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 에프런이 시나리오를 쓴 「해리가 샐리를 만났들 때」 (1989)


노라 에프런 별세 소식에 많은 분들이 안타까움을 느끼셨을 텐데요, 이번 주에는 그녀를 추억하며 영화를 보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노라 에프런이라면 어떤 작품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감독이 아닌 시나리오를 맡긴 했지만) 해리가 샐리를 만났들 때」를 먼저 떠올리시는 분들이 꽤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오늘은 노라 에프런의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의 옮긴이의 글 중 해리가 샐리를 만났들 때」에 관한 부분을 블로그에 소개해 봅니다. 



할리우드에서의 승리를 굳건하게 해준 것은 노라 에프런의 세 번째 시나리오이자 로맨틱 코미디의 걸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이다. 남녀 사이에 섹스를 배제한 우정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전제로,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는 두 남녀의 10년에 걸친 만남을 재치 있게 그려낸 이 영화는 우디 앨런과 에른스트 루비치와 제인 오스틴을 1/3씩 뒤섞어놓은 것처럼 간질간질한 유머와 로맨틱한 긴장으로 가득하다. 고만고만한 로맨틱 코미디 작품들에 식상함을 느끼며 ‘내가 써도 저것보단 잘 쓰겠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 독자라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다시 보시길 권한다. 우정과 섹스와 나이 듦과 판타지의 상실에 대해 이만큼 감각적으로 그려낸 영화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우디 앨런이 철저하게 남자의 입장에서 그것을 성취했다면, 노라 에프런은 여성의 입장에서 처음으로, 그것도 할리우드라는 메인스트림의 화면에서 그것을 구현해냈다. 1989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에 대해 굳이 첨언하자면, 미국 드라마 「프렌즈」 와 「섹스 앤드 더 시티」가 당시 한국 청춘들에게 미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1990년대의 젊은이들에게 발휘했다고 보면 된다. 영화 전체를 압축하는, 마지막 장면의 대사를 소개한다.

해리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땐 서로를 싫어했어요.
샐리 아냐, 당신은 날 안 싫어했고 내가 당신을 싫어했지. 우리가 두 번째로 마주쳤을 때 당신은 심지어 날 기억조차 못했어.
해리 기억했어, 기억했다고. 세 번째 마주쳤을 때에야 우린 친구가 됐어요.
샐리 우린 아주 오랫동안 친구 사이였죠.
해리 그리고 그럴 수 없게 됐어요.
샐리 우린 사랑에 빠졌죠. 3개월 후 우린 결혼했어요.
해리 맞아요, 3개월 만에 바로.
샐리 12년하고도 3개월이 걸렸죠.
해리 결혼식은 정말이지 아주 근사했어요.
샐리 맞아요. 진짜 아름다웠어요.
해리 굉장했죠. 엄청나게 큰 코코넛 케이크도 있었어요.
샐리 거대한 코코넛 층층이 케이크에다가 아주 진한 초콜릿 소스를 옆에 곁들였죠.
해리 케이크 위에 소스를 뿌려놓는 걸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죠. 그럼 케이크가 너무 축축해지니까요.
샐리 특히나 코코넛 케이크는 축축한 기운을 너무 많이 빨아들이니까요. 소스를 옆에 따로 준비하는 건 정말 중요해요.
해리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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