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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새벽의 인문학, 겨울

<새벽의 인문학> 겨울 : 결정

※ [새벽의 인문학, 겨울]은 다이앤 애커먼의 『새벽의 인문학』의 '겨울'을 옮겨온 연재글 입니다.




<새벽의 인문학> 겨울

: 결정



지은이│다이앤 애커먼

옮긴이│홍한별



ⓒ pixabay


  새벽과 함께 꾸덕꾸덕한 추위가 찾아온다. 금속은 차마 만질 수가 없고, 숨이 기관지 깊숙한 곳을 할퀴고, 폐에 성에가 생기지 않게 공기를 데우려고 목둘레에 목도리를 두른다. 사람은 날씨에 따라 옷을 입고 필요하면 날씨를 피할 수 있으니 운이 좋다. 지평선 위 낮게 뜬 겨울 해가 장려한 얼음 무리(대기 중에 떠 있는 얼음 입자들이 빛을 반사 또는 굴절하여 생기는 빛의 고리. 이때 해 양쪽에 빛의 덩어리가 생겨 무지개처럼 보이는 것을 해가 여러 개로 보인다는 뜻에서 무리해라고 하고 둥근 모양이기 때문에 환일(幻日)이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sun dog이라고 한다.─옮긴이) 한가운데에 날카로운 동공처럼 박혔다. 양옆은 무리해가 충실하게 받치고 있다. 이런 무지개 웅덩이를 왜 "해의 개(sun dog)"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해를 따라다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700년대에 누군가 그런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진다. 대기권 위쪽에서 조그만 결정들이 얇은 육각형판이나 육면체를 만드는데 그게 지구로 떨어지면서 얼음 프리즘처럼 빛을 굴절하고 반사시켜 해 옆 구름 사이에 무지갯빛 덩어리가 생긴다. 오늘 아침에는 해무리 위쪽에 멋진 호가 빛나고 아래쪽에 눈부신 해기둥까지 있다. 하늘에서 어딘지 모를 곳에서 떨어진 조그만 얼음 결정들이 춤을 춘다.



ⓒ pixabay


  산책 나갔다가 낙엽 모둠 위에 놓인 작은 가지 위에 병 닦는 솔 모양의 얼음 결정을 보았다. 하지만 땅에는 서리가 내리지 않았고 몇몇 나뭇가지들만 이런 고운 프릴 같은 얼음 장식을 달고 있다. 너무나 작고 섬세해 머릿속에서 정반대의 것이 떠오른다. 지구에서 발견된 가장 큰 수정, 멕시코의 은과 납 광산에 묻혀 있는 수정이 생각난다. 땅 및 수백 미터 깊이에서 광부들이 거대하고 완벽한 셀레나이트 수정으로 가득한 굴 두 개를 발견했다. 대부분은 폭 90센티미터 길이 15미터 정도였다. 셀레나이트라는 이름은 달의 여신 셀레네에게서 따왔다. 거대한 수정들은 깨진 거울에 반사되는 빛처럼 눈부시게 빛난다. 누가 훔쳐가거나 파괴할까 봐 광산회사에서는 수정굴의 위치를 비밀로 하고 있다. 사실 이 굴 안의 기온은 섭씨 65도에 습도 100퍼센트로 치명적이라 함부로 접근할 수도 없다. 감춰진 달 여신의 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다. 우리 발아래 또 어떤 신비가 잠자고 있을까?


  눈이든 셀레나이트든 결정체들은 세포처럼 자라난다. 작은 덩어리로 시작해서 한 층 한 층 더하고 복제되고 모여든다. 떨어진 열매 주위에 새들이 모여들듯이,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다가 점점 촘촘해져서 큰 떼거리가 된다. 마찬가지로, 조그맣고 연약한 눈 결정이 공기 중에서 물 분자를 끌어들여 결정을 더 만들어낸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자라나는 결정이 텐트들이나 산맥처럼 보인다. 결정은 여러 가지 모습일 수 있다. 얼음, 석영, 인슐린, 수선화 수액(독한 결정이 들어 있어 먹으면 안 된다.), 운석, 다이아몬드, 석고, 형석, 가넷(기록상 가장 큰 것이 1200킬로그램이나 되었다고 한다.), 녹인 쇠(식으면서 결정을 이룬다.) 등. 물루아이트라는 광물은 1986년 서오스트레일리아 물루다운스에서 발견된 희귀한 청록색 결정인데 박쥐 배설물이 오래된 황화구리와 반응을 일으켜 형성된다! 전자공학은 반도체 재료인 단결정실리콘과 갈륨비소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시간은 수정 진동자로 측정하고, 음식은 소금과 설탕 결정으로 맛을 낸다. 일본 정원 연못에서 키우는 금빛 잉어는 물 표면 근처에서 먹이를 먹을 때는 거울 같은 결정을 반짝여 위장한다. 아이섀도나 샴푸에 들어 있는 윤이 나는 물질은 결정화되면 진줏빛으로 반짝이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구아닌으로 만든다.


  생존 기간이 짧은 어떤 박테리아는 몸에 진북과 진남을 가리키는 자성을 띤 철 결정을 지니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자성에 이끌려 땅속 깊이 들어가게 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생명체라고 하는 바이러스도 결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우연하게도 특히 눈 오는 계절, 결정들의 환상곡이 울려 퍼질 때 사람 몸 안에서 번성한다. 전에는 겨울에 독감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까닭이 사람들이 실내에 있으면서 같은 공기로 숨을 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겨울이 독감 천국인 까닭은 바이러스가 차갑고 건조한 공기 중에서는 열기구처럼 작은 물방울에 안정적으로 매달려 멀리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차가운 공기가 독감 바이러스를 태우고 우리 폐 속으로 들어오면 바이러스가 얼른 착륙한다. 여름에는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축 처져서 땅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겨울에 따뜻한 방안에서보다 지하철 타러 가는 길에 바이러스에 더 쉽게 노출된다. 게다가 비행기 덕분에 사람이 부화장 역할을 하며 비수기에도 독감을 기후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간다. 꿀벌도 몸속에 자성이 있는 결정이 있어 그걸로 길을 찾는다. 젖소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들판에서 풀을 뜯을 때 자북을 향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 pixabay


  벌처럼 바이킹도 결정을 이용해 길을 찾았다. 하지만 좀 다른 성질을 이용했다. 바이킹 전설에 따르면 구름 낀 날이나 겨울 어스름 때에 항해사가 '태양석'을 높이 들어 돌려가며 해의 위치를 찾았다. 이 신비로운 물건이 전해지지 않아 실체를 알 수 없지만, 몇몇 후보군이 있다. 스칸디나비아 해안에 흔한 결정인 근청석이나 아이슬란드에서 나는 빙주석(무색 투명한 방해석)이 유력하다. 바이킹들은 해 쪽을 향하면 파란색에서 밝은 노란색으로 변하는 결정을 해 나침반으로 사용하며 하늘의 패턴을 해석하는 법을 익혀 안개나 구름 속에서도 항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고대 아이슬란드의 영웅 전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날씨가 탁하고 비바람이 불었다. (…) 왕이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파란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 그러자 왕이 태양석을 들어 올렸고 돌을 통해 해가 빛나는 곳이 어딘지 볼 수 있었다." 태양석을 현대화한 도구가 군대에서 쓰는 스카이 컴퍼스다. 인공적으로 만든 편광 필터를 통해 방위를 찾는 장치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수정 가루를 약으로 썼고, 수정 그릇에서 나는 소리로 육체와 정신 세계의 조화를 북돋으려 했다. 몇 년 전에 갔던 온천에서 젖빛의 불투명한 수정 그릇을 글라스 하모니카(크고 작은 순서로 늘어놓은 유리 사발을 묶어 만든 악기로 벤저민 프랭클린이 고안했다.─옮긴이)처럼 연주하는 치유사를 만났다. 치유가사 고무망치로 그릇을 치자 멀리에 있는 시계탑 소리처럼 공명하는 울음소리가 났다. 고무망치로 그릇 가장자리를 훑을 때 다른 쪽 손을 올려놓는 위치에 따라 그릇에서 나는 소리도 달라졌다. 소리의 공명과 음조가 점점 커지면서 그 진동이 내 몸 안을 씻어 내렸다. 몇 분 뒤에는 소리가 너무 크게 느껴져 다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예 내 몸 안에서 떨리면서 음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육체도 거의 다 물이라, 소리가 몸 안에서 잔물결을 일으키며 뼈와 연골을 두드렸고, 그것이 공명하면서 소리로 마사지를 했다.



못된 수탉 한 마리가 농장을 망친다 (1)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