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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完)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1-4) 서른 살 코끼리 쿤의 죽음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by 최종욱, 김서윤


제 1부 코끼리 인천 상륙 작전


    4장 서른 살 코끼리 쿤의 죽음




코끼리가 탈출했다고?


코끼리가 송도에 온 지 석 달 후인 2003년 10월 11일 오전 9시경이었다. 사육사들은 코끼리들을 수돗가로 데려가 물을 먹였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으레 하던 일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그 옆에 소풍을 나온 중학생들이 한 무리 있었다. 코끼리들이 한꺼번에 열 마리나 나타나자 중학생들은 신기한 마음에 와아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이 소리가 코끼리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들렸나 보다. 그중 네 마리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사육사들이 미처 진정시킬 틈도 없었다.

어찌나 빨리 달렸는지 코끼리들은 사육사들 눈앞에서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큰일이었다. 덩치 큰 동물이라 무방비로 길에 나서면 위험했다. 사람도 위험할 뿐더러 코끼리도 위험했다. 사육사들은 경찰서와 119 구조대에 신고했다.

경찰들과 119 구조대원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사육사들까지 모두 60여 명이 수색에 나섰다. 119 구조대 하면 보통 화재 같은 사고 현장에서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 내는 활약상을 떠올리지만 위기에 처한 동물을 구해 내는 것도 119 구조대가 크게 활약하는 분야다. 2011년 119 구조대의 구조 실적을 살펴보면 벌집 제거가 22.2퍼센트, 동물 관련이 11.2퍼센트로 화재 11.2퍼센트, 교통사고 9.7퍼센트를 능가한다.1) 동물 관련 구조 요청은 보통 “가로수 위로 올라간 애완용 앵무새를 구조해 달라.”, “길 잃은 고양이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달라.”, “안타까운 유기견을 구조해 달라.”라는 내용이다.2) 다양한 동물 구조에 동원되다 급기야 고양이를 구조하던 구조대원이 사고로 숨지는 일까지 벌어지자 이후 2011년 9월 9일부터 응급 상황이 아닌 애완동물 구조에는 119 구조대가 출동하지 않도록 관련 법률이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는 경우가 달랐다. 애완동물이 아닌 동물원 동물, 그것도 맹수가 탈출한 것은 명백한 긴급 상황이다. 동물원에서 동물이 탈출하는 일이 왕왕 벌어지는데 이때 특별한 규정이나 매뉴얼은 없다. 순한 동물은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편이지만 맹수의 경우에는 동물원 직원들만으로는 포획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119 구조대에 신고하게 된다. 훨씬 뒤의 일이지만, 2010년 12월 서울대공원에서 ‘꼬마’라는 이름의 여섯 살짜리 수컷 말레이곰이 탈출했을 때도 119 구조대원은 물론 경찰까지 수색대로 동원되어 9일 만에 간신히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 서울대공원에서 탈출한 말레이곰 ‘꼬마’의
        포획 장면. 당시 이 사건은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 송도 유원지에서의 코끼리 탈출 사건을 보도한 

    YTN 뉴스 화면. 이 사건은 지상파 방송이나 

    주요 일간지에는 보도되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나갔다.


하지만 코끼리 탈출 사건은 의외로 싱겁게 흘러갔다. 탈출한 네 마리 중 야외극장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던 코끼리와 유원지 정문 근처 실탄 사격장 앞에 있던 코끼리는 조련사들에게 이끌려 금방 공연장으로 돌아왔다.

나머지 두 마리는 유원지 밖 차도를 건너 계속 달렸다. 다행히 이날은 토요일이었고 더구나 이른 시간이라 길에는 차도, 사람도 거의 없었다. 두 코끼리가 발견된 곳은 청량산 골짜기였다. 청량산은 송도 유원지에서 1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해발 172미터의 작은 산이다. 이 코끼리들까지 공연장으로 돌아오면서 1시간 30분 만에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목격자도 별로 없고 인명 피해나 재산 피해도 물론 없었기에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남았다. 얼마 뒤 일어난 그다음 사건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 수준이었다.



코끼리가 주저앉았어요!


다른 일로 지방에 있던 김회장은 연락을 받고 황급히 송도 유원지로 향했다. 서울 사무소에 있던 정이사도 부랴부랴 송도 유원지에 도착했다. 코끼리 한 마리가 주저앉은 채 먹지도 못하고 있었다. 서른 살 먹은 암컷 코끼리 쿤이었다. 조련사들 설명으로는 이러고 있은 지 예닐곱 시간째라 했다. 코끼리는 계속 주저앉아 있으면 장이 눌려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 비상 사태였다.

일단 급한 대로 쿤의 배를 로프로 묶어 천정에 연결해 억지로 일으켜 놓았다. 당시 공연장에는 수의사가 상주하지 않았다. 코끼리들이 한국에 올 때 비행기에 함께 탔던 현지 수의사는 코끼리들이 무사히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돌아갔다. 우리나라에는 동물원을 비롯해 어떤 시설이든 수의사 상주를 강제하는 법률이 없다. 그래서 사설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수의사를 두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코끼리월드에서도 따로 수의사를 고용하지 않고 조련사들이 곧 수의사 역할까지 도맡아 했다. 노련한 조련사들은 기본적인 치료법이나 응급처치 요령을 익히고 있어서 평소에 코끼리들이 아프면 알아서 약도 먹이고 주사도 놓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련사들조차 속수무책이었다.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정이사는 인근의 동물병원들에 연락했다. 하지만 애완동물을 주로 진찰하던 수의사들에게 코끼리는 너무 낯선 존재였다. 동물원에 와서 코끼리를 진찰해 달라는 요청에 대부분 처음부터 거절하거나, 왔다가 아무 치료도 못하고 되돌아가거나, 주사제만 겨우 처방해주었다. 수의사들로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물을 섣불리 진찰하고 약을 처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반 동물병원 수의사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이번에는 코끼리가 있는 큰 동물원에 연락해보았다. 하지만 상황을 설명하자 동물원 수의사들도 그런 증상에 대해서는 모르겠다는 답변뿐이었다.

사람을 진료하는 의사도 그렇지만 수의사의 경우 특히 이론보다 실전 경험이 중요하다. 수의학과에서는 주로 우리나라에 흔히 기르는 동물들, 예컨대 개,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이나 소, 돼지 같은 가축에 대해서 가르친다. 실전에서는 이 동물들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응용해서 다른 동물에게까지 적용하는데 아무래도 세세한 면에서는 정확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처음 보는 증상에 맞닥뜨리면 수의사들은 국내외 전문 서적 찾아보기,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문의하기, 수의학 관련 외국 사이트 뒤지기 등의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하나씩 치료해 나간다. 그런 경험을 쌓으면서 수의사의 실력도 향상되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동물이 다양하지 않아 수의사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을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나마 동물원 수의사는 비교적 그 기회가 많은 편이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동물원은 대부분 해당 지자체 소속이라 동물원 수의사가 자주 교체된다는 것이다. 공무원 순환 보직은 장기 근무에 따른 부패를 없애고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지만, 동물원 수의사의 경우에는 전문성을 낮추고 경험 축적을 방해하는 부작용도 따른다. 그래서 코끼리의 경우처럼 특이한 동물에게 특이한 병이 발병하면, 더구나 그 병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내과 질환이라면 동물원 수의사라도 뾰족한 방도가 없다. 

그렇게 이렇다 할 처방도 받지 못한 채, 낯선 나라에서 앓기만 하던 쿤은 결국 일주일만에 숨을 거두었다.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면 혹시 쿤은 살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낯선 땅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간 쿤의 모습은 지켜본 사람들에게 많은 안타까움을 남겼다. 그 모습은 어딘가, 의료 서비스에서 소외된 이주 노동자를 떠오르게 하기도 했다.



코끼리를 ‘분해’하던 밤



코끼리는 지능이 높은 만큼 유대감도 강하다. 가족이나 동료가 죽으면 무리 전체가 한동안 깊은 슬픔에 빠진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조련사들은 애도할 겨를도 없이, 나머지 아홉 마리의 코끼리가 동요하지 않도록 얼른 쿤의 사체를 우리 밖으로 옮겼다. 덩치가 너무 크다 보니 사람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터라 지게차를 이용해야 했다. 일단 옮기고 난 후에는 코끼리의 사체를 처리하는 것이 또 큰 고민거리로 남았다.


▶ 야생 코끼리 무리. 코끼리는 나이 많은 암컷을 중심으로 수십 마리가 함께 살아가며 끈끈한 유대를 나눈다.


원래 라오스에서는 코끼리가 죽으면 그냥 들판에 방치해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하면 불법이다. 폐기물 관리법에 따르면 동물 사체를 아무 곳에나 버려서는 안 된다. 전염병에 걸린 동물 사체는 파묻거나 소각하고, 그렇지 않은 사체는 생활 쓰레기 봉투에 넣어 배출하거나 소각해야 한다. 사람이 죽어서 화장이 된다면 동물은 죽어서 소각이 되는 것이다. 소각하는 것도 그냥 아무 데서나 해서는 안 되고 지정된 소각업체에 의뢰해야 한다. 큰 동물원에서는 자체적으로 소각장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가족같이 키우던 애완동물의 사체조차 폐기물로 분류하는 데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일단 법적으로 동물 사체는 이 법에 따라 관리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에 코끼리 크기를 감당할 만한 ‘쓰레기 봉투’는 물론 소각로도 없다는 것이다. 코끼리가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자 원래 우리나라에 없던 동물이니, 그만한 소각로가 있을 리 만무했다. 코끼리를 소각하려면 소각장에 들어갈 만한 크기로 분해해야 했다. 이 작업에는 소를 다루는 도축장 직원들이 동원되었다. 이들은 톱으로 코끼리 사체를 수십 조각으로 분해했다. 톱질이 빠른 전문가들인데도 초저녁에 시작된 분해 작업은 새벽이 다 되어서야 겨우 끝났다. 정이사도 그 모습을 내내 지켜보며 겨울밤을 보냈다.

“코끼리 몸이, 이건 뭐 바위 덩어리예요. 그걸 전기톱으로 잘랐지요. 하도 딱딱하니까 자르다 보면 전기톱이 서 버려요. 전기톱을 갈아 가면서 잘라야 했지요. 휴, 힘들었죠.”

사체를 소각한 후 코끼리의 죽음을 환경청에 신고하는 것으로 사건은 공식적으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이 일이 코끼리월드에 남긴 여파는 컸다. 금전적인 손해도 손해지만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쿤은 그전까지만 해도 건강에 별다른 이상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렇게 갑자기 숨을 거두었으니 다른 코끼리들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할 수 없었다. 조련사들도 의기소침해했다.



코끼리를 ‘소 키우듯’ 키워야겠다!


그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코끼리월드의 대표인 김회장은 다시 의욕을 다졌다. 

“내가 내린 결론은, 코끼리들을 잘 먹이지를 못했다, 먹이에 문제가 있었다, 이거였지. 나도 시골 출신이니까 소 키우던 기억이 있어요. 이 코끼리들을 소 키우듯이 잘 먹여서 키워야 되겠다, 영양식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됐지.”



◀ 영화 『워낭소리』의 한 장면. 농경민족인 우리에게 소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코끼리의 죽음은 김 회장의 기억 저편에 있던 소에 대한 추억을 되살려냈다. 화가 이중섭의 유명한 「황소」그림을 비롯해, 소를 소재로 한 예술 작품, 문학 작품도 적지 않을 만큼, 소는 우리 민족과 깊은 인연을 맺은 동물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김회장 연배의 사람 중에는 어릴 때, 소를 살뜰히 보살폈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당시 농사짓는 시골 마을에서 소는 집안의 소중한 노동력이자 재산이자 벗이었고 어른은 물론 아이들도 여물을 챙기고 외양간을 치우며 열심히 소를 키웠다. 그렇게 소를 키웠던 경험은 ‘소중한 짐승을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의 원형이 되어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기억이 코끼리가 소는 아니지만 ‘소 키우듯’ 코끼리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이끌어 냈다. 마치 이웃에 대한 사랑이 인류애로 발전하듯 소에 대한 우리 민족의 남다른 애정과 애착은 ‘범동물적’ 공감대가 되어 코끼리라는 이주 동물을 돌보는 데까지 확장된 것이다.

대표의 결심에 따라 코끼리들의 먹이는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때까지 코끼리월드에서 코끼리에게 준 먹이는 수입한 건초가 전부였다. 이는 국내 동물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쿤의 죽음 이후, 건초 대신 조련사들이 직접 베어 온 생풀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주식 외에 영양식도 챙겼다. 쌀겨, 호박, 고구마, 당근, 건빵 등 좋은 음식을 아낌없이 주었다. 그중에는 실제로 김회장이 어릴 적에 시골에서 소에게 주던 그 음식도 많았다. 농가에서 나오는 여러 부산물이 들어 있기에 소의 여물은 상당한 고영양식이었다. 라오스에서는 비용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양파, 마늘 같은 자극적인 채소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자연식은 초식 동물에게도 잘 맞기 마련이다. 이후 근 10년 동안 다른 코끼리들이 모두 무탈하게 잘 지냈으니 ‘소의 기억’은 코끼리들의 생존에 큰 공을 세운 셈이다. 먹이가 달라지니 안 그래도 덩치 큰 코끼리들이 더욱 더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코끼리들의 영양 상태가 좋아졌다고 해서 관람객 수가 늘지는 않았다. 1년 만에 3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었다. 코끼리월드는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서울행이라는 승부수였다.




1) 소방방재청 「2011년 소방 구조 활동 실적 분석」(2012)


2) 경향신문 「“고양이․유기견 구해 달라” 몸살 앓는 119」(2012.7.9)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