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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비의 책

맨땅에 펀드 : 땅, 농부, 이야기에 투자하는 발칙한 펀드



맨땅에 펀드


땅, 농부, 이야기에 투자하는 발칙한 펀드


위기(?)에 빠진 시골 마을을 구하고자 시작된 ‘맨땅에 펀드’

농사짓는 바보들과 농사도 모르는 바보들의 좌충우돌 해피엔딩 스토리!


“마을 모임에 소용될 음식을 인근 식당에서 시켜 먹어야 하는 상황은, 생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에겐 ‘끔찍한 일’이다. 이런 끔찍한 일들이 마을에, 농촌에 돈으로 인력을 부리는 관행이 정착하면서 생겨났다. 더 이상 울력이나 품앗이는 힘들다. 공동체의 긍정적이고 이타적인 문화가 붕괴되어 가는 것이다.

‘맨땅에 펀드’는 특정 사이트의 수익 사업이 아니다. 결국은 예산 지원이나 관의 개입 없이 하나의 마을이 운영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한 아주 턱없는 출발이다. 2012년에 마을은 그것을 실감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2013년이 중요하고 2012년은 거름으로 소용될 것이다. 우리는 2012년에 스스로 똥이 되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창조 경제’가 벤치마킹하려 했다는 바로 그 펀드의 모든 것!


이 책은 2012년 지리산닷컴(www.jirisan.com)에서 진행한 ‘맨땅에 펀드’ 프로젝트의 기록이자 결산이다. 지리산닷컴은 도시 사람들(지리산닷컴 회원들)에게 매일 아침 물음표 없는 ‘행복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지리산 자락의 사진과 이야기를 보내 염장을 지르는 것으로 유명한 사이트다. 이곳에서 2012년 3월 ‘땅, 농부, 이야기에 투자한다.’는 뜬구름 잡는 명목으로 1계좌당 30만원씩 100명의 투자자를 모집했는데, 놀랍게도 이 고가의, 고위험 펀드는 출시 즉시 완판되었다.

이후 지리산닷컴에서는 1년간 그 돈으로 임대한 땅에 “약을 치지 않고 농사짓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않은” 마을 엄니들을 설득해 가능한 한 친환경적으로 농사를 지으려 애썼고, 또 주변의 어려운 농부들, 위대한 농부들이 가꾼 작물들을 ‘제값’에 구매해 배당했다. 투자자들은 총 5번의 배당을 받았고 배당품으로는 직접 농사를 지은 밀과 감자, 감, 땅콩, 고구마, 배추, 무, 직접 농사를 지어 가공한 김치, 청국장, 그리고 인근의 ‘착한’ 농부들에게서 구입한 산마늘(명이나물), 두릅, 오이, 건표고, 꿀, 매실효소, 허브차, 조청 등이 포함되었다.

투자자들이 다소 뜸하게 도착하는 배당품보다 더 손꼽아 기다렸던 것은 매주 혹은 격주로 지리산닷컴 사이트에 올라오는 운용 보고서였다. 세 달 동안 배당이 없어도 운용사가 망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두고 안심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보고서 덕이었다. 이 보고서를 통해 투자자들은 운용사가 어떤 작물들을 어떻게 파종하고 수확하는지, 그 작물들이 어떤 시기에 어떤 꽃들을 피우는지, 또 가뭄과 장마와 태풍에는 어떤 영향을 받는지, 심지어 어떻게 도둑을 맞는지, 그 작물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즐겁거나 힘든지 등을 세세하게 공유할 수 있었다. 이것은 ‘직거래’를 빙자한 ‘매개’ 행위였다. 시골과 도시를, 맨땅과 식탁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함께한다’는 마음을 만들어내는 것.     

이 보고서를 일반 독자들 용으로 보완해 만든 책에서는 ‘맨땅에 펀드’라는 기이하고 위험한 펀드가 1년간 겪은 희노애락, 가령 인선 파동과 마을 엄니들 간의 계파 경쟁, 그리고 아찔한 교통사고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책에는 그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행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비책도 담겨 있다.

한편 성공적인(?) 한 해의 실험 운용을 마친 맨땅에 펀드는 2013년에도 투자자를 334명으로 확대해 계속 진행중이다. 언젠가 시작될 ‘맨땅에 펀드 함양’, ‘맨땅에 펀드 완도’, ‘맨땅에 펀드 정선’, ‘맨땅에 펀드 봉화’를 기다리면서.



꾸러미 사업? 협동조합? 맨땅에 펀드의 정체는 무엇인가?


주최 측도 아직까지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기는 하다. 농산물 펀드인가?(물론 아니다.) 그렇다면 유기농,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는 운동인가? 친환경을 지향하는 것은 맞지만 배당된 작물들 중 완전한 유기농은 드물었던 사실로 보아 꼭 그렇다고 보긴 어렵다. 근자에 유행하는 꾸러미 사업(“농촌의 생산자와 도시 소비자를 연결하는 소규모 직거래”라고 통상 이해된다.)인가? 요즘 관공서에서 특히 잘나간다는, 이름도 거창한 CSA(공동체 지원농업, Community Supportted Agriculture)인가? 그것도 아니면 혹시 최근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협동조합의 다른 방식인가?

연초에 가입한 투자자들에게 임의의 작물들을 박스에 담아 보내준다는 점에서 꾸러미 사업이라 볼 수도 있다. 상업적 유통의 문제점을 성찰하기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한다는 점에서 CSA라고 볼 수도 있다. 또 마구잡이 예산지원에서 벗어나 상부상조로 마을의 자립을 꿈꾼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의 성격도 일부 가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맨땅에 펀드’스러움이 있다.(띠지의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카피가 가리키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물론 맨땅에 펀드의 조기 완판 사태는 애초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지리산닷컴이라는 사이트의 인기, 그리고 지리산닷컴 회원들의 열성에 힘입은 바 크다. 또 “Don't Tell My Mother—직계 존속을 말릴 수밖에 없는 발칙한 펀드!” “불확실한 기획, 필연적인 혼란—첫해는 투자자와 운용사 둘 중 하나는 죽음이다!” 등의 주옥같은 카피로 펀드의 목표와 한계를 깨알같이 소개한 투자설명서(책 말미의 부록 참조)의 위력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기농을 인증해 판매하는 생협도 아니고, 고향 마을에서 날아오는 꾸러미도 아닌, ‘맨땅에 펀드’에 굳이 투자를 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속내에는 어느 귀촌자의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매개 행위에 대한 지지가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성과는 중요하지 않다. 제대로 된 과정을 보여달라!


사실상 맨땅에 펀드는 과정에 대한 투자, 고민에 대한 투자였다고 할 수 있다. 제대로 고민하고 제대로 실행하여 최선을 다했다면 성과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성과만으로 평가받고 가격을 매김당하는 삶에 지친 수많은 사람들이 성과는 중요하지 않다며 이러한 드라마의 제작에 참여했다.

맨땅에 펀드가 지향한 목표는 대략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우리 농업에 꼭 필요한 필수 작물과 그 작물들의 토종 종자를 보전하고, 진짜 친환경 유기농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 2. 위기에 빠진 농부를 구하고 착한 농부의 작물을 널리 알린다. / 3. 작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마을이 자본과 관의 개입에서 벗어나 함께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다. 현실적으로 이 목표들은 당장 달성되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 하지만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 과정에서 얼마나 제대로 고민하고 제대로 노력했는가가 관건이다. 그래서 뼈아픈 실수일수록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밝힌다. “2012년에는 맨땅에 펀드가 똥이 되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맨땅에 펀드 보고서는 이 지점에서도 중요하다. 투자자들이 보고서를 통해 펀드 운용에 있어서 거의 모든 사안의 거의 모든 고민의 지점들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결정은 운용사 마음대로지만, 그 결정의 과정은 지극히 미세한 결로 투자자들에게 보고된다.


원론적으로 유기농이란, 토양에 살고 있는 가장 작은 생물과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태계 전체가 너도 나도 모두 건강해지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수로 작업은 포클레인으로 진행하고 밭을 가는 작업은 트랙터로 진행한다. 우리는 계속 석유로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 방법이 아니라면? 펀드 투자자들이 모두 매 주말마다 내려와서 정말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하는 것이다. 100명이 그렇게 몸으로 땅을 파고 있는 장면은 우리 시대에서는 딱 두 군데에서 볼 수 있다. 군대와 교도소. 이른바 그 어렵다는 진정한 삽질. 포클레인은 수십 명의 사람이 하루 종일 해야 할 일을 두어 시간 만에 정리할 수 있다. 사실 이 대목에서 나는 아무런 갈등도 없다. “이 방법 말고 뭐가 가능해?” 그러나 속이 편한 것은 아니다.

멀칭비닐 문제는 우리들 내부적으로도 약간의 논란이 있다. 나처럼 입으로 농사짓는 사람들은 멀칭비닐 결사반대 입장이고 오랜 시간 텃밭을 했던 사람들은 그래도 어떤 작목에서는 멀칭비닐을 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누어진다. 농약도 아니고 화학비료도 아닌데 멀칭비닐까지 거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내 생각은 단순하다. 비닐은 석유에서 나오고 가급적이면 화석연료 기반의 농자재는 제외하자는 주장. 포클레인은 되지만 비닐은 안 된다? 이 뭔……. 어쨌건 내가 땅이라면 몇 개월씩 얼굴에 랩을 쓴 상태로 숨을 쉬고 싶지 않을 것이다.


고추 농사를 두덕 없이 짓는다? 구근류가 아니니 물길만 잡아주면 되고 힘들게 고랑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 무얼까?의 학설이다. 이 모든 것은 무얼까?의 농법이고 이 농법으로 인해 우리는 다시 온 동네에서 잔소리를 듣고 있는 중이다. 이런 젠젠장장!!


잎맥이 뚜렷하고 질긴 것이 틀림없는 우리 배추다. 이번 김장의 핵심은 김치가 아니라 배추다. 왜 주문을 중단하느냐는 질문, 마을의 다른 엄니들 김장을 대신 판매해도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단호하게 ‘아니다’. 이 배추이기 때문에 판매하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또는 평생 여러분들이 보고 먹었던 그 배추로 김장을 할 생각이었다면, 그런 배추를 팔 생각이었다면 이번 전투는 없었다. 푸른 잎 많은 김치. 죽어도 네 쪼가리를 낼 수 없는 사이즈의 배추. 맛은? 나는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이 배추 이외의 다른 배추는 무늬만 배추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 혀가 그리 알고 있다.


농부에 대해서 나는 ‘농부’라고 표기를 한다. 농부이기 때문이다. 농부. 참 서러운 직업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 농부. 참 바보 같은 직업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 농부들. 참 착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사악한 마음을 먹어 봤자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겠는가. 내가 어떤 수단으로 밥을 먹을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 우리들이 범할 수 있는 악과 선의 영향력 범주는 대략 정해진다. 그런데 그들은 하늘에 기대어 밥을 먹는다. 그들이 범할 수 있는 단기적 사악함의 극대치는 고추 모종을 사재기하는 것이다.


너무 일찍 베었고(그건 알고 있다.) 꽃대가 올라올 때 콩대를 ‘날려주지’ 않았기에 쓸데없이 줄기가 길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양분은 줄기로 빼앗겼고, 그래서 콩알이 콩알만하다는 설명이었다. 밭에서 거의 건조해야 하는데 시퍼런 콩대가 햇볕에 말린다고 바싹 마르겠냐는 말씀. 결국 마르지 않은 긴 줄기가 기계로 들어가니 절단이 되지 않는 것이고 타막기 구멍을 계속 막았던 것이다.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그 동네 사람들은 왜 삼춘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안 해줬으까이?”

왜 엄니들은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을까? 나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음주단속 나온 경찰관은 안전벨트는 단속하지 않고 카센터에 엔진오일 교환하러 가면 미션오일은 보지 않는다. 펀드매니저들은 풀 잡자고 하면 풀을 잡았고 콩 베자고 하면 콩을 베었을 뿐이다. 이 대목에서는 나는 엄니들에게 섭섭해야 할까?



성과는 중요하지 않다. 재미있게, 아름답게 일해달라!


또 한 가지 맨땅에 펀드의 주요한 특징은 일하는 사람들이나 보는 사람들이나 모두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중요한 가치로 친다는 것이다. 생산자가 즐거워야 소비자도 투자자도 즐거워지는 방식. 이것이야말로 맨땅에 펀드가 가진 가장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아닐까. 2013년 맨땅에 펀드에서는 이러한 가치를 좀더 부각해 매 배당마다 먹지 못하는 품목 하나씩을 추가했다. 첫 번째 먹지 못하는 품목은 겨울의 끝을 알리는 ‘동백꽃 한 송이’였고, 두 번째 먹지 못하는 품목은 밀 한 다발이었다. 들어는 봤나? 예쁘고 재미있는 펀드.


이 일이 비록 인류의 운명을 건 마지막 전쟁이기는 하지만 어른들의 즐거운 놀이이기도 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 우리 세대는 대부분의 ‘큰일’을 목숨 걸고 하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 그 싸움에 이기지 못하면 세상이 끝이 날 것 같은 절박함이 있었고 그런 마음으로 대부분의 싸움에서 패배했었다. 그러나 세상은 끝내 망하지 않았고 우리의 이념과 ‘그 무엇을 찾던 청춘’만 쓰러져갔다. 우리는 즐거울 권리가 있다. 비록 낡은 양복에 머리털은 점점 줄어가고 핸드폰 문자도 팔을 멀리 뻗어야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마음 전체에 굳은살이 박인 것은 아니다.


더운 김이 오르고 밥을 나눈다. 흔히 하는 말대로 이게 다 잘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 가능하면 그 짓을 즐겁게 하자는 것이다. 가능하면 그 짓을 함께하고, 가능하면 여럿이 생각해볼 수 있는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다. 우리들 스스로 즐거워보자는. 제공받는 즐거움 말고 만들어가는 즐거움. 날씨가 추워진 탓에 짬뽕 국물이 더 얼큰하게 느껴진다.


무겁게 짓누르는 하늘, 멀리 걸어가는 영감, 그리고 옥수수 초록 잎은 여름 풍경의 전형이다. 그래서 옥수수를 심었다. ‘맨땅에 펀드’ 농지는 수확과 판매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이렇듯 시각화와 스토리 생산에서 하나의 주연배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땅이 배우다. 그것이 옳은 것이다.


“시각적으로 예뻐야 한다.”가 내가 무얼까?에게 요구하는 ‘맨땅에 펀드’ 텃밭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마을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다르다. 풀이 살아 있고 곡선이 살아 있고 벌레들도 살아 있는 텃밭이 ‘맨땅에 펀드스러운’ 땅이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무질서한 듯 펼쳐진 이 풀밭 속에는 의도한 많은 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풀과 함께. 나는 이 모습이 아름답다. 옥수수, 동부 콩, 깻잎, 고추, 열무, 상추, 호박, 몇 종류의 참외, 수박, 오크라(226쪽을 참조), 오이……. 그 모든 것들이 서정주의 「상리과원」이란 시에서처럼 지지배배로 자라고 다투면서 하나의 덩어리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돈 되는 단일 품종을 길러서 특정한 면적의 땅에서 우월하거나 유일한 식물로 성장하는 것이 우리 눈에 익숙한 밭이나 논의 풍경이다. 그것은 땅의 의지와는 무관한 일이며 그 ‘정리정돈’을 위해서 많은 화석연료가 투입되고 있다. 마을의 농부들 눈에는 ‘땅을 망쳐버린’ 모습이고 우리들 눈에는 ‘땅을 살리고 있는’ 광경이다.

그리고 그 아래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열매 맺는 것들은 꽃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개똥참외를 찾던 중에 눈에 밟힌 메주콩의 꽃은 눈물겹게 예뻤다.




21세기형 본격 농촌 드라마


 이 책은 그냥 ‘농사’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도 의미와 재미를 제공한다. 의외로 농사는 스케일이 크고 다양한 장르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하루가 다르게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주는 작물과 밭의 모습은 어떤 자연 다큐멘터리보다 생생하고, 가뭄, 장마, 태풍 등의 자연재해가 재난영화(SF)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가 하면, 다양한 노동에 몸을 맡기며 극한의 신체적 감각을 묘사하는 장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방불케 한다. 그뿐인가. 사고와 범죄(서리), 그리고 농법 차이나 지정학적 차이로 인한 세력 간의 경쟁과 암투까지(스릴러), 게다가 다양한 귀촌자들의 삶의 실상이(다시 리얼리티 프로그램) 더해지면서 이 책은 22년 전통의 <전원일기>도 넘보지 못한, 21세기 대한민국 농촌의 거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경지에 도달한다.



#시놉시스


_ 시작

뭔가를 만들고 싶은데 간섭도 받기 싫다면 저예산 영화가 아니라 무예산 영화라도 시작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시골살이 2.0 스토리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자본은 없었다. ‘맨땅에 펀드’는 이런 사적인 욕구가 출발점이었다. ‘모든 기존’에 시비를 걸고 싶은 철없는 투자자들을 모집해서 블록버스터 영화만 상영하는 극장을 향해 돌멩이 하나 던지는 것이다.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커밍 수운!”


_ 중간

계획은 엉성했고 일은 서툴렀기에 힘든 것은 예정된 것이었고 우리는 예정된 시기에 예정된 만큼 지쳐갔다. 그것은 죽을 것 같은 피곤함이 아니라 예정된 마지막을 향해 걸어가는 약간 나른하고 기분 좋은 피곤함이었다.


_ 끝

투자자들은 사이트에서 응원과 안타까움을 댓글로 반응했고 단 한 사람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불만이 없을 수 없지만 그 불만을 표현하지 않기로 작정한 그 무언의 카르텔이 감동적이었다. 이곳 오미동에서, 서울 양재동에서, 광주 용봉동에서, 대구 범어동에서, 부산 명륜동에서, 파주 문발동에서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 모니터 앞에 앉아 농사짓는 바보들과 농사도 모르는 바보들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지켜보고 이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도록 끝까지 인내해준 투자자들이 없었다면 애초에 이 영화는 불가능했다. 그들은 썩은 고구마와 밤톨 크기의 감자와 곰팡이 핀 땅콩과 상처 난 감을 참아주었고 심지어 두 손으로 받아주었다. 내 부모가 지어준 농사라면 가능할까. 그래서 ‘맨땅에 펀드’는 행복했다.



# 주요 등장 인물

 

대평댁(수석펀드매니저)

1936년생 쥐띠. 구례군 산동면 대평마을 출신이다. 스물두 살에 오미동으로 시집와 그때부터 2012년 현재까지 계속 오미동에만 거주하고 계시다. 천성적으로 근면 성실하고 먹을 것을 잘 나누어준다. 뇌쇄적인 눈웃음의 소유자. 표현이 다소 원색적이고 직설적이다. 농약 없이 농사를 짓는 것을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파전 등을 지나치게 거대하게 구워서 주변을 힘들게 한다. 멀미 때문에 차를 타지 못해 20분 거리의 고향마을을 가지 못한다.


지정댁(펀드매니저)

1943년생 양띠. 칠순을 넘기셨다. 구례군 광의면 지천리 출신이다. 스무 살에 오미동 최씨 집안으로 시집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고 2남 2녀를 두었다. 집 앞으로 감나무가 십여 그루 있어 감나무 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평댁과 나란히 위치하고 있으면서 오미동 동편의 정치적 동지이자 톰과 제리 역할을 서로 반복하고 있다. ‘거시기’를 특히 많이 사용하는 언어 습관으로 인해 타지 사람들은 통역을 대동하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약간 힘들 수도 있다.


김종옥 & 서순덕(펀드 지도위원)

김종옥. 58년생 개띠. 구례군 광의면 수월리에서 나고 자랐다. 그리고 그의 아내 서순덕. 같이 감 농사를 짓는다. “군대 가기 전에 딱 한 번 객지 생활을 했제. 자동차 정비하고 이런저런 장사.” 그러고는 계속 농사다. 어떤 늙은 농부가 3000평만 과수원을 가지고 있으면 ‘요 짓(쌀농사) 안 해도’ 먹고살수 있다고 말해서 빚으로 지금의 감 농장을 구입. 1996년경부터 감 전업농으로 돌아섰다. 과수 부문에서 기술영농의 달인.


홍순영(펀드 지도위원)

1958년생 개띠. 구례군 광의면 온당리에서 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2000년 초반 무렵에 농약으로 쓰러진 이후 친환경 농사만 짓는다. 스스로 잡초와 산야초를 채취해서 제제를 만들어 농약과 비료로 사용하고 있다. 그의 쌀에서는 오메가3가 검출된다. 쌀에 무슨 짓을 했는지 과학수사가 필요한 친환경 농사의 대표주자.


윤병술(펀드 참여할 뻔한 농부)

1964년생이다. 곡성에서 태어났다. 전남대학교 농대 원예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11월에 하우스 시설 조건이 맞는 물건이 나왔다는 이유로 구례로 귀농했다. 친환경으로만 농사짓는다.  천성이 착하고 열심히 연구하고 실험하는 농부이지만 자꾸만 농사를 망친다. 2013년 펀드 참여 활약이 기대되는 농부.


류정수(펀드 참여 농부)

오미동의 아흔아홉 칸 집 운조루 셋째 아들. 건축을 전공하고 도시에서 잠시 생활했지만 고향으로 귀농했다. 대략 여섯 단지 정도의 농사를 짓고 있다. 본인은 태평농법을 지향하지만 주변에서 볼 때에는 방치농법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강하게 품고 있다. 펀드 참여 농부를 넘어 종종 동원되는 준운영자 급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그렇게 욕심나는 인력은 아니다.


지리산노을 언니(펀드 참여 농부)

1963년 곡성에서 태어났다. 광주에서 대학을 나왔다. 대학을 다닐 당시에도 전혀 연관 없는 단과대학 앞 화단에 꽃과 채소를 키우는 등의 기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졸업하고 바다 건너가서 오랜 시간 살다가 2002년에 남편의 고향 구례로 귀촌했다. 해발 800m에 농장 ‘산에사네’와 오미동에서 카페&게스트하우스 ‘산에사네’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박 과장(펀드 실무자였지만 중간에 잘림) 부부

2010년, 서울에서 구례로 이사 온, 젊다고 분류할 수 있는 부부. 구례에 정착한 이후 아들 윤하를 낳았다. 대략 10년차 월급쟁이 생활을 마감하고 별 다른 대책 없이 시골 행을 택한 부부. 박 과장은 농사에는 소질이 없고 여타 노동에는 더 소질이 없는 저질체력男. 부부 모두 많이 시끄럽다.


무얼까?(펀드 실무자) & 일탈

2012년 서울에서 구례로 이사를 온 비교적 젊은 부부. 무얼까?는 컴퓨터프로그래머가 주업이고 일탈은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무얼까?는 외모적으로 시골 사람보다 더 시골스럽기 때문에 현지 정착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스스로 ‘나는 설비다.’라고 주장하며 마을 이집 저집의 수도, 전기, 세탁기 고치기, 닫힌 문 열기 등의 잡무를 스스로 즐겨하는 포유류. 텃밭 놀이를 제일 좋아하고 돈이 되는 프로그래머 일을 제일 싫어한다.




차례

프롤로그

1. 시작

2 첫 파종 2012년 3월

3 수로 작업과 고구마

4 펀드 완판

5 감나무 전지 작업

6 ‘인턴 박’의 퇴장과 ‘무얼까?’의 등장

7 감잎, 땅콩, 토란, 그리고 고구마 순 2012년 4월

8 첫 번째 배당

9 첫 김매기

10 고추 모종 2012년 5월

11 무얼까?의 어버이날

12 두 번째 배당

13 풀풀풀

14 1분기 결산

15 무얼까?의 수로 2012년 6월

16 대평댁

17 콩, 밀, 감자를 캐다

18 밀렵꾼과 에드워드 가위손

19 세 번째 배당 2012년 7월

20 백일홍이 피는 것도 몰랐다

21 염천 콩밭에서

22 2분기 결산 2012년 8월

23 태풍

24 당신의 아름다운 배추밭

25 들판 또는 면적 2012년 9월

26 땅콩 수확과 감 도둑

27 수확 시즌 2012년 10월

28 네 번째 배당

29 콩 닦달

30 고구마와 앰뷸런스 2012년 11월

31 쌀과 김치를 팔다

32 배추, 90일의 여정

33 김장 전투와 마지막 배당

34 대략적인 결산 보고 2012년 12월

에필로그

부록 1 . 최종 결산 내역

부록 2 . 오미마을 지도

부록 3 . 작물 배치도

부록 4 . 주요 등장 인물

부록 5 . 작물 파종.수확 시기

부록 6 . 맨땅에 펀드 투자설명서 V1.0



지은이 권산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주로 민중미술 단체에서 글 쓰고 강연하는 일을 하다가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어쩔 수 없이 밥벌이 전선에 나섰다. 대학에서 보따리 장사, 공장에서 시다 노릇을 하기도 했지만 가능하면 월급쟁이로 사는 일은 피해오면서, 주로 미술 관련 사이트 디자인을 했고 인쇄물 디자인과 영상물 편집 작업도 병행했다.

서울에서 몇 년 밥벌이하면서 가족을 건사하다가 불현듯, “도대체 나는 왜 일을 하나?”라는 질문과 마주하고, “그냥 나를 위해 살자.”는 결정을 내린다. 2006년에 아내와 함께 전라남도 구례로 이사했다. 구례로 옮겨 온 이후 6년 동안 김장을 담그기 위해 작은 텃밭에서 배추를 키우는 것 외엔, 컴퓨터로 디자인하는 일을 밥벌이 수단으로 삼았다. 쓴 책으로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2010)과 『아버지의 집』(2012)이 있다.

일상적으로는 「지리산닷컴(www.jirisan.com)」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매일 아침 물음표 없는 ‘행복하십니까’라는 제목의 @편지를 도시 사람들(지리산닷컴 주민들)에게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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