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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에디터김의 워킹데이즈

인문학의 평행이론 : 우석훈과 지드래곤 편

인문학의 평행이론 -막 갖다붙이며 오바하는 글쓰기

명절에는 역시 예능! 
 
인문학의 평행이론 : 서동욱-신해철 편에서 이미 그 예능감과 입담을 과시한 편집자가 추석을 맞아 돌아왔다.


인문학의 평행이론 - 두 번째




우석훈과 지드래곤 편


사실, 그동안 꾸준히, 약간의 암시가 있어왔다. 20대를 ‘88만원 세대’로 호명하며, 본격적인 20대 담론에 불을 지피던 시절부터 우석훈은 지드래곤과의, 20여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평행이론을 서서히 예고해 왔다. 다만 그것을 눈치 채는 자가 없었을 뿐. 눈치 채기엔 단서들이 너무 깊숙이 숨겨져 있었기는 했다. 지드래곤의 열혈 팬들조차도 감히 그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번 책은 다르다. 버라이어티쇼와 음악, 드라마, 영화 등 한국 대중문화 전반을 훑으며 경제성을 따져본 뒤 20대가 비집고 들어갈 틈바구니는 없는지 찾아내는 데에 골몰한 책 『문화로 먹고살기』에서 우석훈은 평행이론의 증거들을 스스로 서슴없이 노출한다. 지드래곤이 한국대중문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인 상황이니 어떤 면에서는 노출이 불가피한 일이기도 했다.


『문화로 먹고살기』를 통해 비로소 수면 위로 드러난 평행이론은 아주 가벼운 말장난에서 시작한다. 우선 이 둘의 출신을 살펴보자. 지드래곤은 한국 아이돌 역사상 가장 뛰어난 그룹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빅뱅 출신이다. 언젠가 빅뱅의 소속사 사장님이신 양현석이 스스로 “빅뱅을 뛰어넘는 아이돌은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을 만큼 아이돌 그룹, 빅뱅의 역량이나 음악성은 수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에도 독보적이다. 위대한 탄생의 멘토, 방시혁이 언젠가 강연에서 ‘완전체 아이돌’의 출현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가 말한 완전체 아이돌에 가장 가까운 유형을 현재의 시장에서 찾는다면 누구라도 ‘빅뱅’을 꼽을 것이다. 그만큼 아이돌 그룹 빅뱅의 영향력과 가치는 엄청나다. 그럼 이 시점에서 우석훈의 출신을 살펴보자.『문화로 먹고살기』의 책날개에서 무심코 우석훈의 이력을 살펴보던 자는 화들짝 놀랄 만한 사항이 거기 있다. 우석훈은 역시, 놀랍게도, 지드래곤과 똑같이 ‘그룹’ 출신이다! 우석훈이 ‘무소속 경제학자’로 활동한 지 꽤 오래 되었기 때문에 그의 ‘이력’에 대해 의외로 무지한 사람이 많은데, 사실 우석훈은 우리나라 기업사에서 손꼽히는 ‘현대 그룹’ 에 잠시 몸담아 일한 적이 있다. 현대 그룹에 대한 개인적인 호오를 떠나, 재계에서 이 그룹의 영향력이 아이돌계의 빅뱅에 준할 만큼 독보적이라는 데에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 사람은 아이돌 그룹 출신으로서 그룹 활동을 넘어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전개하고 있고 또 한 사람은 대기업 그룹 출신으로서 역시 회사원으로서의 활동을 넘어 독자적인 출판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똑같은 ‘그룹’ 출신이라는 이 말장난 같은 사실에서 우석훈과 지드래곤의 평행이론은 시작된다.


기왕 출신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을 마저 짚고 넘어가자. 지드래곤에 조금이라도 호감이 있는 자라면,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자라면 지드래곤이 꼬마 룰라 출신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룹 룰라가 한창 인기 있던 시절, 이들을 따라 하던 꼬마 룰라 그룹이 있었고 꼬마 지용이가 거기에 있었다. 이 사실은 전 룰라 출신 고영욱이 어딜 가든 강조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런데 우석훈이 꼬마 룰라와 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 관련성은 『문화로 먹고살기』에 다음과 같이 여실하게 드러나 있다.


내가 과도하게 정권과 영화산업을 연결시키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런 점을 보여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미국 직배사에 배급망이 넘어가면서 초토화된 브라질 영화 시장을 룰라 대통령의 강력한 정책적 뒷받침으로도 구해내지 못했다. 내가 알기로 한 번 죽은 자국 영화가 다시 살아난 역사는 없다.


한국어의 통사적 흐름에서 ‘룰라’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그런데도 우석훈은 마치 꼬마 룰라 출신 지드래곤을 의식하기라도 한 듯, 한국 영화 시장을 분석하는 장에서 자연스럽게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언급한다! 그 문맥이 너무 자연스럽고 인용이 너무 적절하다 보니, 책 내용에만 집중해서 읽어내려간 사람이라면 미처 이 중대한 사건을 포착하지 못할 지경이다. 이렇게 되면 우석훈과 지드래곤의 평행이론, 점점 흥미진진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우석훈과 지드래곤의 평행이론은 미시적인 단어 차원이 아니라 거시적인 주제의식의 차원에서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평행이론의 검증을 위해 본격적으로 우석훈이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문화를 경제학으로 분석하는 이 책에서 문화의 역할을 어떻게 상정하고 있는지 잠깐 살펴보자. 모든 책이 그렇듯, 책의 주제의식을 빨리 알고 싶다고 해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빨리 읽을 필요는 없다. 그저 책 맨 앞의 서문 몇 장만 휘리릭 읽어보면 된다. 이 책의 주제의식은 서문에서도 다음의 이 문장에서 엿볼 수 있다.


문화경제학에서 나는 1차 생산자와 기획자를 모두 생산자의 범주에 두고, 이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부문별 문화생태계 그리고 전체적으로 하나의 생태계로 보고 이에 접근하려 한다. 다시 한 번 배에 비유하자면 항해하는 수많은 배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의 선단으로서 더 안전하고 재미있게 항해를 즐기도록 할까, 그것이 문화경제학의 시각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안전하고 재미있는 항해. 경제학자 우석훈이 문화를 재미있는 항해에 비유했다면 실제로 문화 산업에 풍덩 뛰어들어 종사하고 있는 지드래곤은 그 항해의 재미란 무엇인지 문화 생산물을 통해 직접적으로 증명한 바가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번 무한도전 ‘서해안고속도로가요제’ 편을 떠올려 보자. 가요제 이후, 다운로드 수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비공식 1위로 등극한 지드래곤의 노래 ‘바람 났어’의 랩 가사는 우석훈이 말한 안전하고 재미있는 항해가 무엇인지 소름끼칠 만큼 정확히 보여준다.


오늘밤 나 바람 났어 친구 따라 강남 갔어

UV는 이태원 갔어? 우리들은 홍대 왔어

발바닥에 불이 났어 정신 나간 우리라서

나 오랜만에 물 만났어 물고긴 줄 알았어


배를 타고 즐겁게 항해하는 것을 넘어 아예 자신이 물고긴 줄 착각하는 이 놀라운 경지. 이 경지야말로 우석훈이 『문화로 먹고살기』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가 아니겠는가! 우석훈이 책으로 구상하면 지드래곤은 음악으로 보여주는 이 절묘한 쿵짝! 평행이론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조화이다. 


이쯤에 이르면 우석훈은 이제 평행이론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지드래곤의 앞날에 대해 대놓고 아주 구체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평행이론의 지속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드래곤에 대한 질문이자『문화로 먹고살기』에 등장하는 한국 문화산업 종사자 대다수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가장 수익성이 높다는 아이돌 그룹의 경우에도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 가능한가? 물론 불가능하다. 최소한 걸 그룹의 형태로는 불가능하다. 이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면, 당연히 단기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메뚜기도 한철’이라지 않은가. 하지만 과연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서 적절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재충전하지 않으면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금방 소모되고 만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구경만 할 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음악을 계속할 방법을 찾아줄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런 질문의 다른 편에서 우석훈은 지드래곤을 비롯해 아이돌 그룹을 둘러싼 오해들에 대해 아주 경제학적인 해부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런 질문을 동시에 던지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온라인 음원 시장에서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아이돌 스타들이 등장한 탓에 음악 시장이 죽었다는 일부의 생각이 과연 옳은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무도 정확하게 분류하지는 못했지만, 일단 정부가 파악하는 바로는 현재 인터넷 음원시장에서 상위 60퍼센트를 이런 아이돌 스타들이 점하고 있다.……데이터만 보고 이야기하면 아이돌 스타들이 음악 시장을 죽였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이 질문에 대해 우석훈은 스스로 가설을 세워 답하고 있다. 우석훈은 대체 어떤 가설을 세웠을까? 그리고 그 가설은 지드래곤의 앞날을 어떻게 예측하고 있을까? 그 가설이 옳다면 지드래곤은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하며 우석훈과의 평행이론을 지속시킬 수 있을까? 평행우석훈과 지드래곤의 평행이론 지속 여부가 궁금한 자는 지금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문화로 먹고살기』를 구입하도록 하자. 이 책에 제시된 우석훈의 가설을 확인한 뒤 옳은지 그른지 직접 판단해 보시라.




p.s 지못미 지디……


사진 출처 : 지드래곤(머니투데이), 우석훈(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