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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도서관 기행 (完)

한국 도서관 기행 (7) ~ 장르 도서관 ①

한국 도서관 기행 연재, 일곱 번째 꼭지로 돌아왔습니다. :-)

편에 이어 일곱 번째로 소개하는 주제는 '장르 도서관'입니다.  '장르 도서관'편은 프롤로그를 포함해 세 도서관에 관해 4회에 걸쳐서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지난 포스팅은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장르 도서관1) 


by 강예린 & 이치훈 


도서관에서 유독 눈에 띄지 않는 책들이 있다. SF(Scientific Fiction), 판타지소설, 사진 책, 시집이 그렇다.

문학 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에 가도, SF나 판타지는 따로 분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외국소설 코너나 대중소설 코너 등에 분산되어 있어서, 서가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것 이외에는 알아채기가 힘들다. 게다가 SF는 가벼운 대중소설이라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그 입지가 좁은 편이다.

시집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기에 호흡이 짧은 쪽이다. 호흡이 짧다고 해서 도서관 안에서 머무는 시간에 읽게 되지도 않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에는 짧은 시간 안에 읽을 수 있는 운문보다는 조금 더 오래 읽을 수 있는 산문을 찾는데 열중하는 것 같다. 운문보다 산문이 더 힘을 가지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책은 어지간한 규모의 도서관을 제외하고는 만나기 힘든 책 종류이다. ‘사진책’은 이미지 출력 비용 덕분에 ‘글 책’보다 월등히 비싸서, 도서관의 도서구매 예산에서 뒷자리로 쉽사리 밀려난다. 개인이 구매하기 힘든 책을 도서관이 대신 구비해야하는 것이겠지만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찾는 사람의 숫자가 더 많은 쪽을 더 구입하는 쪽으로 기운다.


도서관 살림을 따로 차리다 

이렇게 기존 도서관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장르의 책들이 새로 도서관 살림을 차렸다. 관악산 입구의 ‘시 도서관’, 사당동의 ‘SF & 판타지 도서관’2), 전남 고흥군의 ‘사진책 도서관’이다. 하나의 분류서가가 단독 도서관을 이룬 셈인데, 각 장르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책을 널리 노출시키기 위해서 택한 전략이다. 재미있게도 이 세 도서관들은 자기 장르에 어울리는 장소에서 들어앉아있다.



관악산 ‘시(詩) 도서관’의 경우는 관악산 등산로의 입구에 있다. 필요 없어진 관악산 입산을 위한 매표소를 개조해서 시도서관을 만들었다. 도서관 앞에는 관악산 버스 정류장과 만남의 광장이 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짬 내서 들어오는 사람들, 같은 등산모임 동반자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시도서관의 주요 이용자들이다. 일행이 도착해서 읽던 시집을 내려놓더라도 읽다 만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시를 읽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지만, 그 여운은 등산을 마칠 때까지 길게 갈 수 있으니 시도서관으로서는 꽤나 어울리는 장소에 자리한 셈이다. 시는 텍스트를 넘는 심상이니, 여러 감각이 열린 상태에서의 산행은 보통 때보다 풍부할 것이다.


‘SF & 판타지 도서관’은 사당동 골목 안의 지하실에 있었다. 예산 사정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입지지만, 이 사회가 SF 판타지 장르를 대해왔던 방식과 닮은 면이 있다. 사회적으로 SF나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어른들은 오타쿠3)로 여긴다. 다 자란 어른이 당당하게 보기에는 허황된 책이지 않느냐는 편견을 피해서 ‘SF 판타지 도서관’은 지하로 내려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지하’란 판타지소설에서 늘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입구이다. ‘동굴’, ‘터널’, ‘지하세계’, ‘옷장 속’, ‘지구 저 아래’는 별 세계가 있고 거기에서 살아가는 종족과 사회가 있다. SF 영화 보인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지하’란 판타지소설에서 늘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입구이다. ‘동굴’, ‘터널’, ‘지하세계’, ‘옷장 속’, ‘지구 저 아래’는 별 세계가 있고 거기에서 살아가는 종족과 사회가 있다. SF 영화속에서 지하를 경험하고 나온 사람은 보통 성숙하고 자라나듯이 ‘SF 판타지 도서관’ 내려갔다 나온 사람들은 힘을 내서 다른 일상을 살 수 있을 것 만다.      

  

‘사진책 도서관’은 관장님 말씀처럼 섬 빼고 육지 상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 고흥에 도서관이 있다. 여기까지 작정하고 오는 동안 사진 책을 읽을 마음의 폭이 마련된다. 사진책은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읽는 것이다. 느릿한 책읽기만이 이미지를 찬찬히 읽어낼 수 있다.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시대에도 변화가 거의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고흥에 자리 잡았다는 사진책 도서관장님의 말씀은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진책과 분위기가 맞춤한다. 


어찌 보면 각 장르 도서관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는 각 장르를 대변해주고 있다.


다음 편, '관악산 ‘시(詩) 도서관’편에 이어집니다.



1) ‘전문 도서관’ 보다는 ‘장르 도서관’으로 부르고 싶은 것은 이 세 도서관이 하나의 분야를 전문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그 장르가 수반하는 하위문화(subculture)까지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2) 사당동의 SF & 판타지 도서관은 이 글을 쓰고 난 후, 연희동으로 이전했다. 이후 SF & 판타지 도서관 꼭지에서는 이사가고 달라진 부분을 더 써주겠다. (2012년 6월 이전한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121-6 중앙빌딩 3층)

3) 다른 말을 대체하려고 해도, 불가능해서 오타쿠라는 단어를 썼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오타쿠.[御宅, otaku]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초기에는 ‘애니메이션, SF영화 등 특정 취미·사물에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분야의 지식이 부족하고 사교성이 결여된 인물’이라는 부정적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부터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특정 취미에 강한 사람’, 단순 팬, 마니아 수준을 넘어선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는 긍정적 의미를 포괄하게 되었다. 한국에는 비슷한 말로, 한 가지 일에 광적(狂的)으로 몰두하는 사람, 낚시광·바둑광·골프광 등으로 불리는 ‘광(狂)’ 이라는 단어가 있다.





반비 블로그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도서관 기행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도서관 산책자
두 책벌레 건축가가 함께 걷고 기록한, 책의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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