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完)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4-2) 광주에 등장한 '주요 동물' 코끼리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by 최종욱, 김서윤


제 4부 코끼리, 빛고을 광주로 이사 가다


    2장 광주에 등장한 '주요 동물' 코끼리



이전 글 목차 보기 



코끼리들을 맞이한, 예상치 못한 환대


우치동물원을 찾은 정이사는 예기치 않은 환대를 받았다. 코끼리라는 말에 우치동물원에서는 최정수 소장이 직접 적극적으로 나섰다. 코끼리가 올 수만 있다면 코끼리월드의 요구 조건을 가능한 한 모두 수용하겠다는 것이 우치동물원의 입장이었다. 정이사가 다녀간 지 얼마 후에는 최정수 소장과 담당 직원들이 직접 어린이대공원으로 찾아와 코끼리들의 상태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전라권의 인구가 적은 데다 수도권에서 접근성도 떨어진다는 사실이 여전히 걸림돌이었다. 게다가 우치동물원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우치동물원이 아무리 적극적으로 나선다 해도 결코 해결해 줄 수 없는 그것은 공연장이 들어설 만한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우치동물원이 국내에서는 넓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동물 우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호수와 녹지로 이루어져 있다. 우치동물원에서 아무리 코끼리를 원한다고는 해도 다른 동물 우리를 허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마련되어 있는 코끼리 우리는 겨우 두세 마리만 들어가면 꽉 찰 크기였다. 코끼리 우리 앞쪽에 작은 공터가 있긴 했는데 코끼리 트래킹 코스라면 아쉬운 대로 마련할 수 있을 듯해도 공연장은 절대 불가능했다.

정이사의 답사 보고와 우치동물원의 구애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던 김회장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다른 데도 공연할 만한 데가 딱히 마땅한 것도 아니고. 우치동물원에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나오고 일도 편하게 진행되고. 정이사도 광주로 하자 그랬어요. 우리는 시간도 없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김회장이 코끼리월드를 접기로 결심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더 이상 코끼리 공연 사업을 계속해 보았자 수지가 안 맞는다는 판단이었다. 만약 이 무렵 코끼리들을 모두 사겠다는 동물원이 있었다면 김회장은 곧바로 손을 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홉 마리나 되는 코끼리를 한꺼번에 살 수 있는 동물원이 금방 나타날 리 없었다. 그때까지 코끼리들을 머물 거처가 필요했다.


▲ 우치 동물원에서 만든 코끼리 홍보 전단지


양측은 코끼리 임대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번에는 코끼리월드가 원하면 언제든 코끼리들을 데려갈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린이대공원과 계약할 때에 비하면 갑을 관계가 바뀐 계약서였다. 계약이 확정되자마자 우치동물원에서는 보도 자료를 언론사에 뿌리는 것은 물론이고 홍보 전단지까지 만들어 광주 시내에 돌렸다. 우치동물원이 세워진 후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오는 동물은 코끼리가 처음이었다. 코끼리월드는 기존의 코끼리 우리를 보수해 조금이나마 더 넓히고 앞쪽의 공터에 코끼리 트래킹 코스와 먹이 주기 체험장을 만들었다. 어린이대공원 안에 조련사들 숙소도 마련했다.






2008년 8월 18일 선발대 격으로 세 마리의 코끼리가 우치동물원에 도착했다. 코끼리들을 나누어 싣고 화물 트레일러의 모습이 마치 기차 같았다. 모여서 기다리고 있던 동물원 사람들은 그 광경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게차가 트레일러에서 수송용 우리를 내리자 조련사들이 코끼리를 밖으로 꺼내 한 명씩 코끼리의 목에 탔다. 코끼리들은 조련사가 이끄는 대로 새로운 우리 안으로 차례대로 들어갔다.


코끼리 트래킹을 하는 모습. 특히 어린이 관람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적응 기간을 가진 후 그달 말 코끼리 트래킹이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5000원의 표 값이 비싸다고 느껴졌는지 관람객들은 흔쾌히 다가오지 않았다. 동물원 직원들이 관람객으로 가장해 코끼리 트래킹을 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제야 표를 사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한 달 후에는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다. 광주 시민들의 머릿속에서 우치동물원 하면 코끼리 타기 체험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코끼리 우리는 동물원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관람객들은 코끼리부터 먼저 본 다음에 다른 동물들도 구경하곤 했다. 아무리 그래도 공연만큼 수익이 나지는 않았기에 코끼리월드는 계속 적자였다.

그사이 서울에서는 맞소송이 마무리되었다. 코끼리월드도 승소하고 어린이대공원도 승소해 결과는 무승부. 어린이대공원에 남아 공연을 계속하던 나머지 여섯 마리 코끼리도 2008년 11월 우치동물원에 합류해 아홉 마리가 다시 모였다. 하루아침에 우치동물원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코끼리가 사는 동물원으로 탈바꿈했다.

코끼리를 보려면 언제나 전라도 밖의 다른 동물원을 찾아야 했던 광주 시민들 앞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코끼리들은 큰 화제가 되었다. 우치동물원은 이 코끼리들이 동물원 소속이 아니라 임대된 것이라는 사실을 보도자료 등을 통해 분명히 밝혔지만 시민들이 그런 세세한 사실까지 확인하고 기억할 리 없었다. 우치동물원과 코끼리들의 만남은 그렇게 처음부터 불안정하게 시작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