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마치고 오니, 활자들이 달려든다!
십여 년 전 장국영의 부고 기사를 무척 슬프게 읽었더랬다. 우연히 인터넷을 열었다가 장국영이 홍콩의 한 호텔에서 몸을 던졌다는 기사를 <씨네21>에서 읽고는 종일 울적했다. 아, 잘생긴 장국영이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다니.
얼마 전에 나온 주성철의 책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을 보고 또 그날의 기분이 떠올라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내가 장국영을 좋아해서 그 부고 기사가 그토록 슬픈 여운을 남긴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장국영의 부고 기사는 당시 시드니에 머물며 영어와 씨름하던 내가 아주 오랜만에 읽은 한글 원고였던 거다. 오랜만에 마주한 한글의 신선함 때문에 장국영의 죽음이 그토록 애잔했던 거다.
‘책 읽는 휴가’를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이라고 멋지게 이름 붙여준 김경의 책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을 읽은 뒤 나는 휴가를 맞아 여행을 떠날 때면 내 여행의 특징을 항상 저 콘셉트로 포장해왔다. 여행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지 않는 게으름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에 이만큼 근사한 이름도 없다. 어쨌든 그 게으름 때문에 생기는 공백을 메워보겠다고, 주섬주섬 책 몇 권은 챙겨가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디를 가든 배낭 속에 책이 있는 한 나의 휴가는 그 이름도 거창한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인 셈이다. 물론 그걸 남들에게 대놓고 뽐낼 만큼 뻔뻔하진 않아서 맘속으로만 몰래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휴가에는 왠지 이도 저도 내키지 않아 책 따위 챙겨가지 않기로 했다. 책은커녕 가이드북을 읽는 것조차 귀찮아서 활자라곤 한 톨도 읽지 않은 채로 일주일쯤 보냈다. 다행히 게으름의 공백은 책 말고 위스키로도 잘 메워졌다.
그러고 돌아와 무심코 책을 읽는데 ‘장국영 부고 기사’를 읽을 때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거다! 활자들이 엄청나게 신선하게 달려든다!
사실 평소에 그렇게 책을 열심히 읽는 것도 아니지만, 직업 때문에 활자들이 온 사방에서 읽어달라고 아우성치는 책상 앞에 늘 앉아 있는 탓에 그렇게 신선한 감각은 잊고 산 지 오래이다.
‘정서적 환기’라는 면에서, 이번 휴가는 그래서 퍽 성공적인 것 같다. 새삼 활자들이 신선해졌으니까.
그래서 당분간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은 떠나지 않기로 했다!
2013.5.14 에디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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