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by 최종욱, 김서윤


제 5부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


    1장 코끼리와 시각 장애 아이들의 아름다운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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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 코끼리 만지기 展 포스터



따스한 6월의 어느 날, 코끼리 우리에서 굉장히 특별한 행사가 시작되었다. 아이들 여러 명이 조련사들과 나의 안내에 따라 코끼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쭈뼛거리다 이내 두 손의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코끼리의 몸을 느끼기 시작했다. 코, 귀, 배, 다리, 꼬리……. 아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 아이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이었다.

이 행사의 정식 명칭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 시각 장애인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하는 아트 프로그램 ‘우리들의 눈’의 회장이자 화가인 엄정순 씨가 기획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우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이 프로젝트는 시각 장애 어린이들이 말 그대로 코끼리를 만져 보고 얻은 느낌과 감정을 미술로서 표현하는 것이었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전국 여러 동물원에 연락해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지만 “안 돼요. 위험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심지어 시각 장애라는 말을 듣자마자 “장애인 할인 없습니다.” 하고 끊어 버린 곳도 있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의 모습.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 데는 코끼리들의 공이 가장 컸다.


  그러다 유일하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곳이 바로 우치 동물원이었다. 엄정순 씨의 설명을 듣고서 나는 선선히 “네, 오세요.” 하고 말했다. 굳이 안 될 이유가 없었다. 아시아코끼리는 원래 성질이 온순하고 영리한 종이다. 관리만 잘해 주면 아시아코끼리가 사람을 해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몇 년 전 어린이 대공원에서 탈출해 난동을 피웠다고는 하나 사실 그때도 코끼리는 사람이나 자동차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 요리조리 피해서 돌아다녔다. 이런 뜻 깊은 프로젝트에 우치 동물원의 코끼리가 함께한다면 오히려 영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서른세 명의 시각 장애 아이들이 멀리 인천에서 광주를 찾아왔다. 물론 여러 사람의 손길이 동시에 몸 구석구석을 훑으니 아무래도 코끼리 입장에서는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련사들이 연신 바나나를 건네며 “아이들을 위해 참아 주라. 옳지, 착하지.” 하고 코끼리들을 달랬다. 다행히 어떤 코끼리도 소동을 부리지 않고 그 시간을 잘 넘겨 주었다. 아이들의 간절한 마음이 코끼리들에게까지 전해졌나 보다.

그런 다음에는 수의사와의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비장애인들보다 훨씬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한 아이가 물었다. “동물도 장애가 있나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있죠. 자연에서 장애는 곧 죽음이에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닙니다. 장애를 가진 동물이라도 저와 사육사들이 보살핌을 받기 때문에 잘 살아가고 있어요. 오히려 인기도 많아요.” 한 시간을 꽉 채우도록 이어지는 질문 세례를 받으며 나는 함께 신이 났다. 시각 장애 아이들이 아니라 그냥 보통 아이들처럼 느껴졌다. 아니, 어찌 보면 동물원에 갇혀 살아가는 동물들도, 또 동물을 돌보는 일 외의 다른 일에 서툰 나도 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우치 동물원의 코끼리들을 마음에 품고 돌아간 인천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하나같이 근사한 미술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앞을 전혀 못 보는 아이들이 웬 미술이람.’ 하는 의문이 드는가? 이 아이들의 작품을 본다면 그런 의문 따위는 싹 사라질 것이다. 나 같은 비장애인이 눈으로는 얻지 못했던 코끼리의 특징과 개성이 놀랍도록 잘 드러나 있다. 서울 정독 도서관 근처의 갤러리에서 열리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展’은 여러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이 뜻깊은 프로젝트가 우치 동물원에서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코끼리들의 사정은 그렇게 순탄히 흘러가지 않았다. 이별의 시간이 닥친 것이다.




 

 
코끼리 / 원희승(혜광학교)


◀ 카르타고 전쟁에서 싸우는 코끼리 / 한성현(서울맹학교)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posted by Banbi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