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이어 일곱 번째로 소개하는 주제는 '장르 도서관'입니다. '장르 도서관'편은 프롤로그를 포함해 세 도서관에 관해 4회에 걸쳐서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지난 포스팅은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도서관 기행 (7) ~ 장르 도서관 ①편 / 한국 도서관 기행 (7) ~ 장르 도서관 ②편에 이어서...
* ①편에서 언급했습니다만, SF&판타지 도서관은 2012년 6월 사당에서 연희동으로 이전하여 개관했습니다. 아래 포스트의 사진 등은 사당에 있을 당시의 모습입니다.
SF & 판타지 도서관 : 장르는 우리가 지킨다
공상이 아닌 상상의 보고
‘SF & 판타지 도서관’은 SF와 판타지를 주축으로 그 경계가 맞물려 있는 추리와 무협까지 포함하는 장르 도서관이다. 모험과 신비, 상상과 환상을 직접 다루는 책들, 그리고 이 책의 원동력이 되는 과학적 배경과 인문적 상황을 설명해주는 과학 잡지, 신화학, 상징인류학 책들도 보유하고 있다.
보통 과학을 기반으로 한 상상을 SF, 기술과 과학의 도움을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상상의 장을 판타지라고 한다. 그러나 이 통상적인 정의 보다 SF 판타지 도서관의 전홍식 관장님의 정리가 더 마음에 든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SF는 ‘왠지 가능할 것 같은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고, 판타지는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꿈의 실현’에 가까워요.” 가능할 것 같기 때문에 현재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쉽다는 것이 SF, 꿈에서 마음껏 실행해보았기에 현실의 결핍을 느낄 수 있다면 판타지다. 현실을 떠나서 상상의 세계로 떠나지만 다시 현실을 돌아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둘이 가진 힘이자, 이 도서관 이름이 'SF & 판타지 ‘도서관인 이유이다.
동유럽에서 SF 장르가 발달한 것도 엄한 정치현실을 고도의 상황설정을 통해 차원 높게 비판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이 연장선에서 주한 체코 대사가 SF 소설을 쓰는 작가인 것도 신기하지만, 납득은 된다. SF 판타지는 매우 비전형적인 방식으로 정치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상’과학소설에서 ‘공상’을 떼어놓는다. 허황된 상상[空想]이 아니라 현실을 바꿀 수도 있는 엄연한 힘을 갖춘 장르라 믿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화 '그날 이후(The Day After1983)'에서는 핵폭발 이후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가상으로 보여주었는데, 이 상상 장면이 너무 적나라한 나머지 군축협상이 이루어지고 반핵운동을 강화했다 한다.
아톰을 보고 자란 일본에서는 인간적인 로봇을 만들고 아이로봇(i robot)을 보고 자란 미국에서 만드는 로봇이 보다 실용적인 로봇을 만드는 것도 상상이 미래의 현실에 대해 힘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SF 판타지 장르는 현실을 떠나버리는 공상이 아닌 현실로 돌아오는 상상, 현실과 밀착된 상상의 영역이다.
사이버 문화에 힘입은 도서관
SF 판타지 도서관의 처음은 한 모임의 작은 상상에서 시작했다. 1998년도에 생겨서 10년 동안 지속된 SF 동호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현재의 SF 판타지 도서관의 관장님이 있다. 도서관에서 찾기 힘든 SF 판타지 관련 책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다며 주문을 외웠다.
“2008년 SF 판타지를 소개하는 ‘SF 판타지 컨벤션(convention)’에서, 자원 봉사하는 분들에게 SF 판타지 장르의 활성화를 위해, 도서관이 필요하지 않느냐 했더니, 모두가 동의하고 용기를 북돋았어요.” 동호회원들이 힘을 합해서 창고였던 공간을 개조했다. 얼렁뚱땅 페인트도 칠하고, 바닥도 깔았다. ‘그저 좋아서 만든’ 민간 도서관이니 지원은 못 받고, 운영자들의 자원봉사와 정기회원의 후원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지금은 정기회원이 60분 정도 계세요. 아직도 많이 모자라죠. 200명은 되어야 운영이 정상화되는데.”
‘SF 판타지 도서관’ 뿐 아니라, 한국에서 이 ‘SF 판타지 장르’의 시작은 사이버 공간의 등장과 관계가 깊다. 보통의 문학은 문학잡지나 신문의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을 하지만, SF 판타지 무협소설은 90년대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와 같은 PC 통신에서 연재되던 통신문학에서 기원을 둔다. ‘퇴마록’이나 ‘드래곤 라자’의 인기로 온라인의 연재는 오프라인의 출판으로 이어졌다.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바뀌면서도 상황은 같았다. 이름만 사이버 문학으로 바뀌었다. 인터넷으로 연재된 판타지 무협물들이 책으로 바뀌어, 대여점을 중심으로 재보급 되었다. 한국의 판타지 물들의 표지 디자인이 가지는 묘한 B급 정서는 이런 기획되지 않고 인기에 대응하는 급한 출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 SF 판타지 장르에 대한 기회를 주지 않는 한국 상황에서 돌파구가 된 것이 온라인이라는 사이버 공간이었다. SF 판타지도서관은 이 가상의 세상을 오프라인으로까지 확장시키려 한다.
한국 뿐 아니라 문학의 역사에서 SF와 판타지 장르는 천대를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과학을 소재로 삼았지만 과학적인 사실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문학으로 보기에도 어렵다1)는 조소를 받기도 하고, 상상계를 낮게 보던 인식론적이고 심리학적인 전통도 뿌리 깊다.
이 맥락에서 SF 판타지 책은 도서관의 문턱을 넘기 쉽지 않았다. 지금은 폐간된 ‘판타스틱’ 이외에 이 장르에 대한 잡지가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문학잡지나 신문의 신춘문예처럼 판단할 수 있는 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SF 판타지 도서관은 이런 것에 대한 여과장치가 되고, 더 장르의 저변을 넓혀서 이 장르의 작가들을 등단하게 하고 싶어 한다. ‘미래경’이라는 잡지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작가를 대중에게 노출시키고, 도서관 서가에서 보이지 않던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작품이 잘되려면 잡지가 있어야 해요. 만화가 잘나갈 때 만화잡지가 20개 정도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신인의 작품 10편이 소개되면 200편의 작업이 소개가 된다는 셈이죠”
대여점 VS SF 판타지 도서관
한국에서 SF 판타지 문화가 비주류의 문화처럼 비쳐지게 된 것으로는, 이 장르의 유통이 주로 ‘대여점2)’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은 인터넷에 밀려서 대여소마저 사라지고 있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는 돈을 내고 만화책이나 SF 판타지 무협소설을 빌려주던 대여소가 동네마다 하나씩 있었다. 이 ‘대여점’은 도서관처럼 책을 빌려주긴 하나, 상업적인 성격 탓에 돈이 되는 책들 즉 자극적인 것들만 구비했다. 더욱이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새로 나온 신진 작가의 책보다는 쉽게 독자를 얻을 수 있는 기존 일서나 외서 위주로 하여, 판타지 SF 무협의 장르 가 풍부해질 수 있는 토대를 협소하게 만들어 놓았다.
“좋은 SF와 판타지 작품은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고 삶을 다시 보게 만들지요. 나쁜 작품은 그 안에 빠져서 다른 아무 것도 못 보게 해요. 대여점에 있는 많은 소설과 만화들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책이 아니라 사람들을 환상 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 하게 하는 작품이 많아요. 대여점은 돈을 벌어야하기 때문에 계속 빠져 들어 대여해가며, 시간을 죽이게만 만드는 그런 작품만을 선별해요.”
SF 판타지 관장님 이야기처럼 현실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즉 그냥 그 순간을 도피하는 것으로 SF 판타지의 장르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대여소가 기여한 바는 크다. 만화 가게가 대본소 만화의 편을 들면서, 만화 장르에 대한 인상이 떨어뜨린 것과 마찬가지로, 대여소에서 택한 SF 판타지가 도피성 판타지인 것은 장르 전체에 대한 일반의 인상을 끌어내렸다.
SF 판타지 도서관이 서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현실을 나가더라도 다시 돌아 올 수 있는 문, 그것이 있기 때문이다.
SF&판타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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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은 '사진책 도서관’편입니다.
1) SF 부족들의 새로운 문학혁명, SF의 탄생과 비상
2) 대여소에 대한 문화를 설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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