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화) 저녁 7시 30분, 정독 도서관. <철학 연습> 출간 기념 릴레이 강연회! 그 첫 번째 시간, "호흡하는 존재"란 주제로 음악과 시와 철학이 있는 강연이 있었습니다.
좌측부터 사회와 시 낭송을 맡아주신 김지녀 시인, 오늘의 강연자 서동욱 교수, 음악을 들려주실 최고은 가수입니다. 강연 시작 전 세팅을 하고 계시네요. 동영상을 올리지 못 해서 아쉽지만, 강연은 최고은님의 아름다운 노래로 시작되었습니다. 철학 강연이 왜 노래로 시작하였는가? 그것은 바로 오늘의 주제 '호흡'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죠. :-)
강연의 시작을 알리는 김지녀 시인. 강연회 진행하시는데 사회 전문으로 보시는 분인 줄 알았습니다. 정말 매끄럽게 강연이 진행되도록 해주셨네요.
시인과 가수를 모시고 강연을 시작하며, 서동욱 선생님은 "노래와 시가 금과 은이라면, 그냥 강연은 구리 정도에 지나지 않을까."라며 살짝 엄살을 부리셨는데요, 이 말에 김지녀 시인이 "강연이 끝날 때 즈음이면 어떻게 구리가 빛날 수 있을지 서동욱 선생님이 보여주실" 것이라고 하셨지요. ^^
잘 아시다시피<철학 연습>은 책으로 엮어 나오기 전, 네이버 캐스트에 연재가 되었는데요, 이에 대해 서동욱 선생님은,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있는 자리에서 철학적 개념들을 함께 시험해 보고 얘기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지식을 간단하게 만들거나,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깎고 단순하게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철학이 살아남는 문제"였다고 하셨습니다.
“삶은 거친 것이며 의혹투성이다. 인간은 온 힘으로 이 바위를 밀고 나간다. 힘겨운 전진을 하는 이에겐 두 가지 힘 밖에 없는데, 바로 생각하는 힘과 생각한 것을 실천하는 힘이다. 갈대에 걸린 바람이 울 듯 인간은 세상의 기운과 대기가 이동하는 길목에 서서 생각을 하고 소리를 낸다. 기술과 근육과 말로, 그러니까 망치와 노동과 발언으로 생각한 것이 울려 퍼지게 만든다.
이렇게 생각과 생각의 실현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면, 철학은 이미 인생 안에 깊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철학은 별세계의 사유가 아니다. 다만 운동을 쉬는 근육이 쉽게 잠들 듯 생각 역시 잠에 빠지는데, 철학은 이 생각의 잠을 깨우려고 한다. 생각이 잠들 때 관습, 소문, 편견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우리는 혹시 이런 머릿속의 악마들과 더불어 한 평생을 어둠 속에서 보내는 것은 아닌가? 무엇이든 해보라고 주어진 단 한번 뿐인 삶인데!”
―『철학연습』, 7쪽
『철학연습』에는 우리와 같은 시대 속에서 살며 우리의 문제들을 고민하는 많은 철학 이론들과 개념들이 출현합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이 아마도 ‘타자’ 개념이겠지요. 우리 삶에 침투해 있는 ‘이질적인 것’ 말이지요. 내가 아닌 것, 그러므로 내가 지배할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나의 삶에 개입하는 것 말입니다. 오늘 저녁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삶에 수시로 개입하는 이 이질적인 것, 타자성(alterité)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삶에 개입하는 이 이질적인 것을 어디서 경험할 수 있을까요? 오늘 강연에서는 ‘숨결’의 문제와 더불어 이 이질적인 것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숨을 쉽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의 신체가 체온을 가졌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듯 모든 생명에게 예외 없는 이 사실에도 놀라지 않습니다.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지요. 철학은 늘 이런 당연한 일 속에서 경이를 발견합니다.
숨 쉬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 생각하는 일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우리는 먹고 자고 생각하고 일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우리를 우리로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는 ‘숨을 쉬는 것’입니다. 흔히 뇌사자에게서 보듯 코기토(나는 생각한다) 없는 호흡은 가능하지만, 숨 쉬는 생명이 아닌 코기토를 우리는 생각할 수 없지요. 코기토보다 숨 쉬는 일이 먼저이며, 주체는 근본적으로 숨 쉬는 자, 바로 ‘허파 주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혼을 뜻하는 프시케(psyche)라는 말은 ‘숨 쉬다’라는 뜻을 가진 프시코(psycho)에서 유래했고, 우리가 영혼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는 라틴어의 스피리투스나 아니마 역시 모두 바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성령을 가리키는 유대인들의 뤼아가 바람을 뜻하는 것처럼 말이죠. 영혼이라는 것은 이렇게 숨을 쉬는 활동이라는, 생명의 대사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이런 뜻에서 레비나스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주체는 자신의 실체의 밑바닥에서 허파일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숨결을 둘러싼 문제들과 더불어 현대 철학의 중요한 생각거리, ‘이타성’에 대해 물음을 던질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김지녀 시인도 나와 있고, 최고은 가수도 있습니다. 시인과 가수야 말로 숨결 속에서 말을 빚어내는 이들, 숨결의 비밀에 가닿는 이들입니다. 철학과 시와 노래가 그야말로 숨결을 ‘연습’하게 될 것입니다.
숨
김지녀
나의 흉곽은 부서지기 쉬운 벽이다
나에게 가득 차 있는 공기는 만연체의 문장들처럼 닫히지 않고
막다른 골목에서, 수만 갈래로 갈라지고 있다
기침은 밤을 붙잡고 빛을 끌어당기면서
눈을 감는 것
어둠을 펼쳐 놓은 두 날개에게
무늬는 되나올 수 없는 미로다
바깥으로부터 당신이 공기를 밀고 들어올 때
결말을 모르는 말들 속에서 나는 쉼표를 찾고
날개를 폈다 접는다
당신의 공기가 나의 내부로 들어와 있음을 느끼지만
바깥으로부터 당신이 공기를 거두어갈 때
이미 시작된 죽음에서, 죽음 쪽으로 나는 취해가는 것이다
나의 벽은 갈라져 무너지고 있지만
가장 길게 누워 나는 제목 없이도 거의 완성되고 있다
바깥으로부터 당신이 공기를 밀고 들어올 때
나는 나를 되돌아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나와 너는 다르다.'라는 차이의 이념 속에 들어 있는 가장 중요한 사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나와 너는 다르다.'는 확인은 나와 구별되는 '타자의 차이성'에 대한 '존중'을 전제한다는 점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나와 너는 다르다’라는 차이의 이념 속에 들어 있는 가장 중요한 사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나와 너는 다르다’는 확인은 나와 구별되는 ‘타자의 차이성’에 대한 ‘존중’을 전제한다는 점 말이다. 차이가 먼저 존중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는 차이를 긍정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타자의 차이성에 대한 존중은 어떤 모습을 지닐까? 도대체 차이에 대한 존중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타자가 지닌 가치, 나와는 다른 그의 입장 자체를 존경한다는 뜻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으리라. 그렇다면 결국 차이에 대한 이 존중이란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철학연습』, 246쪽
드디어 강연을 마치고 질문과 답변 시간. 늦은 시간까지 열강에 동참하셨던 분들답게 질문 시간도 뜨거웠답니다. 질문 시간에는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라는 개념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질문을 주셨네요.
아무쪼록 철학에 관심은 있지만, 철학이 너무 어려워만 보이는 분들께, 철학이 별세계의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 밀접한 것임을, 생각의 '연습'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는, 더 자극받는 자리였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번 강연회에 참석 못해 아쉬웠던 분들! 아직 두 번의 강연이 남아 있습니다! 아래 인터넷 서점벤트 페이지에서 신청해 주세요!
5/31(화) PM 7:30 서강대 앞 카페 숨도
- 강연회 3부 : 철학과 무용의 만남 : 신체의 비밀을 찾아서
6/02(목) PM 8:00 상수동 이리까페
예스24 가기 | 교보문고 가기 | 알라딘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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