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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完)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5-2)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 계속된다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by 최종욱, 김서윤


제 5부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


    2장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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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와 우리는 정성스러운 보살핌 속에 무럭무럭 자랐다. 혹여 누가 코끼리 아니랄까 봐 쑥쑥 크는 모습이 하루가 다를 정도였다. 네 다리는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처럼 두꺼워졌고 코는 피노키오의 코처럼 늘어났다. 조련사들이 다가가면 장난을 걸 정도로 성격도 활발했다. 새끼 코끼리들의 재롱에 웃음을 터뜨리는 관람객들을 보면 입가에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지어졌다.

동화 작가 고정욱의 동화책 『코끼리를 만질 거야』(2012, 주니어랜덤). 작가가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책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는 그다음 해에도 열렸다. 2회 때는 국립맹학교와 강원명진학교의 학생들이 참여했고 이번에도 역시나 기발한 예술 작품들이 탄생되었다.

하지만 이 코끼리들은 엄연히 코끼리월드라는 사기업의 재산이었다. 공연용으로 훈련된 코끼리들이 공연을 중단한 이후로 코끼리월드는 계속 적자를 기록했다. 우치 동물원에서 코끼리 타기 체험이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이것만으로 수익을 내기는 어림없었다.

코끼리 매매 협상이 진행된 곳은 부산의 대공원이었다. 부산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는 위치가 무색하게 몇 년째 동물원이 부재한 상태였다. 부산에서 새로운 동물원을 추진하던 관계자들은 이 코끼리들을 꼭 데려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여기도 돈이 문제였다. 공사비 문제로 착공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코끼리 매매 대금이 나올 구석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연락이 온 것이 일본의 후지 사파리 파크였다. 후지 사파리 파크는 전체가 사파리 형태로 되어 있는 동물원이다. 사실 김 회장은 코끼리들이 내심 한국에 남기를 간절히 바랐다. 김 회장에게는 그 귀한 코끼리들을 열 마리나 우리나라에 들여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곳도 선뜻 제 값에 코끼리를 구입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후지 사파리 파크는 코끼리월드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열한 마리 코끼리들을 모두 사겠다고 제안해 왔다. 결국 김 회장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단, 열한 마리가 아닌 아홉 마리를 파는 조건으로.

코끼리들이 여러 모로 화제가 되자 광주시에서는 임대 상태인 코끼리를 정식으로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모든 코끼리를 다 구입할 수 있는 예산은 없으니 그중 선택된 것이 바로 봉이와 우리 모녀였다. 우치는 우치 동물원에서 처음 태어난 코끼리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수컷이라서 암컷보다 다루기 힘들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봉이와 우리는 광주시에 입적되었다. 일종의 명예시민 같은 것이랄까. 이제 봉이와 우리는 평생 우치 동물원에 남게 된 것이다.

전국이 물난리로 떠들썩하던 2011년 7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코끼리 수송이 이루어졌다. 거대한 수송 상자가 동물원에 도착했다. 쏘이와 우치 모자가 함께 들어갈 수송 상자는 그중에서도 특별히 더 컸다. 이번 수송을 위해 새로 제작된 것이다. 나는 두 코끼리의 건강을 체크했다. 모두 건강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수송 중에는 과일, 야채 같은 연한 먹이만 주라는 둥 간섭을 조금 했다. 섭섭한 마음 때문이었나 보다.


▲ 수송용 우리 안에 들어가고 있는 코끼리. 우치 동물원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낯선 상자가 보이자 떠나는 코끼리도 남는 코끼리도 안절부절못해 요란하게 울어 대기 시작했다. 도저히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래서는 우리에 싣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덕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나는 떠나는 코끼리들에게 부랴부랴 코끼리용 진정제를 놓았다. 코끼리를 모두 우리 안에 넣는 데만 두 시간이 걸렸다. 일본에 도착하기까지 20시간 동안 그 비좁은 우리에서 버텨야 했다.

다음 날 봉이와 우리 모녀만 남은 코끼리 우리에 가 보니 한국인 사육사 둘이 부지런히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봉이와 우리는 여전히 불안한지 제자리를 자꾸 돌았다. 두 모녀는 결국 둘만의 생활에 적응할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친구들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특히 쏘이와 우치 모자를 말이다.


코끼리들은 우리나라를 떠났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는 또 다른 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청주맹학교 학생들 여덟 명과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태국 치앙마이의 코끼리 자연 공원(Elephant Nature Park)에 도착했다. 물가의 넓은 초원에 조성된 이곳은 태국의 코끼리 보호 운동가 ‘쿤 렉’이 2003년에 설립했다. 쿤 렉은 동남아 어디든 병들고 지친 코끼리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직접 가서 사다가 이곳에 풀어놓고 키웠다. 지상 최대의 코끼리 요양원, 더 고상한 말로 ‘힐링 센타’인 셈이었다. 이곳에는 수코끼리 네 마리를 비롯해 서른여섯 마리의 크고 작은 코끼리가 돌봄을 받고 있었다. 그중 여섯 마리 정도는 눈먼 코끼리, 네 다리중 하나를 못 쓰는 코끼리, 척추가 흰 코끼리 그리고 이제 갓 낳은 아기 코끼리였다. 운영비는 따로 후원을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의미 있는 체험을 원하는 유럽과 미국 출신 젊은 자원 봉사자들의 공정 여행비에서 나온다고 한다.



▲ 태국 치앙마이의 코끼리 자연 공원에서 있었던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의 모습.


  이곳에서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도 우치 동물원에서 했던 것 못지않게 큰 울림을 남겼다. 아이들은 3일 동안 코끼리를 엿보고 냄새 맡고 만지면서 속으로 무엇을 보았을까? 코끼리는 눈으로보다 속으로 더 잘 보이는 동물이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선명한 코끼리를 보지 않았을까 싶다. 이 모습들은 EBS에서 제작한 교육 대기획 10부작 ‘학교의 고백’ 제8부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에 담겨 전파를 탔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우리들의 눈’의 엄정순 회장은 최근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고향 태국을 떠나 일본을 거쳐 지금은 서울 대공원에 있는 코끼리 사쿠라를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자는 운동이다. 시각 장애 어린이를 위해 시작한 일이 이제 코끼리라는 종에 대한 깊은 공감으로 확대된 것이다.

친구들과 헤어져 둘만 남은 봉이와 우리 모녀는 우치 동물원에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암컷이라 수컷보다 키우기 쉬울 것이라는 이유로 선택된 우리는 기대를 저버리고 장난꾸러기로 자라고 있다. 벌써 힘이 장사라 내실의 철문을 망가뜨린 적도 있다.

코끼리들은 떠났지만 코끼리들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동물들도 이주자, 노동자로서 국경을 넘나드는 시대, 우리 사회가 이 동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곧 우리가 동물들과 함께 생존해 나가기 위한 물음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블로그 연재는 이번 회가 마지막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책으로 찾아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