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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完)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4-7) 축 탄생! 아기 코끼리 우치와 우리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by 최종욱, 김서윤


제 4부 코끼리, 빛고을 광주로 이사 가다


    7장 축 탄생! 아기 코끼리 우치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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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임신을 진단한 후 7개월이 흘러 2010년 5월. 이미 지난 3월부터 우치동물원은 분만 대기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외국에서 만든 코끼리 출산 비디오와 관련 도서를 참고해 출산 시나리오를 만들어 연습해 두었다. 분만 증세가 나타나기만 하면 곧바로 출산실로 옮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사이 쏘이와 봉의 젖은 더욱 불어나고 배는 더욱 아래로 처졌다.

하지만 새끼들은 눈치가 없는 건지 약을 올리는 건지, 분만 예정일을 몇 달이나 넘기고도 여전히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동물원 환경으로 인해 임신 기간이 길어졌을 수도 있다. 사방으로 개방된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끊임없이 접하다 보면 예민한 동물은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몸집이 큰 동물들은 주위 환경이 불안정할 때는 출산 시기를 조절해 분만 자체를 미루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걱정은 되었지만 그렇다고 코끼리용 분만 촉진제가 있는 것도 아니라 그저 쏘이와 봉만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5월 말의 어느 날, 쏘이가 식욕 부진 증세를 보였다. 귀 뒤쪽의 체온도 뚝 떨어졌다. 출산 징후가 아닌가 싶었지만 조련사들의 판단은 농약 중독이었다. 저수지 근처에서 베어 온 풀이 농약에 오염되어 있어 탈이 난 것 같다고 했다. 쏘이는 농약 중독에 효과가 있는 아트로핀 주사만 맞고 그날을 넘겼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쏘이의 증세는 그다지 호전되지 않았다. 조련사들은 아예 쏘이와 봉의 방 옆 복도에 잠자리를 만들어 놓고 돌아가면서 밤새 지켜보았다.

하지만 이것은 농약 중독이 아니라 출산 징후가 맞았다. 며칠 후 아침에 보니 쏘이 곁에 떡하니 새끼가 나와 있었다. 관련 자료에 나와 있는 내용과는 달리 별다른 증상도 보이지 않다가 새벽에 조용히 새끼를 낳은 것이다. 봉이 가슴도 훨씬 더 많이 나오고 배도 더 불렀기에 쏘이보다 먼저 새끼를 낳을 거라는 예상도 빗나간 결과였다. 사람도 저마다 체질이 다르듯이 코끼리도 마찬가지다. 사람 중에도 순산 체질이 있고 난산 체질이 있다고 하던데 쏘이는 쉽게 쑥쑥 새끼를 낳는 복 받은 체질이었나 보다.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일이었다. 코끼리 출산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관찰할 기회를 놓쳤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다음에 올 봉의 출산은 더욱 철저히 준비했다. 봉의 몸상태를 수시로 관찰했고 내실에는 CCTV를 설치했다. <TV 동물농장>에서도 촬영하러 오기로 했다.

쏘이가 출산한 지 약 일주일 만인 6월 11일, 이번에는 봉의 차례가 되었다. 지금부터 코끼리의 분만 과정을 시간별로 최대한 자세히 풀어 보겠다.


6월 2일 아침 봉이 안절부절못하며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자꾸만 뿌우우 하고 큰 소리로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임신으로 처져 있던 엉덩이는 더욱 처져 있었다. 오줌에는 회백색의 진한 아교성 물질이 다량으로 섞여 있었다. 이것은 임신 기간 동안 자궁 입구를 막고 있던 젤라틴양 마개 물질. 전형적인 분만 신호였다. 마개 물질이 배출되면 24시간 안에 반드시 새끼가 나오게 되어 있었다.

젖이 조금 나온다면 이제 곧 출산이 시작될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겠지만 퉁퉁 분 젖꼭지를 힘주어 짜 보아도 젖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조용한 내실로 봉을 데려갔다. 그리고 봉의 네 다리 중 두 개를 서로 묶었다. 태국에서는 코끼리가 새끼를 낳을 때 이렇게 한다고 한다. 흥분한 나머지 새끼를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특히 봉같이 초산인 코끼리는 그럴 위험이 더 크다고 한다.

내실 안에는 봉 혼자만 남았다. 한눈에도 봉은 통증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봉을 도울 방법은 없었다. 코끼리는 출산할 때 방해를 받으면 새끼를 잘 돌보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무도 내실로 들어가지 않고 CCTV 화면만 바라보았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TV 동물농장> 촬영팀 그리고 코끼리월드의 김회장과 정이사도 함께 자리를 지켰다.


6월 2일 오후 2시 봉은 오히려 진통이 잦아들어 잠잠해졌다. 언제 난리를 피웠느냐는 듯 느긋하게 풀까지 먹었다. 봉은 한밤중까지 기다리려는 모양이었다. 코끼리는 낮 시간을 피해 밤까지 분만을 미루는 분만 지연 현상을 보인다. 맹수들의 눈을 피해 안전하고 조용한 상태에서 새끼를 낳기 위해서다.


6월 2일 방 11시 봉의 진통이 심해져 갔다. 고통이 심하다 보니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숨소리도 거칠었다.

CCTV 화면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려니 슬슬 지루함이 밀려 왔지만 이제 분만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자리에 앉아 CC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식사도 그 자리에서 떼웠다.


6월 3일 새벽 3시 갑자기 봉의 엉덩이 위쪽이 불쑥 튀어나왔다. 안쪽에서 무언가 내려오는 것처럼 엉덩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차례로 볼록볼록해졌다. 새끼가 산도로 진입한 것이었다. 코끼리는 생식 기관이 복부에 위치해 있어서 태아가 엉덩이 라인을 따라 수직으로 내려오게 된다. 약 5분 후 복부에서 하얀 주머니의 일부가 쑥 빠져나왔다. 태반이었다. 이제 새끼는 거의 다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련사들은 담요를 들고 내실로 들어가 봉 곁에서 새끼를 기다렸다.

태반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펑 터졌다. 그와 동시에 새끼가 엉덩이부터 쏟아져 나왔다. 코끼리 새끼는 80퍼센트가 이렇게 엉덩이부터 먼저 나오기 때문에 태아 상태에서 거꾸로 되어 있어도 별 문제가 없다. 두 번째 진통이 시작되고 채 10분도 안 되어 이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었다. 외국의 자료를 보면 코끼리의 태아가 산도에 진입한 후로 분만까지 세 시간, 길게는 열두 시간이 걸린다고 되어 있던데 봉의 경우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순식간에 새끼를 낳았다.

새끼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조련사들이 잽싸게 새끼를 담요에 싸서 내실 한구석으로 옮겼다. 그리고 새끼의 몸에 남아 있는 분비물을 구석구석 닦아 주었다. 태국에서는 해코지를 막기 위해 이런 식으로 새끼를 일단 어미로부터 격리한다고 한다. 봉은 방금 전에 자기 몸에서 새끼가 나왔는데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소리만 질러 댔다. 그사이 조련사들은 새끼를 들어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아무리 새끼라도 코끼리는 코끼리인지라 장정 여럿이 달라붙어야 했다.

초식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벌떡 일어나 걸어다닐 수 있다. 새끼 코끼리는 갑자기 세상에 나온 것이 어리둥절한 듯 비틀비틀하는가 싶더니 곧 네 발로 버티고 서서 첫 걸음을 뗐다. 새끼의 몸이 건강하다는 증거였다. 새끼는 어미에 비해 참 작았다. 키가 70센티미터로 송아지 정도밖에 안 되었다. 물론 송아지보다는 훨씬 통통해서 80킬로그램이나 나가는지라 남자 네 명이 들기에도 벅찼다. 그래서 생김새가 송아지보다는 커다란 돼지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코의 길이는 30센티미터 정도로 아직 짧았고 커다란 회색빛 눈이 참 선량하고 귀여워 보였다.


6월 3일 오전 8시 새끼가 나온 지 다섯 시간이 지나자 태반도 완전히 나왔다. 조련사들은 태반이 다 나왔으니 이제 새끼에게 젖을 물려야 한다고 했다. 새끼는 조련사들에게 이끌려 어미 곁으로 바짝 다가갔다. 조련사들은 새끼의 코를 젖혀 새끼의 입을 어미의 앞다리 사이에 있는 젖꼭지에 맞추어 주었다. 그런데 봉은 자기 자식도 못 알아보고 완강히 피하며 새끼를 거부했다. 코끼리들은 서로 코를 말아 냄새를 맡으며 서로의 유대감을 표현하는데 전혀 그럴 기미가 안 보였다. 어미가 그렇게 나오니 새끼도 잔뜩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기만 했다. 할 수 없이 새끼를 다시 복도로 끌고 나왔다.

태어난 후로 계속 아무것도 못 먹은 새끼는 어미 젖 대신 사육사의 손가락만 자꾸 빨았다. 배고파할까 걱정되어 소젖을 짜듯 어미의 젖이라도 짜서 먹이기로 했다. 봉의 가슴은 겉보기에는 퉁퉁 부어 있는데도 의외로 젖은 조금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새끼의 건강에 필수적인 초유인지라 열심히 짜서 커다란 우유병에 담아 새끼에게 남김없이 다 먹였다. 새끼는 우유병을 쭉쭉 빨고는 더 달라는 듯 입맛을 다셨다.


6월 3일 오전 9시 다시 젖 물리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봉은 조금 더 부드러워지긴 했어도 젖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실패였다.


6월 3일 오전 10시 세 번째로 젖 물리기를 시도했다. 또 실패였다. 대신 계속 어미의 젖을 짜서 먹였다.


6월 3일 오전 11시 이제는 새끼도 어미의 곁으로 가지 않으려고 했다. 조련사들은 내실 한쪽에 울타리를 치고 새끼를 넣어 두었다. 어미와 새끼가 가까이에서 서로 냄새를 맡으며 익숙해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노력한 덕분인지 네 번째 시도 끝에 겨우 새끼는 어미의 젖을 빨기 시작했다. 봉은 그제야 새끼가 익숙해졌는지 피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때부터 모성 본능을 회복한 봉은 새끼를 끔찍이 사랑하는 진짜 엄마가 되었다. 정말 보기 좋은 그림이었다. 출산 후 가장 큰 고비를 넘기는 벅찬 순간이었다. 어미젖을 먹으며 자란 새끼는 생존율이 90퍼센트가 넘는다. 코끼리 출산이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음이 분명해졌다.



우치동물원에서 태어난 최초의 코끼리 ‘우치’. 우치동물원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쏘이의 새끼는 수컷, 봉의 새끼는 암컷이었다. 어머니는 달라도 아버지가 같으니 이복 남매인 셈이었다. 며칠 후 사육사들은 새끼 코끼리들의 다리에 무명실을 감고 온몸에 물을 뿌려 주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코끼리가 태어나면 하는 의식으로, 무명실은 우리나라의 돌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장수를 의미한다.

남매 중 오빠는 ‘우치’, 여동생는 ‘우리’라고 이름 붙여졌다. 우치는 당연히 우치동물원에서 따온 이름이고 우리는 ‘우리 코끼리’에서 따온 이름으로, 합해서 ‘우리 우치동물원’을 뜻했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우치와 우리는 우치동물원 역사상 최대의 자랑거리였다. 그리고 이 이름에는 새끼 코끼리들이 앞으로도 우치동물원에서 죽 살아가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SBS에서 방영 날까지 언론 통제를 부탁해서 코끼리들의 탄생을 더욱 대대적으로 홍보하지 못한 점이 조금 아쉽다.

그런데 이름에 담긴 희망과는 정반대로 코끼리들의 운명은 우치동물원으로부터 슬금슬금 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조금 뒤로 늦추어야 한다. 이 코끼리들이 이 땅에서 준 가장 큰 선물에 얽힌 사연이 우치동물원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