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관련된 최종적인 기관은 결국 서점이다. (중략) 원래 자기가 고른 게 제일 좋아 보이지 않나?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이 책방에 앉아 로망을 불태우면서 시집을 고를 기회를 우리는 박탈해버렸다. 

우석훈, 「문화로 먹고살기」  p.203


"사실은 이 책을 팔고 싶었다" 서점 직원의 진심이란 포스팅에 이어 '서점'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전자책 시대 도래 이전에 종이책도 이미 온라인에서의 구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오프라인 서점은 어떤 차별점을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얼마 전부터 '서점의 역습'이란 기사가 아사히 신문에서 4회 예정으로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 연재 기사에서는 '하루에 서점이 한 곳씩 폐점하는 상황'(일본)에서 서점의 새로운 시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 1회는 소위 '문맥 서가'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일본에서 '문맥 서가'는 장르별, 저자별, 이런 기준이 아닌 내용에 따라 개성적인 연출을 하는 서가를 말합니다. 요즘 '큐레이션'이라는 용어가 핫 키워드가 됐는데, 바로 서가에 일반적 기준으로의 진열이 아닌, '큐레이션'을 통한 새로운 콘텍스트를 부여해 가치를 만들고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기사에서는 몇몇 서점들의 '문맥 서가'라는 방식을 소개합니다.  


1.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代官山 蔦屋書店)의 사례

해적왕이 되려는 주인공 일행의 우정과 모험을 그린 만화 「원피스」와 「해적의 세계사」가 같이 꽂혀 있거나, 예수와 붓다가 동거하는 만화  「세인트 영맨」이 종교 서가에 꽂혀 있거나 하는 식으로 깜짝 만남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책은 옆에 어떤 것을 두느냐에 따라 표정이 바뀐다. 독자가 생각지도 못했던 책과의 만남을 제안"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서가를 꾸민다고 하네요.


2. 마츠마루혼포(松丸本舗)의 사례 (서가 사진 보기) 

'꿈이 있는 책'이라는 서가에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둠의 저편」, 그림책「산넨 네타로(三ねんねたろう)」가 꽂혀 있는 식입니다. 이곳은 고객의 체류 시간이 긴 것은 물론,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 구매액)가 다른 점포의 1.5배라고 하네요. 

"(책을) 찾지 못하지만 만날 수 있는 서점입니다." 라는 게 점장의 말입니다. 


앞으로 2~4회에는 어떤 시도들을 소개할지 궁금하네요. 

여러분은 책과 어떻게 만나고 계신가요? 


■ 참고 링크 

"사실은 이 책을 팔고 싶었다" 서점 직원의 진심 (반비 블로그)

서점의 역습 (1)  (아사히 신문, 일본어, 2012.6.20)

대형 서점 복도 정중앙에 ‘책탑’ 쌓으려면… 한달에 600만원 (동아일보, 2012.6.20)

인터넷 서점에 돈만 내면 ‘화제의 책’ 뽑힐 수 있다 (동아일보, 201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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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저 장사하는 가게인가? 그렇다면 굳이 서점을 지킬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우석훈, 「문화로 먹고살기」 중


국내나 해외에서 오프라인의 서점들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종종 들립니다. 얼마 전 3월 31일에는 일본의 대형서점 체인인 준쿠도 서점의 신주쿠점이 문을 닫았습니다. 

이 준쿠도 서점 신주쿠점은 폐점을 앞두고, "사실은 이 책을 팔고 싶었다."란 타이틀로 서점 직원이 엄선하고 POP를 정성스레 만들어 북페어를 했는데요, 이것이 화제가 되어 마지막 날에는 많은 고객들이 몰려 계산대에 엄청난 줄이 선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이 책을 팔고 싶었다." 북페어 당시의 사진 

5월 18일, 니코니코 동화를 통해 실시간 중계된 후일담 방송 캡처 화면)


예술 분야 MD가 고른 100권에 달하는 책과 각 책마다 손으로 쓴 POP를 비롯해, 아동서 같은 경우엔 "작가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란 기획 등, 각 분야의 MD들이 마지막으로 책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POP들로 가득했습니다. 

웹상에서 화제가 되고 기사화도 되었던 이 행사는, 5월 18일, 인터넷 실시간 방송으로 그 후일담을 전하게 됩니다. 

5월 18일 밤, 그날의 영업이 종료된 준쿠도 서점 시부야점에 모인 사회자와 전(前) 신주쿠점 스텝들. 

제일 왼쪽에 모자를 쓰고 있는 분이 비평가이자 사회를 맡은 사사키 아츠시씨, 그리고 나란히 앉아 있는 분들이 신주쿠점 사회과학, 예술, 실용서, 아동서, 문예, 인문 담당을 맡으셨던 스텝들입니다. 지금은 한 분을 제외하고  준쿠도 서점의 다른 점포에서 일하고 있다네요.

준쿠도 서점 신주쿠점이 자신의 책을 제일 많이 팔아준 서점이었을 것이라는 사회자 사사키씨의 인연 이야기부터, 각 스텝들의 신주쿠점에 대한 추억과 이 행사에 관련된 이야기들, 그리고 "진짜 팔고 싶었던 책" 중에서도 각 담당이 고르고 또 고른 1~3권의 책을 소개했습니다. 


아동서의 POP 중 하나

이 마지막 행사에서 아동서 코너의 POP는 아동서 담당이 작가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로 만들었습니다. 고객들은 이 POP가 무슨 말인가 싶을지 몰라도 항상 작가의 냄새가 나는 매장을 만들고 싶었던 담당은 매장 폐업을 앞두고 마음을 담아 러브레터를 썼다고 합니다. 

워낙 바빠서 센티멘탈한 기분이 들 시간도 없었고, 폐점을 실감하지 못하다 마지막 날 길게 줄을 늘어선 손님들을 보고 그때서야 실감했다거나, 마지막 1시간 동안은 '감사합니다'란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복받치는 기분이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당당히 말하는 법"이란 책의 POP는 실제로 책을 안 읽고 POP를 썼다가 나중에 읽었다는 고백이나, 저 멤버들 중 이케부쿠로점에 간 스텝이 많았는데, 시부야점에서 일하는 스텝이 이케부쿠로점 말고 시부야점에 오라는 멘트를 하는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방송 중 '중대 발표'가 있다고 했는데요, 일본에서 7월에 이 이야기가 "서점 직원이 진짜 팔고 싶었던 책"이란 제목으로 진짜 책으로 나온다고 합니다.http://www.junkudo.co.jp/detail.jsp?ISBN=9784864101769 (일본어) 이렇게 재빨리 기획해서 책 내는 것도 일본답다는 생각도 들고, 과연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네요. ^^ 


이 북페어와 후일담 방송을 보면서, 반비의 책들도 서점 스텝분들이 정말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전할 가치가 있는 책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수없이 많이 나오는 책들 속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독자분들에게 반비의 진심(책)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 더 고민해 보게 됐습니다. 


* 참고 페이지 : ITmedia : http://ebook.itmedia.co.jp/ebook/articles/1204/02/news043.html (일본어) 북페어 사진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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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렵네요 2012.05.29 09:56

    저런게 어려운 것 같아요. 팔릴 책과, 팔고 싶은 책의 그 중간지점 어디쯤을 찾는 거요.
    편집자 지망생으로 출판 시장이 점점 예측 불허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 Favicon of https://banbi.tistory.com BlogIcon Banbi Editor! 2012.05.29 22:22 신고

      매년 나오는 얘기를 보면 무려 '단군 이래' 좋았던 적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시장이긴 합니다만 ^^ 개인적으론 앞으로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책이란 것을 읽는 독자가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습니다.

한국 도서관 기행 연재 예고 후, 한참이 지나 드디어 연재 시작! [한국 도서관 기행]에서 다루는 첫 번째 도서관은 바로 '이진아 도서관'입니다. (3편에 걸쳐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한국 도서관 기행 (1) ~ 이진아 도서관 ①편에 이어...

도서관인가? 감옥인가?

형무소 옆 도서관에는 책이 수감되어 있는가? 지식이 지혜로 교정될 때까지 세상에서 격리 되어야 하는가? 오욕의 역사를 거두어 내고 교정 기관으로만 경성감옥을 보자. ‘서대문감옥-서대문형무소-서울형무소-서울구치소’은 이름을 바뀌었지만, 시간을 이어 근대적인 처벌과 훈육의 공간으로 기능했다.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다면, 책을 읽는 것만큼 근사한 훈육은 없다.

독서는 인류학적인 불변사항이 아니라 특정한 행위와 공간 및 습관 속에서 구체화된 실천이다. 따라서 몸이 책읽기에 익숙하지 않는다면, 읽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 된다. 특히 윈도우 화면이 지면보다 강한 지금. 책이 사는 집 - 도서관은 책을 읽는 몸을 만드는 기계로서 중요하다.

실제로 이진아 도서관의 건축 평면은 교정시설을 유추한 것이다.

보이지 않은 감시자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수인들의 방이 빙 둘러져 있는 감옥처럼, 천창 밖 태양이 지켜보는 중앙의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책의 방들이 빙 둘러져 있다. 이는 도서관을 만들어야 하는 조건 중, 기존에 있었던 독립문 문화교실을 수용해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절반의 문화시설과 절반의 도서관이 반원을 그리며 서로 마주하고 있다. 따라서 아트리움의 주변으로 독서하러 온 사람과 문화교실 수업을 받는 사람들이 서로 힐끔 거릴 수 있다.

자연히 수업 마치고 책을 빌려 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고 한다. 필요가 독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책을 마주함이 독서를 발생시키는 것이라. 역으로 도서관 측에서도 요즘 추세인 멀티문화교육시설로 나가야하는 부담을 덜어내고 ‘책’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도서관 정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트리움의 천창에서 빛이 쏟아지고, 인왕산이 원경으로 살짝 보인다. 개관 식 이후 처음으로 온 것인데, 사람들이 사용한 건물이 더 정겹게 누그러져 있다.

건물은 사용되지 않아서 녹이 스는 것 보다는 많이 사용되어 닳아지는 것이 제 모습이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갖가지 법에 대한 알록달록 색동 안내판마저 친근하게 보인다.

눈살을 찌푸리고 적응을 하고 살짝 옆의 벽을 보면 도서관의 이름을 제공한 이진아씨의 얼굴이 슬쩍 보인다. 딸의 흉상 정도만 놓아달라는 아버지의 요청을 건축가는 이미지와 글씨가 더욱 오래 가슴에 새겨진다는 말로 설득하였다. ‘맑고 순진한 천진난만한’으로 진아 씨를 기리는 단출한 가족의 말이 어느 흉상보다 깊이 인상에 남는다.

 

놀이터인가? 도서관인가?

이 집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책 읽는 방은 모자열람실과 어린이열람실이다. 스스로 읽을 수 없고, 장시간 집중해서 앉아있을 수 없는 유아들을 위해 모자열람실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되어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자세로 책을 놀이감1) 삼아서 놀 수 있다면, 그 내용이 귀에 쏙 박히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한 여자 아이가 누워서 책 내용을 옹알거린다.

저 아이의 눈에는 책이건 퍼즐이건 분명하게 구별되지는 않겠지만 저렇게 듣다 보면, 이야기와 이미지가 어느 순간 철썩 붙어 버릴 것 같다. 아이들에게 전집, 특히 위인전집 같은 것을 사줘서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빼앗고 읽어야 하는 양에 지치게 하기 보다는 도서카드를 만들어서, 직접 고르도록 안목을 틔워주는 것이 더 현명하게 보인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은 ‘책 읽는 할머니의 스토리텔링’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호호아줌마의 ‘옛날 옛적’ 작아지는 비밀을 듣더라도 나중에 기억할 수는 없다. 그래도 비밀과 마법과 주술과 잘 모르는 나라의 이야기와 도시가 아닌 곳과 사람이 아닌 것의 이야기들이 뒤섞이면서 상상의 외연이 커질 것은 당연히 기대되는 바이다. 따뜻한 방바닥에서 기어 다니며 침을 흘리는 아이가 책을 통째로 삼킬 듯이 깨어 물고 있다. 

이진아 도서관의 3600 여 소장서 중에서 1/3인 1200권 정도가 아이들을 위한 책이다. 그 최고의 이유야 이 동네가 고등학교 이전의 아이들이 많은 아파트 단지에 인접하여 있기 때문이겠지만, ‘책’은 회고 보다는 다음을 위해 읽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집을 지은 한형우 선생임도, 딸 아들을 데리고 가끔씩 책 읽으러 오는데, 제각기 앉아서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면 웃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중앙에 자작나무를 심게 된 것도, 아들에게 어떤 나무를 심을까? 라고 물어봤더니 ‘자작나무’가 좋다고 해서였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책을 읽는 부모가 아이에 미치는 영향만큼이나, 책을 읽는 아이 덕택에 책을 읽게 되는 부모도 생길 것만 같다. 


공원인가? 도서관인가? 

이진아 도서관이 지어질 때 공부하는 방을 만들자는 일부의 의견도 있었으나, 건축주의 ‘책 읽는 도서관’이어야 한다는 의지가 관철 되었다. 전과와 문제지처럼 남이 추려놓은 세상의 지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추려지지 않은 지식과 이야기를 탐구하는 것이 갖는 힘과 의미를 알리고 싶었겠지 싶어서 저절로 고개가 끄떡인다. 

어른들이 책을 읽는 공간은 3층에 있는데, 문제집이나 고시 관련 책은 물론 외부의 어떠한 책조차 들여 올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이곳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들을 이 자리에 소화해내도록 사서들이 단속하고 있다. 

들어가자마자 2층 높이로 전면에 공원을 품고 있는 창 앞에는 제각기의 책을 펼친 사람들이 앉아 있고 있다. 높은 천장에 개인적인 스탠드가 놓인 책상이라니, 한국에서는 참으로 낯선 도서관 풍경이다. 게다가 공원을 전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서가의 창문은, 책으로 지친 눈이 휴식할 수 있는 안식할 수 있는 도피처가 된다. 낮에는 따로 조명을 할 필요가 없이 햇볕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

창의 반대쪽에는 잘 분류된 책꽂이가 있다. 철학, 종교, 사회과학, 순수과학, 기술과학, 예술, 어학, 문학, 역사. 제일 많은 부분은 소설과 시였고, 의외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회과학과 역사이다. 에릭 홉스봄의 4부작을 비롯해서 ‘역시에 지고 삶에 이긴 조선 사람들’과 같은 조선시대 민족의 역사와 관련 있는 땅에 있는 도서관임을 상기시켜준다.

책꽂이를 길게 훑다가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1) 국어 표준어로는 장난감이고, 놀이감은 북한말이지만. 장난 보다는 놀이가 더 큰 말이므로, 놀이감이라 부르는 것이 어울린다.


한국 도서관 기행 (1) ~ 이진아 도서관 ③편에 계속됩니다. (이진아 도서관 이야기는 ③편으로 완결됩니다. ^^)




반비 블로그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도서관 기행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도서관 산책자
두 책벌레 건축가가 함께 걷고 기록한, 책의 집 이야기


인터넷 서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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