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조화를 내게 돌려줘.
전에 어린이 책을 만들던 시절에는, 책에 들어갈 단어를 고르는 데에 훨씬 더 엄격했었다. 오죽하면 서로에게 농담으로 “사전에 없는 감탄사로는 감탄하지 말아라.”라는 농담까지 건네곤 했다. 꼭 농담만은 아니었던 것이, 정말로 우리는 책 속의 인물들이 사전에 없는 감탄사로 함부로 감탄하게 놓아두지 않았다. 어느 원고에선가, ‘으라차차!’라는 감탄사가 있었는데, 으라차차는 사전에 없는 감탄사여서 이 단어를 써도 될지,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다. 비슷한 감탄사로는 ‘영차!’ 정도가 있었는데, ‘영차!’로는 으라차차!의 느낌이 잘 살지 않아서 고민은 더욱 깊어졌었다. 당시 고민 끝에 결국 책에 영차를 썼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으라차차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책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어른 책을 만드는 요즘에는 감탄사에는 비교적 너그러워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전에 없는 단어를 책에 넣을 수는 없다. ‘사전’에 없어서 쓸 수 없는 단어는 여전히 하고많지만, 그 많은 단어 중에 내가 항상 아쉬워하는 것이 하나 있다. ‘ㅂ변칙형용사’의 모음조화다. 그러니까 지금은 사라진 ‘~와’로 끝나는 모음조화들. 예컨대, ‘아름다와’ 같은 단어들.
연원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ㅂ변칙형용사’에는 어법상 모음조화가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름다와’와 ‘아름다워’는 어딘가 느낌이 묘하게 다르다. ‘아름다와’는 어딘가 여성적이고, 감성적이고, 소박한 느낌이 배어나오는데, 그것은 도무지 ‘아름다워’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다.
모음조화는 아니지만 일본어에서도 그런 비슷한 어감의 차이를 발견한 적이 있다. 일본어에서 ‘~와’로 끝나는 단어는 여성적인 뉘앙스가 담길 때가 많다. 예컨대 ‘아리가또와’라고 하면 여성적 느낌이 묻어나고, ‘아리가또네’라고 하면 남성적 느낌이 더 많이 난다. 일본 여성들의 하이톤 목소리를 대입해서 상상해보면, 어감 차이가 더 확실히 드러난다. 그러니까 ‘아름다와’에는 ‘아리가또와’라고 할 때의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그래서 이런 ‘ㅂ변칙 형용사’를 볼 때마다, 이 아름다운 모음조화는 어쩌다 사전에서 방출되었을까, 하는 묘한 안타까움이 생긴다.
2013.1.24. 에디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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