슷한 또래의, 비슷한 처지의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문학 책이다. 거창하게 인문학이라고 말하지만 대부분 이태권도 한번쯤 겪어봤을 만한 사례들에 바탕한 책이어서 읽기에 어렵지 않다. 오히려 너무 익숙한 현실이어서 읽기 불편할 수도 있겠다. 왜 너무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는 드라마는 의외로 인기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끝까지 읽다보면,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무조건 ‘내가 부족해서 그러려니.’ 하고 참고 넘어가는 것이 항상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무엇에 어떻게 분노해야 하는지 그 적절한 타이밍과 화법도 배울 수 있다. 나는 선량해 보이는 이태권이 지금부터 조금씩 제대로 화내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우리는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외인구단은 왜 가수가 아니란 말인가. 이태권이 정말로 ‘싸움을 잘하는’, 개념 있는 가수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자, 이제 남은 것은 두 사람. 다음 편은 과연 누구일까요? :-) 4편은 바로 셰인 편입니다.

여러분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으면 덧글 남겨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