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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새벽의 인문학, 겨울

<새벽의 인문학> 겨울 : 못된 수탉 한 마리가 농장을 망친다 (2)

※ [새벽의 인문학, 겨울]은 다이앤 애커먼의 『새벽의 인문학』의 '겨울'을 옮겨온 연재글 입니다.




<새벽의 인문학> 겨울

: 못된 수탉 한 마리가 농장을 망친다 (2)



지은이│다이앤 애커먼

옮긴이│홍한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아이들은 자연에서 놀았다. 들에는 실내가 없고, 실내(움막, 동굴)는 비좁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까닭은 자연과 자기 자신이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기가 아닌 무언가 다른 것, 다른 사람인 첫하면서 놀았다. 양 가죽 옷을 입고, 절반은 양, 아니 매 하는 울음 소리로 가득한 네발짐승 자체가 되었다. 무생물인 척하는 놀이도 했을 것이다. 산이나 물, 달이나 나무.



ⓒ pixabay


  내 기억의 뒷방에는 여전히 나무 썰매가 미끄러지며 돌아다닌다. 봉제 코끼리, 혀끝에서 녹는 고드름의 맛, 자갈 위에서 텀벙거리는 물소리. 나는 여전히 자연에서, 우리의 유일한 궁극적 어머니이자 스승인 자연에서 논다. 예를 들어 큰눈이 내리고 나면 나는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눈이 쌓인 상록수와 하나씩 차례로 악수를 나누길 좋아한다. 길게 늘어서서 나를 맞아주는 사람들의 행렬인 양. 나뭇가지를 쥐고 흔들면 높은 가지에 얹힌 눈들이 쏟아져 갑자기 부드러운 눈사태가 내 몸 위로 흘러내린다.


  1950년대, 급속도로 변화하던 미래주의 시대에 나는 어린이였고 새로 등장한 흑백 텔레비전, 다이얼식 전화기, 인스턴트 케이크 믹스 등의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컴퓨터나 아이팟 같은 것은 없었다. 우리는 집안에서 놀았지만 늘 졸라대고 징징거렸다. 밖에 나가 놀아도 돼요?라고. 여러 가지 이유로, 특히 안전과 마케팅 따위의 이유로 요즘 아이들은 집 안에서 혼자 전자체품을 가지고 노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장난감 가게에서는 조그만 ATM 기계 장난감까지 판다. 오즈의 나라 어린 시절을 그냥 건너뛰어 썩지도 않고 무릎이 까질 일도 없는 놀잇감들의 경주 속에 휘말린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장난감들이 손·눈 협응력을 기른다고들 하지만, 순간적으로 집중하게 할지는 몰라도 중요한 순간에 차분하고 끈기 있게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소중한 능력을 기르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연결핍장애"라는 말을 만들어낸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Last Child in the Woods』의 저자 리처드 루브(Richard Lonv)에게 샌디에이고에 사는 4학년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실내에서 노는 게 더 좋아요. 전기코드 꽂는 데가 있으니까요."



ⓒ pixabay


  아이들이 밖에서 놀지 않으면,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해를 보지 못하고 나무 주위에서 다람쥐처럼 놀지 못하고 장님거미를 주머니에 넣지 못하고 개구리알을 손가락으로 찔러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자연은 늘 사방에서 우리에게 닥친다. 일단 우리 발아래에서, 니켈을 안에 품은 지구가 에너지를 밀어낸다. 자연은 우리를 만들고, 우리를 진정시키고, 우리를 가꾸고, 살 곳을 준다. 우리가 의식하든 않든. 아이들이 자연에서 너무 오래 분리되어 있으면 나침반이 방향을 잃고 아이들은 야성을 잃는다. 움직임으로 가득하고 단 하나의 교훈은 '변화'인 녹색 세상에서 여러 신비한 생명체와 함께 사는 한 동물이라는 자각을.


  바야는 힌두고 바람의 신이다. 변화의 치유하는 숨결을 상징한다. 새크라멘토에 사는 정신의학자 클로드 아넷(Claude Arnett) 박사는 바야 정신건강 병원을 운영하며 심각한 정신적 문제나 중독에 시달리는 어린이, 청소년을 전문으로 다룬다. 이곳에서는 자연이 치료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넷 박사는 자연결핍장애가 오늘날 아이들의 신경계와 스트레스 처리 능력에 커다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교감신경계 ('싸울 것인가 도망갈 것인가' 반응과 연관 있는 신경계)는 세부 사항에 주목해 위험 요소를 분석하고 빠른 속도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과제를 수행한다. 반면 부교감신경계는 더 넓은 시각을 갖고, 감각이 열려 있고, 전체 세계를 느긋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먼저 풍경을 살피고, 이어 무언가 특정한 것에 주목한다. 움직이는 딱정벌레 따위에. 자연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두 가지 기술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법을 배운다. 번갈아가며 전체를 보았다가 목표물에 주목하는 것이다. 하나 그리고 여럿, 비둘기와 선회하는 비둘기떼. 텔레비전과 비디오게임은 목표물에 주의 집중하는 것만 가르친다. 아넷은 문제를 겪는 아이들이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정신세계가 밝아지고 유연성이 발달해서 더 융통성 있고 포용력 있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평생 도시에서만 살아온 사람도, 여러 가지 이미지를 주고 순위를 매기라고 하면 자연 사진을 가장 앞에 놓는다. 으뜸은 아프리카 초원 풍경이다. 당연한 일이 아닐까? 우리는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진화했으니 우리 마음 속 가장 깊은 골 안에는 햇살 가득한 세상의 기억이 있는지 모른다. 수술 환자를 10년 동안 연구한 자료가 있는데, 숲이 보이는 방에서 회복한 환자가 빌딩숲만 본 환자에 비해 스트레스 수치가 더 낮았고 퇴원도 빨리 할 수 있었다고 한다.



ⓒ pixabay


  우리에게 잠깐 왔다 사그라지는 늙은 손님을 우리는 별똥별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별똥별에 대고 오늘처럼 눈부시고 행성들로 가득찬 새벽이 많이 찾아오기를 빈다. 켈트족 축복 전통을 따라 또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 도시에 더 많은 나무와 창문이 생겨서 여명과 황혼, 계절을 더 잘 느낄 수 있기를. 자연에서 노는 것이 시간낭비라 생각되지 않기를. 일부 스칸디나비아 국가처럼 우리 의료보험에서 공원이나 자연으로 놀러 가는 비용도 감당해주기를.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우주의 아주 작은 물질로부터 비롯된 보잘것없는 기원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생명체로 진화했는지에 대해 감탄할 수 있도록 가르치기를. 많은 사람들이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고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품고 돌아올 기회를 누릴 수 있기를. 그리고 한번이라도 얼빠진 수탉들이 새벽 제 시간에 노래하기를.




일과를 마치고 (1)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