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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도서관 기행 (完)

한국 도서관 기행 (1) ~ 이진아 도서관 ③

한국 도서관 기행 연재 예고 후, 한참이 지나 드디어 연재 시작! [한국 도서관 기행]에서 다루는 첫 번째 도서관은 바로 '이진아 도서관'입니다. 이번 포스팅은 세 편에 걸쳐 올리고 있는 '이진아 도서관' 마지막 편입니다. ^^


한국 도서관 기행 (1) ~ 이진아 도서관 ①편, 
한국 도서관 기행 (2) ~ 이진아 도서관 ②편에 이어... 

‘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존경하는 선생님의 말씀을 살짝 비틀어 말하면, 책 읽는 것은 자신의 몸에 대한 최고의 공양이이다. 식후 이 책을 30분 동안 읽으면 세상에 병든 몸이 나아지려나? 책을 펼치고 의자에 앉았다. 집의 의자도 아니고, 사무실의 의자도 아니고, 전철이나 버스의 의자도 아닌, 책을 읽기 위해 만들어진 의자는 꽤나 편했다. 

 

‘책을 처방해드립니다’의 표지는 마치 아담스 패밀리의 한 장면을 일러스트로 옮긴 것 같다. 제목 한가지로 내용을 끝까지 우기는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차하면 갈아타도록 옆에는 책 예비군들을 배치해두었다. 그러나 책 첫 장을 열자마자, 책의 연혁이 자신의 무게를 주장한다. 2007년 스페인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저명한 ‘엘 바르코 데 바포르 상’을 수상하고, 아동 청소년 문학계에 아방가르드라 불리는 카를로 프라베티의 장편소설이란다. 상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작가가 뉴욕 과학 아카데미 정회원인 수학자이면서도, 수학과 상관없는 50권이 넘은 아동·청소년 문학작품을 썼으며,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지만 스페인어로 책을 쓰는 사람이라니 흥미롭다.

목차는 더욱 수상하다.

‘늑대야, 개야?’, ‘남작이야 자작이야?’, ‘정신병원이야, 도서관이야?’, ‘죽은 거야, 산거야?’, ‘엄마야, 아빠야?’, ‘도서관이야, 정신병원이야?’ ‘에필로그야? 프롤로그야?’ 등과 같이 대구 형식의 질문이다. 에필로그가 다시 프롤로그로 이어지는 것으로 봐서, 내뱉은 질문에 대해서 바로 대답을 안 하겠다는 심보를 보인다. “결론에 왜 그렇게 집착하세요?” 주인공 아이 칼비노가 물었다. “꼭 이것 아니면 저것일 필요도 없고, 그것일 필요도 없어요”


이야기의 전개가 환상적이다. 빈집털이 도둑인 루크레시오는 빈집인 줄 알고 집에 갇히게 된다. 여기서 열한 살 쯤 되어 보이는 대담한 아이 ‘칼비노’를 만난다.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 대신 가짜 아버지 노릇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아이에 의해 감금 될 정도로 형편없는 도둑 루크레시오는 차례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그럴 수도 있는 사이 공간과 상황에 도달하게 된다. 자신을 책의 인물이나 책 그 자체 혹은 작가와 동일시하는 환자들이 사는 정신병원 도서관에서는 이딸로 칼비노(Italo Calvino)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자작 혹은 남작 노릇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 서점-약국에서는 “아침에 열 쪽, 정오에 열 쪽, 그리고 자기 전에 스무 쪽 읽으세요” 라는 처방을 받는 창백한 젊은이를 본다.

작가 스스로가 경계를 오가며 살기에, 편견 없이 말랑말랑하게 사물을 바라보라고 주저 없이 이야기한다. 책으로 상상해보고, 질문해보고, 그리고 생각해 보자고. 

“책은(이 부분은 수정된 것) 하나의 설계도면일세. 그 도면은 간단해. 몇 장의 종이 위에 글자가 줄지어 있을 뿐이지.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독자가 자기 상상력으로 창조해내는 세계는 그 책-도면을 넘어서 무궁무진하다네. 책에 있는 모든 것도 담고 있겠지만, 그 보다 후러씬 많은 것들을 담고 있지. 이 집처럼 말일세. 이 집도 건축가가 도면에 그어 놓은 선이 나타내는 것을 모두 다 가지고 있겠지. 하지만 다른 것들도 많이 있잖아. 바로 우리를 포함해서 말이야!”


이쯤에서 이 집을 지은 건축가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한형우 선생님 인터뷰

처음에는 한형우 선생님께 이진아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읽었으면 좋겠느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이태준의 ‘무서록’을 추천해주셨다. 무서록은 월북 작가 이태준의 수필집으로 ‘근원수필’과 더불어 수필을 문학의 한 장르에 자리 잡도록 기여한 책이라 한다. ‘지용(정지용)의 운문, 상허(이태준)의 산문’이라 당연히 문장이 빼어나겠지만 도서관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선생님은 무서록의 ‘파초’의 장을 사례로 드신다.

“되게 소소한 이야기야. 이웃에서 큼지막한 파초 한그루를 사와서 선지 같은 기름진 것들로 잘 키웠다. 파초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좋아서 이것을 잘 듣기 위해 창문에 챙을 안 달았다 야. 건축가라면 비가 들이치지 않게 챙을 매달았겠지만, 그러면 거기 떨어지는 빗물 소리 때문에 파초에서 튕겨오는 소리는 못 듣는 거잖아. 일상의 디테일(detail)인 것이지. 사용자들은 자신들이 사는 생활공간을 섬세하게 경험하고 만들어 가는데. 건축이 하는 일도 그래야 하지 않나. 큰 공간 계획도 중요하지만, 시계를 어디다가 걸어 놓는지도 욕사 중요해. 그에 따라서 사람들이 시간을 알아채는 방식이 달라지니까. 꽃은 평상시 잎으로만 존재할 때는 어떤 모양인지, 꽃이 필 때는 무슨 색이고 언제 피는지 생각하면서 심어야지. 건축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섬세하게 반응하는데. 우리가 하는 일이 큰 스케일(scale)에서만 머물면 안 되는 거 같아.”

그래서 선생님은 4층 휴게 공간에 둥글레 꽃을 심었다. ‘다년생일 것. 평상시에 잎이 푸를  것. 기일에 맞춰서 여름에 흰 꽃을 피울 것’이란 조건에 해당되어서다.

“이진아 도서관을 지으면서 내가 가고 싶은 도서관을 상상했어. 요즘에는 많이 늘었지만, 짓는 당시에 대학 도서관 말고 개가식 도서관이 많지 않았어. 도서카드를 사서한테 제출하면 책을 꺼내주는 폐가식 도서관이 대세였지. 내가 책을 고르고 싶거든. 책을 찾다 우연히 다른 책을 만나서 읽고 그런 것. 언제든지 가서 쓱 책 읽고 나오는 곳.”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했나요? 개가식 도서관과 같은 큰 스케일 말고, 무서록과 같은 작은 스케일이요”

“요즘에는 도서관에서도 인터넷 접근이 되어야하는데. 그러려면 전산실과 같이 전선이 지나는 텅 빈 공간[access floor]이 바닥에 필요하거든. 근데 그 텅텅 밟는 소리와 감촉이 싫은 거야. 책 찾고 자리에 가서 앉을 때 소리에 조심해야하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어. 도서관에서 조용히 하는 것과 조심하는 것은 다른 것이지.”

“그렇죠. 구두 신고 온 사람도 있을 텐데. 걸을 때 마다 텅텅 소리나면, 깨끔 발로 살금살금 거릴 텐데 책 읽을 맛이 안 나죠.”

“아쉬운 점은 있지만 바닥 디테일에 상당히 신경을 썼어.”

“선생님 아들과 딸 데리고 오세요?”

“가끔씩 오지. 집이 머니까. 오면 3층과 4층에서 많이 머물러. 지금은 내 실수로 죽었지만, 아트리움에 자작나무를 심었거든. 그건 아들에게 물어보고 결정한 거야. ‘준아 어떤 나무를 도서관 안마당에 심었으면 좋겠니?’ 했더니 자작나무가 좋다는 거야. 개관하고 처음으로 이진아 도서관 방문했을 때. 준이가 자작나무를 발견하더니, ‘아빠가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네’ 하며 좋아하더라.”

“건축주는 아직도 가끔 연락하시나요?”

“가끔씩 그러지. 참척의 슬픔이 시작이 된 건물이니 아무래도 다른 건축주보다 더 마음이 가는 것이지. 저번에 뵈었을 때, 그러셨어. 지금 자녀에게 잘하라고.”

“혹시 의도하진 않았지만, 짓고 나서 보니 도서관이 다른 의미를 드러내거나 그런 것은 없었나요?”

“있어. 서대문공원 형무소 인왕산을 고려해서 도서관을 앉힌 것인데. 나중에 살펴보니.

교보빌딩, 종로타워랑 정확히 일직선에 있더라. 4층 휴게실에서 확인해 봐.”

“아 그러면, 교보문고(교보빌딩)와 반디 앤 루니스(종로타워)와 이진아 도서관이 한 축에 있는 거네요.”

서울의 대표적인 대형서점 두 곳과 일직선에 있는 이진아 도서관. 책을 파는 곳과 책을 읽는 곳의 관계가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아쉽게도 ‘이 책을 이진아 도서관에서 읽어야지’ 하는 마음은 결국 지키지 못했다. 도서관 산책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정한 작은 기준 중의 하나가, ‘그 도서관에 있는 책을 골라서 읽는 것’이었고, 이진아 도서관에는 ‘무서록’이 없었다. 근대 단편소설의 완성자이다 보니, 소설집들만 그득한 것이리라. 


다음에 소개될 도서관은 어디일까요? ^^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를 클릭해 보세요. :-)




반비 블로그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도서관 기행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도서관 산책자
두 책벌레 건축가가 함께 걷고 기록한, 책의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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