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책을 몇 권 만들었니?”
아는 편집자 선배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남편이 이렇게 묻는다고 했다.
출판사에 다니면 하루에도 몇 권씩 책을 만들어내고 온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하기야 서점에 매일같이 신간이 쏟아지니,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거기다 원고는 저자가 쓰고,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하고, 인쇄는 인쇄소에서 하니,
달리 할 일 없는 편집자는 하루에 몇 권씩 뚝딱 만들어내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
대체 책 한 권 만드는 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 하는 의문을 어떻게 풀어주지?
희한한 건, 일단 책이 나오고 나면, 나도 그 중간 과정을 까먹고는
대체 이 책 만드는 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납득이 안 된다는 거다.
원고는 저자가 썼고,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했고, 인쇄는 인쇄소에서 했는데, 대체 왜?
“책이 나올 때 제일 기쁘시겠어요.”
출판사에 다닌다고 하면, 종종 이런 인사치레를 받곤 한다.
‘콘텐츠’(?)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충 비슷한 인사치레를 받을 것 같다.
새 음반이 발표될 때 제일 기쁘시겠어요, 영화가 상영될 때 제일 기쁘시겠어요.
이런 인사치레를 받을 때마다, 나는 항상 어정쩡하게 답한다. 네, 뭐, 그렇죠.
내심을 말하자면, 그 순간이 ‘제일’ 기쁜 순간인지 잘 모르겠다.
따끈따끈한 책을 받을 때의 심정은 ‘아, 신 난다!’보다
‘나올 것이 나왔군’이 더 정확하다.
이게 편집자의 자질과 관계있는가 싶어 한동안은 살짝 걱정되었는데,
알고 보니 비슷한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안심을 했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산악인들도 막상 정상에 올라 거기 머무는 시간은
몇 분 되지 않는단다. 어느 밴드의 리더도, 앨범 만들 때는 신경을 곤두세워도,
막상 앨범이 나온 뒤에는 한쪽에 밀쳐둔단다.
중요한 건 목적지가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고
목적지는 열심히 가다보면 우여곡절 끝에 다다르게 되는 곳이다.
(뭐, 가끔 못 다다르기도 한다.)
이 말을 조금 근사하게 포장해서,
“저는 책이 나올 때보다, 책 만드는 과정이 더 재미나요.”
라고 얘기했더니, 어느 저자는
“그럼 우리 지금 재미나게 작업하고 있으니 원고는 좀 천천히 쓸게?”
라고 허를 찔렀다.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루에 한 권씩 만들든, 일 년에 한권씩 만들든,
과정이 중요하든 결과가 중요하든, 어찌됐든,
책이 나올 때에는 뭔가 일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번 주에 책이 한 권 나왔다.
썩 괜찮은 책이다.
0829. 에디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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