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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도서관 기행 (完)

한국 도서관 기행 (3) 여행자의 도서관 - 제주도 달리 도서관 ②

한국 도서관 기행 연재 예고 / 한국 도서관 기행 (1) 이진아 도서관 / 한국 도서관 기행 (2) 광진구 정보화 도서관 편에 이어 세 번째로 소개하는 도서관은 제주도 달리 도서관입니다.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달리 도서관편도 네다섯 편에 나눠서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지난 포스팅은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도서관 기행 (3) 여행자의 도서관 - 제주도 달리 도서관 ①편에 이어...
by 강예린 & 이치훈
 
서재+서재+서재+…+서재 = 도서관


달리도서관은 전문 사서가 있고 장서체계가 있는 도서관이 아니다. 게다가 도서관 측에서 책을 구입하거나 기부 받지도 않는다. 달리 도서관의 책꽂이에는 그 대신 일반 사람들이 선별한 책들로 꽂혀 있다.

달리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과 책꽂이에는 주인이 있다. 각 사람들은 ‘자기가 읽고 좋았던 책, 의미가 있는 책, 추천하고 싶은 책, 빌려주고 싶은 책’들을 달리 도서관에 보낸다. 그러나 기부는 아니고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위탁이다.

전문 번역가인 어떤 분은 자신이 번역한 책들을 열대여섯 권 보냈다. 문화인류학과 교수님은 자신의 삶에 가장 의미 있는 책들을 보냈다. 어떤 분은 임신하면서 읽었던 세계문학전집 중 가장 마음에 들어서 태교에 도움이 되었다는 책들을 추려서 보내왔다. 한 부부는 쌍둥이 딸 아들이 자라나서 이 다음에 제주도에 놀러왔을 때 읽어줬으면 하는 책들을 보내왔다. 그리고 이 남편의 직장 후배인 분은 이 앞의 쌍둥이와 사돈 맺고 싶다며, 자신의 아이를 위한 책들을  앞선 쌍둥이 책장 옆에 꽂아 달라고 했다. 외대도서관지킴이들은 도서관을 지키며 봤던 책 중에서 좋았던 것들을 보내줬다. 임순례 감독의 책꽂이는 이름값을 하시라고 제일 눈에 띄는 장소에 놓여있다.

달리 도서관은 각 사람의 서재를 모아서 조립하여 도서관으로 이뤄낸 경우다. 몇 년 전 한 포털 사이트 때문에 번지기 시작한 아무개 씨의 서재가 이곳에서 보다 일찍 시작되고 있었다.

책의 수집이 이러한데, 책을 정렬하는 방식이 보통의 도서관과 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이 도서관의 책과 책꽂이 옆에는 ‘철학, 문학, 외국어’의 분류 대신에 이것을 보낸 사람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이 이름표 때문에 책을 고르면서, 마치 다른 집 놀러가서 책꽂이를 훑어보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달리 도서관의 이름표 달린 책꽂이를 보면서, 네덜란드의 한 도서관실험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서가에서 여러 권 책을 뽑아 보고 나서는 다시 원래 자리로 책무더기를 돌려놓지 않고 주변의 빈 책꽂이에 꽂아주면,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는 방식의 실험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한 사람이 심사숙고해서 뭉뚱그려 놓은 책 무더기는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분류가 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달리 도서관 서재의 정렬방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한 사람이 보내온 책 무리의 의미는 철학, 문학, 소설로 분류되는 것 보다 더 구체적이고 매력적이다. 

나는 한참 책꽂이를 뒤졌다. 문패만 보고 불쑥 어떤 집에 들어가서 주인의 서재를 방문한 기분이다. 어떤 책꽂이는 마치 내 책장에서 뜯어 온 것 마냥 닮기도 했다. 네이버의 ‘지식인의 서재’의 성공 이후로 쏟아져 나온 특정 개인들의 독서편력에 대한 호기심의 근저에는 그 사람을 알고 싶다는 마음에 있다.  

외국어대 생활도서관의 책꽂이(서재)에는 사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대학생들이 보인다. 고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 우석훈의 『88만원 세대』,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조한혜정의 『글 읽기와 삶 읽기』,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등이 이 곳에 꽂혀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자기가 밟은 조금 더 넓은 땅이 무엇이었는지 찾고 또 반문하려는 포부가 보인다.

여행자의 시선을 유달리 끌어 모으는 책꽂이도 발견했다. 틱낫한의 『이른 아침 나를 기억하라』, 조은의  『벼랑에서 살다』, 이블린 폭스켈러의 『생명의 느낌』, 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존 카마르의 『당신이 어디를 가든 거기엔 당신이 있다』 등 유독 여행지에서 잘 되는 자아성찰에 돕는 서재다. 여행자가 밤에 들어와서 뽑아서 읽으면 피곤에 지쳐 멀리 도망가 있는 마음하나 잡아 올 수도 있겠다.  

보통의 장서분류체계인 철학, 소설, 사회과학, 자연과학은 책을 찾을 방향을 지시하긴 하지만, 내용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여행에서 이 한 줄의 책꽂이를 만나는 것은 낯선 한 사람을 만나 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어떠한 가하는 조언은 듣게 된다. 


달리도서관에 책장을 보낸 사람들은 그 대가로 이곳에서 무료로 숙박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이렇게 보면 사람보다 책들이 먼저 여행을 온 셈이다. 언젠가 제주도에 올 미래의 나, 아니면 친구, 가족, 혹은 영 모르는 사람들이 펼쳐 볼 수 있도록 미리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쌍둥이 부부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이곳에 여행을 다녀갔단다.

이 아이가 머리가 굵어져서 책의 내용이 보이기 시작할 때까지, 이 책꽂이는 제주도에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기다릴 것이다. 책도 시간을 쌓아가고 아이도 시간을 쌓아가며 동반성장하는 것이다. 언젠가 아이와 책의 무게가 같아지면 제주도에서 만날 것이다. 

달리 도서관은 책을 여행시키는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싶어 한다. 제주도는 너무 큰데, 여행자의 도서관이 제주시 한 곳에 매어 있으면 안 되니 말이다. 제주섬 동서남북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들로 책을 순환시키면서, 제주도 내부의 여행지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 한다. 제주의 곳곳에 달리도서관 분관처럼 뜻을 마주할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여행자들의 도서관 분관처럼 엮으려 한다. 

③편에서 계속됩니다... 



반비 블로그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도서관 기행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도서관 산책자
두 책벌레 건축가가 함께 걷고 기록한, 책의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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