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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새벽의 인문학, 겨울

<새벽의 인문학> 겨울 : 사방에 물 (2)

※ [새벽의 인문학, 겨울]은 다이앤 애커먼의 『새벽의 인문학』의 '겨울'을 옮겨온 연재글 입니다.




<새벽의 인문학> 겨울

: 사방에 물 (2)



지은이│다이앤 애커먼

옮긴이│홍한별



ⓒ pixabay


  우리 몸이 거의 물로 이루어져 있고 물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고, 논점에 물 타기를 하고, 물 쓰듯 돈을 쓰고, 유동자산을 보유하고,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하고, 물 만난 고기가 되고, 얕은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나간 일은 물 건너 갔다고 한다. 열 달 동안 물속에 떠 있다가 산 채로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물에 빠져 죽을까 겁을 낸다. 물과 기름처럼 겉돌거나, 감정에 휩쓸리거나, 슬픔에 잠기거나,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흘러가는 강물에 걱정거리를 흘러보내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는 웃음이 잔물결처럼 퍼져나가는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즐거움이 흘러넘친다고도 한다.


  우리 지구에서는 살아 있는 동식물이 제 몸 안에서 양분과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물이 필요하다. 물은 아주 탁월한 매개체다. 침전물, 정보, 배를 나르기에 적당한 매체로 신체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동맥이 되어준다. 새로운 모습이 되고 재정비하고 전환하고 적응하기 위해서도 물이 필요하다. 우리 세포 하나하나는 항구에 여럿 있는 조그만 석호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속에 들어가 우리 몸 안의 조그만 바다를 거기에 넣으면 온몸이 감싸이는 안온한 느낌을 받는다. 잉태된 상태였을 때처럼 다시 둥실 뜬 느낌이다. 내내 물 밖에서 살아왔지만 몸은 자궁 안에서 떠 있던 느낌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래서 물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이리라.


  삶은 낙관적이고 적응력 있고, 손에 닿는 것을 활용한다. 그래서 아침에 얼굴에 뿌리는 물에서부터 양분을 공급하는 알곡 세포 안에 있는 물까지 여러 형태로 우리는 날마다 물을 맞는다. 식물에 물을 주고, 집과 몸에도 물을 공급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도 대부분은 물이다. 그러니 물은 우리를 지구에서 펼쳐지는 삶의 모든 면과 연결 짓는다. 포식자와 피식자가 같은 수원을 나누고, 적과 동지도 오아시를 함께 이용한다. 물이 없으면 문화가 사그라지고 문명이 멸망한다. 우주 다른 곳에도 생명이 있을까? 물을 찾아보라. 물은 상관없는 물질도 섞이고 얽히게 하고 전기를 띠게 한다. 물은 다른 것을 녹이기 때문에 오염되기도 쉽다. 물은 쉽게 넘어오고 쉽게 지배당한다. 그래서 지구의 물을 보호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무모한 행동이 하류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하지 못할 때가 많아 늘 근시안적인 행동에 비싼 값을 치러야한다. 분명 그럴 때가 오는데, 다만 시기가 문제일 뿐이다. 삶의 거미줄은 이런 연약한 실에 얹혀 떨린다. 귀를 기울여보라. 먼 곳에서 재앙이, 여름철 폭우를 예고하는 천둥처럼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지?



ⓒ pixabay


  몸무게가 60킬로그램인 여자는 순수한 물 30킬로그램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내가 온통 물이라면? 물이라면 나는 쏟아지고 스며들고 어루만지고 갉아먹고 거울이나 렌즈 노릇도 할 것이다. 길이 될 수 있고 장애물도 될 수 있고 세례에도 쓰인다.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색도 없다. 그렇지만 흙을 두들기고, 굵은 빗방울이 되어 장작받침쇠처럼 묵직하게 떨어지고, 미세한 흙과 바위 조각을 날려버리고, 산을 깎고, 빙하 골짜기를 새기고 협곡에 줄무늬를 낼 것이다. 빛을 흔들어놓을 것이다. 이따금 너무 추워 눈이 되지 못하고 빙정(氷晶)이 되어 빙빙 돌며 하늘에서 떨어질 것이다. 구름 속에서 떨어지며 결정으로 변할 것이다. 나는 호수나 바다에 있을 때는 결정을 이루면 물 위로 떠오른다. 물의 본질은 변화이기 때문에 땅과 몸 안에서 여행하면서 뭐든 녹여 체액과 혈청, 광물, 피, 생각을, 때로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조그만 화학물질들을 실어 나를 것이다. 나는 주위 세계를 쏙쏙 빨아들이고 새로운 정체성을 흡수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적어도 한동안은 거들먹거리며 그늘에서 나와 무대를 차지하고, 눈에 보이고 원숙하고 진짜 개성을 지닌 존재가 되리라.


  내 초상화를 보면 동물처럼 보인다. 수소 원자 두 개가 내 귀, 통통한 산소가 내 얼굴이다. 나는 조그맣고 비쩍 마르고 흔하디 흔한 수소 원자와 통통하고 불이 잘 붙는 산소에 묶여 산다. 수소가 산소에게 다다갈 때 자기적 이끌림이 너무 강해 서로 떼어내기가 힘들다. 덕분에 나는 다재다능하고 유연하고 역동적이고 결속이 계속 깨지고 다시 만들어져 웅덩이였다가 대양으로 이어진다. 얇은 막처럼 표면에 떠오르는 대신 달라붙고 이어지고 뭉치고 모여서, 붙잡아 나르는 저인망 쓰레그물을 만들 것이다.



ⓒ pixabay


  물, 사방에 물. 나는 고집스럽게 쉴 새 없이, 물살 속에 흐르고, 찻잔 속에 고이고, 차가운 바위에 달라붙고, 이슬 프리즘을 흔들고, 여름철 벌집을 식힐 냉각수를 벌들에게 제공하고, 아기의 통통한 손가락 안을 채울 것이다. 도시의 외곽선을 그리고 제국 간의 운송을 책임지고 국경 분쟁을 일으킬 것이다. 또렷하게 반사해서 사람들이 그 이미지로 자기들 정신세계를 묘사하게 할 것이다. 비를 들이켜는 미루나무와 버드나무를 축이고, 풀 줄기를 단단하게 하고, 땅 아래 지하수로 고여 생명을 먹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타고 하늘을 누빌 것이다. 잘 익은 살구를 보면 침이 되어 솟고 용선(龍船) 경주가 펼쳐질 때는 땀으로 흐르고 자궁 안에서는 생명을 품을 것이다. 자갈 위로 흐를 때는 시구를 중얼거릴 것이다. 고래의 노랫소리를 반향하고 물고기 소리에 떨리고 어디에서든 생명의 원천으로 솟구쳐 오르고 모든 목마름의 시작과 끝을 예고하리라.



결정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