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에디터김의 워킹데이즈

인문서로 뽐내기 2편 -무한도전 보면서 경제지식 뽐내기!

"인문서로 제대로 뽐내는 법"편을보신 독자라면 잘 아시리라. 설렁탕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가 아니라 책을 읽었는데 왜 뽐내지를 못하니? 비싸고 두꺼운 책을 읽었는데 왜 겸손의 덫에 빠져 제대로 뽐내지 못하는가? 여기에서 노골적이지 않고, 또 주위 사람들에게 비호감으로 전락하지 않으면서 책으로 뽐내는 방법을 친절히 소개한다. 


책을 읽었는데 왜 뽐내지를 못하니?

인문서로 뽐내기 2편 -무한도전 보면서 경제지식 뽐내기!


무한도전을 맘 편히 시청하려면?

무한도전의 하늘을 찌르는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그간 무한도전을 본방사수하려 했던 이들은 적잖은 눈총을 감내해야 했다. 토요일 저녁 6시 30분부터 7시 50분까지라는 이 애매한 방송 시간 때문이다. 이 황금 같은 시간에 외출도 안 하고, 남들 다하는 데이트도 안 하고 거실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사실 열혈 무도팬이라도 어딘가 좀 할 일 없어 보이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무한도전이 좀 웃긴가! 이젠 좀 식상해질 법도 한데 요즘엔 미존개오 정형돈마저 물 만난 듯 웃겨댄다. 이런 걸 보면서 무심코 푸하하하하하하 웃고 있으면, 그리고 이런 짓을 매주 토요일마다 하고 있으면, 이미지 관리에 치명타를 입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매주 토요일만 되면 이미지 관리도, 무한도전 본방사수도 포기할 수 없어 그간 애태우던 자들에게 확실한 해결책이 나타났다. 『문화로 먹고살기』다! 『문화로 먹고살기』에 엄청난 솔루션이 있다.
 

저자가 이렇게 가르쳐 주는 건 아니지만 친절한 편집자가 알려주는 솔/루/션

뭐, 솔루션이란 별 거 아니다. 무한도전 시청 시간을 심심풀이 땅콩의 시간이 아니라, 아주 심오하고 냉철한 문화경제학 분석 시간으로 탈바꿈하면 된다. 『문화로 먹고살기』에 나와 있는 힌트를 아주 조금만 인용하면서. 무한도전도 보고 나의 유식도 뽐내고! 1석2조 아니겠는가? 예컨대 이런 식이다.



버라이어티쇼가 승승장구하는 이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컵흘들이 짝을 지어 데이트 활동을 하는 시간에 소파에 앉아 무한도전 본방을 기다리는 당신, 마침내 광고가 끝나고 무한~도전! 하는 오프닝 멘트가 나오면 무심코, 불현듯이 생각났다는 듯, 옆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한국에서 버라이어티쇼가 이렇게 성장한 이유가 뭘까? 아마 웬만한 유명인사 치고 버라이어티에서 온 초청장을 거절하는 사람은 없을걸?”

너무 포괄적인 질문이어서 옆 사람이 조금 헷갈려하면 위의 질문을 이렇게 보충해주자. 

“옛날 같으면 드라마도 시청률 5, 60%를 가뿐히 넘었는데 요즘엔 그렇지 않잖아.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도 위태위태하고. 음악 프로그램도 심야 시간대로 밀리고. 이런 방송환경에서 유독 버라이어티쇼만 승승장구하는 게 신기하지 않아?”

어라? 그러네? 하고 상대방이 살짝 의아해하면 그때가 찬스다. 저자가 『문화로 먹고살기』에 친절하고도 상세하게 써둔 답을 인용해주면서 나의 유식함을 한껏 뽐내자.

“시대가 쇼를 만들고 동시에 쇼가 시대를 만드는 일종의 집단 진화 현상이 생겨났기 때문이라고 봐. 이제 웅변의 시대에서 공감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는 상황에서 버라이어티쇼는 시대와 호흡하는데 성공한 거야. 대중을 가장 가까이에서 포착하면서 대중의 언어가 된 거지. 이런 프로그램들은 이제 시대 언어의 생산자라고 봐야 해.”

시대, 대중, 포착, 언어...... 무한도전 보면서 이렇게 고급 단어를 한번쯤 길게 나열해 보자. 그게 정확히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꼬마 조카들조차도, 무한도전 시청 행위가 불우한 솔로의 시간 죽이기만은 아님을 눈치 챌 것이다.



소지섭은 왜 여기에?

오프닝 멘트와 함께 무한도전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끝내고 나면 이제 각론으로 들어갈 차례다. 이번엔 무한도전의 게스트들을 유심히 살펴보자. 그간 무한도전의 게스트들은 은근히 화려했다. 얼마전에 방송한 소지섭 특집을 비롯해 조인성, 김연아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무한도전에 등장했다. 물폭탄을 뒤집어쓰며 망가지기를 마다하지 않는 소지섭을 보면서 슬쩍 함께 시청하고 있는 옆사람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소지섭이 정말 정준하의 미친 인맥 덕분에 여기 나온 것 같아?”

그거 아니었어? 라는 표정으로 돌아보는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하게, 최대한 뽐내며 이렇게 설명해주자.

“한국의 버라이어티쇼는 2차시장의 속성을 갖고 있어. 신인을 데뷔시키는 게 아니라 이미 인지도를 갖춘 사람들, 혹은 이미 유명한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의 상징자산으로 장사하는 곳인 셈이지. 그러니까 한마디로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이야.”

누군가 취업준비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면 무한도전 게스트들의 이러한 속성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이런 날카롭고 예리한 분석을 듣는 순간 무한도전을 보면서도 더 이상 마음 편히 웃을 수 없다는 사실에 씁쓸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방심하면 안 된다. 가장 최근에 방영된 조정 편을 떠올린 누군가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 개리는?”

앗! 개리는 약간 애매하긴 하다. 리쌍으로서의 인지도는 어느 정도 있었으되, 그것이 장사할 수 있을 정도로 상징자산이 될 만큼이었을까? 그냥 길의 인맥이 더 중요한 것 아니었을까? 이런 디테일한 위기 상황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문화로 먹고살기』에 나와 있지 않다. 10월 4일과 10월 5일에 열리는 <『문화로 먹고살기』출간 기념 좌담회>에 신청해서 저자 우석훈 샘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직 좌담회가 열리기 전이라면 일단 그간 무한도전을 열혈 시청하면서 터득한 예능의 언어를 활용해서 이렇게 스리슬쩍 넘어가자.

“그렇게 애매한 건... 애정남에게 물어 봐. 애정남이 정해줄 거야.”


왜 하필 조정이냐고 물으신다면

개리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무한도전 조정 편을 다시 보자. 무한도전의 많은 도전들이 그간 큰 이슈가 되긴 했지만 멤버 간의 협업이 중요한 조정편의 경우 유난히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왜 하필 피디는, 무한도전 멤버들은 하고많은 종목 중에 조정을 선택한 것일까? 늘 그랬듯 비인기 종목이라서? 그렇다면 하고많은 비인기 종목 중에 조정이란 말인가? 바로 그 질문을 ‘남들에게 다 들리게’, 혼잣말로 말해 보자. 그리고 『문화로 먹고살기』를 인용해 이렇게 자문자답하는 것이다.

“정치학자 퍼트넘이 『나 홀로 헬스』라는 책에서 미국에서 볼링을 혼자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 시민사회가 해체되는 징후로 해석한 적이 있어. 우리나라도 요가나 헬스처럼 혼자 하는 스포츠가 대세가 되고 있는데, 경쟁과 협력이란 스포츠의 속성을 좀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타이밍이 아닐까 해. 그런 면에서 무한도전 조정 편이 이렇게 화제가 되는 건 하나의 징후로 해석할 만하지.”

혼잣말로 하기엔 좀 길긴 하지만, 뽐내기란 원래 그렇게 녹록한 것이 아니다. 무한도전을 시청할 때마다 약간의 연기력을 발휘해 미션에 따라 한 마디씩만 보태 주면 무한도전 시청 행위에 대한 주변의 평가가 확 달라질 것이다. 그러고 나면 앞으로 토요일 저녁마다 마음 놓고 무한도전을 시청할 수 있으니 무도팬들이라면 주저 말고 마음껏 유식을 뽐내자! 



인문학에 예능을 허하라! 카테고리 업데이트는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