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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도서관 기행 (完)

한국 도서관 기행 (3) 여행자의 도서관 - 제주도 달리 도서관 ①

한국 도서관 기행 연재 예고 / 한국 도서관 기행 (1) 이진아 도서관 / 한국 도서관 기행 (2) 광진구 정보화 도서관 편에 이어 세 번째로 소개하는 도서관은 제주도 달리 도서관입니다.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달리 도서관편도 네다섯 편에 나눠서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지난 포스팅은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여행자의 도서관 - 제주도 달리 도서관


by 강예린 & 이치훈

여행에서 책을 만나다.


여행을 갈 때 어떤 책을 가져갈 것인가 결정하는 것은 욕심과 고심 사이에서 벌어지는 줄다리기와 같다. 처음으로 장기간 여행을 준비할 때의 나는 ‘필요하리라는 책’이 얼마나 많았는지 가방에 도서관이라도 차릴 기세였다. 각 도시의 여행 정보서, 조금더 심오한 배경을 찾아볼 때 뒤져야 할 역사책, 무료한 순간을 보내기 위한 소설책 등을 꾸역꾸역 넣다가, 배낭이 무거워져서 한 권만 남기고 다시 다 뺐다.

경연을 방불케 한 고심 끝에 선택한 책은 이탈노 칼비노(Italo Calvino)의 ‘영문 판’, 『보이지 않는 도시』다. 이 책을 영문판으로 들고 간 것은 당시엔 번역본이 없었기 때문이지만 설사 번역이 되었다 해도 선택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여행에는 지루한 구석이 있으니, 깨작깨작 읽을 수밖에 없는 외국서적을 가지고 가서 이 누락되기 쉬운 시간을 벌어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짐작대로 긴 여행이 끝났을 즘에야 나는 『보이지 않는 도시』를 다 읽을 수 있었다.

여행자의 책은 자신의 이야기와 낯선 곳의 이야기를 더 쉽게 마주할 수 있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여행지로 이미 와버린 몸과, 아직 떠나 온 그곳에 아직 남아있는 몸 사이의 시공간적인 불균형을 맞추기도 한다. 몸은 지금 이곳이 현실인데, 마음 속 현실은 저 멀리에 있다면, 주변의 풍광과 물산을 보고도 보지 않는 것이다. 독서는 꼬리를 무는 걱정과 망상을 밀어내고 현재의 자리로 여행자를 불러들인다. 책 속의 이야기는 여행지의 이야기와 결합되면서, 여행지를 증강현실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책은 여행의 소모품이 아닌 필수품이다.

제주도의 작은 도서관 달리는 여행과 책이 맺는 이 보완적인 관계를 주목했다. 



도서관에서 잠들다

제주도의 ‘달리 도서관’은 제주도로 여행 온 사람들을 위한 도서관이다. 여행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낯선 책을 만나는 설렘을 주려 하는 것이 이 도서관의 목표이다.  

"제주섬에서 태어났는데 한참 성장할 때에는 이 좋은 자연이 안보였어요. 서울에서 10여년을 보낸 후 다시 정착하려 내려와 보니 비로소 이곳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제주섬에서 나고 자랐지만, 고향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된 것이지요. 여행자를 위한 도서관을 만든 것은 제가 제주도와 육지의 양쪽에 걸쳐서 서있구나 하는 자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곳의 자연을 찾은 사람들에게 문화적인 풍요로움을 더해주고 싶었습니다." 달리 도서관을 만든 제주도 여성 5인방 중 박진창아 님의 말이다.

한국에서 여행지의 대명사 격인 제주도에 도서관이라는 프로그램이 결합하는 것은 올레 여행처럼 여행의 치유와 성찰의 측면을 강조하는 것과 같아 보인다. 책 속의 이야기와 내가 현실에서부터 끌고 간 이야기가 낯선 자연에서 만나는 것이다. 여행 후에 나의 다음은 반드시 이 시간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치유를 위해 필요한 모든 장치, 자연-독서-여행가 이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뼈대다. 치유여행기를 쓰신 분의 강연이 펼쳐지고 있으며, ‘짧은 여행 긴 호흡’이나 ‘트래블러스 맵’에서 공정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이 들렸다가 간다.  


달리 도서관은 밤의 도서관이기도 하다. 여행자들은 이 도서관에서 책을 볼 뿐 아니라 잠을 잘 수 있다. 과거 보습학원이었던 칸막이 구조를 이용해서, 제일 안 쪽의 한 칸을 도서관이 아닌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고 있다. 밤이 되면 밖에서 도서관으로 들어오는 것은 통제되지만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객실을 나와서 통째로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달리 도서관의 이름이 풀어내면 ‘빛 아래 책 읽는 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밤의 도서관이란 얼마나 매력적인가. 어떤 사람들에겐 모든 것이 뚜렷한 낮보다 어스름한 밤이 책의 희미한 줄 간 사이를 뚫고 이야기에 성큼 다가갈 수 있는 느낌을 받는다. 세계적인 독서가 알베르토 망구엘은 아예 밤에 이용하는 도서관을 짓고 말았지 않는가. “낮의 도서관이 질서의 세계라면, 밤이 되면 도서관은 소리가 줄고 생각의 아우성들만 들릴 뿐”이므로.  


낮 시간을 쪼개고 발라내서 부지런히 이곳저곳에 향유해야하는 보통의 여행자들은 밤이 되어야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다. 여행자들의 독서시간은 밤이다. 그래서 여행자의 도서관은 밤에 그 진면목을 발휘한다.   

그러나 모든 여행자들이 달리 도서관을 이용할 수는 없다. 달리 도서관에서 묶을 수 있는 사람은 여성이나 가족에게만 한정된다.

"게스트하우스 숙박이 지금에야 많지만, 도서관을 고민하던 2009년 초반에는 이 정도로 많지는 않았어요. 여자 혼자 혹은 여자 둘 셋이 여행가면 어디에서 머무느냐가 언제나 숙제였습니다. 혼자 모텔에 갈 수도 없고, 민박집은 혼자 여행하는 여성을 조금 수상스럽게 바라보는 것 같아서 꺼려졌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했죠. 도서관만큼 안심이 되는 여성들의 숙소를 만들자. 그러다 아예 도서관과 숙소를 같이 만들자 했죠”  1만 8천 신 중의 다수가 여신인 제주도에서 여성이 아니라면 누가 여성을 보호 하겠는가.  

여행자의 도서관을 만들자가 먼저였는지, 여성들이 안심하고 제주도에 여행 와서 머물 수 있는 숙소를 만들자가 먼저였는지 몰라도 그 결합은 의미 있어 보인다. 특별히 요즘처럼 제주도 올레길이 주목을 받으며, 혼자 여행하며 자기를 돌아보는 여성들이 많아지는 상황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②편에서 계속됩니다. :- )




반비 블로그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도서관 기행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도서관 산책자
두 책벌레 건축가가 함께 걷고 기록한, 책의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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