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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에디터김의 워킹데이즈

위대한 탄생 Top5에게 주선하는 책 소개팅 (1) ~ 백청강 편

이 책과 소개팅 하실래요? 편에서 예고했던 바로 그 코너! 반비 편집자가 화제의 인물에게 어울리는 책을 추천합니다. 첫 글의 대상은 바로 '위대한 탄생' TOP 5에게 추천하는 책! 무려 다섯 명에게 맞춤형 책을 추천합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5월의 소개팅 - 위대한 탄생 Top5에게 주선하는 소개팅 (1)


참 오래 버텼다. 이제 고지가 멀지 않았다. 조금만 더 지나면 최후의 1인이 결정된다. 잔혹한 서바이벌 게임에서 이만큼 버텨낸 이들에게 축하의 뜻을 담아 이쯤에서 책 선물을 해야겠다. 책? 책이라고? 생방이 낼모렌데 책 읽을 정신이 어디 있나? 차라리 ‘샾 버튼 누르고’ 문자를 보내라! 라고 외치고 싶은 그 심정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인생은 위탄보다 길다. 위탄이 끝나도 멘토는 쭉 필요하다. 이 재주 많은 청춘들이 위탄 이후의 삶에 불현듯 찾아올 공허감을 메우고 새로운 멘토로 삼을 수 있도록 각자에게 적절한 책을 찾아보았다. 물론 반비의 책 소개팅은 언제나 일대일 맞춤 서비스다.

   

백청강

백청강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화가가 있다. 백청강의 아련하고도 처연한 음색, 소수민족이라는 이중적인 정체성, 곱지만은 않은 얼굴에 떠오르는 천진한 소년의 미소가 꼭 그 화가의 책을 생각나게 한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그림으로 유명한 호주 화가 숀 탠의 책이다. 숀 탠은 내가 책 일러스트레이터 중에 가장 사랑하는 작가이자 나와 깊은 인연이 있는 작가다.(숀 탠과 나의 일방적인(?) 인연이 궁금한 사람은 내 개인 블로그에 들어가 숀 탠 관련 글을 보면서 방문자수를 증가시켜 주시면 고맙겠다. 하지만 이 바쁜 세상에 그런 게 궁금한 사람은 없을 것 같으므로 내 블로그 주소는 생략하겠다.)

둘의 예술적 영혼이 꼭 닮아 있어서 나는 능력만 되면 이 둘을 사적으로 꼭 소개시켜주고 싶을 정도다. 이 둘은 일단 만나서 따뜻한 코코아를 홀짝거리며 두어 시간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동시에 “잃어버린 내 영혼의 반쪽을 남반구에서 / 북반구에서 찾았다!”고 외치며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 같다.

하지만 내 능력에 한계가 있으므로, 백청강에게 숀 탠의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할 것 같다. 숀 탠의 모든 책을 권하고 싶지만 꼭 한 권만 먼저 골라야 한다면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을 고르겠다. 이 책은 어린이책이면서 어른이 읽어도 좋을 만큼 문학성이 뛰어나다. 백청강처럼 여유롭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청년들은 어른이 되어서라도 좋은 어린이책을 한두 권쯤 읽어볼 필요가 있다. 나중에라도 읽으면 마음속 한구석에서 울고 있는, 언젠가 상처받은 ‘어린 나’를 치유할 수 있다. 뭐,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여러 이야기가 옴니버스로 구성된 <먼 곳에서 온 이야기> 중에서도 <에릭 이야기> 편은 그중에서도 가장 강추한다. 외국에서 온 홈스테이 학생인 에릭과 ‘나’의 관계를 그려낸 이 이야기에서 숀 탠은 서로 다른 문화가 마주치는 순간에 대해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에릭과의 관계는 늘 좋지만은 않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한 날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에릭이 훌쩍 떠난다. 땅콩처럼 작았던 에릭이 떠난 자리, 그 자리를 묘사한 숀 탠의 그림은 백 마디 말보다도 정확하고 간절하게 메시지를 전한다. 네가 있던 자리는 참 아름다웠노라고. 숀 탠은 화면 한 가득 채워진 환한 그림으로, 에릭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을 남겼는지, 에릭이 있던 자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 장면을 꼭 백청강에게 보여주고 싶다. 연변이라는, 정체성의 경계에서 온 백청강은 꼭 에릭처럼 때로 그 이질성 때문에 삐걱거리겠지만 시간이 흐른 뒤 뒤돌아보면 그가 있던 자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그런 위로를, 그런 용기를 백청강에게 전하고 싶다.


호주에 숀 탠이 있다면 미쿡에는 투팍이 있다. 투팍 사커는 랩계에서는 아주 유명하다는데 나는 이 분의 랩은 못 들어봤고 책만 읽어봤다. <콘크리트에 핀 장미>라는 시집이다. 제목만 들어도 왜 백청강에게 권하는지 대략 짐작되리라 믿는다. 그 짐작대로다. 학벌이 높거나 집안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의 내면도 이토록 예술적으로 가꾸어질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싶다. 진정한 창작은, 진정한 예술은 학교에서 배워지는 것이 아니다. 미쿡 랩퍼에게 호감을 갖게 되면 백청강의 영어울렁증을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시집을 권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서정적이면서도 강인한 투팍의 시집이 백청강의 짐승남로서의 본능을 일깨워 주리라 믿는다. 천진한 미소가 백청강의 매력포인트이기는 하지만 백청강은 초식남과 짐승남의 가능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남자다. 아이돌 미션에서 보여주었던 그 강렬한 카리스마를 담금질할 책으로 나는 주저 없이 이 시집을 골랐다.

시라서 일단 짧으니 한국말이 아직 서툰 백청강이 읽기에 수월할 것이다. 또 거리에서 쓴 시답게 어려운 단어도 별로 없다. 그렇다고 이 작품의 완성도를 무시하면 안 된다. 미쿡의 유명한 대학교에서 교재로 쓰기도 한다니,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이 대학들의 명성에 기대기로 하자.

이 두 책을 소개하고 나니, 마지막 책으로 한국 친구들을 좀 소개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웬만하면 좀 밝은 아이들로. 만화책은 어떨까? 개구쟁이 백청강이 한국 청년들을 만나서 낄낄대며 읽기에는 만화책만 한 것이 없다. 그중에서도 <울기엔 좀 애매한>이란 책이 가장 적당할 것 같다. 스물 넘은 백청강보다 두세살 어리긴 하지만, 적당히 친구 삼기에 좋을 법한 아이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다. 가수가 아니라 만화가가 꿈인 아이들이긴 하지만 대충 같은 예술계라고 치고 비슷하다고 해두자. 평범한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가장 여실하게 보여주는 와중에도 만화의 본분을 잊지 않고 페이지마다 개그를 풀어 놓아서 읽기에 정말 즐겁다. 킬킬대며 읽다 보면 한국 친구들도 나와 별로 다르지 않구나 하는 아주 구체적인 친밀감이 슬그머니 생겨날 것 같다. 낯선 땅에 혼자 와 있으니 백청강의 마음 한 구석에는 저도 모르게 쌓아올린,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어떤 벽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마음의 벽을 허무는 데는 백 마디 인사보다 한 권의 만화책을!


여러분이라면 어떤 책을 추천하시겠어요? 덧글 남겨주세요. ^^


다음 편은 '데이비드 오'편! 과연 데이비드 오에게 추천하는 책들은 어떤 책들일지?

(2) 데이비드 오 편 보기 / (3) 이태권 편 보기

* 백청강 사진 출처 : 백청강 미투데이 
http://me2day.net/100chung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