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정치학
신자유주의, 1990년대 문화, SNS가 만들어낸 리모델링 세대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은 안철수가 아니라 30대다!
“지금의 정치는 지도자가 끌고 가는 정치가 아니라 유권자가 추동하는 정치다. 따라서 정치를 읽으려면, 나아가 대선의 판세를 읽으려면 반드시 유권자의 의식과 주권 행사의 양태를 읽어야 한다. 하지만 없다. ‘박근혜론’, ‘안철수론’, ‘문재인론’에는 유권자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1970년대생을 탐구하면서 유권자의 의식과 주권 행사의 양태를 조금은 살필 수 있었다. 어떤 유권자가 진보 성향을 보이는지, 무슨 이유로 진보 성향을 보이는지, 그 진보 성향을 어떻게 표출하는지 힌트는 얻을 수 있었다. 그 힌트에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삶이 있었고, 개방화된 정치구조에서의 참여가 있었다.” — 본문 중에서
30대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 분석
<시선집중>의 ‘뉴스 브리핑’ 코너를 10년 이상 이끌어오다 ‘외압’에 의해 하차한 미디어평론가/시사평론가 김종배의 본격적인 정치 분석서이다. 저자인 김종배는 2012년 1월부터 데일리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하 이털남)를 통해 정치, 시사 뉴스의 새로운 경지를 선보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특히 민간인 사찰 기록 은폐의 전모를 파헤치고 사건에 직접 연루되었던 인물들과의 독점 인터뷰 등을 내보내면서 더 널리 알려졌다.
이 책은 최근 크게 주목받고 있는 1990년대적 경험에 대한 분석이자, 사회의 주춧돌이 된(하지만 사회적으로는 한 번도 제대로 호명되어본 적 없는) 30대(1970년대생)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 분석이다. 동시에 이들이 한국 정치의 지형을 어떻게 바꾸어놓고 있는지, 그래서 한국 정치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조망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렇게 30대의 경험을 살펴보고 그들의 경향을 파악하기 위해 저자는 광범한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한다. 또 객관적인 데이터뿐 아니라 세대 그룹 집중 인터뷰라는 독특한 방식을 적용해, 질적/양적 방법론 모두를 활용한다.
30대의 정치적, 사회적 성향에 대한 기존의 설명으로 ‘3불론(경제적인 ‘불만’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낳고 그것이 정치적 ‘불신’을 낳았다는 설명)’이나 ‘그때론(1990년대에 형식적 민주화 달성, 동구권 몰락, 대중문화 만개 등의 현상이 개방적인 경향을 낳았다는 설명)’ 등이 제시되기는 했지만, 저자는 이러한 제한적이거나 나열적인 진단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을 제시한다.
1. 1990년대 문화의 힘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부터 <신사의 품격>, <응답하라 1997> 같은 드라마, ‘밤과 음악 사이’ 같은 1990년대식 클럽까지, 1990년대 문화가 최근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1990년대 문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향유한 주체라 할 수 있는 1970년대생의 구매력이 강화되면서 이들을 겨냥한 마케팅이 고조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이들은 그 전부터도 이미 가장 문화적이고 가장 탈정치적인 세대로 생각되어왔다. 1980년대가 광주와 87년 6월항쟁으로 기억되는 정치의 시대였다면 1990년대는 소비에트의 몰락, 문민정부의 탄생과 일본 문화 개방, 여행 자유화, 서태지, 대중문화의 최전성기, 한국 영화의 최전성기로 기억되는 문화의 시대였기에, 이는 어쩌면 당연한 생각일 수도 있다.
1970년대생의 소비 성향과 탈정치적인 경향에 대한 인식은 이 책의 저자가 실시한 포커스그룹 인터뷰(각 세대별로 5~10명을 묶어 집중적으로 실행한 인터뷰)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이렇듯 ‘그들’에 대한 선후배의 평가에는 날이 서 있다. 고도성장기인 1970~19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풍요 세대’, 그 탓에 놀기 좋아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오렌지 세대’, 의식보다는 취향과 기호에 휘둘리는 ‘날라리 세대’쯤으로 평가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한 게 뭐냐고 되묻는다.”(48쪽)
하지만 이 책은 이런 통념의 허점을 곧바로 찌르면서 “30대가 가장 정치적인 세대”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들이 “가장 진보적인 세대”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양한 수치로 증명한다. 세대 대결이 본격화한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동안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 30대는 늘 적극적으로 참여해왔고 또 가장 진보적인 선택을 해왔다는 것이다.
2002년 대선의 범진보는 노무현+권영길이며 범보수는 이회창이다. 2004년 총선의 경우 범진보는 열린우리당+민주당+민주노동당이며, 범보수는 한나라당+자민련이다. 2007년 대선의 범진보는 정동영+문국현+권영길이며, 범보수는 이명박+이회창이다. 2008년 총선에서는 범진보가 통합민주당+민주노동당이며, 범보수는 한나라당+자유선진당+친박연대이다. 2012년 총선의 경우 범진보는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이며, 범보수는 새누리당+자유선진당이다.
특히 1970년대생 전체가 30대에 진입해 세대별 경향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이들의 진보적 경향이 가장 뚜렷하다.
한국 정치의 지형을 가장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세력인 2040세대 안에서의 비교에서도 30대의 진보성은 이렇듯 현격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저자가 인용하는 여러 객관적인 데이터들에 따르면 이는 30대라는 젊은 ‘나이’ 때문도 아니고, 30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학력’이 높아서도 아니고, 혹은 30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경제적’으로 윤택해서도 아니다. 이는 오히려 ‘오늘 한국 사회의 30대’가 갖는 고유한 특징이다.
저자는 이러한 특이한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배경뿐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인 측면까지 꼼꼼히 따져본다. 이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의 격랑을 최전선에서 맞이하고, SNS의 바람 역시 최전선에서 맞아들인 1970년대생의 경험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저자가 1970년대생의 경험과 그들이 주도하는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단순히 이들을 정치 사회적으로 복권시키기 위해서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한국 사회, 한국 정치, 한국 문화 전반의 변화를 최전선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30대, 1970년대생, 1990년대 문화에 대한 분석일 뿐만 아니라, 1990년대적인 경험이 어떻게 한국 사회, 한국 정치 지형의 변화를 이끌어냈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나아가 이들의 지향을 살펴보면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어렴풋이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2. 한국 정치와 세대론의 함수관계를 제대로 털어보다
한국 정치를 설명할 때면 왜 늘 386세대, 88만원세대, 2040세대 등 세대의 용어가 동원되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런 경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곰곰이 그 이유를 따져보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근본적으로는 한국 정치의 불안정성 내지 역동성 때문이다. 정치 지형을 구성하는 전통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계급성’의 영향력이 약하고, 그 때문에 지역이나 세대 같은 요인들이 더 경정력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적은 ‘세대’가 거꾸로 ‘계급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30대’는 모든 세대 중 가장 극심하게 양극화된 세대이면서 경제적인 측면에서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불안정성과 모순을 가장 생생하게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세대’란 그동안 전쟁이나 분단, 독재로 인해 왜곡되어왔던 정치 구조를 ‘정상화’시키고 있는 요인이기도 한 것이다.
먼저 경제적인 요인을 살펴보면, 이들의 삶에 그늘을 드리운 신자유주의의 흔적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의외의 사실일 수도 있지만, 30대의 경제적 처지는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20~40대 중에서도 가장 아래쪽이다.
이어서 객관적인 데이터들과 더불어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취업대란, 카드대란, 벤처대란, 부동산대란이 이들 개개인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집중적으로 파헤쳐본다. 공고까지 냈던 신입사원의 채용 합격자 발표를 취소하고 김대중 정부의 벤처 육성 정책과 신용카드 규제 완화 정책에 휘둘리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결정타를 맞은 이들의 경험을 저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엄밀히 살피면 ‘88만원 세대’는 첫 번째 청년백수 세대가 아니다. 굳게 잠긴 취업 빗장 앞에서 무릎 끓고 절망한 첫 세대는 ‘그들’이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하던 때에 닥친 외환위기가 청년백수 시대의 서막을 열었고, ‘그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실업대열의 맨 앞자리로 등 떠밀렸다.”(93쪽)
“‘그들’의 진보성은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움트고, 신자유주의 정책 하에서 벼려진 것이다. 더불어 양극화에 가위 눌려 내지르는 비명이자, 단단한 기득권의 벽에 가로막혀 토해 내는 한숨이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시대가 불러온 생활 진보이다.”(113쪽)
또 저자는 이들의 정치 행태를 요약하는 세 가지 단어를 팬덤, 놀이, 게임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압축한다. 가령 유시민, 문국현, 정봉주 등 노사모 이후 형성된 수많은 정치인 팬카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집단은 30대이다. 2009년 촛불 집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도 30대이다.(‘안티 이명박’ 카페의 구성원 50%가 30대였다.) 특히 <나는 꼼수다> 같은 팟캐스트 프로그램이 보여주듯 정치의 놀이화, 예능화 같은 현상을 주도한 것도 30대이다. 가깝게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현장투표가 있던 장충체육관의 현장을 상기해보자. 혹자는 이를 “민주당 ‘버스’를 타고 온 당원들과 ‘지하철’을 이용한 SNS 부대의 대결”이라고 정리하기도 했다. 이 SNS 지하철 부대의 주역도 30대다. 물론 이러한 독특한 정치 참여 방식을 만든 것이 단순히 30대의 ‘기질’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3김 시대의 종언’으로 정치적 리더십이 약화되고 정치구조의 개방화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정치적 경향은 가능하지 않았으리라고 진단한다.
“3김 정치의 종식은 유권자 입장에선 의무적인 지지, 또는 관성적인 지지에서 탈피한다는 뜻이었다. 김대중.김영삼, 이른바 ‘양김’의 20년 민주화투쟁 역정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해방된다는 뜻이었고, 3김에 의해 주도되던 지역논리에서 해방된다는 뜻이었다.”(154쪽)
3. SNS가 만들어낸 새로운 정치 질서의 방향을 가늠하다
트위터를 이용하는 집단이 이용하지 않는 집단에 비해 정치적 관심이 높고, 진보적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지적되어온 사실이다. 과거와는 달리 정치를 개인적 공간으로 끌어들이고, 사적인 경험을 공론화하는 데 익숙한 이들이 공/사, 정치/놀이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며 새로운 정치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정치에 익숙하지 못한 정치인들은 뒤늦게 이 독특한 소통 기술을 익히기 위해 과외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새로운 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집단도 세대로 따지면 ‘30대’다.
“‘그들’은 SNS에 대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다. ‘88만원 세대’보다, ‘386세대’보다 훨씬 더 크게 영향 받는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사회적 소통에 대한 열망이 크고, 사회적 소통구조에서 오가는 정보의 흡수력이 크다. 개인의 판단보다 여럿이 공유한 판단을 중시하고, 그 판단 결과에 대한 충성도가 상대적으로 높다.”(172쪽)
이는 어찌 보면 이들이 20대일 때부터 PC통신과 인터넷, 삐삐, 핸드폰 등 다양한 통신 매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자료가 방증하듯 1990년대 다양한 통신 매체의 활용에 더 많이 노출된 것은 1960년대생이다. 또 최신 매체에 대한 익숙함을 따지자면 이들이 1980년대생을 앞지를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역시 좀더 깊이 있는 설명을 필요로 하는 현상이다.
일견 이러한 소통 지향성은 개인주의의 첫 세대로 평가받는 1970년대생의 특성과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인터뷰와 통계, 여론조사 자료를 통해 1990년대적인 경험이 어떻게 이런 새로운 소통의 방식을 가능하게 했는지 살펴본다. 저자에 따르면 학생운동이 쇠하고, 학회/동아리가 부진에 빠진 것을 곧바로 원자화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1980년대 방식의 이념적 전체주의가 물러난 자리에 1990년대 방식의 취향의 공동체들이 들어섰다는 것이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저자는 ‘룸문화’, 혹은 ‘뿔뿔이 흩어진 것이 아니라 끼리끼리 흩어졌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학습이 아니라 취미 공유로, 저항문화가 아니라 대중문화로 그 내용물은 바뀌었지만 소집단 문화는 유지되고 있었다. 선배가 리더가 되어 이끄는 수직적 운영에서 모두가 똑같은 회원으로 공동 참여하는 수평적 운영으로 그 질서는 바뀌었지만 소집단 문화는 유지되고 있었다. ‘그들’은 사회적 소통에 최적의 경험을 한 세대인지도 모른다. 사이버 공간을 통한 사회적 소통이 익명성을 바탕으로 자유분방한 참여를 유도하고, 수평적 관계를 바탕으로 연대의 신축적 확장을 꾀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면 ‘그들’처럼 안성맞춤형으로 소통을 경험한 세대는 없다. 이렇게 보면 ‘그들’의 진보성은 네트워크 시대가 만들어 낸 소통 진보다.”(190쪽)
차례
프롤로그: 안철수론보다 중요한 유권자론
1장 트위스트 정치판의 키맨: 한국 정치와 2040세대
마의 48%, 한국의 보수와 진보, 2040세대의 파워,
삼각편대의 꼭짓점
2장 진보의 꼭짓점: 30대의 정치 의식
원흉과 피팅룸, 백조가 된 미운 오리 새끼, 심장의 박동 수, 가방끈의 길이, 지갑의 두께, 3불론과 그때론
3장 벌어지는 틈새: 30대 정치의식의 사회경제적 배경
30대의 경제적 지위, 호소와 원망, 원망 끝의 진보, IMF와 함께 온 풍파, 취업 대란, 벤처 대란, 카드 대란,
부동산 대란, 양극화된 자산, 신자유주의 폭탄
4장 서태지와 노무현: 30대 정치의식의 정치문화적 배경
놀새, 정치에 눈 뜨다, 학습, 팬덤, 놀이, 게임, 1990년대 문화의 정치화, 포스트3김 시대, 대학, 그게 뭐?
5장 응원석에서 합창을: 30대 정치의식과 소셜네트워크
네트워크 속의 소통, 응원석과 같은 SNS, 익사이팅존 트위터, 트위터 이전, 끼리끼리 흩어지다, 최적화된 30대
6장 음극과 그림자: 30대 정치의식의 한계와 남은 문제들
30대 보수, 의식 이전의 정서, 진화하는 진보성, 남은 문제들
에필로그: 리모델링 세대
지은이 김종배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미디어오늘》에서 3년간 편집국장을 지냈고, 1999년부터 11년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등에서 ‘뉴스 브리핑’ 코너를 진행하다 ‘외압에 의해’ 2011년 5월 하차했다. 《오마이뉴스》에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프레시안》에 ‘김종배의 it’을 연재했으며, 정치·사회·미디어 등의 현상을 분석하고 이에 대해 평론하는 1인 미디어 블로그 ‘미디어토씨’를 열었다. 2010년부터《프레시안》에서 ‘뉴스 읽고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으며, 2012년부터는 데일리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를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가 있다.
인터넷 서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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