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욱의 현대 프랑스 철학 강연] 연재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BK21+ 사업팀과 반비가 함께하는 [2015 서강 철학 아카데미] 서동욱 교수의 <프랑스 철학의 위대한 시절> 강연에서 녹취한 내용을 텍스트로 옮긴 글입니다. 연재 내용은 제1강 <현대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세분화하여 구성하였으며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반비 블로그에 연재됩니다.
[서동욱의 현대 프랑스 철학 강연]
02.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 '현대'라는 말을 이해해보자 (1)
프랑스 철학은 제쳐두고 ‘현대 프랑스 철학’이라고 할 때 '현대'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중세, 르네상스에도 철학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오로지 '현대 프랑스 철학'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의 공부거리의 범위는 이렇게 제한돼 있습니다.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현대 프랑스 철학'이라 한다면 제일 먼저 오는 단어부터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현대'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요?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필연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게 중요하니까 해봐야지’ 하는 생각에서 사유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귀찮아지면 안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부를 대하는 어떤 방식이지요. 그러나 필연적인, 생각하지 않으려야 안 할 수 없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운명이나 정체성과 관련한 질문들이 그런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현대'라는 질문입니다.
ⓒ pixabay
왜 그럴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우리가 지금 '현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으로서 어떻게 현대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현대란 무엇인가를 묻는 우리 질문을 필연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현대를 반성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 그것이 프랑스 철학의 중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한번쯤 사유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에 대해 묻기 위해서는 현대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겠죠.
현대는 영어의 modernity에 해당하는 표현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포스트모던이라는 표현이 있지요. 탈현대, 현대를 벗어나는 것, 현대 이후에 오는 것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약간의 혼란이 빚어질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modern은 근대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근대는 현대와 변별점을 두고 현대보다는 조금 더 전 시대를 일반적으로 일컫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근대와는 다른 현대인가, 이것을 나중에 답으로서 각자가 판단하게 될 때 이 말에 대한 핵심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더니티라는 말을 '근대성'으로 이해할 것이냐, 현대성으로 이해할 것이냐, 이것이 바로 철학, 사상, 인간의 이성을 바라보는 관점에 달린 문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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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이라는 말은 ‘방금’이라는 뜻의 라틴어 부사 modo에서, ‘최근의, 새로운’이라는 뜻의 형용사 modernus, 그리고 영어의 modern의 형태가 된 것입니다. 보다 근접한 것, 보다 가까이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죠. '근대'의 '근(近)'자가 가리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나 자신과 가까운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 modern입니다.
애초에 이 말의 맥락을 보죠. 4~5세기 로마인들은 이교도 시대를 벗어나 그리스도교를 믿게 된 시기, 그러니까 자신들의 지금 위치와 보다 가까운 시기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modernus라는 말을 사용한 것입니다. 현대라는 것은, 모던이라는 것은 ‘17세기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다’, ‘그 이전은 르네상스고 중세다’, 이런 방식으로 고정돼 있는, 달력상의 연대기상의 기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모던은 바로 '나 자신과 가까이 있다'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과 태도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철학자들의 글을 함께 읽어봅시다.
G. W. F. Hege ⓒ wikipedia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헤겔이 자기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관한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의 시대가 탄생의 시대이며 새로운 시기를 향한 여명기임을 알아차리기란 어렵지 않다. 새로운 정신의 시초는 다양한 형식의 교양과 문화가 폭넓은 변혁을 거치고 난 결과로서 생겨나는 것이다.
─ 헤겔, <정신현상학>
우리의 시대가 ‘탄생의 시대’이며 '새로운 시대'다. 모데르누스는 가까이 있다, 새롭다라고 말씀드렸지요. 바로 우리 시기를 새로운 시기, ‘모던’이라고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문장입니다.
Michel Foucault ⓒ wikipedia
헤겔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 우리가 다룰 중요한 프랑스 철학자 중 하나인 미셸 푸코가 현대성에 대해 연구하며 이런 문장을 썼습니다.
현대성은 전통에 대한 결별, 새 것에 대한 감수성,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에 대한 현기증과 같은 시간 불연속성에 대한 의식을 특징으로 한다.
─ 푸코
헤겔은 자기의 시기가 새로운 시대임에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푸코는 '전통에 대한 결별'의 마음가짐이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던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역사상의 시기가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이해하는 방식, 태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여기서 모든 것이 새롭게 출발한다'는 자세가 바로 근대를 특징지으며 근대인을 특징짓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은 그가 20세기에 살건 17세기에 살건 바로 '근대인', '현대인'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입니다.
ⓒ pixabay
누구나 다 자기 시대를 새롭게 이해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과거에는 오히려 성현들이 옛부터 말해온 진리를 잘 배우고 지켜야 한다는 태도가 더 우세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던이라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이것을 완전히 변형시켜서 바로 지금부터 모든 것이 다시 시작한다, 지금은 과거와 결별하는 시대이다, 라는 태도를 지닙니다. 이 태도를 추동력으로 삼아 출현한 것이 바로 현대라는 시대이며, 현대의 눈부신 성과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02.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 '현대'라는 말을 이해해보자 (2)
에서 계속…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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