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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

오늘은 책을 몇 권 만들었니? “오늘은 책을 몇 권 만들었니?” 아는 편집자 선배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남편이 이렇게 묻는다고 했다.출판사에 다니면 하루에도 몇 권씩 책을 만들어내고 온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하기야 서점에 매일같이 신간이 쏟아지니,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거기다 원고는 저자가 쓰고,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하고, 인쇄는 인쇄소에서 하니,달리 할 일 없는 편집자는 하루에 몇 권씩 뚝딱 만들어내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대체 책 한 권 만드는 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 하는 의문을 어떻게 풀어주지?희한한 건, 일단 책이 나오고 나면, 나도 그 중간 과정을 까먹고는 대체 이 책 만드는 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납득이 안 된다는 거다.원고는 저자가 썼고,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했고, 인쇄는 인.. 더보기
1리터는 들어줘야 편집의 완성? 1리터는 들어줘야 편집의 완성? 출판사에 취직하고 월급을 따박따박 받게 되면서, 가장 좋았던 것 중의 하나는 커피를 원 없이 마실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였다.학생 시절에는 2천 원짜리 로즈버드 커피도 학생 신분에 ‘된장질’이 아닌가 하고자체 검열을 하곤 했는데, 돈을 벌게 되면서 그 검열의 기준이 아주 느슨해진 것이다.한창 카페라떼에 심취해 있을 때는,‘커피만큼은 아낌없이 마시리라! 그것이 된장질이라면 기꺼이 된장녀가 되리라!’라며 다짐하기도 했다. 유독 카페인에 예민한 덕분에, 커피 한 컵만 마셔도정신이 또랑또랑해지는 것은 커피를 사는 데에 그럴듯한 근거도 되었다. 커피를 마시면, 일의 능률도 오르잖아? 매일같이 습관처럼 마시다 보니,점점 카페인 수용량이 늘어나 하루에 두세 잔쯤 마셔도밤잠을 자는 데에 .. 더보기
휴가를 마치고 오니, 활자들이 달려든다! 휴가를 마치고 오니, 활자들이 달려든다! 십여 년 전 장국영의 부고 기사를 무척 슬프게 읽었더랬다. 우연히 인터넷을 열었다가 장국영이 홍콩의 한 호텔에서 몸을 던졌다는 기사를 에서 읽고는 종일 울적했다. 아, 잘생긴 장국영이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다니. 얼마 전에 나온 주성철의 책 을 보고 또 그날의 기분이 떠올라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내가 장국영을 좋아해서 그 부고 기사가 그토록 슬픈 여운을 남긴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장국영의 부고 기사는 당시 시드니에 머물며 영어와 씨름하던 내가 아주 오랜만에 읽은 한글 원고였던 거다. 오랜만에 마주한 한글의 신선함 때문에 장국영의 죽음이 그토록 애잔했던 거다. ‘책 읽는 휴가’를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이라고 멋지게 이름 .. 더보기
모음조화를 내게 돌려줘. 모음조화를 내게 돌려줘. 전에 어린이 책을 만들던 시절에는, 책에 들어갈 단어를 고르는 데에 훨씬 더 엄격했었다. 오죽하면 서로에게 농담으로 “사전에 없는 감탄사로는 감탄하지 말아라.”라는 농담까지 건네곤 했다. 꼭 농담만은 아니었던 것이, 정말로 우리는 책 속의 인물들이 사전에 없는 감탄사로 함부로 감탄하게 놓아두지 않았다. 어느 원고에선가, ‘으라차차!’라는 감탄사가 있었는데, 으라차차는 사전에 없는 감탄사여서 이 단어를 써도 될지,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다. 비슷한 감탄사로는 ‘영차!’ 정도가 있었는데, ‘영차!’로는 으라차차!의 느낌이 잘 살지 않아서 고민은 더욱 깊어졌었다. 당시 고민 끝에 결국 책에 영차를 썼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으라차차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책을 .. 더보기
이메일에 매달려오는 ‘인간미’ 한 조각 이메일에 매달려오는 ‘인간미’ 한 조각 편집자 일의 3할쯤은 이메일 쓰기와 이메일 받기다. 특히 나처럼 전화 통화를 부끄러워하는 소심한 편집자는 이메일 활용도를 업무의 5할까지 끌어 올리려는 무리한 시도를 할 때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다 보면, 이메일 끝에 매달려오는, 간단한 메시지들을 보는 재미가 은근 쏠쏠하다. 대개는 온라인 명함을 디폴트로 정해 두지만, 때로 시 한 구절이나, 멋진 책 속 인용구들을 적어두어, 기계를 매개로 연결된 건조한 인간관계에 ‘인간미’ 한 조각을 보내오는 다정한 사람도 있다. 오늘도 그런 이메일을 하나 받았는데, 인간미에, ‘광대한 스케일’까지 겸비한, 한마디로 멋진 인용구가 매달려 있었다. 첫째, 남에게 친절하고 도움 주기를 흐르는 물처럼 하라. 둘째, 연.. 더보기
병아리 원고의 탄생 사진 : ⓒ Samdogs 병아리 원고의 탄생 아직 ‘번듯한’ 원고가 되지 못한 원고들, 그러니까 투고 받은 A4 한두 장짜리 원고, 1부만 있는 서른 장짜리 원고, 어딘가에 연재 중인 열 장짜리 원고 등등이 꽤 많이 모여서 이 원고들을 따로 모아둘 폴더를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이 폴더 이름을 뭐라고 하지? 출간 진행, 출간 완료 등으로 이름 붙인 다른 폴더와 어떻게 ‘격’을 맞춰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새 폴더 만들기’를 눌렀다. 그런데 어랍쇼? 새(鳥) 이름이 랜덤하게 나오는 새 폴더 이름이 우연히 ‘병아리’라고 뜬다. 병아리라니, 하긴 닭도 새였구나. 그런데 가만 보니, 잡다한 원고들을 모아 놓은 폴더 이름으로도 너무나 적절하다. 이렇게 절묘할 데가. 혼자서 이 ‘놀라운 우연’에 감탄하면서.. 더보기
감옥으로부터 온 편지 감옥으로부터 온 편지 요즘에 단어의 뜻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습관이 생겼다. 얼마 전 멜론에서 노래 검색을 하다 우연히 휘성의 ‘불치병’이란 노래를 보고, 사랑 노래에 이런 제목 괜찮은 거야? 하는 고민을 3초간 했더랬다. 진짜 불치병인 사람이 이 노래 제목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실제 불치병의 고통을 감안한다면, 불치병을 비유적인 의미로 ‘함부로’ 써도 될까, 하는 쓰잘데기 없는 생각. 요즘 너무 감성에 물을 안 줬나 반성하고 있는 차에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며칠 전, 어느 ‘수인’이 출판사에 편지를 보내왔다. 정확히는 출판사가 아니라, 「도서관 산책자」의 저자들에게 온 편지를 출판사에 대신 보낸 것이다. ‘저는 수인(囚人)입니다.’로 시작되는 그 편지는 정말 단어의 뜻 그대로 옥에 갇..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