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의 인문학, 겨울]은 다이앤 애커먼의 『새벽의 인문학』의 '겨울'을 옮겨온 연재글 입니다.
<새벽의 인문학> 겨울
: 그곳에 없으며 그곳에 있는 침묵
지은이│다이앤 애커먼
옮긴이│홍한별
ⓒ pixabay
우아하게 구부러진 팔 여러 개를 들고 사방으로 우주에 닿은 겨울나무가 동양의 신을 떠올리게 한다. 바람이 가지를 흔들면 지지않고 시든 마지막 잎 몇 장이 음산하게 속삭인다. 세상은 우리가 하는 말만큼 수다스러운 외국어로 가득하다. 단단히 굳은 형체 위로 지나가는 바람이 숱한 구멍과 굴곡에서 조율된 소리를 낸다. 누구의, 무엇의 숨을 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액체라도 상관없다. 소리는 물을 통해서도 잘 전해지기 때문이다. 수천 년의 침식과 침전을 통해 만들어진 카유가 호수는 늦여름에는 깊고 생명체로 가득하고 나름의 음조를 가지고 있어 물새와 개구리들이 물 위로 울음소리를 흘려보낸다. 소리는 얼어붙은 물 위로도 전달된다. 극지에서는 단단하고 평평한 눈밭 위로 목소리가 1킬로미터도 넘게 뻗어간다.
친구가 나를 고요한 휴식처로 초대했다.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고요한 곳이다. 새들은 노래하고 울부짖을 테고 나뭇잎은 바스락거리고 매미는 맴맴거리고 바람은 솨아 불 테니 말이다. 이런 소리들을 빼더라도, 아니 아예 은하계를 더난다고 하더라도 빅뱅에서 비롯된 배경음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전파망원경에는 이 소리가 걸걸하게 계속되는 한숨처럼 기록된다. 내가 고요하다고 한 것은 사람 소리가 없다는 말이다. 이곳에서는 소리 없는 의사소통조차 하지 않는다. 일본어로 하라게이(腹芸: 배우가 대사나 동작을 하지 않고 표정 등으로 심리를 표현하는 일 ─옮긴이)라고 하는 것, 보디 랭귀지, 몸짓, 얼굴 표정, 뜻이 있는 눈빛도 멈춘다.
"곧 적막이 전설이 되어버릴 것이다." 조각가 장 아르프가 「신성한 적막」에서 경고했다. "사람은 적막에서 등을 돌렸다. 날마다 소음을 증가시키고 삶의 정수, 사색, 명상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기계와 장치들을 만들어낸다. 빵빵거리고 악을 쓰고 빽빽거리고 쾅쾅거리고 삑삑거리고 짹짹거리며 자부심을 북돋고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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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번, 4월 어느 날에 발리 섬 사람들은 느예피 축일을 보낸다. 춘분에서 가까운 합삭 때이자 발리의 새해가 시작되는 날로 전국적으로 침묵을 지키는 날이다. 이날은 힌두교 명절로 자동차를 이용하건 제발로 걷건 돌아다녀선 안 되고(구급차량만 제외하고)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켜더라도 아주 작은 소리로 틀어야 한다. 동네 관리들은 사람들이 물가에 가지 못하게 한다. 일, 사교 활동, 성행위도 중단되고 섬 전체가 함께 침묵에 들어간다. 분주한 한 해 가운데 하루 동안만은 성찰하며 보내는 것이다. 이날은 새벽에 들려오는 소리도 다르고 냄새조차 다르다. 더 미묘한 냄새들을 덮어버리는 자동차와 트럭 배기가스가 사라지면 공기가 자연스레 향긋해지고 덩굴을 덮어쓴 숲의 푸른 냄새가 달콤하게 풍긴다.
느예피 동안에는 야생화 냄새에 둘러싸인 채로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자연의 균형을 바라보고 사랑, 공감, 다정, 인내에 대해 생각한다. 개들은 짖고 매미는 요란하게 울어대지만 거리는 이 소란한 섬에서 보기 드문 적막을 숨 쉰다. 그림처럼 액자에 든 침묵이다. 먼 우주의 정적도 어두운 방 안의 적막도 아니라 이루어내고 찾아낸 것이기 때문에 더 값지고 풍요한 고요함이다. 덧없음을 느낄 때, 모든 것이 순간순간 나타나고 사라지고 변화한다는 충격을 받을 때는 침묵에 '빠지는' 게 아니라 침묵을 겪고, 침묵을 만들어내고, 침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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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낡은 픽업트럭 철 지붕에 빗방울이 떨어진 뒤의 잠잠함. 고요라는 말 바로 앞에 오는 고요. 바로 그 뒤에 오는 고요. 풀장 물을 가르고 들어와 바닥에 기린 얼룩무늬를 만드는 빛의 고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더 이상 당신의 이름을 부리지 않을 때 존재하는 적막. 자던 사람이 떠났을 때 침낭이라는 고치 안의 정적. 먼지로 흩어진 사람의 DNA의 침묵. 전자현미경 렌즈로 들여다 본 뉴런의 고요. 전화통화가 끝났을 때 귀 안의 고적. 사랑하는 사람의 침묵으로 가득한 적요. 가지 않은 길의 말없음. 망원경으로 얼픽 본 은둔하는 하늘의 적막. 기도를 드릴 때 모아 주니 두 손 사이의 고요. 소금쟁이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조용함. 노른자처럼 노란 해가 새벽에 지평선 위로 떠오를 때의 정적. 가지지 못했던 아기 울음소리의 적막. 깊고 무거운 바다에서 수영할 때의 고요. 감은 눈꺼풀 위에 얹히는 눈송이의 고요. "그 생각을 적어줄래?"라고 말한 뒤에 허공에 감도는 적막. 그러니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날 위해서 적어줄래?"였을 때. 추운 아침 입김에 서리는 정적. 태어나기 전 당신 이름의 침묵. 거울의 고요. 의심(doubt)이라는 단어에서 b라는 글자가 지닌 침묵. 휴화산의 침잠. 멈춰버린 심장의 적막.
죽음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가방을 넣어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침묵이다. 걸을 때 팔꿈치 아래가 그 공간이다. 창문을 통해, 조용히 움찔거리고 잎사귀를 떨며 무언극을 펼치는 사시나무가 보인다.(유리가 소리를 막는다.) 내 죽음도 이렇게 동이 틀 것이다. 먼저 사시나무가 가물거리고, 다음에 시야가 흑백으로 퇴색하고, 바람 속에서 잎들이 점점 빨리, 하지만 고요하게 소용돌이치고, 나는 과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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