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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도서관 기행 (完)

한국 도서관 기행 (1) ~ 이진아 도서관 ①

한국 도서관 기행 연재 예고를 한 것이 언제인지...  기다리셨던 분들께 죄송합니다. 드디어 연재 시작합니다. [한국 도서관 기행] 연재 첫 번째 글은 바로 '이진아 도서관'편! (분량상 나눠서 올립니다.) 


한국 도서관 기행

by 강예린 & 이치훈


‘책을 처방해드립니다’ - 이진아 도서관 ①


6년 전 여름.

도서관이 완공되던 해의 여름방학, 아직 건축과 학생이던 우리는 이 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 한형우 선생님의 건축사무소에서 미술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진아 도서관은 당시 사무실의 주요 프로젝트였고, 완공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페이퍼 건축(paper architecture)’만 하는 학생들에게 도면에서 일어나 스물스물 현실의 옷을 껴입는 건축물이야말로 시크릿가든이다. 나 자신이 그 건물 설계자의 몸을 입어 건물을 둘러보기도 하고, 건물의 몸을 빌려 제대로 기능하는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자연스레 옆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 이야기를 곁눈질하고 귀동냥 하게 되었다.


치훈이에게는 더 더욱 이 건축현장이 의미가 있었다. 건축설계공모전 단계에서 이 도서관의 건축 모형을 만들면서 참여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으로 나무판과 아크릴을 잘라서 만든 건물의  1/50의 축척의 미니어처가 실물로 확대 되어서 떡하니 등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건’이다. 나무판을 대신해서 콘크리트와 벽돌, 나무목이 등장하고, 아크릴을 대신해서 유리창이 끼워졌다. 우리는 이 50배 규모의 차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이 어마어마한 차이에서 간과되기 쉬운 것들,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할 공간상의 선택들에 대해서 의견을 나눴다. 서투르고 과격한 목소리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밀란 쿤데라의 ‘불멸’에 따르면,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구축에 집착하는 것은 ‘불멸에의 의지’ 중 하나다. 건축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괴테와 괴테의 친구들과 다른 점은 시대의 명작으로 시간에 남기 보다는, 구체적인 땅을 딛고 공간 속에서 존재를 꿋꿋이 존재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여기서 쿤데라는 슬프게 지적한다. 불멸의 전제는 ‘죽음’이라고.

이진아 도서관도 한 사람의 죽음에서 시작되었다. 


슬픔의 수인 옆 도서관

이진아 도서관은 아버지가 요절한 딸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집이다.

시작은 이렇다. 언제나처럼 사업에 바쁜 아버지는 미국 출장 중에 연수중인 딸 진아와 잠깐 만나고, 라이온 킹 뮤지컬 보드 앞에서 사진을 한 장을 찍고 헤어졌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맞닥뜨린 것이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딸의 부고 소식이다. 8-90년대 다른 바쁜 아버지들처럼, 딸의 졸업식마저 챙겨가지 못했던 아버지에게, 타국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성장한 딸과 찍은 마지막 순간이란 사실은 딸을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뒤늦게라도 딸에게 성심성의를 보이고 싶다.

그래서 독서를 좋아했던 딸을 생각하며, ‘책의 집’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서대문구청에 도서관의 기증을 약속했다. 물론 조건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딸처럼 책을 읽어주기를 바랬을 따름이다. 책을 읽는 집은 박제화 된 공간이 아니다. 매일 사람이 드나들고 즐기는  공간이다.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공간은, 딸 진아를 기억해줄 매체로 충분하다. 은퇴 후에는 도서관에서 휴지나 주우면서, 그 집을 쓸고 닦을 것을 기약하는 아버지는 딸의 생일에 맞춰서 도서관이 태어나주길 바랬다.

건축가는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최대한 세심하게 배려했다. 우선 이진아 도서관의 ‘이진아’라는 글씨를 진아 씨의 필체에서 빌려왔다. 4층의 옥상정원에 심은 둥글레 꽃은 진아의 기일 여름에 맞춰서 매년 하얗게 피어난다.

개인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했지만. 아픔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살짝 공유시킬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추모가 아닌 태어남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도서관 본연의 역할을 잘하는 것만으로도 가족의 마음에 위안이 되는 것이므로. 

가족의 딸을 기억하기 위한 마음은 완공되기도 전부터, 여러 가지 훈훈한 에피소드들을 불러들였다. 그 중 제일은 세진 엄마의 이야기이다.


건축이 지어지는 1년 3개월 - 아버지의 딸에 대한 마음이 자라나는 과정을 똑같은 앵글로 기록해온 세진이 엄마의 84컷이 담긴 CD는 개관식 날에 맞춰서 편지와 같이 건축가에게 전달되었다. 84컷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도서관 부지에 땅이 파이고 1층 슬래브와 벽이 올라가고 또 2층, 3층, 4층이 올려지고, 벽돌과 나무가 붙고, 창문이 달리는 모든 순간이 기록되어 있다. 이만한 마음의 선물이 어디 있을까 싶어서, 건축가 한형우씨는 이 사진의 각도를 보고 추론하여 인근 아파트의 다정다감한 익명의 사진사를 찾아냈다. 그리고 고마움의 표시로 그 사진이 실린 건축 잡지를 선물하였다. 


‘책을 처방해드립니다’ - 이진아 도서관 ②에 이어집니다.




반비 블로그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도서관 기행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도서관 산책자
두 책벌레 건축가가 함께 걷고 기록한, 책의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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