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이후의 삶』 저자와의 만남!


왜 비판적 지식인들은 지금 후쿠시마를 고민하는가?

역사, 철학, 예술을 대표하는 한일의 지식인 연속 좌담!


『후쿠시마 이후의 삶』 출간 기념으로 대담과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1) 한홍구-서경식 대담
- 일시 : 2013년 3월 18일(월) 저녁 7시 30분
- 장소 : 평화박물관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99-1) 약도 보기
- 신청기간 : 2013년 3월 6일 ~ 3월 15일
- 당첨자 발표 : 3월 15일 (개별 통보)

2) 한홍구 강연
- 일시 : 2013년 3월 25일(월) 저녁 7시 30분
- 장소 : 평화박물관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99-1) 약도 보기
- 신청기간 : 2013년 3월 6일 ~ 3월 22일
- 당첨자 발표 : 3월 22일 (개별 통보)

- 신청 페이지 가기 클릭 : http://ow.ly/iq9eW


* 대담회, 강연회, 개별 및 통합 신청 가능합니다.


* 평화박물관 위치 : 


posted by Banbi Editor!

후쿠시마 이후의 삶

반비의 책 2013. 3. 5. 09:04




후쿠시마 이후의 삶


역사, 철학, 예술로 3·11 이후를 성찰하다



후쿠시마 2주년!

왜 비판적 지식인은 지금, 후쿠시마를 논의해야 하는가?

역사, 철학, 예술을 대표하는 한일 지식인들의 연속 좌담!


비전문가들이 1년여의 기간에 걸쳐 후쿠시마, 합천, 서울, 도쿄, 제주, 오키나와를 오가며 좌담을 나눈 것은 핵 문제의 해결을 이른바 전문가 집단에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에서였다. 핵무기가 사용되는 형태이든, 핵 발전소에서 발생한 심각한 사고이든 간에 일단 문제가 터지면 그 피해를 입는 것은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광범위한 일반 대중이다. 핵 문제에 관한 이른바 전문가의 절대 다수는 이 책에서 ‘원자력 마피아’ 또는 ‘원자력 마을’이라고 비판받은 집단에 속해 있다. 핵무기와 핵 발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핵으로부터 이익을 보는 집단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되는 일반 대중 속에서 보다 많이, 보다 크게 나와야 할 것이다.—한홍구



원자력 마피아를 넘어,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후쿠시마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한일 지식인들의 자기 성찰!


  2011년 3월 11일에 동일본 대지진, 이른바 3·11이 일어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자연재해로 시작해, 원전 사고라는 더욱 큰 인재를 동반한 이 사건은 전 세계에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겼고, 사건 직후 전 세계적으로 탈핵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세계적으로 원전이 집중된 동아시아 3개국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원전 재개를 꾀하려는 ‘원자력 마피아’들의 전방위적 공세가 날로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는 그렇게 지나가버리면 그만인 사건이 아니다. 다른 자연재해나 인재와 매우 다른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이후 우리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야 할 정도의 파급력을 지닌 사건이다. 후쿠시마 사고가 갖는 다양한 함의에 주목한 한일의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 한홍구, 서경식, 다카하시 데쓰야는 원전 사고 후 3개월이 지난 2011년 6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약 2년간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지며 이 사건이 갖는 의미와 파장, 이후의 미래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해왔다. 저자들은 특히 원전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현지, 스리마일 섬과 히로시마 등의 피폭자들의 증언 대회가 열린 합천비핵평화대회, 원전 문제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기지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제주 강정 마을, 그리고 오키나와까지 주요 ‘현장’을 직접 답사함으로써 현장감과 함께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이끌어 내고자 했다.

  저자들은 후쿠시마 사고 자체에 대한 임상적 진단에 머물지 않고, 20세기 동아시아의 현대사를 되짚으며 한일의 정치적 흐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한미일 동맹의 방향, 원전과 기지 문제의 공통성, 원전과 윤리, 나아가 일본 천황제 및 평화 헌법과 원전의 관계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원전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후쿠시마 사고가 우리의 삶의 방향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조목조목 짚어낸다.

  2년여 간, 논의를 거듭하면서 세 학자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던 것이 있다면 바로 ‘평화에 대한 실천적 희구’이다.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전 문제가 ‘동네 문제’로 폄하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탈핵과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지 실천적인 대안을 모색한다.



1. 원전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다!

  세 학자는 역사학, 철학, 예술의 각 분야를 대표하는 학자지만, 원전에 대해서는 비전문가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들이 모이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세 학자는 정치가, 관료, 기업, 그리고 미디어까지 이른바 ‘원자력 마피아’들이 쳐놓은 전문성의 벽을 넘는 것이 원전 문제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단 사고가 일어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일반 시민이므로 핵 문제에 대한 결정권은 주권자인 시민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믿음이다.

  그런 점에서 원전이 ‘희생의 시스템’에 기반해 있다는 분석은 원전과 국가주의의 문제, 원전과 차별의 문제가 뿌리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애초에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가 야스쿠니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인 ‘희생의 시스템’은 원전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그 핵심은, 국가가 국민을 속이고, 버리고 국민 이외의 존재를 무시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타인의 생활이나 생명, 존엄 등을 희생한 위에서만 이익을 내고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거기서 이득을 얻는 자는 국가권력과 자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이 포기되지 않는 것은 원전은 핵무기와 일란성쌍둥이이기 때문이다. 원전을 보유한다는 것은 핵무기 제조 기술과 그 재료를 보유한다는 것, 즉 잠재적 핵 능력을 보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이 4만 명의 피폭자를 보유한 피폭 국가라는 것이 철저히 잊힌 이유, 일본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사태가 일어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저자들은 한국과 일본의 각종 사료들을 근거로, 원전을 확산시킨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기치가 사실은 자기기만에 불과함을 명백히 한다. 나아가 인류의 지속적 생존을 가능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원전은 비윤리적이라고 단언한다.

  

이 사람은 2차대전 때 해군 장교였는데, 어느 글에서 보니 예전에 히로시마에서 이런 말을 했다더군요. “나는 히로시마의 원폭 구름을 보았을 때 앞으로는 원자력 시대라고 생각했다.” 그 원폭 구름의 아래는 어땠습니까? 피폭을 입은 사람들로 지옥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원자력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죠. 원자력이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아직 원전이 없었기 때문에 원폭을 생각하면서 원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가 열린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버섯구름을 보고 핵분열이나 핵융합 기술을 갖고 싶다고 생각한 나카소네는 결국 후에 원전 예산을국회에서 통과시켰는데, 이때 내걸었던 것이 핵의 평화적 이용입니다.(38쪽)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자민당 방위 우선론자들의 대장이라 할 수 있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의원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원전을 보유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핵의 잠재력, 억제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원전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런 것도 동시에 포기하는 것인데, 그러면 되겠습니까?” 결국 전에 있었던 맥락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지요. 핵의 ‘평화적 이용’이란 결국 따옴표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114쪽)




2. 원전부터 군사 기지까지, 동북아시아의 평화로운 삶을 위협하는 것들

  

 원전 문제를 기지 문제와 연결해보는 시각은 동북아시아의 현대사를 다시 근본적으로 되돌아보며 현재의 체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후쿠시마에서 출발한 좌담이 도쿄와 서울을 거쳐, 제주 강정 마을과 오키나와까지 가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제주는 대한민국 국가 건설 과정에서 4·3이라는 학살이 일어난 현장으로 대한민국의 제한적 정당성을 드러내는 장소이며, 오키나와는 주일 미군의 75%가 밀집된 지역으로 그 존재 자체로 일본이 전후에 추구해온 평화주의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장소이다. 그리고 지금 제주는 강정 마을의 해군 기지 건설과 관련한 논란이, 오키나와는 수직 이착륙기 오스프레이의 배치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다. 당장의 군사 기지 문제는, 우발적이고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이 두 섬이 거쳐 온 현대사에서 이어지는 뿌리 깊은 문제이다. 저자들은 제주와 오키나와를 찾아가 직접 현장을 둘러보며, 한일 현대사를 되짚어나감으로써 국가의 역할을 성찰하고 냉전 이후의 체제를 고민한다.

  강정 해군 기지는 국가에 의해 강요된 원전과 기지가 어떻게 동일하게 평화를 위협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소이다. 사실 원전을 건설하려는 지역에 국가가 동원하는 논리는 기지 건설 지역에 동원하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저자들은 강정 해군 기지가 절차적인 문제를 넘어, 그 자체로 중국의 부상이라는 정세 변화 속에서도 한국의 역할을 기존의 냉전적 구도에 고정시킨다는 점에서, 원전만큼이나 한반도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것을 조목조목 밝혀낸다.

  또한 저자들은 헌법 9조를 개정하려는 일본 우익의 움직임, 야스쿠니 문제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부재 등이 어떻게 오늘날 원전 문제와 맞닿아 있는지 도 분석한다.


  일본이 평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핵무기가 일본 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그것을 받아들인 건 바로 분단 국가 한국이었습니다. 그 핵무기가 미국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미일 세 나라의 위계질서, 혹은 전 세계적 냉전 체제에서의 역할 분담이 형성된 셈이지요.(105쪽)


  오키나와는 미군의 베트남 폭격의 거점이었어요. 이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전쟁 수행을 할 때도 오키나와에서 출발했지요. 그런 식으로 오키나와 사람들은 원치 않지만 미군의 적에게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이 오키나와를 희생물로 삼아 미군의 전쟁에 협력해왔다고 할까요? 오키나와라는 거울로 보면 ‘허구의 평화주의’라는 것도 명확해집니다.(244쪽)



3. 우경화와 퇴행의 시대, 지식인의 자기 성찰


  오키나와에서 진행된 마지막 좌담은 일본은 총선이, 한국은 대선이 막 치러진 직후에 이루어졌다. 한일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으로서, 특히 원전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저자들은 동아시아 전체가 퇴행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선거 결과를 앞에 두고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대중적 무관심이 낳은 결과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원전과 평화 문제를 좀 더 실감 나게 우리 삶의 문제로 설명해내지 못한 지식인의 문제라는 점을 통렬히 반성한다. 그리고 일국적 차원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가 우경화되고 보수화되는 현실 앞에서, 향후 어떤 ‘희망’을 가지고 평화를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과거사 문제, 원폭, 원전,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레퍼토리가 낡아간다는 느낌, 아니 레퍼토리보다 전달 방식이 낡아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계몽의 시대에 살고있었나 하는 반성이 듭니다. 말하는 방식에 있어 반대쪽 세력과 비슷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요. 특히 원폭이나 원전 문제를 말할 때 저쪽 세력이 공포를 팔아먹으며 안보 장사를 하듯, 우리도 ‘이런 어마어마한 재앙이 다가오고 있는데 지금 뭐하고 있느냐’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도 이 변화된 환경에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할지 고민해야 합니다.(259쪽)



본문 속으로

  우리 세 사람의 공통점을 들라고 하면, 바로 평화에 대한 실천적 희구를 들 수 있겠다. 그런 우리들이 포스트 3·11이라는 시대의 물음에 응답하기 위하여 대화를 거듭해온 결과가 이 책이다. 우리 세 사람이 서로 다른 문맥을 참고하며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나눈 것은, 포스트 3·11이라는 상황을 단순히 실용주의적으로 또는 임상적으로 진단해서 만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좌담이 보다 넓은 시야와 긴 안목으로, 그리고 여러 다양한 시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보다 깊게 사회를 고찰하는 데 유용하리라 믿는다.(13쪽)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졌을 당시의 피해 상황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서 참 가슴 아팠던 것이 있습니다. 일본인 희생자는 구체적인 숫자가 한 명 단위까지 정확하게 나와 있는데, 조선인은 거기에 몇 명 있었는지조차 정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략 10만 명, 혹은 5만 명이 있었다 하는 정도이고 사망자 역시 히로시마에서 3만 명, 나가사키에서 1만 명으로 전체 4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어요. 폭사자를 만 명 단위로밖에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거친 추산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피폭자 중 사망자 수예요. 일본인의 경우 피폭자 총수에서 죽음에 이른 사람이 차지하는 비율이 1/3 정도인 반면, 조선인의 경우는 1/2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조선인 피폭자의 사망률이 높은 것은, 똑같이 피폭을 당했어도 사후에 구호 조치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참 서글픈 일이지요. 게다가 이런 사실이 한국 내에서 완벽하게 잊혔습니다.(29쪽)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한 피폭 국가임을 강조해왔잖아요. 그 때문에 평화 헌법을 갖고 있고요.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핵무기 피해를 입었고 그 피해를 지금까지 안고 살아가야 하는 나라로서 강력한 반핵 정서가 있을 것 같은데, 거꾸로 현재 세계에서 원전이 가장 많이 들어선 나라 중 하나가 되었죠.(38쪽)


  원전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극구 부인하지만, 사실 원전은 원자폭탄의 다른 얼굴일 수 있어요. 이 둘은 마치 일란성쌍둥이처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핵 발전과 핵폭탄 모두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핵 발전은 핵분열의 속도를 늦췄을 뿐이지요. 둘은 같은 기술, 같은 원리에 입각해 있습니다. 또 핵 발전소에서 사용한 핵연료는 핵무기의 원료로 사용되지요. 그래서 원자폭탄을 갖고 싶은 열망이 원전을 자꾸 짓게 만드는 측면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점이 전 세계에 포진해 있는 원자력 마피아들이 원전에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42쪽)


  오늘 이 좌담의 특징 중 하나가 핵 문제에 대해 문외한들이 모여서 얘기한다는 점이에요. 두 분 선생님은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지만 핵 문제의 전문가는 아닙니다. 저야 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 셋 모두 핵 전문가가 아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개입하고 발언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우리가 모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 사회에서 핵 문제에 대한 결정권은 주권자인 민주 시민들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핵 발전소와 관련된 사고라도 나면 피해를 입는 것은 주권자인 시민들이지요. 후쿠시마에서도 도쿄의 원자력 마피아들이 마음대로 정한 것에 의해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잖아요.(53쪽)


  한국의 원폭 피해자들은 마이너리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흔히 자국이 세계 유일의 피폭국이라며, 국가와 민족을 동일시해서 일본인들이 원자폭탄에 희생되었다고들 하죠. 그런데 피폭자들을 살펴보면 무려 7만 명의 조선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됐고, 그중 4만 명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 피폭자 문제는 한국에서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죠. 그 중에서도 원폭2세들은 또 다른 마이너리티라고 할 수 있습니다.(70쪽)


  저는 이러한 것들을 포괄해서 원전 시스템을 ‘희생의 시스템’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타인의 생활이나 생명, 존엄 등을 희생한 위에서만 이익을 내고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여기서 그 이익을 취하고 유지하는 자들은 결국 국가권력이나 자본입니다.(77쪽)


  고리 1호기의 수명이 연장되는 과정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2012년 1월에 지식경제부 차관이 원자력수출산업회의의 신년 하례회에 가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원자력 업계에서 일하는 방식이 있지 않느냐, 앞으로 다른 원전의 수명 연장을 다 해야 할 것 아니냐, 수명 연장이 안 되면 여기 모인 사람 중에 올해 연말부터 집에 가서 애 볼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이건 정말 꼭 수명 연장을 해야 한다.”(87쪽)


그 후 한국전쟁이 나자 맥아더(Douglas MacArthor) 장군이 핵무기를 쓰겠다고 주장합니다. 무려 핵무기 26발을 1차로 북한과 만주에 투하하자고 했는데 이런 사실은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요. 제가 ‘국민학생’ 때인 1960년대에는 맥아더 장군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해임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정서가 있었습니다. ‘맥아더 장군 말대로 그때 원자폭탄을 투하했다면 지금 통일돼 있는 건데 아쉽다, 맥아더가 해임된 게 너무나 아쉽다’ 하는 정서였지요.(98쪽)


  미국에서는 원폭 투하를 통해 수많은 미국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논리로 투하를 정당화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원폭 덕분에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났다고 했으니 훨씬 더 강력한 지지 논리가 퍼진 셈이죠. 원폭 사용을 이보다 더 잘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겁니다. 원폭 때문에 하루아침에 히로시마에서 조선인 3만 명이 죽었다는 얘기는 꺼낼 여지조차 없을 정도지요. 그런 점에서 한국은 수만 명의 피폭자를 낸 피해 국가이자 동시에 원폭을 가장 잘 정당화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102쪽)


  일본의 헌법 9조는 사실 이중성을 가진 산물이고 미국의 극동 전략에 따라 전술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생겨난 면이 있지만, 그렇더라도 중국이나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의 피침략 국가들이 희생을 통해 얻어낸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시아 사람들이 헌법 9조의 평화 이념은 우리들이 싸워서 얻어낸 것이므로 일본이 버리면 안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122쪽)


  원전 문제를 시작으로 기지 문제까지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그 둘을 잇는 고리로, 국가가 있습니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특정 지역을 선택해서 원전이나 기지를 지을 때는 그 지역 주민들에게 억압, 회유, 보상 등이 가해집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 내에 갈등이 생겨나게 되죠. 어제 활동가들과 지역 주민들을 만나면서 들은 이야기 중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이 ‘국가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였습니다.”(143쪽)


  강정 해군 기지 문제는 단순히 현재 강정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 환경 파괴 문제, 절차상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강정에서 민주적인 절차가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어서 절차 문제 등을 제기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한반도의 선택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가, 한반도의 통일 문제까지 포함해서 21세기 동아시아의 질서 재편에 우리가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데, 강정 기지가 기정사실화해버린 측면이 있죠.(165쪽)


  4·3은 일본 제국주의가 물러나고 미국 주도의 냉전 질서를 만드는 가운데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일어난, 즉 국가 세우기 과정에서 일어난 학살입니다. 동아시아에서 냉전 질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비극이 일어난 곳이 오키나와, 대만, 제주도였습니다. 즉 섬에서 섬으로 학살이 흘러갔던 것이죠.(191쪽)


  원전은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았음은 물론이거니와 비용상으로도 손해라는 게 명백해졌는데도 그럴수록 더욱 노골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릴 수 없다, 유지하겠다’는 세력의 본심이 드러나고 있는 듯합니다. 그 본심이라는 것은 경제 효율, 즉 이윤인데 여기서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이 군사력이지요. 세계 일등 국가로서 핵 기술을 유지해야 한다, 혹은 플루토늄을 소유함으로써 핵클럽의 일원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들 합니다. 이런 것들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국민적 반발이 있을 줄 알았는데 선거 결과를 보니 오히려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었지요.(239쪽)



차례

책을 펴내며 5

1. 원전과 원폭, 그리고 민주주의 22

— 원전 사고의 현장, 후쿠시마에서

과연 누가 피폭자인가

홀로코스트 앞에서 떠날 수 없는 유대인의 심정

히로시마를 겪은 일본에 왜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났나

원전과 원폭은 일란성쌍둥이

원자력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

2. 원전이라는 희생의 시스템 64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비핵평화대회를 다녀와서

내 고통의 근원, 원자폭탄

국가가 국민을 속이고, 버리고, 무시하는 시스템

국가를 의심하지 않는 시민

고통의 연대를 가로막는 것들

3. 원전과 동아시아의 현대사 94

—현대사가 집적된 도쿄에서

해방을 가져다준 ‘고마운 원폭’

평화 국가 일본, 핵 전진기지 한국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자기기만

일본의 평화 헌법은 아시아 공통의 것

4. 원전과 기지 134

—해군 기지가 건설 중인 제주 강정 마을을 다녀와서

원전과 기지를 잇는 고리, ‘국가’

제주와 오키나와, 비극은 섬으로 흐른다

강정 해군 기지는 어떻게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가

대미 자립을 지향한 정권은 왜 단명했을까

추모와 기념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들의 이름으로 복수하지 말라

5. 원전과 동아시아의 평화 214

—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을 다녀와서

동아시아 전체의 퇴행

주변인들이 평화 헌법을 지키는 아이러니

히로시마 식 추모와 야스쿠니 식 추모

원전에 대한 노골적인 본심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재앙들

원전은 윤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지은이

한홍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으며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상임이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사』 1~4권, 『지금 이 순간의 역사』, 『특강』,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공저), 『직설』(공저),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공저) 등이 있다.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1974년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學) 문학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도쿄게이자이대학(東京經濟大學)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 중 『소년의 눈물』로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받았고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그 외에 『나의 서양미술 순례』,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청춘의 사신』,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만남』, 『언어의 감옥에서』,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등의 저서가 있다. 2012년에 민주주의 실현과 소수자들의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제6회 후광 김대중학술상을 수상했다.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일본 후쿠시마에서 태어나 도쿄대학(東京大學) 교양학부 프랑스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도쿄대학교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로, 일본의 역사 왜곡과 인권 문제를 통렬하게 지적하는 대표적인 학자이다. 저서로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 『일본의 전후 책임을 묻는다』,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공저),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공저), 『글로벌화와 인권·교과서』(공저) 등이 있다.


책임 번역 이령경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대구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 모임’ 창립 멤버로 활동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를 만났다. 서울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관한 연구와 관련 단체 활동을 했다. 2011년에 일본 릿쿄대학(立教大學)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현재 릿쿄대학, 도쿄외국어대학(東京外国語大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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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이후의 삶」 표지 시안


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바뀐 것은 후쿠시마현의 사람들, 일본인들의 삶만일까요?


이제 며칠 뒤면 3・11이 벌써 2주년이 됩니다. 3・11 - 후쿠시마 원전 사고 2주년을 맞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국가와 원전, 민주주의라는 큰 틀에서 성찰하는 후쿠시마 이후의 삶」 이 3월 첫째 주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 책은 한홍구, 서경식, 다카하시 데쓰야, 한일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이자 평화 활동가들의 연속 대담으로 만들어진 책입니다. 원전 문제를 비롯해 우경화, 퇴행하고 있는 정치 상황에 대한 세 지식인의 자기반성과 성찰이 담겨 있기도 하답니다. 



우리 세 사람의 공통점을 들라고 하면, 바로 평화에 대한 실천적 희구를 들 수 있겠다. 그런 우리들이 포스트 3·11이라는 시대의 물음에 응답하기 위하여 대화를 거듭해온 결과가 이 책이다. 우리 세 사람이 서로 다른 문맥을 참고하며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나눈 것은, 포스트 3·11이라는 상황을 단순히 실용주의적으로 또는 임상적으로 진단해서 만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좌담이 보다 넓은 시야와 긴 안목으로, 그리고 여러 다양한 시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보다 깊게 사회를 고찰하는 데 유용하리라 믿는다.


「후쿠시마 이후의 삶」 중



세 저자 분 소개


한홍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 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으며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상임이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사』 1~4권, 『지금 이 순간의 역사』, 『특강』,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공저), 『직설』(공저),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공저) 등이 있다.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1974년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學)  문학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도쿄게이자이대학(東京經濟大學)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 중『소년의 눈물』로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받았고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그 외에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나의 서양미술 순례』,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청춘의 사신』,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만남』, 『언어의 감옥에서』 등의 저서가 있다. 2012년에 민주주의 실현과 소수자들의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제6회 후광 김대중학술상을 수상했다.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일본 후쿠시마에서 태어나 도쿄대학(東京大學) 교양학부 프랑스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도쿄대학교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로, 일본의 역사 왜곡과 인권 문제를 통렬하게 지적하는 대표적인 학자이다. 저서로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공저), 《일본의 전후 책임을 묻는다》,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공저), 《글로벌화와 인권·교과서》(공저),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 등이 있다.  




ps. 부록



제목 확정 전, 「포스트 후쿠시마」란 제목으로도 표지를 만들어보기도 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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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금)의 오마이뉴스에서의 강연에 이어 9월 11일(화) 저녁, 서경식 선생님의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출간 기념 강연회가 정독 도서관에서 열렸습니다. 이 강연은 세 분의 패널을 모시고 진행되었습니다.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은 일본에서 출간한 서경식 선생님의 책 중 반향이 제일 큰데, 절반은 부정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학교 쪽으로 항의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네요. 






와세다대의 조현호님. 다음 주에 군대에 가는 일정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개인과 국가를 동일시하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국가와 개인을 분리하면 집단적인 책임이라는 것은 근거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란 질문을 주셨고, 이 질문에 대한 서경식 선생님은...


"국민이 국가와 일치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국민으로 속하고 있는 책임, 즉 주권자로 있는 국가의 잘못, 이것을 바로잡을 의무가 있다. 

한국은 나라가 없던 식민 지배의 경험, 분단 국가, 쿠데타 등등의 경험을 통해 국가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닌 인위적이라는 것을 의식,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것을 피부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근대 내내 국가가 존재했고, 천황제도 유지하고 있다. 국가에 대한 비판이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두 번째 패널로 발표를 해 주신 중앙고등학교의 박범희 선생님.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일본은 나쁘다'는 식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역사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세 번째 패널인 이천중학교의 이재훈 선생님.

오사카의 '한국 학교'에서 근무하셨던 경험이 있어서 관련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역사를 가르치셨는데, 재외 동포를 위한 역사 개설서 정도만 있고 학생들을 위한 역사 교과서가 없어서 직접 만들어서 가르치셨다고 하네요.


'조선 학교'는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로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조선 학교'가 아닌 '한국 학교'는 일본에 네 곳이 있고, 이곳은 '조선 학교'와 달리 일본의 사립학교입니다.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정) 커리큘럼이 일본의 보통 학교와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는 국민이다. 너는 국민이 아니다. 국민이 아닌 너는 차별받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식으로 '국민'이 아니어서 차별 받는 것에 대해 어떤 의심하지 않고 당연시하는 것이 바로 서경식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국민주의'입니다. 


이것은 재일조선인 문제 뿐만 아니라 바로 이 땅의 우리들에게도 해당하는 것이겠지요. 아시아의 결혼 이주민 여성들이 한국에서 겪는 경험이 바로 서경식 선생님의 어머니 같이 일본에 건너온 재일조선인의 경험과 유사하다 하겠습니다. 우리는 과연 '국민주의'란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이번 정독 도서관 강연 때는 특히 기존 서경식 선생님 팬(!)이 아닌 처음 접하는 분들도 많이 오셨던 것 같습니다. 강연회 마치고 사인회 시간에 줄이 엄청 길었는데요, 이날 강연 오셔서 '재일조선인'과 '국민주의',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분들이 많은 것 같아 기쁩니다.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출간 기념 강연회는 이렇게 두 번의 강연회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두 번의 강연 중 오마이뉴스에서의 강연은 유튜브, 팟캐스트 등 동영상으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강연회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우신 분들은 동영상으로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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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7일(금) 저녁, 오마이뉴스 강연회장에서 서경식 선생님의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출간 기념 강연회가 열렸습니다. 





강연 시작 전 서경식 선생님을 잘 설명해 주는 NHK 프로그램을 30분 정도 봤습니다. 그 부분은 이 강연 동영상엔 없습니다만 현대사와 가족사가 얽힌 부분이 있었는데요, 살짝 소개해 보자면...



"목격자는 방관자가 아니다. 목격자는 언젠가 증언한다." 서경식 선생님이 15세 때 처음으로 본 '조국'에 대해 17세에 적은 문장이라고 합니다. 당시 서경식 선생님이 처음으로 봤던 60년대의 '부산'의 모습이 흑백 사진으로 자료 화면으로 등장하며, "자신도 어쩌면 부산에서 만난 구두 닦이 소년이 될 수 있었고, 휴전선을 사이에 둔 북한에서 태어날 수 있었다."는 당시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시는 분들이 많을 가족사. 지난 유네스코 강연 때도 강연 시작 전 살짝 언급하셨지만, 서경식 선생님의 두 형, 서승, 서준식 형제는 한국에 유학하다 박정희 독재 정권에 간첩으로 몰려 투옥되었고, 결국 어머니는 두 아들의 석방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독재 정권과 타협하는 걸 바라진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연 내용은 동영상으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







강연회가 끝나고 사인회. 




사인회 때 깜짝 놀랐던 한 분. 서경식 선생님께 드릴 선물과 한국에 출간되 서경식 선생님의 책을 다 가져오셨더라고요. ^^



그리고 오늘(9/11) 저녁, 정독 도서관에서 서경식 선생님의 강연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패널 분들과 함께 대담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으로, 반비 트위터로 강연 중간중간 소식을 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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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21일(화)에 열린 2012 유네스코 국제청년포럼 '청년역사대화 - 국경을 넘는 역사 인식과 동아시아 역사화해'에서 
서경식 선생님은 "젊은 사람은 누구의 피해자? - 재일조선인과 동아시아의 미래"란 제목의 강연을 하셨습니다. 



2012 유네스코 국제청년포럼 '청년역사대화 - 국경을 넘는 역사 인식과 동아시아 역사화해' (2012.8.21)

강연 전 사회자의 소개, 참가자 분들에게 인사하시는 서경식 선생님. :-)



이 포럼의 장소는 남산 유스호스텔이었는데, 이곳은 독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가 있던 곳이지요. 그리고 서경식 선생님의 두 형제분이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정치범으로 19년 동안 옥고를 치르시기도 했던 걸 생각하면 참 묘한 인연인 것 같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분들이 참석한 "젊은 사람은 누구의 피해자? - 재일조선인과 동아시아의 미래" 강연은 재일조선인이란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는 일본 국적을 갖고 있지 않는 재일조선인이 약 60만 명이 있다. 귀화해서 일본 국적을 취득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100만 명이 훨씬 넘을 것이다. 많은 숫자지만 일본 인구의 1% 정도에 불과한 '마이너리티'이다.


1923년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2004년 이시하라 도쿄지사의 인종주의적 발언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 무의식 중에 있는 인종주의들이 있다. 국가가 전쟁 수행을 위해 차별 의식을 갖게 하는 일이 있었다. 차별 의식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무서운 것이다. 


식민지 지배의 역사에서 일본인의 심리에는 일종의 피해자 의식이 있다. 일본이 가해자 측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90년대 이후 일본의 젊은 사람들은 피해자 의식이 더 강해졌다. 

일본의 젊은 사람들은,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일로 아시아의 피해자들에게 비난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젊은 세대를 위협하는 것은 아시아의 피해자가 아니라 제대로 뒷처리를 하지 않고, 역사의 진실을 가르치지 않고 있는 윗세대이다.


어떻게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1) 사실(역사)을 안다. 2) 개인과 국가를 동일화하지 않는다. 3) 상대방이라면 어떨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본다.(타자에 대한 상상력 갖기) 


강연이 끝나고 Q&A 시간에는 역시 국제포럼답게 일본, 베트남, 우즈베키스탄에서 오신 분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일본의 두 청년이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서경식 교수님이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을 쓰신 이유를, 역시 이런 역사 인식을 위한 자리를 가져야 하는 이유를 절실히 느끼게 되네요. 


특히 우즈베키스탄에서 오신 분은 '고려인 4세'였는데, 서경식 선생님이 반가워 하시면서, 그 분도 재일조선인과 마찬가지로 사는 곳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는 그런 공통된 경험을 하지 않겠냐는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오늘 서경식 선생님의 강연은 재일조선인 뿐만 아닌 차별 받기 쉬운 모든 마이너리티에 관한 이야기로 생각할 수 있겠지요. 


역사는 국가를 주어로 서술하고 있지만 '사람'을 주어로 서술해야 한다. 마이너리티는 특히 이런 서술에서 주어가 될 수 없었지만, 이 마이너리티의 시선에서 볼 때 다른 진실이 보인다. 



강연회에 오지 못해 아쉬우신 분들은 9월 7일(오마이뉴스)9월 11일(정독 도서관)에 각각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출간 기념 강연회가 있으니 놓치지 마시고 신청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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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출간 기념 저자 강연회!


국민국가의 경계에 갇히고, 뒤엉킨 한일 관계에 버림받은 재일조선인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제6회 김대중 학술상 수상자, 서경식이 대학에서 20년간 강의해온 평생의 테마 ‘재일조선인’을 본격적으로 집약하다!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출간 기념으로 저자 서경식 교수님의 강연회 소식 두 번째입니다.


9월 7일(금)의 '오마이뉴스' 강연에 이어 이번에는 9월 11일(화) '정독 도서관'에서의 강연입니다. 8월의 도서관 기행 연재가 정독 도서관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정독 도서관 갈 일이 생기네요. :-)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신청 부탁 드립니다.


- 일시 : 2012년 9월 11일(화) 19:30 ~ 21:30


- 장소 : 정독도서관 시청각실 (1동 3층)


- 신청 방법 


   1) 정독 도서관 홈페이지 (문화행사 - 행사상세일정 에서 선택, 신청)


   2) 반비 페이스북에서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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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출간 기념 저자 강연회!


국민국가의 경계에 갇히고, 뒤엉킨 한일 관계에 버림받은 재일조선인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제6회 김대중 학술상 수상자, 서경식이 대학에서 20년간 강의해온 평생의 테마 ‘재일조선인’을 본격적으로 집약하다!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출간 기념으로 저자 서경식 교수님의 강연이 있습니다. 


- 일시 : 2012년 9월 7일(금) 저녁 7시 30분 (강연 시간 약 1시간 30분)

- 장소 : 서울 마포구 상암동 1605 누리꿈스퀘어 비즈니스타워 18층 오마이뉴스 대회의실 

           약도 보기

- 강연 신청 

  1) 일반 신청 : 가기 

  2) 오마이뉴스 회원 : 가기 (오마이뉴스 계정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9/11(화)에는 정독 도서관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강연 안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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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한일 젊은 세대를 위한 서경식의 바른 역사 강의



국민국가의 경계에 갇히고, 뒤엉킨 한일 관계에 버림받은

재일조선인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제6회 김대중 학술상 수상자, 서경식이 대학에서 20년간 강의해온

평생의 테마 ‘재일조선인’을 본격적으로 집약하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존재, 그것이 재일조선인이다. 머조리티에게는 그런 고민이 없다. 그러나 마이너리티의 고민에는 귀중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국가라는 것을 뛰어넘어 다음 시대를 통찰하는 인간이 갖는 고민이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이란 국가나 머조리티의 횡포에 복종하지 않는 인간을 가리킨다.”



제6회 김대중 학술상 수상자, 서경식이 대학에서

20년간 열정으로 강의한 재일조선인의 역사, 그리고 정체성!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디아스포라(이산)라는 주제로 오랫동안 문필 활동을 해온 서경식이, ‘재일조선인이란 누구인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그 역사적 사실과 배경을 이야기하는 역사책을 펴냈다. ‘인권과 마이너리티’라는 수업에서 20년간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 광복과 군사 정권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그리고 최근의 『나의 서양음악 순례』까지 서경식의 저작들에는 주제를 막론하고 타자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빛나는 통찰이 담겨 있다. 이번 책은 그러한 통찰력의 핵심이자 원천이라 할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정체성을 다룬다. 여러 지면에서 재일조선인들의 역사와 현실, 일본 우경화의 위험성, 국민국가와 국민주의의 한계 등을 디아스포라의 시선에서 열정적으로 기고해온 저자가 그 모든 논의들의 기초가 될 가장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들을 망라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역사책이지만 건조한 사실관계의 나열이 아니라, 에세이스트 서경식만의 사색적인 문체가 함께하고, 또 개인적인 경험, 일본 대학생들의 글과 재일조선인 시인의 작품 등 다양한 자료들이 제시됨으로써 풍부하면서도 인간적인 책이 되었다.

  특히 저자는 이 책을 한국과 일본의 젊은 세대를 향해 강의하는 방식으로 집필했다. 우경화와 역사 왜곡, 외국인 혐오가 확산되는 사회에서 올바른 역사를 배우지 못해 피해 의식만 키워가는 젊은 세대를 보며 내내 안타까워했던 저자는 윗세대로서 갖는 뼈저린 책임감에서, 젊은 세대에게 들려줄 올바른 역사 이야기를 전개했다. 사안을 단순화하는 위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청소년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쉽게 쓰기 위한 저자의 남다른 노력이 곳곳에 배어 있다.

  저자는 올해 7월에 제6회 김대중 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민주주의와 소수자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은 시점에서 평생의 테마였던 재일조선인이라는 주제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1. 재일조선인, 식민지의 고통과 분단의 아픔, 국민국가의 횡포를 증언하는 존재

  이 책은 흔히 재일 교포라고 통칭되는 사람들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일제 식민지 지배의 결과로 일본에 거주하게 된 조선인과 그 자손’들이라는 의미에서 재일 교포,재일 한국인, 혹은 그저 ‘재일’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을 ‘재일조선인’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한다. 호칭조차 제각각인 이들을 정확한 이름으로 부름으로써 그 역사적 유래를 명확히 하고 ‘조선’이라는 말을 차별해서 ‘구하기’ 위해서이다.

  저자는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축으로, 일제강점기 이후의 역사를 전개하고 있다. 재일조선인들의 역사는 그 자체로 식민지의 고통과 분단의 아픔, 국민국가의 횡포를 그대로 노정한다. 식민지 시절 강제로 일본 국민이 되었다가, 해방 이후 다시 국적을 빼앗기지만, 조국이 분단되면서 두 개의 조국 중 하나만을 선택할 것을 강요받고, 선택하지 않으면 난민의 신세로 전락해버린 재일조선인들의 역사는 현대사를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또 하나의 시선을 제공한다.

  또 저자는 일본 대학생들이 직접 쓴 글을 소개하고 그 안에 담긴 차별의식을 구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일본에서 어떻게 일상화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차별과 몰이해가 어떻게 역사의 폭력으로 진화하는지 그 매커니즘을 보여준다.


  냉정한 인간이라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과거의 식민지 지배는 이미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일본만이 책임자는 분명 아닐 것이다. 일본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 지금 전쟁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 중 어느 정도가 생활도 안 될 만큼의 궁지에 몰려 있는가?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일본인의 생활도 걸려 있는 것이다.(241쪽 일본인 학생의 글 중에서)


  피해자는 ‘일본만이 책임자’라고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책임을 사실대로 인정하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궁핍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은 피해자가 돈을 목적으로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욱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은, 앞에서 아이덴티티에 대해 말한 것처럼, 이 학생이 ‘일본’과 자신을 일체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피해자는 이 학생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 정부에 대해 과거 일본이란 국가의 행위에 대해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것입니다.(241~242쪽)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의 역사적 특수성은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직도 재일조선인이라고 하면 간첩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 것이 한 사례다. 재일조선인에 대한 이러한 편견은 식민지와 분단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일방적인 반공 교육의 폐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본 젊은이들에게뿐 아니라 한국의 젊은이들, 일반인들에게도 꼭 필요한 책이다. 재일조선인이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해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현실에 대해서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잘 다루어져 있다.

  하지만 저자는 재일조선인으로서 그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비관하고 있지만은 않다. 저자는 재일조선인들의 정체성 고민에 대해 ‘국가라는 것을 뛰어넘어 다음 시대를 통찰하는 인간이 갖는 고민’으로 적극적으로 재규정한다.


인간은 오늘날과 같은 국가(근대 국가)의 형태가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살아왔습니다. 근대 국가가 갖는 문제점이 극한까지 발휘된 것이 식민지 지배, 차별, 학살, 그리고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근대 국가 시대가 끝난 후에도 인간들은 계속 살아가겠지요. 그것이 어떤 시대가 될까, 어떤 시대여야 하는가. 근대 국가 시대를 피해자로서 경험한 자(재일조선인 같은 존재)는 그런 미래의 모습을 인류 전체ㅈ에 제안하는 위치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는 괴롭지만 보람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237쪽)



2. 위안부, 강제 징용, 한일협정,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저자가 한국과 일본에서 지속적으로 재일조선인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이유는, 단순히 이 소수자의 차별 해소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알면, 오늘날까지 미해결인 채 남아 있는, 뒤엉킨 한일 관계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되짚어가는 동시에, 현대사의 제 문제들, 특히 한일 관계의 뒤엉킨 문제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그 역사를 하나씩 추적한다. 2차대전의 전후 처리 문제, 한일조약의 문제점, 전 위안부 등의 소송에 대처하는 일본의 태도 등에 관한 사실관계를 밝히고 문제점을 낱낱이 밝혀 지적함으로써 이들 문제의 심각성과 시급성을 알린다. 또한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무조건 ‘앞’만 보자고 외치는 것은 심각한 사고 정지이자 반역사주의임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조선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보상은 한일조약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선 한일조약의 상대는 한국뿐이지만, 식민지 지배의 피해자는 북조선이나 재일조선인도 포함하는 조선 민족 전체입니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일조약 체결 때 사죄도 하지 않았습니다.(209쪽)


“일본에서도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앞을 향해 가자’, ‘과거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등 비슷한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앞’이란 무엇입니까? 어디가 ‘앞’일까요? ‘미래 지향’이란 그런 것들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는 ‘사고 정지’의 표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좀 어려운 말이지만 반(反)역사주의입니다. 우리가 오늘날처럼 살고 있는 것은, 어떤 사회적 관계나 역사의 결과인가 하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과거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218~219쪽)



3. 한국은 국민주의와 인종차별, 반역사주의에서 자유로운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미덕 중 하나는 저자가 단순히 역사적 사실들을 알려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가 지금 현재의 사회, 그리고 우리 자신과 어떤 연관을 갖는지 알려준다는 점이다. 이 책은 차별의 역사를 넘어 차별의 메커니즘을 알려주고 또 그것이 현재 우리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가령 저자는 관동대지진이라는 역사는 지나가버린 과거가 아니라 지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인터넷에 떠돈 외국인에 대한 데마고기에서 되살아나 재일조선인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따라서 애초에 일본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쓴 이 책을 한국에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재일조선인들을 ‘가여운 존재’로 규정하거나 일본은 나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 속의 일본을 한국으로, 재일조선인들을 장애인이나 외국인 등 한국 속의 또 다른 타자들로 치환하며 읽을 것을 주문한다. 단일민족에 대한 집착이 일본 못지않게 뿌리 깊은 한국에도 조선족, 저개발국가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 또 결혼해서 한국으로 온 동남아시아 여성 등 다양한 집단이 국가주의, 국민주의, 민족주의의 희생양으로 차별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앞으로 ‘외국인’과 ‘타자’의 유입이 더욱 많아질 텐데, 우리는 이들의 인권 보호와 차별 해소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재일조선인에 대한 이해는 우리 안의 타자를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저 사람들은 국민이 아니니까 차별받아도 어쩔 수 없다’는 지점에서 생각을 멈추는 것은 ‘나는 국민이니까 우대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 사람들’에 대해 상상하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을 멈추는 것이며,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없어지는 것은 자신에 대한 상상력도 없어지는 것입니다.(255쪽)



본문 속으로

바꿔 말하면 재일조선인은 국내의 많은 사람들이 잊고자 하는 어두운 과거나, 분단 체제가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새삼 떠오르게 하는 존재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는 국내의 여러분이 재일조선인을 ‘차별받는 가여운 타자’로 규정짓거나 ‘일본인’이라는 ‘악’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을 정당화하지 말고, 오히려 재일조선인 속에서, 혹은 재일조선인을 차별하는 일본인 속에서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바랍니다. 이는 계속되는 식민지주의와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13쪽)


도쿄 도지사라는 고위 공무원이 이와 같은 차별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재일조선인에게 얼마나 무서운 일일지 상상해보십시오. 그런데도 이시하라 지사는 선거 때마다 압도적으로 많은 표를 얻어 당선되었습니다. 왜일까요? 어쩌면 그 택시 기사 같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그들이 공개적으로는 입 밖에 내지 못하는 본심을 이시하라 지사가 말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무서운 것은 이시하라 지사 개인이 아닙니다.(35~36쪽)


일본은 ‘일본 국민의 자식이 일본 국민이다’라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일본인이라는 ‘혈통’에 의해 ‘국적’이 정해지기 때문에 국적의 유무로 차별하는 것은, 민족의 차이로 차별하는 것과 사실상 같습니다. 패전 후의 일본은 겉으로 드러나는 차별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 뿌리 깊이 박힌 마음은 그대로인 것 아닐까요? 오히려 차별하기가 더 쉬워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조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일본 국적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면 간단하기 때문입니다.(49쪽)


‘초센’이라는 표현 외에도, ‘촌(チョン)’, ‘촌코(チョン公)’, ‘아사코(アサ[朝]公)’, ‘바카촌(バカチョン)’ 같은 차별어(이 단어들은 일반적으로 ‘바보’, ‘멍청이’라는 의미이다.—옮긴이)가 있는데 그 유래는 모두 ‘초센’입니다. ‘초센’은 말하자면 학대받아온 말입니다. 학대받은 사람들은 더 학대받을 것이 두려워서, 학대한 사람들은 그 사실에서 눈을 돌리려고 이 말을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이 말만 사용하지 않으면 차별이 없어집니까?(53쪽)


누가 국민인가 하는 것(국적)은 국가가 법률로 정합니다. 그러나 법률은 그 나라 사람들이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률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국민의 범위는 얼마든지 바뀝니다. 지금 당신과 외국인 사이에 그어져 있는 선도, 얼마든지 이동하는 것입니다. 사실 재일조선인은 어느 순간에 갑자기 그 선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가, 또 다른 순간에 그 선 밖으로 내몰린 존재입니다.(61쪽)


‘초센’이라고 욕을 들어도, 저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습니다. ‘초센’은 어디에 있는지, 왜 ‘초센’인 나는 여기에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저 그 말이 ‘너는 열등한 이방인’이라는 뜻인 것만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던 날 집에 돌아오면, 아무 말 안 해도 어머니는 저의 표정으로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꼭 끌어안으며 “조선은 나쁜 게 아니야. 조선은 조금도 나쁘지 않아.” 하고 제 귀에 속삭여주었습니다. (64쪽)


제가 생각하는 아이덴티티는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내가 느끼는 열등감이나 삶의 고통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에 대한 생각,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살아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약하고 소수자라서 차별받고 있지만, 타자의 것을 빼앗거나 타자를 차별하지는 않는다, 수치스러워할 일은 없다는 의식, 즉 조선은 조금도 나쁜 게 아니라는 의식입니다.(69~70쪽)


A씨의 국적은, 1910년의 조선 병합까지는 대한제국 신민이었다가 1910년부터는 일본의 신민이 됩니다.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식민지 지배에서는 해방되지만 국적은 계속 일본입니다. 1947년, ‘외국인으로 간주한다’고 했지만 국적은 여전히 일본입니다. 1952년의 샌프란시스코조약 때에 일본 국적이 무효가 되어, 무국적이 됩니다. 그리고 1965년 한일조약이 체결되어 주변에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사람이 증가하게 됩니다.(136~137쪽)


국적법에도 ‘귀화’라는 말이 사용되지만, 이 단어는 원래 오래된 중국말입니다. ‘화(化)’란 고대 중국어로 고도의 문명을 가리키는 것으로, 예를 들면 ‘왕화(王化)에 욕(浴)한다’는 말은 ‘미개인’이 중국의 높은 문명의 은혜를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귀(歸)’는 복종을 뜻합니다. 그래서 ‘귀화’란 중국의 높은 문명에 주변의 미개인이 복종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귀화하라’는 것은 너는 미개인이니 우리의 높은 문화에 복종하라는 의미가 됩니다. 일본은 이런 말을 지금도 법률 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167~168쪽)


자식을 낳았네. 조국을 알지 못하는 자식을 낳았네. 어미는 맘속으로 하늘에 죄를 묻노라.

열여섯짜리 아들, 아직 세상을 모르는 아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문 날인.(180쪽)


대한민국은 식민지 지배는 폭력에 의해 강제된 것으로, 조선인이 원한 것이 아니므로 조약은 처음부터 무효라는 전제에서 출발했지만 일본 측은 그 전제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샌프란시스코조약 부분에서 소개한 것처럼 일본의 자세는, 일본의 지배는 식민지 착취가 아니었으며 법적으로도 유효하다는 것이었습니다.(207쪽)



차례

제1부. 전하고 싶은 이야기 1 - 조선은 나쁜 것이 아니다

제2부. 재일조선인에 관한 사실들

   1. 재일조선인은 왜 일본에 있습니까?

   2. 식민지 지배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3. 전후, 재일조선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부록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혀온 재일조선인 1세, 문금분 씨

4. 일본 국적이 없는 것이 그렇게 곤란한 일입니까?

   부록 짧은 시에 회한과 슬픔을 담아 노래해온 재일조선인 2세, 이정자 씨

5. 재일조선인의 삶은 일본인과 어떻게 다릅니까?

   부록 조선과 관련된 모든 것을 싫어했던 재일조선인 3세, 배귀미 씨

6. 재일조선인 문제는 언제쯤 해결될까요?

   부록 남모를 고민을 안고 사는 수많은 재일조선인 중 한 사람, 시인을 닮은 여학생에게

제3부. 전하고 싶은 이야기 2 - 차별 없는 사회를 향하여



지은이 서경식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1974년 와세다 대학 문학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도쿄 게이자이 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리쓰메이칸 대학 교수인 서승과 인권 운동가인 서준식의 동생으로 방북으로 인해 구속되었던 형들의 석방과 한국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이때의 장기적인 구호 활동 경험은 이후 사색과 문필 활동으로 연결되었다.

저서 중 『소년의 눈물』로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받았고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그 외에 『나의 서양미술 순례』,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청춘의 사신』,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만남』, 『언어의 감옥에서』, 『시대를 건너는 법』,『나의 서양음악 순례』 등의 저서가 있다.

2006년 봄에 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로 한국에 와서 2년간 체류하면서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재일조선인들의 역사와 현실, 일본의 우경화, 예술과 정치의 관계, 국민주의의 위험 등에 대해 열정적으로 기고하고 강연했다. 2012년에 민주주의 실현과 소수자들의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제6회 후광 김대중 학술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형진의

한남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일본어학을 전공하고 일본 히토쓰바시 대학 대학원에서 사회언어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5~2010년에 우송대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쳤고, 현재 한남대학교 교양융복합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 「근대 일본의 ‘국어’와 ‘구어’ 개념의 발생」, 「근대 일본의 언어 근대화와 구어 문법」, 「근대 일본의 표준어 정책」 등이 있다.



인터넷 서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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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등록 서점은 등록되는 대로 링크 추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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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 표지와 함께 먼저 간단한 소개를 했던 8월 출간 예정작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의 표지 시안입니다. 


다음 주면 책이 출간되는데요, 과연 어떤 표지가 채택되었을까요? - 그것도 수정되겠지만요 ^^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은 먼저 포스팅에서 간략히 소개했지만 얼마전 김대중 학술상을 수상하신 서경식 선생님이 재일조선인을 주제로 대학에서 20여 년간 강의해온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자세한 책 소개는 다음 주 초에 포스팅하겠습니다. ^^



이렇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단일성’에 집착하는 극우의 생각은 비현실적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이방인’을 혐오하거나 적대시하는 의식이 뿌리 깊이 숨어 있어, 여러 조건이 충족되면 억눌려 있던 그 의식이 고개를 듭니다. 머리로는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경기가 나빠져 실업자가 증가하는 등, 살기 어렵거나 앞날에 불안을 느끼면, 무의식 중에 그 불안의 분출구가 ‘이방인’을 향하게 됩니다.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p.233~234 중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존재, 그것이 재일조선인이다. 머조리티에게는 그런 고민이 없다. 그러나 마이너리티의 고민에는 귀중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국가라는 것을 뛰어넘어 다음 시대를 통찰하는 인간이 갖는 고민이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이란 국가나 머조리티의 횡포에 복종하지 않는 인간을 가리킨다.”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p.236~237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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