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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도서관 기행 (完)

한국 도서관 기행 (7) ~ 장르 도서관 ④

...에 이어 일곱 번째로 소개하는 주제는 '장르 도서관'입니다.  '장르 도서관'편은 프롤로그를 포함해 세 도서관에 관해 4회에 걸쳐서 포스팅합니다.  (지난 포스팅은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도서관 기행 (7) ~ 장르 도서관 ①편 / 한국 도서관 기행 (7) ~ 장르 도서관 ②편 / 한국 도서관 기행 (7) ~ 장르 도서관 ③편 에 이어서... 한국 도서관 기행 (7) ~ 장르 도서관 편의 마지막 편인 ④편입니다. 



사진책 도서관 


by 강예린 & 이치훈


‘사진책 도서관’은 헌책-방과 사진-책을 사랑하는 개인이 1992년부터 모은 책들을 인천의 배다리에 열면서 시작되었다. 다른 책들도 있지만, 사진책을 도서관의 한복판에 둔 사연은 사람들이 사진책을 가장 안 읽는다고 느껴서란다.

시골살림을 하고 싶은 도서관장님 내외는 배다리 살림을 접고, 잠깐 충주를 거쳐서 다시 더 남쪽 전남 고흥으로 도서관을 연달아 이사했다. 시골이라도 곧 도시가 될 시골 혹은 도시가 되고픈 시골이 있는 반면, 꽤 오래 시골답게 남아줄 것 같은 장소를 원했다고 한다. 바로 오는 기차도 없고, 고속도로를 통해 연결되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고속의 시간’에 포섭되지 않는 몇 안 되는 장소이다. 여기 오는데 내가 쓴 시간도 무려 4시간 반이다.

골목안의 독자들을 떠나서, 멀고 한적한 곳으로 온 까닭은 무엇일까? 

“저는 사진책을 읽어줄 사람들은, 이곳까지 시간을 내어서 찾아와 줄 것 같아요.” 바꿔 말하면, 이 긴 시간을 감당하고 오는 사람들은 사진책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준비를 하며 올 것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서두를 필요 없다.   

새로운 사진책 도서관의 터는 폐교가 된 초등학교이다. 사진책 도서관은 이제 막 짐을 풀고 있다.

“서두르지 않고 있어요. 이사를 두 번이나 와서 책이 엉망이 되었어요. 볕 나면 책 관리하고, 아이 키우며 빨래하며 틈틈이 사진책 도서관을 다듬습니다.” 사진책 도서관의 최종규 관장님은 서두는 기색 없이 느긋하게 짐을 풀고 있다. 여기까지 와서 서두를 필요가 있냐면서.




사진_사진책_시간 

 

“여기에는 시간이 머무는 것 같아, 도시에는 시간이 다 도망가 버렸는데.” 폐교에 들어가니,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에서 고 정기용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어른 따라 도시로 도망간 교실에는, 도망갈 수 없는 시간들이 대신 앉아있다. 아이들의 노는 자리만 찾아 이 곳 저 곳의 시간을 담아둔 편해문씨의 「소꿉」, 태어날 때부터 딸아이의 결혼식까지의 시간을 기록한 평범한 아빠 전몽각씨의 「윤미네 집」, 권투선수가 출정을 앞두고 혹은 경기를 마치고 카메라 앞에서 투지에 찬 모습을 짓는 순간을 담은 히데키 사토의 「Korean Boxer」 등 다시 오지 않을 순간들이 이곳에 가득하다. 시간을 담아둔 폐교처럼 사진책에는 나름의 시간이 담아 있다

사진이 등장과 함께 그림을 대체해버릴 것이라는 과거의 예측도, 특정한 순간의 이미지를 복제해서 가두는데 있어서 사진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수잔 손탁(Susan Sontag)의 말처럼 ‘사진의 가장 웅대한 결과는 우리로 하여금 세계의 모든 것을 우리 머릿속에 붙잡아 둘 수 있다고 생각하게끔 만든 것이다.’ 사진은 자기만의 기재로 세상을 차곡차곡 꾸릴 수 있다. 앨범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가족의 범위와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없어진 청주사진관의 사진들은 이제는 청주사진관을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사진은 점차 시간과 장면의 수집을 넘어서 다른 방식으로 말을 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과거 사진이 액자에 담겨져서 전시에 걸리거나 집안의 인테리어로 남아있었다면, 지금은 책의 영역으로까지 들어와 있다. 세상을 어떤 크기로도 줄였다 늘렸다 마음대로 담을 수 있는 사진은 책으로 묶어 둘 수 있다. 이미지를 다시 한 번 이미지화해서 담아 두는 것인데 사진을 오래 보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책처럼 말할 수 있다. 크기에서 주는 감동 보다는 같이 묶여져서 나오는 사진 이미지와 부딪히면서 내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정보는 무의식적으로 선택되고 걸러지는 것이다. 사진이 바라보는 방식은 이 선택과 걸러짐을 더욱 강조할 수도 있고 여짓껏 주목하지 않은 정보를 더 두드러지게 드러내서 다른 피사체와 동일선상에서 바라 볼 수도 있게 해주기도 한다. 한마디로 사진은 ‘본다는 것’의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액자 앞에서 지켜보는 사진이 아닌 책으로 엮여져 읽는 대상으로서의 사진은, 더 많은 이야기를 생산하고 있다. 손으로 한 장씩 넘겨서 읽는 사진책을 우리는 순서대로 읽지 않고 손 가는대로 읽어내어 새로운 이야기로 몽타주 해내기도 한다. 

책으로 묶이면서 사진은 보다 ‘이야기’에 가까운 언어를 가지게 되었다. 한 번 갔던 전시를 다시 가게 되는 일은 별로 없으나 책으로 두고두고 읽고 새기는 일은 가능해졌다.

「윤미네 집」은 ‘사진책’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아기 윤미가 태어난 순간부터 결혼하는 날까지의 사진을 윤미네 집 거실에서 앨범으로 보는 것과, 책을 통해서 읽는 것은 명백히 다르니 말이다.  




모든 사진책은 헌책이다.

 

모든 사진책은 헌책이다. 조금 더 올바르게 고쳐 말하자면, 모든 사진책은 헌책이기 쉽다.  사진을 책으로 엮어서 내는 일은 우리 출판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글보다는 그림이 홀대 받는 출판 시장인데다가, 사진책은 글 책보다는 비싸기 때문이다. 찍어봐야 1000부 정도를 찍어내는 것이 보통이니, 때를 놓치게 된 사진 책은 헌책방에서야 만날 수 있다. 인문 사회과학 문학책들은 더러 다시 출판되기도 하지만, 「윤미네 집」처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사진책은 단 한 번 세상에 드러난다.

더욱이 인터넷 서점이 오프라인 서점을 대신하면서 사진책은 더더욱 팔리는 편차가 더 크게 되었다. 온라인 서점에서 팔리는 책종은 실제 서점에 비해 60%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첫 번째 면에 노출되는 것의 숫자가 적다 보니, 뒤적이면서 판단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결국 사진책과 같이 잘 노출이 되지 않는 책들은 찍어내는 부수가 적은채로 유지되고 많아야 2쇄가 찍힌다. 

“한국은 사진기 보급이 아주 높고, 손 전화라든지 디지털사진기라든지 온갖 사진기를 참으로 많이 쓰지만, 정작 사진을 어떻게 찍으며 내 삶을 즐겁게 누릴 수 있는가 하는 길은 거의 모르거나 살피지 않습니다.” 한국처럼 DSLR의 보급이 높은 나라, 사- 진을 많이 찍는 나라에서 남이 찍은 사진을 찬찬히 뜯어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기의 렌즈가 세상이 아닌 자신에게로 주로 향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어떤 배경에서도 다른 오브제를 다 제치고 본인의 얼굴이 제일 앞에서 있어야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보건 간에 그 모습에서 자 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이 순간을 남기고 변화해 가는 것들을 놓지 않으려는 기본적인 속성인 것처럼, 헌책방에는 이미 책 목숨이 다한 책들이 그 가치를 연장하고 있다. 사진책 도서관에서도 그런 책들이 눈에 곧잘 걸린다.     

내 눈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뿌리 깊은 나무’의 전권이다. 어느 온라인 사이트에서 다시 복간하면 좋을 잡지로 순위에 꼽힐 만큼 좋은 기획으로 이뤄진 책인데, 왠만한 도서관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 만나기 힘들다. 

굴피집이나 한국의 건축, 사실 이 곳에 있는 대부분의 책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하기에 사진책 도서관은 이 희박한 통계치가 몰려 있는, 극도로 가치있는 공간일 듯싶다. 


한국 도서관 기행 7번째 이야기 '장르 도서관'편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달의 8번째 도서관은 어떤 도서관일까요? 많이 기대해주세요.




반비 블로그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도서관 기행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도서관 산책자
두 책벌레 건축가가 함께 걷고 기록한, 책의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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