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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새벽의 인문학, 겨울

<새벽의 인문학> 겨울 : 파란 계절 (2)



※ [새벽의 인문학, 겨울]은 다이앤 애커먼의 『새벽의 인문학』의 '겨울'을 옮겨온 연재글 입니다.




<새벽의 인문학> 겨울

: 파란 계절 (2)



지은이│다이앤 애커먼

옮긴이│홍한별


ⓒ pixabay


 오늘 나는 눈송이를 담은 아름다운 사진집을 넘겨본다. 수정으로 된 양치식물, 가장자리에 서리 방울을 달고 양옆으로 팔을 뻗은 별 모양, 얼음판 모양, 둥근 버섯 모양 등을 볼 수 있다. 모두 대칭형은 아니다. 어떤 것은 꼬리가 있거나 단검을 들고 있고, 12각형 바퀴 모양이나 뾰족한 바늘 모양, 모래시계 모양의 구멍이 난 눈송이도 있다.


  1637년, 맨눈으로 눈송이를 관찰하기를 좋아했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방법서설』 중 '기상학' 부분에 눈송이에 대한 글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을 남겼다. "그 눈구름이 지나간 뒤에 다른 눈구름이 몰려왔다. 이 구름에서는 조그만 장미꽃이나 반원형 톱니가 여섯 개 있는 바퀴 모양만 나왔다." 그리고 1856년 겨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눈보라 속에서 쏟아지는 아름다운 유성우를 보았다. "대기에는 창의적인 천재들이 가득하구나! 진짜 별이 떠어져서 내 외투에 내려앉았더라도 이보다 더 경탄스러울 수는 없을 것이다."



Wilson Bentley ⓒ wikipedia


  눈 결정 사진을 생각해내고 최초의 눈 결정 사진집을 만든 사람은 19세기에 버몬트 주 제리코에 살았던 콧수염을 기른 작달막한 농부였다. '눈송이 사나이'라고 불리는 윌슨 A. 벤틀리(Wilson Bentley)는 십대 때 현미경으로 눈송이를 보고 몇 시간이고 수도승처럼 칩거하며 형태를 그렸다. 그러다가 특히 상서로운 날씨(영하 7도~4도)가 닥치면 눈송이 현미경 사진을 찍는 데 몰두하게 되었다. 손님 한 사람이 회상하기를 벤틀리는 "헛간이나 창고에서 카메라를 열린 문 쪽으로 향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면 빛이 눈 결정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독신주의자였던 벤틀리는 크고 낡은 농가에서 조카네와 같이 살았는데 조카며느리에게는 자기 방안에 들어오지도 청소를 하지도 못하게 했다. 그러고 벤틀리는 농가 한켠 조그만 침실을 눈 결정같이 반듯이 정리해놓고 살았다. 피아노에는 "높은 음에서 낮은 음까지 넓은 부채꼴 모양이 생겼는데 그의 손가락이 닿은 건반에만 먼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손이 잘 닿지 않은 곳에는 검은 건반 사이와 구석에 먼지가 수북이 쌓였다." 목장과 과수밭에서 일을 하다 보니 손에 못이 생기고 거칠었다. 하지만 농사일로 밥벌이를 한 덕에 눈 결정의 사라지는 얼굴을 바라볼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 wikipedia


  1931년에는 강의에 참석했다가 극심한 눈보라 속에 집으로 돌아오다 폐렴에 걸렸다. 날씨가 험한데도 이 눈보라가 "그가 원하는 종류의 눈 결정을 만들어내는 타입이기 때문에" 반드시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벤틀리가 사망했을 때는 그가 찍은 가장 좋은 사진 2000장이 들어간 눈송이에 관한 중대한 책을 출판사에서 제작하는 중이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자기 손에 영원한 눈보라, 영영 녹지 않는 눈송이를 쥘 수 있었을 텐데. 당시 벤틀리는 '눈송이 사나이'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그가 찍은 사진이 미국 기상청 달력 사진으로도 쓰였다. 또 벤틀리 때문에 생겨난 개념이 널리 퍼져 강력한 은유법으로 쓰이게 되기도 했다. "똑같은 눈송이는 하나도 없다."


  북쪽 지방의 겨울 아침이다. 창백한 푸른빛 눈이 집집마다 비스듬한 지붕에서 빛난다. 마른 잎 두 장이 떨어져 나방처럼 파닥거린다. 암사슴 한 마리가 길을 따라 어슬렁거리며 내려온다. 모양새가 꼭 출근길의 이웃 사람 같다. 틀림없이 우리집 마당에서 식사를 했을 것이다. 나는 사슴들 먹으라고 집 앞쪽에 식물을 좀 남겨둔다. 사실 이 조그만 땅뙈기는 저들 것이었으니. 예전에는 숲에서 배 속으로 아무 장애물 없이 흘러가던 것에 울타리를 치고 조금씩 떼어준다고 생각하니 약간 죄책감이 든다. 우리는 마음이 머무는 곳이 집이라고들 말한다. 추상적 개념을 부싯돌처럼 문질러대는 이야기다. 집(house)은 단순히 비바람을 피하는 거처이지만, 집(home)은 사람의 내적 세계의 갑각이기도 하다. 아무튼 집은 아무리 이상화되더라도 토대, 단열, 또 모든 위기에 대비하는 적절한 도구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오늘은 길에 눈이 쌓여 자전거를 타기 힘들 테니 무릎이 허락한다면 YMCA에 가서 수영을 할까 한다. 가끔은 사슴 다리도 말썽을 부린다. 근육은 튼튼하지만 다리가 가늘고 발목이 좁기 때문이다. 경주마처럼 조그만 복사뼈로 무거운 근육을 지탱하니 더 자주 망가지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여러 포유동물들의 골반 날개뼈는 척추와 다리 통증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진화헀다. 대체로 이 시스템이 성숙기 초기나 재생산 기간까지는 잘 버틴다. 그 뒤에는 사람이고 사슴이고 코끼리고 노루고 나름의 문제를 겪게 마련다.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이 사람 몸을 '뼈 집'이라고 불렀다는데 참 걸맞는 말이다 싶다. 내 무릎, 목, 등짝이 오늘 동시에 나를 쥐어뜯는다. 정 못 견디겠으면 무릎 치환 수술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안다. 그동안 업스테이트 뉴욕에 있는 우리집도 꽤 여러 차례 수리를 했다. 뼈 집도 마찬가지인데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사방에 물 (1)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