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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에디터김의 워킹데이즈

위대한 탄생 Top5에게 주선하는 책 소개팅 (5) ~ 손진영 편

참 오래 버텼다. 이제 고지가 멀지 않았다. 조금만 더 지나면 최후의 1인이 결정된다. 잔혹한 서바이벌 게임에서 이만큼 버텨낸 이들에게 축하의 뜻을 담아 이쯤에서 책 선물을 해야겠다. 책? 책이라고? 생방이 낼모렌데 책 읽을 정신이 어디 있나? 차라리 ‘샾 버튼 누르고’ 문자를 보내라! 라고 외치고 싶은 그 심정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인생은 위탄보다 길다. 위탄이 끝나도 멘토는 쭉 필요하다. 이 재주 많은 청춘들이 위탄 이후의 삶에 불현듯 찾아올 공허감을 메우고 새로운 멘토로 삼을 수 있도록 각자에게 적절한 책을 찾아보았다. 물론 반비의 책 소개팅은 언제나 일대일 맞춤 서비스다.


위대한 탄생 Top5에게 주선하는 책 소개팅 (1) 백청강 편 / (2) 데이비드 오 편 / (3) 이태권 편 / (4) 셰인 편에 이어서 드디어 마지막 편!

손진영

미라클맨이 아니다. 돈가스맨이다. 나는 그를 돈가스맨이라 부르겠다. 노래가 ‘천명’이라는 이 처절한 청년에게 이 무슨 무례한 호칭인가. 위대한 멘토 김태원 님이 사사하신 저 근사한 별명을 두고 뜬금없이 돈가스맨이라니. 그러나 미안해도 어쩔 수 없다. 돈가스 튀김옷을 입히던 그 손길, 그 능숙한 손놀림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단 말이다.

멘토 스쿨 파이널 무대를 앞두고 유치원에서 일하는 엄마를 밤늦게 찾아간 이 청년. 카메라는 식당에 나란히 서서 정다운 대화를 나누는 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나의 눈길은 화면 아래쪽, 돈가스 패티에 튀김옷을 입히는 이 청년의 손에 꽂혔다. 눈물로 노래하던 그 처절한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이 청년의 손은 쉬지 않고 적절한 양의 튀김옷을 골고루 패티에 묻히고 있었다. 그 리듬감, 그 속도!

분명 그것은 한두 번 해본 사람의 솜씨가 아니었다. 아마도 손진영의 엄마는 유치원에서 꽤 오랫동안 식당일을 해왔을 것이고, 아들 손진영은 꽤 오랫동안 엄마의 식당일을 도왔을 것이다.

아들이라고 다 돈가스 튀김을 돕지는 않는다. 손진영은 그 능숙한 손놀림만큼 고운 심성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멘토 김태원이 손진영의 그 처절함을 그토록 안타까워했던 것은, 그래서 기어이 그를 미라클맨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은 그가 가진 선한 마음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뭐, 아니면 말고.

선하기 때문에 더 처절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면, 그 처절함을 굳이 감추거나 삭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노래할 때는 조금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하니, 그건 멘토들의 충고를 따르시면 되고, 나는 손진영이 그 처절함을 아름답게 승화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을 한 권 소개하겠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간결한 제목의 책이다. 내용도 제목 그대로이다. 장 지글러라는 아주 탁월한 ‘가난’ 전문가(?)가 쓴 책이다.

가난에 대해서는 가장 전문적인, 그러면서도 가장 쉽게 쓰인 책이 아닐까 한다. 장 지글러만큼 경험과 학식이 동시에 풍부하면서 관점이 날카로운 필자도 드문데 문장력까지 좋으니, 가수로 치면 노래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춤도 잘 추는데, 예능감마저 탁월한 아주 ‘재수 없는(?)’ 유형이랄까? 그래서인지 이 책은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있다.

인생의 처절함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은 생각보다 귀한 능력이다. 그러니까 이런 책을 읽으며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자, 공감하므로 이들을 도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되는 자, 흔치 않다. 처절함이 나에게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쓰일 때, 그 처절함은 인생의 어느 지점에 이르러 손진영에게 커다란 자산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손진영의 그 처절을 자산으로 승화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처절이 자산이래도, 매일매일 심각한 얼굴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손진영에게 약간의 유머감각이 보태진다면, 일상 속의 처절함을 조금 완화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김태원 같은 천재적인 개그 감각의 소유자를 멘토로 두신 분에게 감히 유머를 소개하려니 민망스럽다. 유머를 배우려거든 멀리 갈 것도 없이 그저 멘토 김태원 님의 수제자가 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겠으나 바쁜 멘토에게 음악도 모자라 개그까지 가르쳐달라는 것은 조금 염치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태원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국제적으로 그 개그 감각을 인정받고 있는 빌 브라이슨을 소개한다. 개그에도 종류가 있는데, 빌 브라이슨 같은 어딘가 사내다운(?) 개그가 손진영과 잘 맞을 것 같다. 특히 블랙 유머, 시니컬 유머로는 빌 브라이슨을 따라올 자가 없다.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여행 시리즈는 나올 때마다 거의 히트를 친다. 일단 웃겨서 그런가 보다. 그의 책은 ‘고루’ 웃기기 때문에 아무거나 읽어도 상관없지만 굳이 하나를 꼽자면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을 추천한다. 외국 여행 별로 안 해봤을 손진영이 유럽 구경을 한번 해보는 데에도 적절할 것 같다. 빌 브라이슨은 잡학다식한 사람이니 서양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사소한 상식을 줍는 재미도 있겠다. 장 지글러가 손진영의 처절함을 자산으로 승화시켜준다면, 빌 브라이슨은 유머로 승화시켜줄 것이다.       

아무리 처절한 캐릭터라지만 계속 처절에 관한 얘기만 하려니 조금 미안해진다. 이쯤에서 달달한 사랑 얘기를 해볼까 한다.
 

 손진영은 어쩐지 연애도 진하게 할 것 같다. 사랑 앞에서 앞뒤를 재는 졸렬한 사람이 아닌 만큼, 사랑을 하면 일단 돌진하는 스타일 아닐까? 뭐 이것도 아니면 말고다.

어쨌든 그래서 손진영에게 아주 제대로 하는 사랑 이야기가 담긴 책을 소개해주고 싶다. 하고 많은 사랑타령 중에 손진영과 어울릴 만한 것으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떠오른다. 어딘가 투박하면서도 간절하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시인 백석의 감성이라면 손진영이 한눈에 반할 것 같다. 그런 백석을 만나는 좋은 통로로 <백석의 맛>을 추천한다. 백석의 시와 함께 그의 시에서 언급된 음식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랑타령보다 음식타령이더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래서 더 백석을 만나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좋다. 일단 이 책으로 백석을 한번 음미한 다음, 본격적인 사랑타령이 더 궁금해지면 백석 시집과 전집들을 찾아보면 된다. 백석의 시는 모두 멋지다. 백석이라면 처절함에 가려져 있던 그의 다른 감성들, 애틋하고, 따사롭고, 애절하고, 순수한 종류의 감성들을 깨워 주리라 확신한다.


책 골라주는 반비의 편집자가 '위대한 탄생 TOP5'에게 추천하는 책, 재미있게 보셨나요? 이 정도면 책 소믈리에를 자처해도 될까요? ^^ 지금까지 추천한 책들 외에 여러분이 추천하시는 책도 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