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의 인문학, 겨울]은 다이앤 애커먼의 『새벽의 인문학』의 '겨울'을 옮겨온 연재글 입니다.
<새벽의 인문학> 겨울
: 잘 보낸 시간 (1)
지은이│다이앤 애커먼
옮긴이│홍한별
이 짧은 새벽 동안에 정말 많은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난다. 렌즈 모양 구름이 떠서 높은 곳에 빠른 바람이 분다는 걸 알려준다. 지붕널은 비둘기 깃털처럼 차곡차곡 겹쳤다. 개가 부지런히 냄새를 맡으며 아침 신문 읽듯 냄새로 세상사를 파악한다. 나뭇가지와 창문턱에 앉은 새들은 바람을 마주 보고 있다. 그래야 깃털이 몸에 딱 달라붙어 바람에 날개가 들썩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장류 몇이 출근하러 길을 따라 걸어가며 사교성에서 우러나오는 몸짓을 하다. 이런 게 삶의 질감, 이 행성에 살아 있다는 느낌이다.
ⓒ pixabay
저녁때면 나는 주로 그날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특히 두드러지는 경험을 고른다. 맛난 레몬 셔벗처럼 상큼한 것일 수도 있고, 책에서 읽은 눈에 번쩍 뜨이는 구절일 수도 있고, 점심 무렵 토막잠처럼 평화로운 것일 수도 있고, 공기 중 먼지에 머문 비스듬한 햇살처럼 뜻밖의 것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기다렸던 편지처럼 가슴 뛰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멸종 위기에 처한 카카오 70퍼센트 다크초콜릿처럼 검고 매끈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초콜릿 포장지에 그려진 파란 나비가 카너블루임을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 될 수도 있겠다. 카너블루는 나처럼 이서커에 살았던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붙인 이름이다. 마지막 남은 카너블루가 지금 네세다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미국흰두루미들과 같이 살고 있기도 하다. 이상한 우연의 일치다. 이런 깨달음들을 말로 꾸며놓으면 기억 속에 저장하기 쉬워진다. 오늘 있었던 가장 좋은 일은 뭘까? 그날의 즐거움을 되새기다 보면 종종 놀랄 일이 생기기도 하고, 삶이 얼마나 충만하고 나날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힘든 날에도 평화, 즐거움, 기쁨의 덩어리들이 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세상을 흘릴 수는 없다. 세상은 나름의 마법을 부린다. 대신 주의를 깊게 기울이며 우리 자신을 흘릴 수 있다. 내 삶은 늘 변화하며, 나는 여러 차례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고, 사랑하는 사람의 병과 죽음을 경험했고, 존재의 소소한 부분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그렇지만 삶의 감각적 축제와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장도 무척 즐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오늘 전장에 신고 나갈 신발을 고르는 것부터 모든 일이 그 갈림길에서 빛난다.
Claude Monet, Water Lilies, 1906 ⓒ wikipedia
순간적인 것을 숙고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모네는 뒤집힌 풍화작용 같은 것을 통해 그것을 이루었다. 말하자면 결정이 자라나는 과정이랄까. 모네는 맨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붓질로 계속 덧칠 했고 마른 붓으로 표면을 훑어 표면이 흔들리는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어떨 때에는 캔버스 위에서 물감을 섞어 안료가 만나 섞이는 게 그림에서 보인다. 때로는 묵직한 붓질을 수직 방향으로 하여 얇게 칠한 층의 가장자리만을 건드리며 물결 모양으로 칠하기도 했다.
"얇은 층 위에 두꺼운 층"이 유화의 기본이다. 작품이 완전히 마르려면 각 층이 아래층보다 두꺼워야 하고 기름기는 더 많아야 한다. 아니면 그림이 갈라진다. 묽은 액과 달리 유화물감은 증발하면서 마르는 게 아니라 산화하고(녹이 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몇 달,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미술품 관리자들은 80년이 지난 유화작품만 완전히 말랐다고 본다. 모네는 순간을 그렸지만 그림이 안정되기까지는 거의 한 세기가 걸린 셈이다. 모네가 작품을 완성한 뒤에도 여러 해 동안,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에도 안료는 계속 움직였고 사람들 눈앞에서 보이지 않게 변하고 있었다.
잘 보낸 시간 (2)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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