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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도서관 기행 (完)

한국 도서관 기행 (2) ~ 광진구 정보화도서관 ①

한국 도서관 기행 연재 예고 / 한국 도서관 기행 (1) 이진아 도서관편 이후 두 번째로 소개하는 도서관은 광진구 정보화 도서관입니다. 이번 포스팅은 네다섯 편에 걸쳐서 소개할 예정이랍니다. (지난 포스팅은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도서관 기행 (2) ~ 광진구 정보화도서관 ①

by 강예린 & 이치훈

한강과 도서관

건축가가 도서관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사용자가 책을 읽는 장면이리라. 사실 사람 자체보다 그 사람이 점유하는 공간에 대한 상상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어떤 의자에 어떤 자세로 앉아서 어떤 책상에 책을 놓고 어떤 책을 읽는지, 책상과 의자가 놓인 마루의 재료는 무엇인지부터 그 사람을 둘러싼 서가의 책장 배치는 어떤지……
강변의 도서관이라는 말만으로도 광진구정보화도서관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소였다. 



그래도 도서관이 강과 이렇게나 가까울 줄은 몰랐다. 열람실에 들어서니 투명한 열람실 창 밖으로 한강이 펼쳐지고, 사람들은 강을 이마에 대고 책을 읽고 있었다. 상상했던 만큼 기분 좋은 장면이었고, 또 그 이상으로 생경한 느낌이다. 수 미터 앞의 물줄기를 바라보는 시각경험은 마치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들리는 듯한 감각적 교란을 일으켰다. 굳이 어두운 굴다리를 지나 고수부지로 나가지 않는다면 마주하기 힘든 장면이 일상의 자연스러운 한 토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즐겁기만 하다. 

지척에 있음에도 한강을 특정한 건축적 프레임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서울에서 한강 건너로 도시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이미 특권이고 이를 위해서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강변을 병영기지처럼 막아서고 있는 아파트나, 한남동 일대의 깎아지른 듯한 옹벽 위 고급 빌라들을 생각해보라. 삭막한 서울에서 조망의 권리가 배타적으로 사유화된 지는 이미 오래다. 이렇게 사유화된 자연을 도서관이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향유한다는 것은 그래서 더 가치 있다.

광진구 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도 분명 한강 옆에 놓인 도서관과 그 안에서 강을 마주하며 독서하는 사람들을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시적이기까지 한, 이 상상된 이미지로부터 만들어진 도서관은 현실에서 그보다 더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 속에는 수많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 지식과 정보, 지역 시민사회의 경험들이 교차한다. 들떴던 기분을 잠시 누르고 찬찬히 도서관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도서관 정문을 들어서면 넓은 안내 데스크에 앉은 사서들이 방문객을 환하게 맞아준다. 안내 데스크 맞은 편에는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책을 읽고 놀 수 있도록 온돌이 깔린 열람실이 있다. 모자 열람실 옆으로는 또 다시 커다란 사서 데스크가 어린이 이용자를 맞고 있다. 도서관 어느 곳에서나 사서들로부터 친절하게 안내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한강을 향해 열린 건물의 형태로 인해 도서관평면은 4분의1로 자른 원 두 개가 마주보는 형상이라 각 열람실의 창은 한강을 향해 열린 둥그렇게 열려 있다. 


열람실로 들어가기 전 휴식공간에는 반대편 건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의 입구가 있다. 하늘에 떠있는 구조물을 만드는 일은 비용이 더 많이 들어서 특별한 이유 없이 설치하지 않는다. 혹시 조망 때문인가? 철제 트러스가 지탱하고 유리로 표면을 둘러싼 내부공간임에도 공기는 차가웠고, 짐작한 대로 한강으로 열린 전망이 좋다. 그래서 구름다리를 지날 때면 강이 더 가까이 있는 느낌이다. 

이 하늘길을 부단히 오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나는 한 사람에게 물으니 구름다리 너머 반대편에는 공부하는 열람실이 있단다. 문화관이라는 이름의 별동건물인데, 서고에서 책을 꺼내 바로 책상에 앉아 읽을 수 있는 일반 열람실(개가식)과 다르게 말 그대로 방문자가 가져온 책으로 조용히 공부하는 열람실이다. 



독서실 VS 도서관

공부하는 열람실, 독서실은 우리네 도서관에서만 찾을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일제부터 내려오던 근대적 훈육식 교육 경험을 도서관이 물려받은 결과라 한다. 도서관을 독서실로 이해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공 도서관이 그 일부를 독서실로 내어주고 있다. 광진도서관도 예외는 아니어서 문화관의 일부를 독서실로 쓰고 있다. 

독서실에서 교과서와 참고서적을 외우고 문제집을 푸는 일은, 도서관이 지역 문화 활동의 중요한 기반시설로서 발전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 참고서 가득한 무거운 가방을 메고 독서실을 찾는 방문자들은 도서관의 사서들을 만날 일도, 지역주민인 다른 방문자들과 마주칠 일도 없다. 그저 별도로 마련된 로비에서 좌석표를 뽑아 칸막이 쳐진 독서실 의자에 앉아 고독하게 씨름한다. 그래서 이들의 도서관 경험은 입시 경쟁이나 취업 경쟁이 이겨내야 하는 스트레스로 무겁고, 무엇보다 지극히 사적이다. 두껍게 내려진 커튼이 암시하듯 독서실의 분위기 역시 무척 어둡다. 그 안에서 참고서와 씨름하는 사람들에게, 구름다리 하나만 건너면 만날 수 있는 지적이고 창의적인 경험의 보고는 입시 이후 혹은 시험 합격 이후의 공간이다. 구름다리 하나를 사이에 둔 두 동의 광진 도서관은 사뭇 다른 공기로 채워져 있다.

도서관에서 무겁고 어두운 공기를 걷어내고 그 자리를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문화활동으로 채우는 상상을 해보지만, 공공도서관에 독서실 공간을 마련하는 일은 시민들의 강력한 요구 때문에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일반 열람실과 독서실이 분리되지 않을 경우 책 읽는 공간이 잠식당하거나 독서 자체가 방해 받게 된다. 그래서 건립 당시 도서관 측은 독서실과 일반열람실을 완전하게 분리하도록 건축가에게 요청했다고 한다. 

②편에서 계속됩니다. ^^



반비 블로그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도서관 기행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도서관 산책자
두 책벌레 건축가가 함께 걷고 기록한, 책의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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