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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에디터김의 워킹데이즈

망토개코원숭이가 소개하는 최종욱 수의사의 신간! 안녕하세요! 저는 반비에서 지난 2011년에 출간한 에 무려 “표지 모델”로 나왔던 망토개코원숭이입니다. 흠흠, 기억나시죠? 오늘은 제가 표지 모델로서, 이 책의 저자인 최종욱 수의사님의 두 번째 책을 소개하러 나왔습니다. 좀 부크럽군요. 아, 제가 원래 이런 원숭이가 아닌데, 다음 책엔 우리 동물원에서 옆집에 살던 코끼리 일가가 주인공이라기에, 동물원을 대표해 이렇게 나서게 되었습니다. 최 수의사님이 이번에는 코끼리 11마리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셨더군요. 이 코끼리들은 저희 우치동물원에서 제 옆집에 살았던 분들이죠. 무려 코끼리 씨라 제가 평소에 감히 범접할 수 있는 분들은 아니었지만, 소문을 들으니 인생에 곡절이 많은 분들이시더군요. 원래 라오스에서 와서 인천 송도유원지에 계시다가, 서울 어린이공원을.. 더보기
반짝 문장과 형광등 문장 반짝 문장과 형광등 문장 학교 다닐 때는 논설문에는 중심 문장과 뒷받침 문장이 있다고 배웠다. 글쓴이의 주장을 오롯이 표현하는 중심 문장이 있고, 나머지 문장들은 그 중심 문장을 설명하기 위해 열심히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왜냐하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이런 글에서, 첫 번째 문장이 중심 문장이라면 두 번째 문장은 뒷받침 문장이 된다. 뒷받침 문장을 잘 써야 중심 문장에 설득력이 생긴다. 어딘가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대 때에 들었던 어느 글쓰기 강좌에서는 세상의 글에 ‘뒷받침 문장이란 없다’고 다시 배웠다. 모든 문장에는 주제가 들어 있다. 중심 문장을 단순히 뒷받침만 하는 문장이란 없다는 뜻이다. 주제가 들어 있지 않은 문장은 .. 더보기
논리정연해서 감동적인, 잘 쓴 ‘주장하는 글’에 대하여 논리정연해서 감동적인, 잘 쓴 ‘주장하는 글’에 대하여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바로는 소설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5단계 구성을 가진다고 했다. 반면 논술문, 그러니까 ‘주장하는 글’은 서론, 본론, 결론의 3단계만 가진다. 소설은 저 5단계만 봐도 뭔가 흥미진진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드는 데 반해, 논술문의 구성은 구성만 봐도 어쩐지 지루해 보인다. 말을 꺼내고, 할 말을 하고, 그다음엔 마무리를 한다는 것 아닌가. 이 얼마나 건조한지. 이런 구조로는, 무려 5단계의 다채로운 구성을 가진 소설의 재미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하지만 여러 가지 ‘주장하는 책’들을 만들다 보면, 잘 쓴 주장하는 글이야말로, 문학처럼 발단과 전개를 거쳐 위기와 절정에 이르렀다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더보기
오늘은 책을 몇 권 만들었니? “오늘은 책을 몇 권 만들었니?” 아는 편집자 선배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남편이 이렇게 묻는다고 했다.출판사에 다니면 하루에도 몇 권씩 책을 만들어내고 온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하기야 서점에 매일같이 신간이 쏟아지니,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거기다 원고는 저자가 쓰고,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하고, 인쇄는 인쇄소에서 하니,달리 할 일 없는 편집자는 하루에 몇 권씩 뚝딱 만들어내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대체 책 한 권 만드는 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 하는 의문을 어떻게 풀어주지?희한한 건, 일단 책이 나오고 나면, 나도 그 중간 과정을 까먹고는 대체 이 책 만드는 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납득이 안 된다는 거다.원고는 저자가 썼고,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했고, 인쇄는 인.. 더보기
1리터는 들어줘야 편집의 완성? 1리터는 들어줘야 편집의 완성? 출판사에 취직하고 월급을 따박따박 받게 되면서, 가장 좋았던 것 중의 하나는 커피를 원 없이 마실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였다.학생 시절에는 2천 원짜리 로즈버드 커피도 학생 신분에 ‘된장질’이 아닌가 하고자체 검열을 하곤 했는데, 돈을 벌게 되면서 그 검열의 기준이 아주 느슨해진 것이다.한창 카페라떼에 심취해 있을 때는,‘커피만큼은 아낌없이 마시리라! 그것이 된장질이라면 기꺼이 된장녀가 되리라!’라며 다짐하기도 했다. 유독 카페인에 예민한 덕분에, 커피 한 컵만 마셔도정신이 또랑또랑해지는 것은 커피를 사는 데에 그럴듯한 근거도 되었다. 커피를 마시면, 일의 능률도 오르잖아? 매일같이 습관처럼 마시다 보니,점점 카페인 수용량이 늘어나 하루에 두세 잔쯤 마셔도밤잠을 자는 데에 .. 더보기
휴가를 마치고 오니, 활자들이 달려든다! 휴가를 마치고 오니, 활자들이 달려든다! 십여 년 전 장국영의 부고 기사를 무척 슬프게 읽었더랬다. 우연히 인터넷을 열었다가 장국영이 홍콩의 한 호텔에서 몸을 던졌다는 기사를 에서 읽고는 종일 울적했다. 아, 잘생긴 장국영이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다니. 얼마 전에 나온 주성철의 책 을 보고 또 그날의 기분이 떠올라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내가 장국영을 좋아해서 그 부고 기사가 그토록 슬픈 여운을 남긴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장국영의 부고 기사는 당시 시드니에 머물며 영어와 씨름하던 내가 아주 오랜만에 읽은 한글 원고였던 거다. 오랜만에 마주한 한글의 신선함 때문에 장국영의 죽음이 그토록 애잔했던 거다. ‘책 읽는 휴가’를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이라고 멋지게 이름 .. 더보기
사진으로 만난 봄 도무지 봄기운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날씨 탓에 기침 감기로 콜록콜록거리고 있는데, 카톡으로 꽃 사진 하나가 팔랑 날아왔다. 일본에 사는 우리 번역가가 학교 마당에 꽃이 피었다며 친히 사진을 찍어 보내온 것이다. 일본에는 벌써 봄이 왔나 보다! 억지로 먹은 감기약 기운으로 몽롱하던 차에, 화사하게 핀 꽃 사진을 보고 나니, 봄이 저만치 오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이 꽃 사진을 보내온 역자로 말할 것 같으면, 1월 내내 번역 작업에 매달리느라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해서, 작업을 마치자마자 한국으로 날아와,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더랬다. 일주일이라는, 귀한 고향 방문 시간 대부분을 한의원에서 보내야 했던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이라, 무사히 번역을 마치고 맞이한 봄꽃이 더욱 반가웠나 보다. 봄꽃을 .. 더보기
이런 엄청난 경쟁도서라니! "X 이벤트란 무엇일까?"란 포스팅에서 공개했던 두 종의 표지 시안 중, 「X 이벤트」의 표지는 이렇게 결정되었습니다. :-) 이번 주 서점에서 만나실 수 있는 이 「X 이벤트」가 나오기까지 과정 중 하나를 에디터 김의 워킹데이즈 0.5회분 정도(?)로 소개합니다. ..... 이런 엄청난 경쟁도서라니! (진지함을 드러내는 궁서체 볼드) 인류를 한순간에 절멸의 위기에 빠뜨리는 극단적인 사건, 즉 X이벤트를 연구한 책「X 이벤트」라는 책을 준비하면서 이 책의 경쟁 도서, 유사 도서를 찾느라 인터넷 서점을 뒤적뒤적하던 어느 날, 정말이지 엄청난 경쟁 도서를 발견하고 말았다. 제목부터 콘셉트부터 표지까지,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경쟁 도서가 아닐 수 없다! 『X이벤트』의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가 바로, 전 세계 구석.. 더보기
모음조화를 내게 돌려줘. 모음조화를 내게 돌려줘. 전에 어린이 책을 만들던 시절에는, 책에 들어갈 단어를 고르는 데에 훨씬 더 엄격했었다. 오죽하면 서로에게 농담으로 “사전에 없는 감탄사로는 감탄하지 말아라.”라는 농담까지 건네곤 했다. 꼭 농담만은 아니었던 것이, 정말로 우리는 책 속의 인물들이 사전에 없는 감탄사로 함부로 감탄하게 놓아두지 않았다. 어느 원고에선가, ‘으라차차!’라는 감탄사가 있었는데, 으라차차는 사전에 없는 감탄사여서 이 단어를 써도 될지,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다. 비슷한 감탄사로는 ‘영차!’ 정도가 있었는데, ‘영차!’로는 으라차차!의 느낌이 잘 살지 않아서 고민은 더욱 깊어졌었다. 당시 고민 끝에 결국 책에 영차를 썼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으라차차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책을 .. 더보기
이메일에 매달려오는 ‘인간미’ 한 조각 이메일에 매달려오는 ‘인간미’ 한 조각 편집자 일의 3할쯤은 이메일 쓰기와 이메일 받기다. 특히 나처럼 전화 통화를 부끄러워하는 소심한 편집자는 이메일 활용도를 업무의 5할까지 끌어 올리려는 무리한 시도를 할 때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다 보면, 이메일 끝에 매달려오는, 간단한 메시지들을 보는 재미가 은근 쏠쏠하다. 대개는 온라인 명함을 디폴트로 정해 두지만, 때로 시 한 구절이나, 멋진 책 속 인용구들을 적어두어, 기계를 매개로 연결된 건조한 인간관계에 ‘인간미’ 한 조각을 보내오는 다정한 사람도 있다. 오늘도 그런 이메일을 하나 받았는데, 인간미에, ‘광대한 스케일’까지 겸비한, 한마디로 멋진 인용구가 매달려 있었다. 첫째, 남에게 친절하고 도움 주기를 흐르는 물처럼 하라. 둘째, 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