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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完)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3-2) 난폭한 코끼리들이 도로에서 난동을 피운다고?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by 최종욱, 김서윤


제 3부 서울 도심을 질주한 코끼리


    2장 난폭한 코끼리들이 도로에서 난동을 피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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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대공원 코끼리 탈출 사건이 시작되던 순간을 요약해 보면, 코끼리들은 대공원 안에서 퍼레이드를 하던 중 바로 앞에서 비둘기 떼가 갑자기 날아오르자 괴성을 지르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때 코끼리의 괴성에 담긴 감정은 단순한 놀라움을 넘어 두려움이었다고 표현해야 더 정확하다. 코끼리는 거대한 몸집과는 어울리지 않게 천성이 순하고 겁이 많다. 평소에 사육장 주변에 개나 고양이만 어슬렁거려도 화들짝 놀라고, 어린이 관람객의 장난감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만 들어도 눈을 두리번두리번하며 불안해하는 동물이 코끼리다. 앞서 송도유원지에서의 탈출 사건도 중학생들의 환호성이 원인이었다.

더구나 낯선 장소로 이사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쉬는 시간을 줄여 가며 퍼레이드를 하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미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평소보다 높은 상태였을 것이다. 그리고 군집 생활을 하며 감정을 활발히 교류하는 코끼리의 특성상, 그 두려움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코끼리들에게 삽시간에 전염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끼리들이 어린이대공원 밖으로 나가고도 한참을 내달린 데는 두려움 이상의 어떤 감정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어린이대공원역을 지나 어린이대공원 구의문 쪽으로, 공원 담벼락을 끼고 계속 달리면서 코끼리들은 억눌려 있던 본능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은 것은 아닐까. 야생에서 코끼리 무리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넓은 공간 안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아간다. 태어나자마자 말뚝에 발이 묶인 채 사람의 손에 길러진 코끼리라 해도 그 유전자에는 수천만 년 동안 진화의 과정을 거쳐 형성된 이동 본능이 깊숙이 각인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 야생 코끼리들의 모습.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넓은 지역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생활한다.

사진 출처 : http://www.sciencemag.org/


소외된 동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작업해 온 황윤 감독은 애초에 코끼리들이 밖으로 나간 것부터가 그 본능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나가긴 왜 나갔겠어요. 나가고 싶으니깐 나간 겁니다. 사람들은 마치 있어야 될 공간을 벗어난 야수처럼 말하지만 애초에 거기에 있는 것 자체가 비정상 아닌가요. 수만 년 초원을 이동하도록 진화해 온 동물의 야성을 몇 년간 발에 족쇄를 채운다고 그 본성이 사라지나요. 말이 안 됩니다.”1)

그런데도 탈출 소동에서 코끼리는 난폭한 맹수로 취급되었다. 물론 이 소동 와중에 코끼리들은 골목길에 서 있던 여성을 밀어 뒷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힌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노점상도 자동차도 행인도 모두 놀라울 정도로 잘 피해 다니던 소심한 코끼리가 왜 유독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중년 여성을 밀쳤을까? 이상한 점은 또 있다. 코끼리가 자신의 힘으로 사람 한 명의 목숨을 앗아 가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사람이 코끼리에게 제대로 들이받히면 자동차에 받힌 것과 맞먹는 충격을 받게 된다. 코끼리가 코를 사람 어깨에 턱 얹기만 해도 잘못하면 어깨뼈에 손상이 갈 수 있다. 그런데 코끼리가 코로 들이미는 바람에, 또는 머리로 들이받는 바람에 입은 부상이 뒷머리가 찢어지는 정도였다?

정이사는 오해였다고 단언한다.

“코끼리가 사람을 진짜로 밀었으면 고작 그 정도 다친 걸로 끝날 수가 없어요. 불가능해. 그분이 코끼리가 갑자기 오니까 놀라서 피하려다가 넘어진 거죠. 코끼리하고 닿은 건 아닐 거예요.”

피해자의 주장대로 닿긴 닿았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코끼리라는 동물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코끼리가 작정하고 사람을 들이받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 식당 안에 들어간 코끼리들. 겁에 질려 식당 한구석에 몰려 있었다.

사진 출처 : 미디어 다음


사건 당시 경찰의 출동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경찰은 코끼리가 사자나 호랑이급의 맹수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대응했다. 경찰이 출동하며 울린 요란한 사이렌 소리는 코끼리들을 더욱 놀라게 만들어 인근 식당으로 뛰어들게 했다. 정이사는 경찰의 행동을 떠올릴 때마다 답답한 마음을 드러낸다.

“바로 거기서 일이 커져 버린 거예요. 뭐 대단한 거 잡으러 가는 것처럼 사이렌을 울리는 바람에 코끼리들이 또 놀란 거죠. 경찰이 사이렌을 울릴 이유가 전혀 없었단 말입니다. 코끼리들은 점잖게 오고 있었잖아요.”

주택 정원에 들어간 코끼리가 신이 난 듯 헤집고 다닌 데 반해 식당에 들어간 코끼리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일제히 식당 구석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겁에 질려 도망칠 곳을 찾다가 막다른 곳에 몰린 셈이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경찰차가 큰 소리로 사이렌을 울리고 있었다. 어느새 몰려든 기자들은 반원형으로 진을 치고 플래시 세례를 터트렸다. 그러니 코끼리들이 진정이 될 턱이 없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마취총을 쏘네 마네, 여차하면 사살을 하네 마네 하는 논의를 하고 있었다.

김회장과 정이사가 도착한 것은 이때였다. 김회장은 소동을 진정시키기는커녕 더 키우기만 한 경찰의 대처에 분개했다.

“내가 되게 뭐라고 했지. 당장 사이렌 끄라고. 욕도 하고. 하도 화가 나니까.”

시끄러운 소리가 가시자 코끼리들은 조련사가 건네는 당근을 받아먹으며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코끼리에 대한 잘못된 시각은 언론 보도에도 이어졌다. 이날 저녁 뉴스와 다음 날 일간 신문에서는 일제히 코끼리 탈출 소식을 소상하게 전했는데, 기사의 내용은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될 수 있었다. ‘난폭’한 코끼리들이 ‘난동’을 부렸다. 며칠 후 언론비평전문지인 미디어오늘만이 현장 분위기를 비교적 과장 없이 전하며 ‘피해자·목격자들 - 무섭기보단 재미있었다.’라는 부제를 달았다.2)

정이사는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당시의 언론 보도에 불만을 표한다.

“아주 자극적으로 써 놨더라고요. 코끼리가 얼마나 순하고 겁이 많은 동물입니까. 근데도 그 기사만 보고 사람들이 코끼리를 아주 무섭게 생각하더라니까요. 사람보다 코끼리가 더 놀란 거였는데.”


▲ 천호대교까지 갔던 코끼리를 줄로 묶어 데려오는 모습. 이 코끼리가 가장 멀리까지 간 코끼리였다.

사진 출처 : 미디어 다음


그로부터 아흐레가 지난 4월 29일. 코끼리 공연이 재개되었다. 매표소 앞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코끼리 탈출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이 곧 공연 홍보가 된 셈이었다. 뉴스를 보고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며 단체 관람을 취소한 유치원들도 있었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관람석은 코끼리들이 한국에 들어온 이래로 가장 붐볐다.

특히 5월 1일까지 사흘 동안 오전 11시 공연은 무료로 개방되었다. ‘속죄의 공연’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채. 코끼리들은 죄인으로서 용서를 구해야 했다.

코끼리들의 탈출은 그렇게 미완으로 남았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코끼리 퍼레이드는 당장 중단되었고 코끼리들은 하루 24시간을 공연장이나 우리 안에서만 지내게 되었다. 혹시라도 코끼리가 한 걸음이라도 밖으로 내딛지 못하도록 주위에는 쇠파이프가 촘촘히 둘러졌다.

하지만 어차피 어린이대공원은 코끼리들의 ‘제자리’가 아니었다. 셋방살이의 피곤함은 방을 비워 달라는 집주인의 요구가 언제 날아들지 알 수 없다는 데서 온다. 코끼리들에게 그 요구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다.



1) 프레시안 「“인간의 ‘관람’은 동물에겐 ‘감금’”」(2005.5.4)


2) 미디어오늘 「해외토픽으로 등장한 ‘코끼리 사건’」(2005.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