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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도서관 기행 (完)

한국 도서관 기행 (7) ~ 장르 도서관 ②

편에 이어 일곱 번째로 소개하는 주제는 '장르 도서관'입니다.  '장르 도서관'편은 프롤로그를 포함해 세 도서관에 관해 4회에 걸쳐서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지난 포스팅은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도서관 기행 (7) ~ 장르 도서관 ①편에 이어서...


관악산 시(詩) 도서관 


by 강예린 & 이치훈 





등산복 차림의 도서관


‘시도서관’은 관악구에서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이다. 관악산 ‘만남의 광장’의 뒤편에 있는 관악구도서관에서 2009년부터 분관하여 운영되고 있다. 등산로 입구에서 관악도서관까지 10분도 안 되는 거리지만, 등산을 앞에 둔 혹은 마치고 나온 등산객들이 굳이 찾아가기에는 충분히 먼 거리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관악산이 불러 모은 등산인구에게 최대한 노출될 수 있는 도서관, 만남의 광장에서 서있는 짧은 시간에도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도서관이다.  

그 결과 주말 아침에 시도서관에 들어가면,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앉아있다. 매일 몇 천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슬쩍하니 도서관을 기웃거린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얼마 안 되는 시간에 더없이 어울리는 책이 시집이다. 시는 짧은 순간을 길게 우려낼 수 있으며, 책 전체를 읽어야 할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더 읽고 싶은 마음에 들면 시집을 들고 산에 오르면 된다. 시 도서관에서는 회원가입 없이도 일일 대출이 가능하며, 시집 정도는 들고 산에 올라도 부담스러운 무게가 아니다. 어찌 보면 ‘시도서관’을 만드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장소를 택했다기 보다는, 이 장소가 원하는 장르가 ‘시’였던 것도 같다. 

시 도서관에는 도종환시인의 기증 서고는 물론, 각종 시 선집들, 외국시, 한시 등 그 분류가 시 아래로 빼곡하다. 도서관 안의 '시'가 코너 보다 하위분류가 훨씬 다양해졌다. 같은 수량의 시집이 있다고 해도 따로 분류해서 보니, 그 결이 다양하게 드러난다. 한시와 같은 동양의 고전 시들, 잘 접할 수 없는 나라들의 시집들도 눈에 확 들어온다.


시를 새기다 : 아직 청춘이 낭만이었을 때의 문화1)


시도서관을 등산 전후의 정류장으로 삼는 많은 분들은 시를 암송하던 학창시절을 가진 중·노년층이다. 지금이야 생활에 밀려서 시를 멀리 한다 해도, 한 때는 문학소년 문학소녀를 꿈꾸었음직한 우리 부모님 또래의 분들이다. 엄마의 학창시절 이야기 중 제일 낯설었던 것이 친구들끼리 색종이에 시구를 적고 그 여백에 말린 낙엽을 장식해서 나누거나, 돌아가며 시를 읽어줬다는 경험담이다. 낭독은 하얀색 옷을 입고 백합을 꽂은 빨간 머리 앤만의 것이 아니라, 교복을 입은 엄마 때론 아빠들의 추억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시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시낭독회’에 대한 중장년층들의 반응이 좋다. 

중·노년층 분들에게 시낭독회는 세월에 밀려났던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요즘처럼 88만원에 아픈 청춘이 아닌, 아직 청춘이 낭만인 시절을 거친 분들에게 시도서관은 자신의 젊음을 환기해준다.  


시 낭독회와 더불어서 시도서관의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봄 날 좋을 때 옥상에서 펼치는 시화전이 있다. 예전에는 미술시간 단골로 등장했던 것이 ‘시화그리기’였지만, 요즘에는 지하철 전시장에서 가끔 마주치는 정도로 잘 시도지 않는 것 같다. 시화란 것이 감상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시를 감상하고 해석하는 하나의 창의적인 방법임에는 분명하다. 

옥상에 올라가보니 앉을 수 있는 벤치와 시화가 몇 개 붙어 있다. 등산에 피곤한 몸을 쉬는 분들이 도서관을 들어가지 않고도 시를 즐길 수 있게 하는 배려가 엿보인다.

 

시도서관은 시를 읽고 즐기는 다양한 방식을 제안하는 것 뿐 아니라 사람들이 시를 쓰도록 장려하기도 한다. 시도서관의 사서분의 말에 따르면, 지난 해 도서관이 생겨난 후 숨어있던 지역 시인들이 자신들의 시집을 기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를 유통시킬 수 있는 공간이 생겼으니, 자비로 출판하는 아마추어 시인들을 의도치 않게 북돋은 격이다. 시도서관에서는 한 코너를 이 지역 시인들의 코너로 엮어두고 있다.



다음 편은 'SF & 판타지 도서관' 편입니다. 



1) 박해천, 2012. 5. ‘청춘없는 시대의 수많은 보아’ G.Q. (201205)

http://www.style.co.kr/gq/feature/ft_view.asp?c_idx=010902010000137&menu_id=04030200





반비 블로그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도서관 기행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도서관 산책자
두 책벌레 건축가가 함께 걷고 기록한, 책의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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