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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비의 책

동물원에서 프렌치 키스하기 : 우치동물원 수의사 최종욱의 야생 동물 진료 일기


동물원에서 프렌치 키스하기

우치동물원 수의사 최종욱의 야생 동물 진료 일기


아프고 다치고 버려진 유기 동물들까지 거두고 보살펴

우치동물원을 출생률 1위의 안식처로 만들기까지,

열정적인 수의사의 고군분투 동물원 이야기!


동물원은 사람이 하기에 따라 감옥이 될 수도, 안식처가 될 수도 있다. 이 책에는 동물원을 뭇 생명이 뛰어노는 신나는 놀이터이자 따뜻한 안식처로 만들고자 하는 수의사의 진심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 권오길(생물학자,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동물원에서 일어나는 탄생과 죽음, 즐거움과 고통, 생명의 경이로움과 존엄함은 물론, 동물은 행복하고 시민은 즐거운 공동체를 꿈꾸는 동물원 식구들의 열정과 안타까움이 가득 담겨 있다. ─ 모의원(서울대공원 동물원장)


부리 잘린 황새도, 앞 못 보는 불곰도, 버림받은 표범도

이곳에서는 반드시 행복해져야 해!

  『동물원에서 프렌치 키스하기』는 열정적인 수의사가 서울대공원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광주 우치동물원에서 600여 마리의 야생 동물들을 밤낮으로 보살피며 경험하고, 느낀 내용들을 담고 있다.

  다종다양한 동물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수의사의 하루하루는 말 그대로 파란만장하다. 한겨울에 집을 나간 원숭이부터 1년 넘게 단식 투쟁을 벌이는 아나콘다, 모트에 빠져버린 호랑이, 동물원 역사 최초로 출산한 코끼리까지 다양한 사건, 사고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야생동물에 대한 정보도, 지식도 부족한 상황에서 일이 생길 때마다 위태로운 생명을 살리고자 한의학 책도 뒤져보고, ‘밀가루 반죽법’ 같은 기발한 치료법을 궁리해 내는 등 고군분투하는 수의사의 모습은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감동을 전해준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동물들이다. 책에는 동물원에 일 년에 한두 번 놀러 오는 관람객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수년 간 동물들 곁에 붙어서 살아온 사람만이 파악할 수 있는 동물들의 독특한 개성이 가득하다. 여러 동물이 모여 사는 초식동물사에서 깡패로 군림하는 단봉낙타, 오랫동안 독신을 고집하다가 뒤늦게야 짝을 만나 살림을 차린 침팬지 등 동물원에 사는 수많은 동물들의 속 깊은 사생활이 속속 드러난다. 특히 갓 태어난 새끼를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죽음을 미룬 어미 바버리양의 모성이나 평소엔 무심한 듯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새끼를 보살피는 아비 원숭이의 애틋한 부정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깊은 감동까지 얻을 수 있다.



  어떤 동물에게든 헌신적인 수의사의 노력은 국내 최다산 동물원이라는 아름다운 결과를 낳았다. 동물들의 출산은 동물원에서 심신의 안정과 삶에 대한 의지를 얻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다. 우치동물원은 동물 쇼를 하는 상업적인 동물원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덕분에 부리 잘린 황새, 앞을 못 보는 불곰처럼 장애가 있거나 버려진 동물, 인기 없는 동물들도 차별하지 않고 모두 제 수명을 다할 수 있도록 보살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개성 넘치는 동물들의 모습에서는 낯선 야생 동물에 대한 깊은 이해와 호감을, 열정적인 수의사의 모습에서는 수의사라는 직업의 매력을, 동물들에게 더 나은 안식처를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동물원의 모습에서는 동물원의 역할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다.



1. 동물원 수의사로 독보적인 이력을 쌓아온, 한국의 제임스 헤리엇, 최종욱!

_ 호랑이 인공 포육부터 코끼리 출산까지 풍부한 현장 경험

_‘밀가루 반죽법’부터 ‘프렌치 키스 치료법’까지 독창적인 노하우들

  사람들은 흔히 수의사 하면, 개나 고양이를 치료하는 동물병원 수의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동물원 수의사는 앙증맞은 반려 동물이 아니라, 크고 거친 야생 동물을 주로 돌본다. 그래서 카우보이처럼 소와 씨름하는가 하면, 동물의 피와 양수를 온몸에 뒤집어쓰는 등 야생 동물만큼이나 거칠고 모험 가득한 직업이 바로 동물원 수의사다.

  우치동물원에서 일한 10년을 포함해 20년 넘게 야생 동물만 돌보아온, 이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인 최종욱 수의사는 이 책에서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동물원 진료 이야기를 유쾌하고도 따뜻하게 풀어놓는다. 모트에 빠진 호랑이를 구하려고 맨몸으로 모트에 들어갔던 일, 입맛 잃은 도마뱀에게 ‘진상’할 메뚜기를 잡느라 여름 내내 동물원 곳곳을 뛰어다녔던 일, 목이 긴 기린을 서울에서 광주까지 수송할 방법을 찾느라 헬기까지 알아봤던 일 등 동물원 수의사로 겪은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끝없이 흘러나온다.

  야생 동물 수가 적은 탓에 정보도, 기술도 부족한 국내 수의 환경에서 600여 마리가 넘는 동물들을 보살피느라 동분서주 하는 동안, 최 수의사는 야생 동물 전문 수의사로서 독보적인 경력을 쌓았다. 맹수의 제왕이라 불리는 호랑이를 직접 인공 포육했고, 기린이 죽었을 때는 전남대 수의대 창설 이래 최대 규모의 기린 부검 작업을 진행했다. 암컷 코끼리, 쏘이와 봉이의 출산을 지휘함으로써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최초로 코끼리 출산을 경험한 수의사가 되었다.

  동물 진료 과정에서 최 수의사는 자기만의 노하우를 개발하기도 했다. 분유를 삼키는 것도 버거워하는 과나코의 입천장에 밀가루처럼 반죽한 분유를 발라주는 방법을 개발했고, 한의학 책에서 힌트를 얻어 원숭이의 입안에 돋은 악성 종양을 실로 묶어 말라 죽이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했다. 갓 태어난 동물이 양수를 삼켜 숨을 못 쉴 때 입으로 직접 코를 빨아서 양수를 제거해 주는 ‘프렌치 키스 치료법’은 선배 수의사에게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운 뒤, 동물원에서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휴일이면 가족들까지 아예 동물원으로 데려와동물들을 보살피고 출산하는 동물이 있으면 한밤중에도 동물원으로 달려가는 등, 단순한 직업의식을 넘어 발휘되는 동물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책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2. 출생률 전국 1위! 아프고 다치고 버림받은 동물들의 안식처가 된 동물원!

  광주의 우치동물원은 수년째 국내 최다산 동물원으로 꼽히고 있다. 많은 동물들이 출산한다는 것은 그만큼 동물원이 동물들에게 좋은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우치동물원이 이런 안식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프거나 다친 동물, 버려진 동물, 기형으로 태어난 동물, 인기 없는 동물들을 내치거나 차별하지 않고 돌보아주기 때문이다. 상업적인 목적의 동물원이 아니므로 과도한 동물 쇼를 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부리가 잘린 채 동물원에 온 홍부리황새는 장애를 딛고 정상적인 황새들도 잘 하지 않는 짝짓기에 성공했고 다 죽어가는 채로 헐값에 팔려 왔던 표범은 저자와 사육사들의 극진한 돌봄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다.

  이런 사실은 동물원을 방문한 장애 학생들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동물원에서 진행된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행사에 참여한 시각 장애 학생들은 우치동물원에 앞을 못 보는 불곰이 장애가 있는데도 가장 인기 많은 동물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기쁨을 표하기도 했다.

  저자는 우치동물원의 사례를 통해 역사 깊은 동물원으로서 가진, 시설이 낡고 녹지가 부족한 점 등 보완해야 할 부분을 고민하는 동시에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물들의 안식처이자 놀이터로서, 그리고 도시에 사는 어린이들의 생태 학습의 장으로서 동물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본 문 속 으 로

요즈음엔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생태 교육의 장, 멸종해가는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복원시키는 동물들의 안식처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런 일을 제대로 하려면 상업성보단 공공성이 우선 보장되어야 한다. 동물원에서 상업성을 우선시하다 보면 인기 있는 동물만 보호를 받고 그렇지 못한 동물은 쉽게 내쳐질 수 있고 또 동물 쇼라는 이름으로 동물을 학대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우치동물원이 그렇게 운영되었다면 지금처럼 전국에서 손꼽힐 만큼 새끼들이 많이 태어나는 동물원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병들거나 다친 동물들, 장애를 갖고 태어난 동물들, 인기 없는 동물들을 지금처럼 정성껏 보살피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293쪽)

정말로 그날부터 날마다 출근하는 일이 기쁨이 되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쉬는 날도 동물원에 나왔고, 일부러 저녁 늦게까지 남아서 동물들과 함께 지냈다. 휴일이면 가족들도 아예 동물원에 데려와 놀라고 하고는 나는 동물들과 놀았다. 평소에 잘 안 하던 공부도 갑자기 열심히 하게 되었다. 책도 많이 사고 도서관도 자주 들락거렸다. 망원경도 사고 디지털 카메라도 사서 날마다 동물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찍고 다녔다. 하루의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일도 시작했다. 그 전에는 일기 한 번 안 써본 게으름뱅이가 이토록 부지런해진 것이다. 이것이 동물원에서 일하는 동안 일어난 첫 번째 기적이었다. (7쪽)

담당 사육사는 이 부리 잘린 황새가 안쓰러워서 먹이를 먹는 동안에는 다른 황새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옆에 지켜 서서 감시했다. 덕분에 미꾸라지를 일정량 꼭꼭 챙겨 먹은 녀석은 성치 못한 부리를 가지고도 토실토실하게 잘 자랐다. 어느 순간부터는 요령이 생겨서 짧은 부리로도 미꾸라지를 제법 잘 집어 먹었다. 그냥 운명에 맡겨두었다면 꼼짝없이 굶어 죽었을 것이다. (29쪽)

나는 혼자서 사다리를 절반 정도 내려가 긴 장대로 호랑이 얼굴을 슬쩍 건드려보았다. 한 차례 어흥 하던 호랑이는 5분여가 지나자 차츰 고개를 숙였다. 경험상 이때다 싶어 그물을 들고 맨발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호랑이 얼굴에 그물을 씌워 손으로 받쳤다. 곧이어 다른 사람들도 들어와 호랑이를 위로 끌어올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호랑이는 점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으면 큰일 날 뻔했던, 위험천만한 작전이었다. 지켜보던 사람들도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53쪽)

내가 으레 그렇지 하는 마음으로 “술병에 쓰시려는 거죠?” 하고 물었더니 농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먹는 용도가 아닙니다.” 사연인즉슨, 날마다 멧돼지가 출몰하여 고구마 밭을 망쳐놓아 고민하고 있었는데 동네 사람이 호랑이 똥을 구해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멧돼지의 대표적인 천적이 바로 호랑이인데 호랑이는 똥으로 영역을 표시하므로 호랑이 똥을 고구마 밭에 뿌리면 멧돼지가 얼씬도 하지 않을 거라는, 그 나름대로 과학적인 이유였다.

농부의 사정이 딱하기도 하고 어쩌면 재미난 실험이 될 것도 같아서 호랑이 똥을 주기로 했다. 그런데 호랑이는 이틀에 한 번꼴로 소량의 똥을 누기에 농부의 고구마 밭에 뿌리기에는 양이 모자랐다. 그래서 일주일 후에 다시 오시라고 농부를 돌려보냈다. 정확히 일주일 후 농부가 다시 찾아왔고 나는 살뜰히 모아둔 호랑이 똥을 건넸다. (62쪽)

대장이 된 봉봉이는 가장 맛있는 먹이와 양지바른 자리를 차지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학생들을 삥 뜯는 건달인 양 우리 안 여기저기에 침을 찍찍 뱉으며 군기를 잡았다. 이제 이 우리에서는 같은 종끼리 정상적인 생식 행위를 하더라도 봉봉이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사람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아서 툭하면 달려들었다. 심심하다 싶으면 눈비를 막기 위해 만들어놓은 차양에서 볏짚을 한 움큼씩 빼냈다. 배가 고파서 먹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재미 삼아 어질러놓는 것이다. (84쪽)

새끼 호랑이 삼남매는 지방 신문에 대서특필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아이, 러브, 기아라는 특별한 이름도 유명세에 한몫을 했다. 그 덕분에 삼남매는 영광스럽게도 무등구장에서 열리는 기아와 SK의 대망의 한국 시리즈 개막전에 초대되었다. 개막전에서 기아 선수들과 함께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게 된 것이다. (99쪽)

가장 큰 문제점은 당연히 기린의 키였다. 모두 알다시피 기린은 5미터가 넘는,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큰 동물이 아닌가. 그 크기에 맞춘 우리 안에 싣고 가면 고속도로 톨게이트 같은 시설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국방부에 의뢰해서 헬기를 빌리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일개 동물원 일에 국방부가 나서줄 리 만무했다. 그러던 중 전주의 한 동물원에서 최근에 기린을 수송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랴부랴 가보니 마침 기린 수송 상자가 아직 있었다. (92쪽)

코끼리를 직접 만지는 일이 끝난 뒤에는 수의사인 나와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동물원에 놀러온 아이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지는 일은 종종 있지만 이 아이들은 훨씬 커다란 호기심으로 많은 질문을 쏟아내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한 시간을 꽉 채우도록 이어지는 질문 세례를 받으며 나는 함께 신이 났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하나 있다. 한 아이가 이렇게 물었다.

“동물도 장애가 있나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있죠. 자연에서 장애는 곧 죽음이에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닙니다. 우리 동물원에는 앞을 못 보는 물범도 있고, 어미 없는 새끼 사자도 있는데 저와 사육사들의 보살핌을 받기 때문에 잘 살아가고 있어요. 둘 다 우리 동물원에서 인기가 정말 많아요.” (109쪽)

2009년 8월경, 암컷 코끼리 쏘이와 봉이의 배와 가슴이 평소보다 부푼 것이 느껴졌다. 혹시 임신인가 싶었지만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코끼리는 몸무게가 3000킬로그램이나 될 만큼 덩치가 커서 겉모습만 봐서는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헷갈려하며 고심하던 와중에 그해 11월 SBS의 <TV 동물농장>에서 촬영을 나오게 되면서 우리는 사람 임신부를 대상으로 하는 3D 초음파 기기를 동원하게 되었다. 사람 임신부의 몇 배나 되는 코끼리의 배에 젤을 잔뜩 바르고 기계를 문질렀다. 검사 결과는 분명한 임신. 새끼의 갈비뼈와 등뼈가 선명하게 촬영된 것이다. 힘찬 심장 박동 소리도 분명하게 들려왔다. (112쪽)

그 어미에 그 자식이랄까, 보통 새끼들은 어미가 이런 상태로 누워 있으면 본능적으로 어미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마련인데 이 새끼 바버리양은 유난히 어미 곁에 바짝 붙어 있으려고 했다. 내가 다가가면 조금 떨어졌다가도 잠시 자리를 비우면 얼른 어미 곁에 다시 다가왔다. 그런 새끼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죽은 동물을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어서 어미의 주검을 끌어내었다. 부검 결과 만성 폐렴이었는데 상태가 굉장히 심했다. 원래 만성 폐렴이었던 것이 분만 후 급성 폐렴으로 진행된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어미는 오직 새끼를 키우기 위해 초인 같은 힘으로 생명을 연장시켜 온 것이다. 아마 새끼가 없었으면 더 일찍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136쪽)

한 달 후, 한 알에서 샛노란 새끼가 탄생했다. 경험 많은 사육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저거, 아무래도 거위 새끼 같은데.” 거위가 뻐꾸기도 아닌데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새끼는 자랄수록 거위의 모습을 띠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어미 기러기와 새끼 거위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어미는 새끼를 정성껏 돌보았고 새끼는 어미를 잘 따랐다. 기러기 무리도 새끼 거위를 조금도 구박하지 않았다. (142~143쪽)

하지만 호랑이 인공 포육은 우리 동물원 역사상 처음이라 꼭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소망이에게 손가락을 물려보니 다행히 본능적으로 빠는 힘이 강했다. 호랑이 포육 경험이 많은 청주동물원에서 부랴부랴 호랑이 포육 매뉴얼과 호랑이 전용 분유를 빌렸다. 그 분유로 탄 우유를 빨리자 소망이는 힘차게 잘도 먹었다. 이 정도면 시작은 아주 좋은 편. 다음 단계는 트림하기. 사람 아기도 트림시키려면 꽤 애를 먹는데 호랑이도 마찬가지다. 거의 100번 정도 등을 가볍게 두드려야 크윽, 하고 트림을 한다. (153~154쪽)

대학생 신분을 갓 벗은 터라 현장 경험이 적은 나는 정식 수의사가 아니라 실습 수의사 자격이었다. 처음에는 목부들과 똑같이 일해야 했다. 새벽부터 우유 짜고, 청소하고, 진료 보조까지 온갖 허드렛일을 했다. 이 과정이 끝나기 전까지는 선배 수의사가 주사 바늘 한 번 쥐어주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내 겉모습은 똥 묻은 젖소들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대관령 생활은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대관령에 젖어들수록 도시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싫어졌다. 한 달만 있으려던 계획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나는 대관령에 눌러앉게 되었다.

마침 6개월 후 선배 수의사가 개업을 하기 위해 도시로 나갔다. 나는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아 정식 대관령 수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지저분한 모습이 더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이때부터는 똥이나 우유 대신 피나 양수를 더 자주 접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168~169쪽)

문제는 새끼 과나코의 기력이 너무 약해서 입 주변을 핥기조차 힘들 정도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손가락을 써보기로 했다. 손가락을 새끼 과나코의 입안에 넣어 입천장에다 반죽한 분유를 잔뜩 발라주었다. 그러자 과나코가 혀를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입천장에 묻은 것을 핥아서 삼켰다. 그렇게 서너 번 반복하니 금방 분유를 다 먹일 수 있었다. (202~203쪽)

동물원에서도 프렌치 키스 치료법을 종종 사용한다. 한번은 우리 동물원의 새끼 염소가 태반을 둘러쓰고 태어나는 바람에 양수를 들이켜서 입만 벙긋거리고 있던 적이 있다. 그걸 보고는 이것저것 잴 겨를 없이 즉시 염소의 코를 입에 넣고 힘껏 양수를 빨아올렸다. 양수의 짭짜름한 맛과 비린내가 입안에 확 몰려 들어왔다.

입을 막고 있던 양수를 빨아내주자 새끼는 기운을 차리며 매애애 울음을 터트렸다. 새끼의 울음소리에 안도하며 나도 입에 있던 양수를 뱉어내었다. 그러고 나서 돌아보니 사육사들이 넋이 나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211쪽)

흉강 부위의 부검을 끝내고 복부로 내려갔다. 이런 경우 복부 장기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을 테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나마 순서대로 진행한다. 그런데 위장을 만져보니 그 안에 무언가 딱딱하고 큰 덩어리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초식 동물들의 위장은 원래 고무처럼 말랑말랑한데 말이다. 이상하다 싶어 즉시 그 부위를 절개했더니 커다란 비닐 끈 뭉치가 잇따라 나왔다. 도저히 사슴이 먹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마치 누가 수술해서 집어넣은 것처럼 많은 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사슴은 유난히 비닐류를 좋아해서 보이는 대로 씹곤 했다. 나도 녀석이 씹고 있던 과자 봉지를 빼앗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이렇게나 많이 꾸역꾸역 삼킨 줄은 몰랐다. (223쪽)

그런가 하면 누구나 어릴 때 줄기차게 불러보았을 동요 「얼룩송아지」는 알고 보면 아주 슬픈 노래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 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하는 가사에 나오는 소의 운명 때문에 그렇다. 이 동요 속의 소가 어떤 종류의 소일까? 당연히 젖소가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시인 박목월이 이 가사를 지었던 때는 아직 젖소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이었다. 이 얼룩소는 우리의 고유종인 칡소다. 아마 칡소라는 말 자체를 처음 들어 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칡소는 지금의 한우보다 덩치가 두 배는 더 크고 검은 바탕 털에 얼룩덜룩한 갈색 무늬를 가진 우람한 우리 소다. 지금은 거의 멸종되었고 겨우 몇 마리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노래는 우리의 고유종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자 은연중에 잊혀간 슬픈 동물의 이야기인 셈이다. (255쪽)

나는 10년이 넘게 한결같이 동물원을 지켰지만 여전히 전혀 지루함을 못 느낀다. 내 직업을 아는 친구들이 “만날 보는 동물들, 또 보는 거 따분하지 않아?” 하는 질문을 하면 나는 “일단 한번 와봐!” 하고 대답하곤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동물원에는 우리가 인위적으로 채울 수 없는 가장 핵심적인 즐거움이 도사리고 있다. 다채로운 생명들이 신나게 모여 사는, 영원한 생명의 놀이터를 방문하는 즐거움이다. (302쪽)


차례


지은이 최종욱

여수시청 공무원, 국가지정 비브리오 연구소(유전자 분야) 연구원을 거쳐, 2002년 5월부터 광주광역시청 소속 우치동물원에서 수의사로 일했다. 한국에서 수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해보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우치동물원에서 600여 마리의 동물을 돌보며 코끼리 출산, 호랑이 인공 포육, 기린 부검 등을 통해 탁월한 실력과 노하우를 갖춘 야생 동물 수의사로 인정받았다. 2006년부터 약 3년간 전남대학교에서 야생동물학을 강의했으며 이후 중고등학교를 비롯해 각종 기업과 단체에서 강의를 했다. 2012년 2월부터 광주시 보건환경연구원으로 옮겨 근무하고 있다.

우치동물원의 다양한 동물들의 사연을 소개하며 SBS의 「TV 동물농장」에 단골로 출연했으며 《동아일보》, 《한겨레》, 《서울신문》, 《광주드림》 등 다양한 매체에 동물 관련 칼럼을 써서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수의사이다. 작가로도 활약하여 『동화 속 동물들의 진실 게임』 ,『우리 동물원에 놀러 오세요』 등 5권의 어린이책을 썼고, 2005년에는 단행본 『세상에서 가장 불량한 동물원 이야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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