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쓰는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어두운 회고
이응준의 문장전선 1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가장 인문학적이고 가장 급진적인 성찰!
나는 이 글들을 쓰면서 영국 작가 콜린 윌슨의 세계적인 출세작 『아웃사이더』를 무슨 시집 읽듯 자주 펼쳐보았다. 노동자 출신인 그는 침낭으로 노숙을 하면서 대영박물관의 독서실에 다니던 중 우연 같은 운명처럼 작가 앵거스 윌슨에게 발탁돼, 스물네 살이던 1956년에 저 평론집을 출간할 수있었다고 한다. 나는 만약 런던의 그 청년 콜린 윌슨이 2013년의 내가 되어 통일 대한민국에 대해 글을 쓴다면 과연 어떠할 것인가, 하는 ‘감각’을 상상하면서 이 글들을 썼다. 나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지식보다는 우선 한반도 통일에 대한 ‘어떤 자극’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증오이자 인간에 대한 염려였다.
1. 통일은 죽음이다
통일에 대한 전혀 새로운 차원의 인문학적 고찰
우리는 왜 ‘통일’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통일에 대해 인 문학적으로 고찰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에 대한 대답 중 하나는 이 책 말미의 부록 대담 중에 등장한다.
“저는 한마디로 통일은 죽음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죽음하고 비교해야 될 것 같아요. (...) 통일되면 우리가 다 죽는다는 뜻이 아니라, 누구나 닥쳐오는 걸 알고 있는데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는 거예요. 한번은 맞이해야 하는 거죠.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의미에서 봤을 때 죽음이나 마찬가지인데, 사실 종교적으로 보면 통일 대박은 목사들이, 주님을 따르는 자는 죽고 나면 천국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이러는 거랑 똑같거든요.”(144쪽, 부록 대담 중 주성하의 말)
통일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용기와 상상력, 그리고 탐 구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긴급하고도 복잡한, 정답 없는 난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해관계에 따른 산수를 계산하거나 정파성에 입각해 모범답 안을 외우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고도의 선이해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 속에 거울을 가지고 있다. 그 거울로 말미암아 자신의 결점과 여러 약한 곳을 확실히 볼 수 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거울을 향해 개와 같은 짓을 일삼고 있다. (……) 자기를 향해 짖든지 물어뜯는다.”고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 이 둘은 통일 대한민국 안에서 서로가 서로의 거울일 것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요,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국가를 이해하는 것이요, 그것이 곧 통일을 대비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자각할 필요가 있다. 플라톤은 갈파하지 않았는가. “국가도 인간과 다를 것이 없다. 국가도 인간의 가지가지 성격에서 만들어진다.” (59쪽)
통일에 대해 다루는 책 치고는 이례적으로 동서고금의 문사철 문헌에 대한 인용이 많지만, 통일에 관한 인문학적 논의 란 단순히 그런 참조를 넘어 근본적인 성찰을 지향한다는 뜻 이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성찰이란 가장 통합적인 접근이 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 사회문화적, 종교적 영향관계의 총체적 합을 고려한다. 가령 통일 이후 (북한 권력층에 대한) 과거 청산과 사적 보복의 문제를 고민하는 대목에서 이러한 접근의 미덕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신조차 과거를 개혁할 수는 없다.”고 읊조렸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관은 진정 온당한 것인가? 그것은 비관이 맞기는 한 것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과거청산은 이 21세기에도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는 친일파 청산과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이 난해한 숙제일 것이다. 제국주의의 식민지인으로서 정복자에게 빌붙어먹은 것과 지옥에서 악마로 지낸 것은 차원이 다르다. 망해버린 그 지옥에서 악마였다는 것은 과연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자격 따위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에게 그것을 제대로 심판할 만한 능력이 있기는 한 것인가? 이 전대미문의 ‘루시퍼 이펙트(Lucifer effect)’는 대체 어떠한 합리와 법리로 다루어져야 할 것인가. 전체주의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저 악마의 시스템이 조종한 인간의 죄는 통일 대한민국의 사법부에게 깊은 회의와 붕괴에 가까운 한계를 절감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더욱 끔직한 사실은, 공적 심판의 기능을 상실한 사회에는 사적 보복이 횡횡하게 되리라는 점이다. 지옥에서 악마들에게 온갖 고초들을 당하면서도 기어이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지옥문이 바수어진 뒤 풀이 죽은 인간으로 되돌아온 채 뒷골목을 서성이게 된 예전의 그 악마들을 찾아내 살육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70쪽)
빅토르 마리 위고는 “복수는 개인의 일이며, 벌은 신의 일이다. 사회는 양자의 중간에 있다. 징벌은 사회보다 이상의 것이며, 복수는 사회보다 이하의 것이다.” 라고 『사형수 최후의 날』에 썼다. 우리 사회는 멀지 않은 미래에 징벌과 복수 사이에서 방황하며 괴로워할 것이다. (82쪽)
당연하면서도 흥미롭게도 미래(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은 필연적으로 현재의 대한민 국 내의 문제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이어진다. 북조선의 세 습 독재 체제와 남한의 왜곡된 기독교 권력 사이의 유사성 을 다루는 대목이나 남한 자본주의의 취약성을 다루는 대목이 그 예이다.
한 개인이 무슨 종교를 가지고 있건 간에 한국인들의 정신을 일제히 지배하는 종교적 무의식의 생리는 무속, 곧 샤머니즘이다. 이 강렬한 에너지가 해방 이후 이남에서는 자본주의와 개신교 사이에 스며들었고, 이북에서는 근대화에 실패해 왕조로 퇴행하는 공산 전체주의에 물들어버렸다.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제일 이단이 많은 것도, 부흥성회에서 두 손을 높이 쳐들고 통성기도하는 신자들의 사진과 김일성이 죽었다고 평양 김일성 동상 앞에서 울부짖는 인민들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면 대체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는 것도 다 샤머니즘 탓이다. (113쪽)
나는 『국가의 사생활』을 쓰는 내내 분명 통일 이후의 미래를 쓰고 있었는데 막상 우리의 현실을 쓰고 있다는 착각에 종종 빠져들었고 알고 보니 그것은 상당 부분 사실이 그러했다. 특히 ‘대동강’이 거주하는 빌딩 지하층 화덕 같은 것에 치를 떠는 독자들이 나는 내심 참으로 이상했다. 남한 사회에 지존파가 발생한 것이 1993년도다. 그들을 이런 악마로 양육한 것은 자신을 억울하게 소외시키는 세상에 대한 분노, 그것이었다. 우리는 악마의 거울 앞에서 좀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34쪽)
2. 통일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고도 에센셜한 가이드북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추상적인 주제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통일에 관한 어떤 책들보다 도 더 꼼꼼하게 북한 정권의 성격에 관한 여러 분석들, 북한 현실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 독일 통일 과 정에서의 다양한 사례들을 비교, 참조하고 적절하게 예시한다.
필연적 역사로서 통일(북한 붕괴) 이후 벌어질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총망라해놓은 이 책에서 독 자들은 군사 통합의 문제, 북한의 상층부 권력자들의 문제, 지역 불균형의 문제, 민족주의 내부와 외 부의 증오 문제, 과거 청산 문제, 사적 보복의 문제, 북한 경제의 자본주의화에 따른 문제들을 모두 일 별하고, 그 문제들의 핵심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책 말미의 대담(주성하 기자와의 대담) 역시 그러한 가이드북의 성격을 더욱 단단하게 해준다.
북한의 지하자원 매장량이 금 2000톤으로 세계 10위, 마그네사이트 60억 톤으로 세계 1위, 우라늄 2600만 톤으로 비공식 세계 1위 등등 그 가치가 총 7000조 원이라고떠벌리는 북한학과 교수님의 착한 표정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 괴롭다. 바로 그러한 말을 하고 있는 그 마음 때문에 우리가 엄청난 불행을 겪게 되리란 걸 웬만한 머리로는 감각할 수 없나 보다. (20쪽)
통일 후 과거 북한 지역은 생산성 있는 인구가 남아 순리대로 개발될 것인가? 서울이 아닌 도시를 번영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는 지금 대한민국의 지방분권, 지방 성장의 몰락을 보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세종시 하나가 일으키고 있는 온갖 말썽들을 보면 딱 안다. 인구는 본시 직업이 있는 대도시로 몰려들게 돼 있는 법이다. 이북 사람들이 수도권에 우글거리는 동안 이남 사람들 역시 이북으로 자주 오가기는 할 것이다. 부동산 투기와 유흥 분탕질과 자연 파괴 등등 못된 짓들 하러. (45쪽)
지금도 교실에 가보면 동독 출신 부모를 둔 학생들과 서독 출신 부모를 둔 학생들 간에는 어색한 언어적 차이가 존재한다. 남한과 북한처럼 인류 역사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잔인무도한 전쟁을 치른 사이도 아닌 주제에, 그토록 예쁘고 깜찍한 방식으로 고작 41년 동안 분단돼 있었다고 말이다. 이러니 내가 통일 독일의 사례들을 통일 대한민국에 비교, 적용하다가 불쑥불쑥 허탈해지는 나머지 자주 캄캄하고 긴 명상에 들어가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51쪽)
북한에는 통일 뒤 인수할 만한 기업이 아예 없으니 도리어 기뻐해야 할까? 웃어넘기기에는 이 아량이 지나치게 우울하다. 남한의 부정부패가 서독의 부정부패보다 더 심각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남한 자본주의의 무자비함이 북한이라는 신개척지를 발견했을 때 자행할 만한 모든 불법적, 투기적 상황들에 대하여 우리는 미리 반성해두어야 한다. 공산 전체주의 사회의 모든 재화들을 자유시장경제화하는 데에 필요한 온갖 과정들과 그 결과들을 세심히 연구해두어야만 할 것이다. 남한 자본주의의 건강성을 서둘러 확보하고 여러 취약성들을 확실히 개선하지 않는다면 통일 대한민국은 지금 남한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강력한 경제적 비도덕에 휩싸여 신음하게 될 것이다. (88쪽)
주택·토지 반환 청구는 베를린에서만 60만 건이 집중되었고 베를린 시내 일부 지역에서는 주택 세채 중 한 채가 소유권 분쟁에 휘말렸다. 상황이 날이 갈수록 격화되자, 동독 지역의 서민 정당인 동맹 90(Bundnis 90)의 지구당 위원장이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자살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는 유서에서 주택 원소유주가 가해온 압박을 기술하면서 “가족을 재난으로부터 지켜야 할 가장으로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공개적 죽음”이었노라 절규했다. 남한에는 아직도 이북 지역의 땅문서, 집문서 등이 보관돼 있는 집안이 적지 않다. 500만 실향민과 그 후손 가운데 한반도 분단 과정에서 북한 공산당에게 빼앗겼던 재산에 대한 미련 이상의 재취득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친일파의 후손들도 제 잘난 선조의 땅을 척척 되찾아가는 대한민국이다. (93쪽)
3. 문화전체주의와 문화상업주의의 대안을 만드는 문장전선 시리즈의 첫 권
이 책은 문화전체주의와 문화상업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사회비평 논픽션 시리즈 문장전선의 첫 번째 권이기도 하다. 분단 내지 통일은 우리 사회와 삶에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무관심하다는 이유로, 또 그에 대한 발언이 깊은 성찰보다는 성급한 편가르기로 흡수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실 자체가 한국 사 회, 한국 문화가 당면하고 있는 고질적 문제들이 무엇인지 역으로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념적 선명성을 강요하며 정말로 근본적인(radical) 성찰이나 비판을 무력화시키는 세태와 문화전체주의는 같은 토양 에서 자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장전선 시리즈는 앞으로도 이렇게 한국 사회의 중요하지만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문제들을 골라 근본적으로 성찰함으로써, 편리하고 익숙한 정답을 거부하는 독자들을 호명하고자 한다.
해방 이후 줄곧 좌익과 우익의 백병전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에서 남북통일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무조건 골치 아픈 일이다. 이 이상한 나라에서는 혁명가로 사는 것보다, 애국지사로 사는 것보다, 자유주의 날라리로 사는 것이 훨씬 더 힘들어서, 통일의 질식할 것만 같은 당면 과제들을 조목조목 털어놓으면 잘해봐야 반민족주의자이거나 반통일주의자로, 운이 더 잘 풀리면 그 둘 다로 매도당하기 십상인 것이다. 이는 뼈아픈 전제다. 사람들은 대부분 통일에 대한 이해타산이나 두려움을 자기도 모르는 아전인수로 전환, 애먼 신경질을 마구 부리는데, 이런 것을 일컬어 불가에서는 전도몽상이라고 한다. (16쪽)
북한에 시인이자 소설가인 파스테르나크나 소설가 솔제니친, 시인 요시프 브로드스키 같은 문인들이 여태 살아 있다면 그들은 황석영 같은 소위 ‘민족작가’와의 술자리가 아니라 전부 강제수용소에 있을 것이다. 진정한 좌파 작가가 충실한 좌파 작가로서 처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으나 연예인병에 걸려 있는 안하무인파 작가가 좌파 코스프레를 한다고 해서 진보적 지식인이자 멋쟁이 혁명가로 둔갑해 세상과 예술을 끝까지 속일 수는 없다. (128쪽)
지은이 이응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국어국문학과 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0년 계간 『문학과 비평』 겨울호에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다」외 9편 의 시로 등단했고, 1994년 계간 『상상』 가을호에 단편소설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를 발표하 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시집 『나무들이 그 숲을 거부했다』, 『낙타와의 장거리 경주』, 『애인』, 소설 집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무정한 짐승의 연애』, 『약혼』, 연작 소설집 『밤의 첼로』, 장편소설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 『전갈자리에서 생긴 일』, 『국가의 사생활』, 『내 연애의 모든 것』, 소설 선집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 등이 있다. 2008년 각본과 감독을 맡 은 영화 「레몬 트리(Lemon Tree)」(40분)가 뉴욕아시안아메리칸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 파리국제 단편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 2013년 장편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이 SBS 16부작 드라 마로 제작 방영되었다. 문화무정부주의 조직 ‘문장전선’을 창설했다.
차례
작가의 말
1. 노아의 홍수 이후를 위한 서문
2. 사라진 나라에서 온 유령 십자군들의 그림자
3. 폐허가 될 것인가, 광야가 될 것인가
4. 인간이라는 거울 속의 어둠, 국가라는 거울 속의 인간
5. 역사적 혼돈의 파괴공학
6. 복수하는 자들과 반역했던 자들의 지옥별에서
7. 행복과 불행의 변증법을 꿈꾸며
8. 운명의 주인인 국가와 운명의 노예인 국가
9. 고래 배 속에서 촛불을 밝히는 일
10. 강철 무지개 위에 서 있는 우리들을 위한 후기
부록. 고래 배 속에서의 촛불 대담: 이응준 주성하 대담
참고 문헌
문장전선 강령
인터넷 서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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