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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새벽의 인문학, 겨울

<새벽의 인문학> 겨울 : 못된 수탉 한 마리가 농장을 망친다 (1)

※ [새벽의 인문학, 겨울]은 다이앤 애커먼의 『새벽의 인문학』의 '겨울'을 옮겨온 연재글 입니다.




<새벽의 인문학> 겨울

: 못된 수탉 한 마리가 농장을 망친다 (1)



지은이│다이앤 애커먼

옮긴이│홍한별




ⓒ pixabay


  이따금 새벽에 수탉들의 세레나데를 듣기도 한다. 다만 오늘은 너무 일찍, 갱도처럼 깜깜할 때 홰를 치기 시작했다. 몸 안의 시계가 고장 난 수탉이 한 마리 있다 하더라도 다른 수탉들과의 합의 체계에 밀려 무딜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농부들 말로는 반대란다. 수탉 한 마리가 농장 마당 전부를 망쳐놓을 수 있다. 다른 배심원을 모두 좌지우지하는 말발 서는 배심원처럼, 인공조명이 있는 농장에서 살아 하루의 리듬이 흐트러져 박자를 놓친 수탉 한 마리 때문에 농장에 있는 수탉 전부가 새로운 스케줄에 따라 첫울음을 울게 될 수 잇다. 그러니 한밤중에 요란한 소동을 일으키기는 아주 쉽다. 호수 상류 쪽, 요트 클럽과 자연보존센터, 보이스카웃 여름 캠프장 너머에서 농부 한 사람이 빨간 볏 때문에 수탉을 사육한다. 무릎이 안 좋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주사를 만드는 데 핵심 원료이기 때문이다. 수탉의 볏에는 히알루로난이라는 당분자가 풍부한데 이 성분으로 관절염에 걸린 사람의 관절에 놓는 신비스크나 하이알간 등의 윤활 주사제를 만든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골짜기가 일곱 개, 대학이 두 개, 작은 읍내가 있다. 이것도 좋지만 농부들이 많아서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열렬한 유기농들도 있다. 스틱 앤드 스톤 농장을 운영하는 내 친구 루시, 초, 그리고 한 살짜리 딸 그레타도 그렇다. 그레타의 가운데 이름은 중국어로 "달 둘레의 무지갯빛 광휘"라는 뜻이라고 한다. 오늘 토요일 아침 아직 어둑한 때에 농장 옆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새벽이 푸성귀 사이로 스며드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신비롭다.



ⓒ pixabay


  지금은 호박, 단호박, 뿌리채소의 계절인데 이것들이 스틱 앤드 스톤의 이름난 생산물이다. 또 여러 종류의 비트도 기른다. 내가 어릴 적에는 비트 수프인 보르시치(우크라이나에서 먹는, 비트 뿌리로 만든 수프 ─옮긴이)를 자주 먹었다. 슬라브 지방 요리에는 비트가 빠지지 않고 들어가고 비트가 목감기나 감기 등에 약으로도 쓰였다. 비트 국물, 식초, 꿀을 섞어 입 안을 가시고 세이지와 비트 주스로 인후염을 가라앉히고 따뜻한 비트 즙을 귀 안에 한 방울 떨어뜨려 귀울음을 치료했고 머리가 아프면 비트 잎으로 이마에 찜질을 했다. 나의 증조부모님들도 폴란드 남부에 있는 작은 농장에서 비트를 재배하고 약으로 썼으리라. 그레타 나이 때에는 어떠셨을까? 증조부모님도 틀림없이 이 이상하게 생긴 채소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자갈길 위에 뽑아놓은 유기농 비트들이 배가 동그란 인형 같다. 스쿼시호박은 꼭지가 희한하게 구부러진 모습이 꼭 짐승 모양이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치켜 뜬 눈 같기도 하고 곤혹스러워 고개를 외로 꼰 듯도 하다. 또 빨간 무가 고양이 같은 갈망을 담고 사람들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자연은, 적어도 이런 때에는 행복해 보인다. 사람들의 착각이지만, 돌고래 입매가 웃는 것처럼 보이듯이. 어릴 때는 얼굴 표정에 자동적으로 반응한다. 어른이 되어서는 식물한테도 성격이 있구나 싶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치부하기는 아까워도 어쨌든 우스꽝스러운 생각이라고 자각은 한다. 마음에도 지하가 있어서, 거기에 가둬놓은 비밀이 있다. 그게 밖으로 드러나면 비웃음을 당하거나 더한 경우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울타리에 기대놓은 삽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른 아침 햇빛이 삽날 등골을 하얗게 비추어 두드러지게 메시지를 보낸다. 누군가 여기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고. 여기에서 동작을 멈추고 삽을 세워놓고 다른 일을 하러 갔거나 아니면 삽을 어디에 두었는지 깜박 잊어버린 사람은 누구였을까? 아니면 여기에 표시 삼아 세워놓았을까? 땅 한 뙈기의 절반만 갈았다거나 하는 뜻으로? 삽은 일의 상징이다. 아름답게 균형이 잡힌 날과 손에 딱 맞는 기다란 나무 손잡이. 새벽에 해야 할 잡일로는 방사 닭들을 풀어주고 새로 낳은 알을 모으고 배수로를 뚫고 케일, 옥수수, 뿌리채소를 수확해 씻어서 식당, 식료품 가게, 시장 등에 내다 팔 준비를 하는 것 등이 있다. 무수히 많은 아침마다 초는 아기 그레타를 품에 안고 낡은 트랙터로 경작지를 간다. 달은 무지갯빛 광휘를 두르고 떠 잇다. 그레타가 자라면 아빠와 같이 덜컹거리는 트랙터를 타고 다닌 것을 농장일로 기억할까 아니면 놀이로 기억할까? 그레타의 놀이방은 지평선에서 지평선까지 뻗어 있고 그레타는 털북숭이 친구들과 같이 네 발로 사방을 기어 다닌다.



ⓒ pixabay


  우리 이웃에 사는 조지와 루시아는 아이들이 밖에서 놀도록 내보낸다. 온 가족이 나와 앞마당에 있는 오래된 붉은단풍나무 가지에 매달려서 파랑새 집을 여남은 개씩이나 달거나 눈밭에서 신나게 미끄럼을 타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아이들이 플레이스테이션, 마이스페이스, 문자메시지의 세계 속에 사는 요즘 시대에 드문 일일 것이다.


  아이들은 언제나 실내와 실외로 이루어진 마음의 풍경 안에서 논다. 그래서 때로 실내에서 놀면서 집밖을 상상하기도 한다. 우리는 타고나는 꿈꾸는 성향 때문에, 어쩌면 삶의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놀면서 우리를 가다듬는 덕에 또 다른 괴물, 또 다른 고초를 이겨나갈 수 잇다. 우리는 배우고, 사랑하고, 자라고, 살아남기 위해, 재미있거나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놀아야 한다. 이는 다행히도 가장 엄밀하고 세세하게 따져보아도 재미있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못된 수탉 한 마리가 농장을 망친다 (2)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