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서관 기행 연재 예고 후, 한참이 지나 드디어 연재 시작! [한국 도서관 기행]에서 다루는 첫 번째 도서관은 바로 '이진아 도서관'입니다. (3편에 걸쳐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한국 도서관 기행 (1) ~ 이진아 도서관 ①편에 이어...
도서관인가? 감옥인가?
형무소 옆 도서관에는 책이 수감되어 있는가? 지식이 지혜로 교정될 때까지 세상에서 격리 되어야 하는가? 오욕의 역사를 거두어 내고 교정 기관으로만 경성감옥을 보자. ‘서대문감옥-서대문형무소-서울형무소-서울구치소’은 이름을 바뀌었지만, 시간을 이어 근대적인 처벌과 훈육의 공간으로 기능했다.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다면, 책을 읽는 것만큼 근사한 훈육은 없다.
독서는 인류학적인 불변사항이 아니라 특정한 행위와 공간 및 습관 속에서 구체화된 실천이다. 따라서 몸이 책읽기에 익숙하지 않는다면, 읽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 된다. 특히 윈도우 화면이 지면보다 강한 지금. 책이 사는 집 - 도서관은 책을 읽는 몸을 만드는 기계로서 중요하다.
실제로 이진아 도서관의 건축 평면은 교정시설을 유추한 것이다.
보이지 않은 감시자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수인들의 방이 빙 둘러져 있는 감옥처럼, 천창 밖 태양이 지켜보는 중앙의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책의 방들이 빙 둘러져 있다. 이는 도서관을 만들어야 하는 조건 중, 기존에 있었던 독립문 문화교실을 수용해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절반의 문화시설과 절반의 도서관이 반원을 그리며 서로 마주하고 있다. 따라서 아트리움의 주변으로 독서하러 온 사람과 문화교실 수업을 받는 사람들이 서로 힐끔 거릴 수 있다.
자연히 수업 마치고 책을 빌려 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고 한다. 필요가 독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책을 마주함이 독서를 발생시키는 것이라. 역으로 도서관 측에서도 요즘 추세인 멀티문화교육시설로 나가야하는 부담을 덜어내고 ‘책’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도서관 정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트리움의 천창에서 빛이 쏟아지고, 인왕산이 원경으로 살짝 보인다. 개관 식 이후 처음으로 온 것인데, 사람들이 사용한 건물이 더 정겹게 누그러져 있다.
건물은 사용되지 않아서 녹이 스는 것 보다는 많이 사용되어 닳아지는 것이 제 모습이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갖가지 법에 대한 알록달록 색동 안내판마저 친근하게 보인다.
눈살을 찌푸리고 적응을 하고 살짝 옆의 벽을 보면 도서관의 이름을 제공한 이진아씨의 얼굴이 슬쩍 보인다. 딸의 흉상 정도만 놓아달라는 아버지의 요청을 건축가는 이미지와 글씨가 더욱 오래 가슴에 새겨진다는 말로 설득하였다. ‘맑고 순진한 천진난만한’으로 진아 씨를 기리는 단출한 가족의 말이 어느 흉상보다 깊이 인상에 남는다.
놀이터인가? 도서관인가?
이 집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책 읽는 방은 모자열람실과 어린이열람실이다. 스스로 읽을 수 없고, 장시간 집중해서 앉아있을 수 없는 유아들을 위해 모자열람실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되어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자세로 책을 놀이감1) 삼아서 놀 수 있다면, 그 내용이 귀에 쏙 박히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한 여자 아이가 누워서 책 내용을 옹알거린다.
저 아이의 눈에는 책이건 퍼즐이건 분명하게 구별되지는 않겠지만 저렇게 듣다 보면, 이야기와 이미지가 어느 순간 철썩 붙어 버릴 것 같다. 아이들에게 전집, 특히 위인전집 같은 것을 사줘서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빼앗고 읽어야 하는 양에 지치게 하기 보다는 도서카드를 만들어서, 직접 고르도록 안목을 틔워주는 것이 더 현명하게 보인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은 ‘책 읽는 할머니의 스토리텔링’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호호아줌마의 ‘옛날 옛적’ 작아지는 비밀을 듣더라도 나중에 기억할 수는 없다. 그래도 비밀과 마법과 주술과 잘 모르는 나라의 이야기와 도시가 아닌 곳과 사람이 아닌 것의 이야기들이 뒤섞이면서 상상의 외연이 커질 것은 당연히 기대되는 바이다. 따뜻한 방바닥에서 기어 다니며 침을 흘리는 아이가 책을 통째로 삼킬 듯이 깨어 물고 있다.
이진아 도서관의 3600 여 소장서 중에서 1/3인 1200권 정도가 아이들을 위한 책이다. 그 최고의 이유야 이 동네가 고등학교 이전의 아이들이 많은 아파트 단지에 인접하여 있기 때문이겠지만, ‘책’은 회고 보다는 다음을 위해 읽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집을 지은 한형우 선생임도, 딸 아들을 데리고 가끔씩 책 읽으러 오는데, 제각기 앉아서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면 웃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중앙에 자작나무를 심게 된 것도, 아들에게 어떤 나무를 심을까? 라고 물어봤더니 ‘자작나무’가 좋다고 해서였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책을 읽는 부모가 아이에 미치는 영향만큼이나, 책을 읽는 아이 덕택에 책을 읽게 되는 부모도 생길 것만 같다.
공원인가? 도서관인가?
이진아 도서관이 지어질 때 공부하는 방을 만들자는 일부의 의견도 있었으나, 건축주의 ‘책 읽는 도서관’이어야 한다는 의지가 관철 되었다. 전과와 문제지처럼 남이 추려놓은 세상의 지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추려지지 않은 지식과 이야기를 탐구하는 것이 갖는 힘과 의미를 알리고 싶었겠지 싶어서 저절로 고개가 끄떡인다.
어른들이 책을 읽는 공간은 3층에 있는데, 문제집이나 고시 관련 책은 물론 외부의 어떠한 책조차 들여 올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이곳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들을 이 자리에 소화해내도록 사서들이 단속하고 있다.
들어가자마자 2층 높이로 전면에 공원을 품고 있는 창 앞에는 제각기의 책을 펼친 사람들이 앉아 있고 있다. 높은 천장에 개인적인 스탠드가 놓인 책상이라니, 한국에서는 참으로 낯선 도서관 풍경이다. 게다가 공원을 전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서가의 창문은, 책으로 지친 눈이 휴식할 수 있는 안식할 수 있는 도피처가 된다. 낮에는 따로 조명을 할 필요가 없이 햇볕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
창의 반대쪽에는 잘 분류된 책꽂이가 있다. 철학, 종교, 사회과학, 순수과학, 기술과학, 예술, 어학, 문학, 역사. 제일 많은 부분은 소설과 시였고, 의외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회과학과 역사이다. 에릭 홉스봄의 4부작을 비롯해서 ‘역시에 지고 삶에 이긴 조선 사람들’과 같은 조선시대 민족의 역사와 관련 있는 땅에 있는 도서관임을 상기시켜준다.
책꽂이를 길게 훑다가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1) 국어 표준어로는 장난감이고, 놀이감은 북한말이지만. 장난 보다는 놀이가 더 큰 말이므로, 놀이감이라 부르는 것이 어울린다.
한국 도서관 기행 (1) ~ 이진아 도서관 ③편에 계속됩니다. (이진아 도서관 이야기는 ③편으로 완결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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