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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完)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4-4) 코끼리에 대한 사랑일까 아니면 학대일까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by 최종욱, 김서윤


제 4부 코끼리, 빛고을 광주로 이사 가다


    4장 코끼리에 대한 사랑일까 아니면 학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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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학교에서는 세 살 안팎의 어린 코끼리만 받는다. 공연용 코끼리로서 조기 교육을 시키는 셈이다. 그리고 함께 입학한 소년들은 코끼리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조련사로 성장한다. 코끼리의 수명이 60살 정도이니 라오스에서 코끼리와 한 번 인연을 맺은 조련사는 거의 한평생을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끼리와 조련사의 관계는 단순히 주인과 가축 사이라 하기에는 좀 더 복잡하다. 코끼리들에게 조련사는 언제나 옆에 있는 가족이자, 자신의 몸짓 하나하나에 신경을 기울이는 연인이자, 건강을 돌보아 주는 주치의다. 하지만 이 관계의 바탕에는 폭력이 깔려 있다.



어린 코끼리에게 공연용 동작을 연습시키는 모습. 왼쪽의 조련사가 손에 든 것은 과일을 딸 때 쓰는 날카로운 도구다. 코끼리가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 도구로 찔러서 고통을 가한다. ⓒSBS, TV 동물농장 500회 <쇼 동물의 그림자> (2011.2.20)


코끼리가 아무리 영리한 동물이라 해도 공연에 필요한 여러 동작들을 익히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자연에서는 코끼리가 취하지 않는 동작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동작들을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 코끼리 학교에서는 코끼리의 귀 뒤쪽처럼 예민한 부분을 찌르거나 다리를 매질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를 보고 많은 사람이 할아버지와 소의 우정에 눈물을 흘렸지만 한편에서는 소가 너무 학대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어쩌면 인간이 동물을 길들이는 행위에는 처음부터 애정과 학대가 뒤섞여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코끼리 조련은 이미 여러 동물 보호 단체로부터 단단히 찍혀 있는 상태다.

태국 코끼리들의 상황은 어떨까. 동남아시아 최대의 관광 대국인 태국은 각종 동물 쇼를 주요 볼거리 중 하나로 홍보하고 있다. 동물 쇼에 동원되는 동물은 원숭이, 호랑이, 곰, 악어, 물개, 돌고래 등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동물이 코끼리다.

라오스와 마찬가지로 태국에서도 과거에는 코끼리가 주로 벌목에 이용되었다. 산업화의 속도가 빨라지며 원목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점점 더 많은 코끼리가 동원되었다. 지나친 벌목의 피해는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왔다. 1988년 큰 산사태가 일어나 3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숲이 훼손되어 약해진 지반이 원인이었다. 이듬해인 1989년 태국 정부는 벌목을 금지시켰다. 하루아침에 코끼리가 쓸모가 없어지자 코끼리 주인들은 코끼리를 이용한 새로운 수익 사업을 찾아야 했다. 일부는 국경을 넘어 미얀마로 가서 벌목을 계속했지만 대부분은 태국 안의 대도시로 향했다. 도시에서 코끼리들은 관광객을 위한 공연이나 트래킹에 쓰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구걸에 나서기까지 했다. 주인이 코끼리에게 바나나, 사탕수수 등을 싣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행인에게 코끼리 먹이를 사 달라고 조르는 것이다.1)

어린 코끼리들에게는 ‘파잔’이라는 의식이 치러진다. 이 의식의 목적은 코끼리로부터 야생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세 살에서 여덟 살 사이의 어린 코끼리를 어미에게서 때어 내 아주 좁은 우리에 가둔다. 목을 우리 위쪽에 묶고 네 다리를 서로 묶어 겨우 서 있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쉼 없이 매질을 가하기 시작한다. 파잔은 사흘에서 길게는 일주일까지 이어지는데 그동안 코끼리에게는 물도 먹이도 거의 주지 않는다. 더욱 고통을 가하기 위해 우리 앞에 먹이를 매달아 두기도 한다. 마침내 코끼리가 고분고분해졌다고 판단되면 그제야 우리에서 풀어 주고 먹이를 준다. 파잔을 치른 어린 코끼리는 육체적으로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깊은 상처를 받아 어미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오직 인간의 충실한 일꾼이나 노리개로서 고분고분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2)

코끼리 학대에 대한 태국 정부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2010년 태국 정부는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해 코끼리를 이용한 구걸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했다. 구걸하는 코끼리의 소유주, 구걸에 응해 코끼리 먹이를 사 주는 사람 모두 벌금을 물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그다지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태국 정부가 동물 관광을 방조하는 수준을 넘어 장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태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태국 관광청 서울 사무소의 홈페이지(www.visitthailand.or.kr)에는 각 지역별로 어떤 종류의 동물 쇼를 구경할 수 있는지 자세히 안내되어 있다. 게다가 태국 정부는 코끼리 학교까지 운영하고 있다. 태국에서 코끼리 학교는 라오스와 달리 정부가 세운 직업학교의 일종이다. 그래서 훈련에 쓰이는 코끼리도 태국 정부가 직접 공급한다. 국제 동물 보호 단체들이 동물 쇼 전면 중지를 요청하고 있지만 태국 정부의 태도는 미적지근하기만 하다. 막대한 관광 수익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주주 동물원의 사자 쇼. 중국 칭다오에서 들여온 ‘중국 동물 공연’의 일부다. ⓒ한겨레신문, <철봉하는 곰…공 굴리는 사자…두 발로 선 코끼리> (2012.5.5)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동물 쇼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2012년 5월 서울대공원은 동물 학대 논란에 휩싸인 돌고래 쇼를 돌고래 생태 설명회로 전환했다. 이제 서울대공원의 돌고래들은 점프를 해서 훌라후프를 통과하거나 배를 드러내고 수영을 하는 등 야생에서는 보이지 않은 행동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돌고래 조련사들이 자유롭게 노니는 돌고래들 앞에서 관람객들에게 돌고래의 생태에 대해 설명해 준다. 돌고래쇼 중단 조치는 박원순 서울 시장이 시민 단체 의견을 수렴해 결단을 내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울대공원은 경기도에 있긴 하지만 서울시에서 관리한다. 서울시에서는 역시 동물 학대 논란이 있었던 청계천의 관광 마차도 금지시켰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일부에 그친다. 우리나라에서 동물 쇼는 오히려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동물 쇼를 하는 대표적인 곳으로는 63씨월드, 에버랜드, 주주 동물원을 꼽을 수 있다. 현재 물개 쇼, 바다표범 쇼, 악어 쇼, 사자 쇼, 흑곰 쇼 등이 벌어지고 있다. 제주도는 이제 가히 ‘동물 쇼의 섬’이라고 불릴 만하다. 돌고래 쇼, 원숭이 쇼, 바다사자 쇼도 여전히 성황리에 운영 중이고 최근 5년 사이에 기마 공연, 흑돼지 쇼, 호랑이 마술 쇼가 새로 생겼다. 코끼리월드보다 1년 앞서 코끼리 공연을 시작했던 점보빌리지 역시 여전히 관람객들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동물 쇼와 관련된 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동물원들이 마구잡이로 동물 쇼를 늘리고 수입해도 규제할 방안이 전혀 없다. 동물 복지 선진국인 유럽에서 규제 강화로 동물 쇼가 사라져 가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동물 보호 무크지 《숨》의 전경옥 편집국장은 동물원들이 동물 쇼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동물 쇼는 동물원 입장에선 최고의 수익 사업이에요. 입장료 말고도 비싼 공연 요금을 따로 받잖아요. 동물원은 동물의 고통을 팔아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버는 거고, 우리는 기쁘게 사는 거죠.”3)

기사가 날 정도로 크게 공론화되지는 않았지만 코끼리월드도 동물 보호 단체의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정이사는 라오스 현지 코끼리들의 상황과 비교하면 코끼리 공연은 결코 동물 학대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우리 조련사들이 그러더라고요. 우리나라 와서 공연하는 코끼리들은 고생도 안 하고 아주 운이 좋은 거라고요. 이 코끼리들이 공연을 안 했으면 지금쯤 뭘 하고 있었겠어요. 산에서 벌목하고 있었겠죠. 그거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코끼리를 애지중지했습니까, 예? 먹이도 좋은 걸로 주고, 쉬는 시간도 딱딱 챙겨 주고. 우리한테 와서 동물 학대다 이러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예요.”



라오스에서 벌목에 동원되고 있는 코끼리. 아무리 힘이 센 코끼리라 해도 벌목은 굉장한 노동을 필요로 한다. ⓒKBS, 환경스페셜 <라오스 코끼리의 눈물> (2012.9.12) 


실제로 벌목은 중노동이다. 코끼리들은 무거운 나무토막을 지거나 끌며 산을 오르내리다가 많은 부상을 입는다. 특히 다리를 다쳐 일어나지 못하면 스스로의 몸무게에 짓눌려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런데도 주인들은 코끼리를 제대로 치료하지도 않고 죽게 내버려 둔다. 평생 고된 일을 하다가 기운이 다하면 버려지는 것이 대부분의 라오스 코끼리들의 운명이다. 그래서 라오스에서는 오히려 코끼리 관광이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코끼리들을 구출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라오스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루앙프라방 근처에 위치한 코끼리 마을(Elephant Village)은 코끼리 보호 프로그램을 표방하는 곳이다. 코끼리 구조, 빈곤층 취업, 환경 보호라는 세 가지 목적을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코끼리 마을의 홈페이지에서는 care, protection, rescue, support 같은 단어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코끼리 등에 올라타 숲을 지나고 강을 건넌다. 간단한 코끼리 조련시키기와 코끼리 목욕시키기도 체험할 수 있다. 코끼리 마을에 사는 코끼리는 아홉 마리다. 모두 과거에는 위험한 벌목 활동을 하던 코끼리들이다. 라오스 전역에서 이렇게 관광에 이용되는 코끼리는 수십 마리뿐이다.4)

하지만 관광 산업화를 통한 코끼리 보호에 코끼리 공연은 포함되지 않는다. 코끼리가 학대에 가까운 훈련을 거치지 않고서는 공연이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훈련을 마치고 공연에 투입된 다음에는 벌목을 하는 것보다 훨씬 편한 나날이 펼쳐진다 해도, 어린 코끼리가 훈련 과정에서 받은 트라우마는 평생토록 이어진다. 단 한 번의 파잔 의식이 코끼리의 일생 내내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온 코끼리들과 조련사들은 같은 딜레마를 안고 있는 셈이다. 현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나은 환경, 하지만 절대적으로 낫다고 하기에는 물음표를 던지게 되는 환경. 이것은 모든 이주 노동자가 마주칠 수밖에 없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1) KBS1 「'환경스페셜 - 코끼리, 벼랑 끝에 서다」(2006.2.22)

  ‘Asian Elephant Conservation Charity’ www.eleaid.com


2) www.scienceray.com 「The Phajaan Method of Elephant Training」


3) 한겨레신문 「철봉하는 곰…공 굴리는 사자…두 발로 선 코끼리」(2012.5.5)


4) Newsweek 「Seeing the World From on High」(2009.6.22)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