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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반비 책 꾸러미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마음의 고통을 살아나가는 일에 관하여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불안을 이해하기 위해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불안의 근원을 파악하려는 지적 노력의 역사 속으로 뛰어든 결과물입니다. 저자 스콧 스토셀은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의 에디터로, 어린 시절부터 각종 공포증과 공황 발작을 비롯한 심각한 불안증에 시달려온 환자입니다. 스토셀은 저널리스트의 특기를 발휘하는 동시에 강박증 환자다운 완벽주의를 자랑하며 500쪽에 달하는 이 책을 써냈습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체액론에서 현대 유전학 연구의 최전선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한편, 불안한 기질은 타고나는 것이냐 환경에 의해 얻게 되는 것이냐, 또 항불안제는 불안을 치료하느냐 아니면 약을 팔기 위해 불안이라는 병이 생겨난 것이냐 하는 오랜 논쟁까지 폭넓게 다룹니다.


불안에 관해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와 시대의 지식을 망라했다는 것도 큰 장점이지만, 이 책의 진짜 매력은 저자인 스콧 스토셀에게서 나옵니다. 스토셀은 자신이 한데 모은 불안의 지식을 “정말로 나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불안의 직접 경험”과 함께 엮었다고 말합니다. ‘전문 분야’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것이, 그는 이 책에서 평생에 걸쳐 수없이 시도한 각종 치료법, 30가지가 넘는 항불안제와 항우울제 복용, 그리고 불안 때문에 고통받아야 했던 순간들(비행기 안에서의 공황 발작부터 과민성 대장 탓에 케네디 저택에서 망신당한 일까지)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물은 관찰자 입장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는 쓸 수 없는, 지독할 정도로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입니다. 곳곳에 스며 있는 세련된 유머감각과 유려한 문장 또한 독자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저자 자신의 고통을 독서의 즐거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용한 정보로 바꾸어낸 책입니다


어떤 책으로 꾸러미를 만드는 게 좋을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불안을 비롯하여 인간의 정신적 고통은 고대부터 철학과 문학의 단골 주제였고, 이 책에서도 우스개처럼 말하듯 작가와 예술가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죽 여러 정신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간주되어온 인구집단”이기에 (자신의) 정신질환을 저마다의 각도에서 조명한 책도 무수히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 주제의 책들 가운데 사랑하는 책이 너무나 많았기에, 이번 꾸러미는 편파적인 애정과 사심을 억누르며 최대한 균형 있게 선정한 결과물입니다.







우울증에 관한 가장 방대하고 아름다운 책

『한낮의 우울: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앤드류 솔로몬, 민음사, 2004)


이 책은 반드시 꾸러미에 들어가야 했기에 분량과 가격의 압박을 감수하고 선정했습니다. 제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를 만들면서 자주 생각했던 책이기도 하고, 또 많은 분들이 (저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책’으로 마음속에 꼽아둔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솔로몬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에 “불안에 관한 종합판”이라는 극찬을 하기도 했는데, 그가 쓴 이 책을 수식하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 역시 ‘우울에 관한 종합판’입니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겪은 우울증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수놓인 책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마음의 고통에 관해 쓰거나 읽으려는 모든 이들에게 훌륭한 모델이자 사려 깊은 벗이 되어줍니다. 불안과 우울은 서로를 부추기며 아주 밀접하게 이어져 있는 마음의 상태이기도 합니다. 두 책을 나란히 읽어나가며 불안과 우울이라는 병의 여러 얼굴에 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사실은 ‘가장’이라는 말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거의 모든 문장에 줄을 치며 읽었습니다만) 중 하나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화학 작용이나 의지보다 강한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자아의 반란을 극복하도록 해 준 나, 반란의 화학 작용들과 뒤이은 관념 작용이 다시 제자리에 정렬할 때까지 버텨 준 통일론자 나. 그 나는 화학적인 문제일까? 나는 심령주의자도 아니고 신앙도 없이 자랐지만, 내 심장부에는 자아가 무너진 상태에서도 굳게 버티는 근본적인 힘이 존재한다. 이것을 체험한 사람은 이것이 결코 화학 작용 같은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안다.”



삶의 밑바닥에서 그려낸 자학적 극복기

『실종일기 2: 알코올 병동』(아즈마 히데오, 세미콜론, 2015)


일본 만화가 아즈마 히데오의 자전적 작품인 『실종일기』 시리즈 역시 처음부터 꾸러미 후보로 찜해둔 책이었습니다. 아마 꾸러미에 담긴 책들의 저자 중에서도 정신질환으로 인한 가장 화려한(?) 인생 파탄 경력을 보여주는 작가가 바로 아즈마 히데오일 겁니다.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만화가였지만 우울증에 빠져 어느 날 모든 스케줄을 내팽개치고 사라집니다. 『실종일기』 시리즈는 자살 시도, 반복된 가출, 노숙, 알코올 중독 치료 등 삶의 가장 어두운 밑바닥까지 내려간 작가의 실화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실종일기 2: 알코올 병동』은 그중에서도 자신의 알코올 의존증과 가족 손에 이끌려 입원하게 된 폐쇄병동 이야기를 다룹니다. 처절한 경험담이지만,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자학적인 유머와 개그는 그 고통을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한편으로 이 책은 인류학 민속지 연구를 연상시키는 세밀함으로 그려낸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투병기이기도 합니다. 약을 비롯해 치료 프로그램과 병동의 하루 일과, 알코올 병동 사람들의 면면까지, 아즈마 히데오는 마치 우리가 병동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현대 사회에서 빚어지는 불안에 관한 탐구

『불안』(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2011)


이 책은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여러 측면 가운데 ‘사회적 지위’로 인해 빚어지는 불안을 다룹니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으로 불안의 원인을 분류합니다. 스노비즘의 태동과 물질적 풍요에 뒤따르는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 마르크스와 애덤 스미스 등 경제학자들의 분석까지 역사와 철학과 고전을 한데 아우르는 한편, 우리의 일상에 뿌리를 둔 주제를 쉬운 언어로 풀어냈다는 큰 장점이 있는 책입니다. 불평등과 유동적인 지위에 따른 만성적 불안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일상적이고 극심하게 경험하는 증상이기도 합니다. 근대성의 징후라는 관점에서 불안을 탐구하고자 더 폭넓은 시각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안성맞춤인 책입니다. 다양한 문헌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관심사에 따라 독서를 이어나가는 길잡이 구실도 해줄 것입니다.



불안증 환자의 초상, 또는 인간의 근원적 고통에 관한 성찰

『좀머 씨 이야기』(파트리크 쥐스킨트, 장 자크 상뻬 그림, 열린책들, 1999)


『향수』로 잘 알려진 독일 작가 쥐스킨트와 『꼬마 니콜라』 시리즈의 삽화를 그린 장 자크 상뻬가 함께 만든 ‘어른들을 위한 동화’입니다. 1992년에 한국에 처음 소개되어 90년대를 풍미한 베스트셀러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한 소년의 눈에 비친 기이한 이웃 사람 좀머 씨의 인생을 담담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어떤 교류도 없이, 텅 빈 배낭을 메고 기다란 지팡이를 짚고 항상 쫓기는 사람처럼 쉼 없이 걸어 다니는 좀머 씨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폐소공포증 환자로 묘사되기도 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라는 시대 배경 탓에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으로 짐작되기도 합니다. 꾸러미를 위해 이 책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보며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는 유명한 대사가 복잡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현대인의 만성 불안을 다룬 작품으로 읽히기도 하고, 인간의 근원적 공포인 고독과 죽음에 관한 작품, 또는 성장 소설로 읽히기도 하는 책입니다.



치유로 기능하는 독서의 경험

『메이블 이야기』(헬렌 맥도널드, 판미동, 2015)


정서적 치유를 위한 책을 함께 담고 싶었습니다. 구체적인 치료 방법을 일러주는 책도 여럿 고려했지만, 결국 조금 다른 의미에서 치유 효과가 있을 이 책을 골랐습니다. 역사학자, 자연학자이자 시인인 헬렌 맥도널드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찾아온 충격과 깊은 상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매혹의 대상이었던 야생 참매를 길들이기로 합니다. 맹금류 중에서도 ‘잔혹한 야성 그 자체’인 참매를 길들이면서 자신의 슬픔과 분노에 정면으로 마주하는 과정을 써내려간 결과물이 이 책입니다. 때로 독서의 경험 그 자체가 치유로 기능할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경험을 하게 해줍니다. 마음의 고통을 다스리며 살아낼 길을 찾고자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를 집어 든 독자분들에게도 함께 곁에 두고 읽어나갈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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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스토리 : 편집자가 들려주는 꾸러미 뒷이야기



두 번째 반비 책꾸러미. 너무 늦게 도착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전합니다. 일에 재미와 의미를 더하고 싶어 시작한 이벤트인데 이렇게 드문드문 하다가, 별로 알려지지도 않고 반응도 적어 금방 접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널리 알릴 수 있을까도 여전히 고민입니다. 눈 밝은 독자 여러분이 도와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이번 꾸러미 준비도 역시 추억 돋고 재미있었습니다. 오래 전 들었던 도시 관련 수업을 듣고 책들을 찾아 읽던 기억도 나고, 오랜만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성욱 평론가와 함께 했던 세미나 생각도 났습니다. 고인을 통해 얼마나 많은 책들을 소개받고 얼마나 흥미로운 통찰들을 많이 얻어들었는지 모릅니다.


잊고 있었던 사소한 궁금증도 하나 되살아났습니다. 1990년대 초반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논문 중에 최홍준이라는 분이 쓰신 <1980년대 후반 이후 문화과정의 정치경제적 조건과 도시적 경험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은 석사논문임에도 불구하고 저 같은 문학 전공자들까지 챙겨볼 만큼 독자층이 넓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분은 바로 취업을 하셨는지 그 후로는 같은 이름으로 단 한 편의 논문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어디서 뭘 하고 계신지? 왜 공부는 계속 안 하셨는지?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쪽지로라도 알려주세요.^^



김왕배, <도시, 공간, 생활세계>


또 당시 주옥같은 읽을거리들을 계속해서 내주었던 한울 공간환경시리즈도 생각이 났습니다. 10권이 <도시, 공간, 생활세계: 계급과 국가 권력의 텍스트 해석>이라는 김왕배 샘의 책이었습니다. 다시 펼쳐보니 서문에 “반(半)실업 생활의 불안함 속에서”라는 구절이 눈길을 끕니다. 


당시에 크게 유행했던 단어가 ‘플라눼르’입니다.(혹은 플라눼즈)  벤야민(혹은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보들레르)의 글에서 따온 개념이었습니다.  대도시의 문화와 문물에 환멸과 동경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시선을 지닌 채 (거북이 목에 줄을 매달 정도로) 느린 걸음으로 군중 속을 거슬러 올라가는 매력적인 만보객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산책자’라는 인문 출판사의 이쁜 이름도 여기서 영감을 받았으리라 생각해봅니다.  



이번에도 소개하고 싶은 책들은 너무나 많았는데 여러 현실적인 고려를 하다 보니 십분의 일 정도밖에 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넣고 싶었지만 넣지 못한 책들 여기서 한 번 되뇌어보겠습니다. 시간과 금전, 무엇보다 영혼의 여유가 있는 분들이라면 한 권씩 골라서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발터 벤야민, <일반통행로>

 

 레이먼드 윌리엄스, <시골과 도시>

기 드보르, <스펙타클의 사회>


게오르크 짐멜의 「메트로폴리스와 정신적 삶」,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일방통행로』 등 19세기 고전들 강추합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시골과 도시』,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 같은 문화이론의 고전들도 강추합니다. 앙리 르페브르, 마뉴엘 카스텔, 데이비드 하비, 마이크 데이비스의 도시와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관한 여러 저작들도 좀 교재 같은 느낌은 들지만, 다 빼버리자니 좀 서운했습니다.  


도시 경험은 현대성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고, 현대성에 대한 규명과 성찰이 문학이론의 중요한 축을 이루어왔기에 프레드릭 제임슨, 프랑코 모레티 등 학제적 연구를 하는 비평가의 책들도 도시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한국 근현대사와 서울이라는 공간으로 돌아오면, 서울 개발의 핵심 자료들을 담고 있는 손정목 선생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5』를 비롯해서, 김왕배, 김수현, 최병두, 조명래, 조은 같은 국내 도시사회학자의 연구서들이 떠올랐습니다. 강내희, 김진송, 이성욱 같은 문화이론가들의 연구서들, 정기용, 임석재, 서현, 김진애 등 건축가의 책들도 좋은 참고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마이크 데이비드, <슬럼, 지구를 뒤덮다>

임동근·김종배,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참, 제가 작업했던 『슬럼, 지구를 뒤덮다』라는 책도 강추합니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에서 임동근 선생님은 지나치게 선정적이라고 평가하시긴 했지만, 그런 면을 조금 감안하고 본다면 우리의 도시적 삶을 돌아볼 만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귀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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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반비 책 꾸러미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서울은 누구의 것인가?



이 책은 시간 순으로 거의 일제시기부터 박원순 시장이 재임 중인 현재까지 서울의 공간을 두고 이루어진 크고작은 결정들,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사연, 그런 결정이 불러온 결과들을 두루 살펴보는 책입니다. 전쟁 후 폐허에서 50년 동안 면적 2배, 인구 10배가 늘어나 뉴욕, 런던, 도쿄와 경쟁하는 메트로폴리스, 아니 메갈로폴리스가 된 서울의 모습은 지나고 난 뒤 돌아보아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이 경이롭기도 하고 경악스럽기도 한 과정을 날카롭고도 간략하게 정리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년마다 연봉의 두 배쯤 가뿐히 올라주는 전세값에 힘 빠지고 이사에 이사를 거듭하며 서울(수도권) 지리를 익혀가는 우리의 고단한 일상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이야기들이면서도 또 그것을 근대화, 세계화, 금융화, 신자유주의 같은 큰 흐름들과 연결시켜 설명해준다는 점이 이 책의 큰 미덕입니다. 


저자인 임동근 교수는 알 만한 분들은 다 아는, 이 분야의 독보적인 전문가로, 파리8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13년 귀국해서 몇 달 후 이 책의 토대가 된 팟캐스트에 참여했습니다. 저자의 콘텐츠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서,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단행본 수십 권은 거뜬히 나올 수 있겠다 싶은 드물고 귀한 ‘보물단지’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책 사업들부터 연구소 일들, 강연들 등 여러 활동들을 겸하고 있는 데다 ‘심지어’ 올해부터는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BK 교수까지 맡게 되셔서 언제 또 책이 나올지 기약이 없습니다.T_T 특히 이 책은 10년 동안의 연구를 총망라한 박사논문 『서울을 통치하기』 중에서 우리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부분만을 추리고 추린 것이라 더더욱 내용이 알찰 수밖에 없으니, 아직 구입 못 하신 분들은 지금이라도 꼭 득템하시길 당부드립니다. 


이전에도 서울에 관한 책은 많이 있었습니다. 부동산 문제, 주거 문제는 역대 모든 정부의 골칫거리였고, 세대와 성별을 막론하고 모든 한국인의 일생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이기에 이런 문제를 다루는 사회과학 책들이 꾸준히 출간되어 왔습니다. 또 근현대사의 맥락에서 도시화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문화연구 분야의 책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도시 공간을 텍스트처럼 해독해내는 건축가들의 책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책 꾸러미를 준비하는 과정은 이 책 저 책을 수십 번 넣었다 뺐다 할 정도로 고민이 깊었습니다. 아래 다섯 권의 책은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예산의 한계와 두뇌 용량의 한계라는 엄중한 원칙에 따라) 선정된 책들입니다. 








1. 창신동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개새끼들이외다

『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집』(김승옥, 민음사, 2007)


서울의 도시화와 관련된 소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김승옥의 작품들일 듯합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가 워낙 그런 변화가 가장 드라마틱하게 펼쳐졌던 시기이기도 하고, 김승옥 작품세계 전체가 이런 도시화에 대한 매혹과 환멸을 다루고 있어서 당시에 ‘새로운 도시적 정체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받기도 했으니까요. 제목에 ‘서울’이 들어가는 「서울 1964년 겨울」이나 「서울의 달빛 0장」보다는 오히려 「역사(力士)」(1963)나 「차나 한 잔」(1964) 같은 작품들이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더 흥미롭게 읽힙니다. 가령 이런 대목이 그렇습니다.

“창신동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개새끼들이외다. 그 방이(그 방의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까지를 포함해서) 그 방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절망감이라든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는 이 넓은 세계 속에서 더럽기 짝이 없는 이 방만을 겨우 차지할 수밖에 없느냐는 자기혐오에서 그 방 속에 든 사람은 누구나 그런 낙서를 하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래서 나는 그 30년대식의 표현을 사랑했다. 그리고 대가의 문장처럼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상에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들 중에서 내가 나의 방을 구별해낼 수가 있다면 그 낙서로써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역사」 중에서)




2. 마을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 1968 노량진, 사라진 강변 마을 이야기』(김진송, 세미콜론, 2006)


이 책은 제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책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정말 특이한 책인데요. 저자가 유년 시절 살던 동네, 기찻길이 있고 강이 있고 시멘트블록과 루핑을 얹은 집들이 모여 있는 노량진 어디쯤에 관한 기억, 그곳에 살고 있는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을 담은 책입니다. 저자가 고백하듯, 역사인지 소설인지 모를 책이고, 당시 그곳의 주거환경과 생태, 풍속을 고스란히 되살려낸 인류학 저작 같기도 하고, 한 소년의 성장기 같기도 합니다. 지금은 철거되어 사라져간 마을에 관한 기억이기에, 달달한 향수에 젖어 편하게 떠들어댈 수 있는 회고담은 아닙니다. 자기 살던 동네 철거한다고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밖에 없다고 어느 저명한 건축가가 (근 십여 년 전) 한탄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 책은 그런 한국 사람들 역사이자, 서울의 역사이기도 하고, 현대 도시의 역사이기도 한 책입니다.




3. 장미 꽃밭 같은 메트로폴리스 속 똥 같은 슬럼

『안나와디의 아이들: 성장과 발전의 인간적 대가에 대하여』(캐서린 부, 반비, 2013)


반비 책 중에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과 꼭 같이 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서울이 50년 동안 겪은 변화가 놀라운 정도라면 뭄바이가 겪은 변화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뭄바이의 화려한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공항과 특급 호텔들의 그림자 뒤에 자리한, 거대한 빈민촌 중 한 마을인 ‘안나와디’에 관한 르포르타주입니다. 동네 꼬마들도 “장미 꽃밭 사이의 똥 같은 존재”라고 자조하는 이 빈민촌의 영화보다 영화 같은 실상을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캐서린 부가 4년 동안 취재해 집필한 책입니다. 수많은 명사들에게 추천을 받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중 빌 게이츠의 추천사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같지만, 도시의 슬럼에 실제로 살고 있는 수억의 사람들이 매일같이 겪어내는 도전에 대한 생생한 묘사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4. 한국 중산층의 역사는 곧 아파트의 역사

『아파트 게임: 그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박해천, 휴머니스트, 2013)


‘아파트’라는 단어는 많은 서울 사람들, 한국 사람들에게 대단히 강렬하고 복잡한 감정을 일으킵니다.(저만 그런가요?^^) 서울, 아니 대한민국의 아주 독특한 주거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아파트 관련해서 또 많은 책들이 나와 있고요. 그중에 가장 반응이 좋았던 책 중 하나였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세대 문제와 계층 문제 등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얼마나 뒤엉켜 있는지를 너무나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고, 몇십 년간 온갖 부동산 시세를 지나치게 빠삭하게 다 꿰뚫고 있는 저자의 부동산 자산 현황이 너무나 궁금해지는 책이기도 했습니다

 



5.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반란의 도시: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데이비드 하비, 에이도스, 2014)


사실 푸코의 책도 하나 넣어야 할 것 같고, 벤야민의 책도 넣어야 할 것 같고,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책도 넣어야 할 것 같고, 카스텔의 책도 넣어야 할 것 같고 고민이 많았는데 이 책으로 정하고 나니 마음이 무척 편합니다. 한 권을 골라야 한다면 단연 가장 오랫동안 ‘도시화’를 핵심적 문제의식으로 삼아온 데이비드 하비의 책을 넣는 게 온당한 것 같습니다.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도시의 정치경제학』(임동근 교수도 번역 작업에 참여하신), 『사회정의와 도시』, 『희망의 공간』,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자본의 한계』,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간들』 같은 대표작들이 모두 모두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이 와중에 깨알자랑,  저는 『신자유주의』 한국어판에 직접 저자 사인도 받았습니다!) 볼리비아 엘 알토의 반란과 몇 년 전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월스트리트 점령운동 등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에서도 언급되는 메트로폴리스 ‘도심 봉기’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더 흥미롭기도 하고요. 도시의 공공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어서 이번 꾸러미의 결론을 장식하기에 가장 적절한 책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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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비 책꾸러미 도착 후기! 




첫 번째 반비 책꾸러미를 보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꾸러미를 받으신 독서단 분들의 도착 후기들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반비 책꾸러미가 SNS와 알라딘에서 진행된 만큼

도착 후기들도 SNS를 통해서 도착하였습니다. :)


간단하게 아래에 SNS로 도착한 후기들을 올렸는데요,

앞으로도 자유롭게 SNS로 도착 후기나

책을 읽고 난 소감 등을 보내주시면

반비에서 정리하여 게시해드립니다.


보내주시는 의견과 후기는 다음 책꾸러미를 준비할 때

정말 큰 도움이 되니, 편하신 방법으로 반비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트위터 후기 >




















< 페이스북 후기 >










페이스북 메시지로도 후기를 보내주셨습니다. :)






















반비 페이스북에 댓글로 올려주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후기 보내주신 독서단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후에 독서 후기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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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비 책꾸러미 배송하였습니다!


오늘 포장과 발송까지 맞춰서 반비 책꾸러미 독서단에 선정되신 분들은

빠르면 토요일, 늦으면 다음주 초에 책꾸러미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사실 편집부에서는 이번 책꾸러미에 더 담고 싶은 책들이 있었지만

추리고 추려고 겨우 7권으로 맞춘 건데요.

이렇게 배송하려고 책들을 쌓아놓고 보니, 7권의 무게도 마냥 가볍지만은 않더군요. ^^;


이 많은 책들이 좋은 독자 분들을 만나 사랑 받으며 읽힐 생각을 하니, 참 뿌듯합니다. :)



하지만 이 배송 준비도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책을 포장하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다른 책은 모두 두 권씩 남았는데

황금가지의 『이웃집 슈퍼히어로』는 세 권이 남은 겁니다!!


이미 테이프로 포장까지 마친 상태라 박스를 하나하나 다시 뜯어보며

『이웃집 슈퍼히어로』가 빠진 박스를 찾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ㅠㅠ






우여곡절 끝에..


배송은 이렇게 보내집니다!

레터도 함께 넣었으니 한 번 읽어보세요. :D



여기까지 반비에서는 첫 번째 책꾸러미가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책꾸러미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책꾸러미를 받는 독서단 분들이 책꾸러미를 많이 소개해주고

함께 책을 읽으며 SNS로 소통하며 이야기하는 독서의 장이 열려야 겠죠.


그때가 오기까지 반비는 열심히 책꾸러미를 등에 짊어지고 뛰어다니겠습니다. :)


다음 책꾸러미도 준비 중에 있으니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posted by Banbi Editor!
  • Favicon of http://blog.naver.com/silcity BlogIcon 안선경 2015.05.15 15:43

    기다림도 행복했던 반비 책꾸러미... 슈퍼히어로 덕에 고생 많으셨네요 ㅠㅠ 레터...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기다릴게요!

  • Favicon of http://blog.naver.com/silcity BlogIcon 안선경 2015.05.15 15:43

    기다림도 행복했던 반비 책꾸러미... 슈퍼히어로 덕에 고생 많으셨네요 ㅠㅠ 레터...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기다릴게요!

    • Favicon of https://banbi.tistory.com BlogIcon Banbi Editor! 2015.05.18 10:11 신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배송이 중간이 늦어지게 되었지만 무사히 책 도착했길 바랍니다!

  • BlogIcon mutebird 2015.05.15 16:18

    한권까지 챙겨 보내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 Favicon of https://banbi.tistory.com BlogIcon Banbi Editor! 2015.05.18 10:11 신고

      처음이라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ㅠㅠ 다음 번 책꾸러미는 더욱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반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 2015.05.15 16:48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banbi.tistory.com BlogIcon Banbi Editor! 2015.05.18 10:09 신고

      반비 책꾸러미는 신간이 나올때마다 진행할 예정이니 다음 기회에는 꼭 선정되어 함께 책을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김광태 2015.05.18 13:54

    알라딘에서 당첨확인을 할 수없어 혹시나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드뎌 오늘 왔습니다.
    이런일이 저한테도 일어나다니,,,,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banbi.tistory.com BlogIcon Banbi Editor! 2015.05.26 09:28 신고

      즐거운 독서 하시기 바라며, 앞으로도 계속하는 반비 책꾸러미에 관심과 홍보 부탁드립니다. :)




출판사는, 특히 반비처럼 작은 인문 출판사는 책이 나올 때마다 고민합니다.



제한된 홍보/마케팅 예산으로 어떻게 독자들에게 우리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릴 수 있을까?


하지만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돌고 돌아 결국 현실적으로는,

서점 몇 군데 경품 이벤트를 하고,

저자 강연 한두 번하고,

SNS를 통해 소개하는 정도를 넘어서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면서 제발 눈 밝은 독자들이 알아서 우리 책을 발견해주기를!

우리 책이 우연히 어느 부지런한 독자의 손과 발에 걸려들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 뿐입니다.



지난 달에도 신간 출간을 앞두고 그런 루틴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책은 강연을 한 번만 할까? 아니 두 번?

경품은 뭘 걸지…?

그러다 문득,


이런 일들이 정말 우리 책을 읽고 싶게 만들긴 하는 걸까 하는 의심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출간 기념 이벤트로 저자 강연을 열면 수백 명이 몰려 으쓱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강연 현장에서 책을 구입하시는 분들은 10퍼센트도 안 됩니다.

그럴 때면 책에 강연을 끼워 팔아야 하는 건지, 강연에 책을 끼워 팔아야 하는 건지 헷갈립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같은 존재론적인 고민이 시작됩니다.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면 좀 과장된 생각도 듭니다.

책보다 강연을 강조함으로써, 우리가 나서서,

힘들게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꼴은 아닐까?

책보다 경품을 강조함으로써, 우리가 나서서,

책은 매력적인 상품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꼴은 아닐까?


알고 보면 우리 스스로 책이 어렵고 별 효용도 없는 상품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출판사가 뭐 하는 곳인지,

출판사가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무엇일지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예전엔 그냥 좋은 책을 만들면 정말로 독자들이 알아서 읽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경험을 해봤거나 하고 있는 살마들이 점점 더 보이지 않는다는 두려움,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렵지만) 보람차고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살짝 고개를 드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 야할 일은 

아주 근본적으로 책이 가진 미덕들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꾸러미가 이런 고민의 해답은 아니겠지만, 그 실마리를 담고 있긴 합니다.



책은 완결된 구조물이지만 끝없이 다른 책들로 이어지고 연결됩니다.

그 방대한 지식의 우주, 정보의 우주, 감정의 우주는

인류의 가장 뛰어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번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권하는 책을 같이 읽을 수밖에 없고,

그 책과 연결된 책들을 이어서 일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해서 쌓인 책들을 옆에 두고 평생을 읽어나갈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요?

이런 읽기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아는 독자들을 찾아내고 귀하게 대접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만들어내는 데에도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우리 역시 그런 독자들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책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책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 책을 존재하게 해준 다른 책들도 사랑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책들을 꾸러미 속에 담았습니다.



이 꾸러미는 일종의 성좌입니다.

막막한 책의 우주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우리를 안내하는 별자리.

이 별자리들을 나침반 삼아, 더 많은 독자들과 같이 길을 찾아나가고 싶습니다.



posted by Banbi Editor!

반비 책꾸러미 추천사





< 예진수 문화일보 논설위원님 >

 

꾸러미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그대로 참 따스하고 정겹습니다.
편집자들이 정성스럽게 리스트를 만든 꾸러미를 열어보기 직전, 어떤 책이 들어있을까
마음이 두근거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빙그레 웃음이 나옵니다.
책 한 권이 하나의 우주이듯, 별들처럼 총총한 텍스트를 입체적으로 읽는 시간은 행복한 순간이며,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입니다. 연관된 주제를 가진 책들에서 비슷한 생각이 움튼 과정과 접점,
공통된 정감을 발견하는 일은 소중하고 특별한 것입니다. 이렇게 책을 읽다 보면
독서 근육을 탄탄하게 키울 수 있겠지요. 책 읽는 기쁨도 더 크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멋진 사업 구상에 박수를 보내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를 감명깊게 읽었고 제가 떠올린, 연관되는 책으로는  
정부 실패 및 배신 문제와 관련해서 장하성의 『한국자본주의』, 칼 폴라니의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시민운동의 문제점이라는 측면에서 피터 도베르뉴의 『저항주식회사』 등을 꼽아봤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다른 분들도 생각하실 것 같구요, 영화도 괜찮다는 특권을 주신 만큼 그 카드를 쓰겠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리바이어던>은 반비의 책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와 마찬가지로
국가 권력에 배신당한 한 시민들 다루고 있습니다. 약간 비약이 있는지라,
제가 추천한 영화가 전체 리스트와 잘 맞지 않으면 꼭 싣지 않으셔도 됩니다.

 

※ 영화 리바이어던

무능한 남자의 삶을 망가뜨리고, 끝내 등뼈까지 뜯어내는 국가 권력의 폭력을 고발하는 영화다.
괴물이 된 권력 앞에 쉽게 무릎을 꿇는 패자가 되지 말라는 통렬한 주문을 담고 있다.
어느 누구도 정치의 바깥에 서 있을 수는 없다.







< 강예린 건축가(SOA 소장) >


저도 꾸러미 받고 싶어요!

책에 대한 이벤트로 관련 책 꾸러미를 주는 것. 진짜 근사합니다. 

하나의 책을 둘러싼 수많은 참조와 해쉬태그를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책은 책에서 태어나고 책으로 이어지는 것만 같다는 주장이기도 하고.

출판사의 역할에 대한 생각도 환기하네요.


저는 배명훈씨의 『타워』를 추천하려고 했는데, 품절이네요. omg

그렇다면 엘리아스 카네티의 『군중과 권력』이요. 다 못 읽은 책이라 찔리지만,
정부도 군중이 만들어내는 것이니 그 관계를 살펴보면 좋을 듯합니다.





< 박재은 연구자 >


멋진 사업이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런칭하셨군요!

부르디외의 『국가론』(Sur l'Etat)도 소개하면 좋겠어요.

『국가론』 원서 [바로가기]

아무래도 영어판(On the State) 페이지를 보시는 게 편하겠죠? 

『국가론』 영어판 [바로가기]





< 김용언 기자 >


이 리스트 너무 좋아요. 출판사에서 제대로 진행하는 멋진 이벤트라고 생각합니다.
잘 되길 기원해 마질 않습니다. 에코백도 완전 예쁘네요!

토마스 프랭크의 두 책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도
얹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당.



< 박상익 한국경제 기자 >

제가 정외과 나왔는데 책 한 권 추천 못 하면 말이 되겠습니까 ㅎㅎ
최장집 교수님이 엮으신 『위기의 노동』이란 책이 있는데요. 군대에서 이걸로 몇 달 공부했는데
이 정전 교수님 책 읽는 순간 그 책 읽던 때가 바로 떠올랐어요.
만화책은 많이 보는 편은 아닌데 작년에 우연히 『현재관료계 모후』란 걸 읽었습니다.
일본 재무성관료 이야기인데 흥비롭게 봤습니다. ^^




posted by Banbi Editor!

비하인드 스토리 :


편집자가 들려주는 꾸러미 뒷이야기




즐거웠습니다. 고백하자면, 지금껏 어떤 이벤트도 이만큼 즐겁게 준비한 적이 없었습니다. 꾸러미를 받아볼 독자분들에게 드리는 편지를 쓰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준비하는 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훨씬 더 많았습니다. 첫 번째 책 꾸러미의 메이킹 필름이라고 해야 할까요, 여기에 그 못 다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아쉽게 내려놓은 책들, 여기서 소개합니다


꾸러미 준비 과정의 모토는 ‘재밌게!’였습니다. 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는 방법도 있다는 걸, 생각지 못한 독서의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독자 여러분과 나누는 일이 책 꾸러미의 목표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래서 참고문헌 페이지에 등장할 것 같은 책만 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던, 상관없어 보이던 책들과도 손을 잡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같은 분야의 책뿐 아니라 소설, 시, 어린이책, 그래픽 노블, 에세이까지 모든 분야의 책을 후보로 삼았습니다.


서점과 도서관의 서가를 뒤지고, 여러 분야의 필자와 전문가들,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뽑은 목록이 줄잡아 스무 권이 넘었습니다. 맘 같아서는 열 권, 스무 권을 보내드리고 싶었으나, 꾸러미 주제와 가장 연관이 깊은 책을 고르되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느라 아쉽게 내려놓아야 했던 책이 그만큼 많습니다. 책의 바다가 넓다고들 하지만, 새삼 얼마나 많은 책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깨닫는 기회였습니다. 그중 몇 권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2008년 촛불시위 이후 이제는 반정부 시위의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 가면으로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브이 포 벤데타』는 전체주의 체제에 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그래픽 노블입니다. 내용상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정부와 정치를 다루는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와 조금 거리가 있어 꾸러미에 담지는 못했습니다만, 사회 체제에 관해 좀 더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할 작품일 겁니다.




브이 포 벤데타 (2006)

V for Vendetta 
9.2
감독
제임스 맥테이그
출연
나탈리 포트만, 휴고 위빙, 스티븐 레아, 스티븐 프라이, 존 허트
정보
액션, SF | 미국, 영국, 독일 | 132 분 | 2006-03-16



『왜 대통령들은 거짓말을 하는가?』는 미국의 대표 지식인 하워드 진이 작고한 뒤 그가 젊은 시절부터 써온 글을 엮은 책입니다.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와 딱 들어맞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제의 연관성이 크지 않아 꾸러미에서는 빠졌습니다. 하워드 진의 전 생애에 걸친 첨예한 문제의식과 통찰력이 빛나는 책이니 일독을 권합니다.



『대통령은 돈을 마구 찍을 수 있다고?』는 청소년을 위한 경제학 교과서입니다. 제목도 그렇지만 목차도 무척 매력적인 책이었습니다. ‘한국은행 직원들에게는 돈을 찍어서 월급으로 주면 되나요?’, ‘경제학을 공부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나요?’ 같은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을 주로 다루고 있어 ‘도대체 정부는 뭘 하고 있나?’라는 꾸러미 주제와는 거리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주변에 중학생 정도 나이의 친구가 있다면 추천해주기 좋은 책입니다.




편집부의 SOS, 함께 읽으면 좋을 소설을 추천 받습니다


문학 작품이 꼭 포함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치사회 도서의 문제의식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도와주는 통로가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여러 편을 꼽아보았지만 ‘이거다!’ 싶은, 꼭 들어맞는 작품이 없어 주변의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반비와 이웃해 있는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황금가지에 추천을 부탁했습니다.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보다 일주일 앞서 출간 예정이던 『이웃집 슈퍼히어로』에 세월호 참사에서 출발한 작품이 담겨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직후였습니다. “혹시 책 전체적으로도 연관되는 주제를 다루고 있나요?”라고 질문하자 “그럼요, 슈퍼히어로가 왜 있겠어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슈퍼히어로는 무너진 사회, 부패한 정부에 시달리며 고달픈 삶을 사는 ‘보통 사람들’의 소망이 만들어낸 존재이므로 당연히 그렇다는 설명이었죠.


그 외에도 다큐 형식을 취해 좀비 아포칼립스가 닥쳐온 미래를 그려내 국가 권력자와 군부를 풍자하는 『세계대전 Z』, 사회 체제와 페미니즘을 다루는 유토피아 소설 『빼앗긴 자들』 등의 여러 작품을 긴 시간에 걸쳐 친절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지금 여기 한국 사회’의 이야기를 하는 책이 가장 걸맞다 생각되어 『이웃집 슈퍼히어로』를 최종 선정했지만, 말씀드린 다른 작품들도 굉장히 재미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영화 전문지와 장르문학 전문지에서 일해온 김용언 기자, 문화평론가 문강형준 선생님도 편집부에서 보낸 SOS에 흔쾌히 답신을 보내주셨습니다. 김용언 기자의 추천작 『펠리컨 브리프』는 듣자마자 편집자들 모두 “왜 그 책을 생각 못했지?”라고 탄식할 만큼 이 주제에 딱 맞는 책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영화화한 『고스트 라이터』, 일본 미스터리의 대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논픽션 『일본의 검은 안개』 등의 여러 흥미진진한 작품을 소개해주셨습니다.


문강형준 선생님은 문학뿐 아니라 「왝 더 독」, 「프라이머리 컬러스」 같은, 미국 정치의 어두운 면을 그려낸 영화도 추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경우 미국처럼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를 하기보다 전체주의 체제 자체를 그리는 디스토피아 소설이 더 많은 듯하다는 짤막한 경향 스케치와 함께 『브이 포 벤데타』, 『1984』 등의 작품을 말씀해주셨어요. 그러고 보니 『브이 포 벤데타』는 김용언, 문강형준 두 분의 추천 리스트와 편집부에서 꼽은 리스트에 모두 포함되어 있었네요.




단지 덜 괴로운 것에 머물지 않도록


끝으로 여러분과 꼭 한 번 함께 읽고 싶었던 글을 소개하려 합니다.


3월 말 한창 책 꾸러미 회의를 하던 도중 머릿속에 떠오른 글입니다. 학생들과 나눈 대화, 여러 현장에서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꾸준히 한국 사회에 관한 성찰을 나눠주는 저자 엄기호 선생님의 칼럼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소망하고 소망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괴로워하던 학생이 박민규의 소설을 읽고 ‘위로’를 느낀 이야기를 통해 ‘쓰고 읽는 기쁨’을 역설하는 글이었습니다. 한 단락을 여기에 인용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위로가 나타났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글의 무가치함에 대해 허무해하던 내가 위로를 느꼈다. 그의 이야기는 말과 글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고 이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기쁜 소식’이었다. 또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이 이야기를 같이 읽고 토론하면서 공부의 기쁨이란 바로 이런 가능성의 발견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세월호의 고통 한가운데에서 저 학생이 한 질문, 즉 고통이 끝나지 않은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소망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그것은 일본의 사상가 사사키 아타루가 말한 것처럼 여전히 읽고 말하고 침묵하고 쓰면서 세계를 대면하는 일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세계를 대면하는 글을 읽고 쓰고 침묵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 불가능한 것을 대면함으로써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쁨이 단지 덜 괴로운 것에 머무는 데서 우리 삶을 구원할 것이다.

 엄기호, 「쓰고 읽는 기쁨」(『경향신문』 2015년 3월 17일)


우리 역시 너무 괴로워서 고통을 외면하는 것, 단지 덜 괴로운 것에 머물지 않을 수 있기를, 읽고 쓰고 말하고 침묵하고, 그리고 세계를 대면하며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는 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번 꾸러미를 준비했습니다.


posted by Banbi Editor!
  • 이교필 2015.05.17 20:48


    이런 멋진 공간을 알게 되어 기쁨니다. 주변에 많이 소개하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banbi.tistory.com BlogIcon Banbi Editor! 2015.05.18 09:47 신고

      감사합니다. 반비 책꾸러미 독서단은 페이스북으로 신간이 나올 때마다 모집 중이니 다음 신간이 나오면 꼭 오셔서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