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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비 책꾸러미/세 번째 책꾸러미

[반비 책 꾸러미] 세 번째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안내

세 번째 반비 책 꾸러미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마음의 고통을 살아나가는 일에 관하여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불안을 이해하기 위해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불안의 근원을 파악하려는 지적 노력의 역사 속으로 뛰어든 결과물입니다. 저자 스콧 스토셀은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의 에디터로, 어린 시절부터 각종 공포증과 공황 발작을 비롯한 심각한 불안증에 시달려온 환자입니다. 스토셀은 저널리스트의 특기를 발휘하는 동시에 강박증 환자다운 완벽주의를 자랑하며 500쪽에 달하는 이 책을 써냈습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체액론에서 현대 유전학 연구의 최전선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한편, 불안한 기질은 타고나는 것이냐 환경에 의해 얻게 되는 것이냐, 또 항불안제는 불안을 치료하느냐 아니면 약을 팔기 위해 불안이라는 병이 생겨난 것이냐 하는 오랜 논쟁까지 폭넓게 다룹니다.


불안에 관해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와 시대의 지식을 망라했다는 것도 큰 장점이지만, 이 책의 진짜 매력은 저자인 스콧 스토셀에게서 나옵니다. 스토셀은 자신이 한데 모은 불안의 지식을 “정말로 나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불안의 직접 경험”과 함께 엮었다고 말합니다. ‘전문 분야’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것이, 그는 이 책에서 평생에 걸쳐 수없이 시도한 각종 치료법, 30가지가 넘는 항불안제와 항우울제 복용, 그리고 불안 때문에 고통받아야 했던 순간들(비행기 안에서의 공황 발작부터 과민성 대장 탓에 케네디 저택에서 망신당한 일까지)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물은 관찰자 입장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는 쓸 수 없는, 지독할 정도로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입니다. 곳곳에 스며 있는 세련된 유머감각과 유려한 문장 또한 독자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저자 자신의 고통을 독서의 즐거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용한 정보로 바꾸어낸 책입니다


어떤 책으로 꾸러미를 만드는 게 좋을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불안을 비롯하여 인간의 정신적 고통은 고대부터 철학과 문학의 단골 주제였고, 이 책에서도 우스개처럼 말하듯 작가와 예술가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죽 여러 정신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간주되어온 인구집단”이기에 (자신의) 정신질환을 저마다의 각도에서 조명한 책도 무수히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 주제의 책들 가운데 사랑하는 책이 너무나 많았기에, 이번 꾸러미는 편파적인 애정과 사심을 억누르며 최대한 균형 있게 선정한 결과물입니다.







우울증에 관한 가장 방대하고 아름다운 책

『한낮의 우울: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앤드류 솔로몬, 민음사, 2004)


이 책은 반드시 꾸러미에 들어가야 했기에 분량과 가격의 압박을 감수하고 선정했습니다. 제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를 만들면서 자주 생각했던 책이기도 하고, 또 많은 분들이 (저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책’으로 마음속에 꼽아둔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솔로몬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에 “불안에 관한 종합판”이라는 극찬을 하기도 했는데, 그가 쓴 이 책을 수식하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 역시 ‘우울에 관한 종합판’입니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겪은 우울증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수놓인 책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마음의 고통에 관해 쓰거나 읽으려는 모든 이들에게 훌륭한 모델이자 사려 깊은 벗이 되어줍니다. 불안과 우울은 서로를 부추기며 아주 밀접하게 이어져 있는 마음의 상태이기도 합니다. 두 책을 나란히 읽어나가며 불안과 우울이라는 병의 여러 얼굴에 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사실은 ‘가장’이라는 말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거의 모든 문장에 줄을 치며 읽었습니다만) 중 하나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화학 작용이나 의지보다 강한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자아의 반란을 극복하도록 해 준 나, 반란의 화학 작용들과 뒤이은 관념 작용이 다시 제자리에 정렬할 때까지 버텨 준 통일론자 나. 그 나는 화학적인 문제일까? 나는 심령주의자도 아니고 신앙도 없이 자랐지만, 내 심장부에는 자아가 무너진 상태에서도 굳게 버티는 근본적인 힘이 존재한다. 이것을 체험한 사람은 이것이 결코 화학 작용 같은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안다.”



삶의 밑바닥에서 그려낸 자학적 극복기

『실종일기 2: 알코올 병동』(아즈마 히데오, 세미콜론, 2015)


일본 만화가 아즈마 히데오의 자전적 작품인 『실종일기』 시리즈 역시 처음부터 꾸러미 후보로 찜해둔 책이었습니다. 아마 꾸러미에 담긴 책들의 저자 중에서도 정신질환으로 인한 가장 화려한(?) 인생 파탄 경력을 보여주는 작가가 바로 아즈마 히데오일 겁니다.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만화가였지만 우울증에 빠져 어느 날 모든 스케줄을 내팽개치고 사라집니다. 『실종일기』 시리즈는 자살 시도, 반복된 가출, 노숙, 알코올 중독 치료 등 삶의 가장 어두운 밑바닥까지 내려간 작가의 실화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실종일기 2: 알코올 병동』은 그중에서도 자신의 알코올 의존증과 가족 손에 이끌려 입원하게 된 폐쇄병동 이야기를 다룹니다. 처절한 경험담이지만,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자학적인 유머와 개그는 그 고통을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한편으로 이 책은 인류학 민속지 연구를 연상시키는 세밀함으로 그려낸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투병기이기도 합니다. 약을 비롯해 치료 프로그램과 병동의 하루 일과, 알코올 병동 사람들의 면면까지, 아즈마 히데오는 마치 우리가 병동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현대 사회에서 빚어지는 불안에 관한 탐구

『불안』(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2011)


이 책은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여러 측면 가운데 ‘사회적 지위’로 인해 빚어지는 불안을 다룹니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으로 불안의 원인을 분류합니다. 스노비즘의 태동과 물질적 풍요에 뒤따르는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 마르크스와 애덤 스미스 등 경제학자들의 분석까지 역사와 철학과 고전을 한데 아우르는 한편, 우리의 일상에 뿌리를 둔 주제를 쉬운 언어로 풀어냈다는 큰 장점이 있는 책입니다. 불평등과 유동적인 지위에 따른 만성적 불안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일상적이고 극심하게 경험하는 증상이기도 합니다. 근대성의 징후라는 관점에서 불안을 탐구하고자 더 폭넓은 시각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안성맞춤인 책입니다. 다양한 문헌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관심사에 따라 독서를 이어나가는 길잡이 구실도 해줄 것입니다.



불안증 환자의 초상, 또는 인간의 근원적 고통에 관한 성찰

『좀머 씨 이야기』(파트리크 쥐스킨트, 장 자크 상뻬 그림, 열린책들, 1999)


『향수』로 잘 알려진 독일 작가 쥐스킨트와 『꼬마 니콜라』 시리즈의 삽화를 그린 장 자크 상뻬가 함께 만든 ‘어른들을 위한 동화’입니다. 1992년에 한국에 처음 소개되어 90년대를 풍미한 베스트셀러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한 소년의 눈에 비친 기이한 이웃 사람 좀머 씨의 인생을 담담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어떤 교류도 없이, 텅 빈 배낭을 메고 기다란 지팡이를 짚고 항상 쫓기는 사람처럼 쉼 없이 걸어 다니는 좀머 씨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폐소공포증 환자로 묘사되기도 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라는 시대 배경 탓에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으로 짐작되기도 합니다. 꾸러미를 위해 이 책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보며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는 유명한 대사가 복잡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현대인의 만성 불안을 다룬 작품으로 읽히기도 하고, 인간의 근원적 공포인 고독과 죽음에 관한 작품, 또는 성장 소설로 읽히기도 하는 책입니다.



치유로 기능하는 독서의 경험

『메이블 이야기』(헬렌 맥도널드, 판미동, 2015)


정서적 치유를 위한 책을 함께 담고 싶었습니다. 구체적인 치료 방법을 일러주는 책도 여럿 고려했지만, 결국 조금 다른 의미에서 치유 효과가 있을 이 책을 골랐습니다. 역사학자, 자연학자이자 시인인 헬렌 맥도널드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찾아온 충격과 깊은 상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매혹의 대상이었던 야생 참매를 길들이기로 합니다. 맹금류 중에서도 ‘잔혹한 야성 그 자체’인 참매를 길들이면서 자신의 슬픔과 분노에 정면으로 마주하는 과정을 써내려간 결과물이 이 책입니다. 때로 독서의 경험 그 자체가 치유로 기능할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경험을 하게 해줍니다. 마음의 고통을 다스리며 살아낼 길을 찾고자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를 집어 든 독자분들에게도 함께 곁에 두고 읽어나갈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