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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서동욱의 프랑스 철학 강연

[서동욱의 현대 프랑스 철학 강연] 02.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 '현대'라는 말을 이해해보자 (2)

[서동욱의 현대 프랑스 철학 강연] 연재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BK21+ 사업팀과 반비가 함께하는 [2015 서강 철학 아카데미] 서동욱 교수의 <프랑스 철학의 위대한 시절> 강연에서 녹취한 내용을 텍스트로 옮긴 글입니다. 연재 내용은 제1강 <현대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세분화하여 구성하였으며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반비 블로그에 연재됩니다.




[서동욱의 현대 프랑스 철학 강연]


02.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 '현대'라는 말을 이해해보자 (2)




  우리 시대는 새롭다, 과거와 결별하고 있다는 태도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현대인일 때 그 유산이란 무엇일까요?


  아까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었죠? 이 말을 둘러싸고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거은 제쳐두고, 이것이 유효하다면, 즉 현대적인 것을 넘어서는 게 유효하다고 전제한다면 누가 그것을 먼저 시작했느냐, 를 따져보죠. 만약 하나를 꼭 집어 말하자면 바로 하이데거입니다.



Martin Heidegger ⓒ wikipedia



  현대 프랑스 철학과 관련해 포스트모던이란 말을 많이 하지만 진원지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이데거는 현대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하이데거의 가장 유명한 책, 여러분에게도 익숙한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이 있죠. 이 사람의 야심은 무엇이었을까요?


  헤겔이 이야기했듯 새로운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17세, 18세기에 등장했습니다. 그런 '현대인'들, 그 사고방식인 '현대철학'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열어보고자 시도하는 대단히 큰 야심을 지닌 철학자였습니다. 그렇다면 하이데거는 당연히 현대를 넘어서려면 구체적으로 현대성이 무엇인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줘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5가지 현대성의 특징을 들고 있습니다.


  현대라는 것의 내용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겠는가, 하이데거와 함께 살펴봅시다. 이 다섯 가지 내용은 하이데거의 논문 <세계상의 시대>에 들어 있습니다. 하이데거가 드는 5가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학문 

2. 기계 기술 

3. 예술의 미학화 

4. 인간의 행위가 문화로 파악됨 

5. 탈신성화



  제일 만만해 보이는 게 예술의 미학화인 것 같은데요. 미학은 전형적으로 현대적, 근대적인 학문입니다. 어떤 점에서 그럴까요? 미학의 영어 단어인 '에스테틱스'는 그리스어 '아이스테시스'에서 온 말입니다. 이것은 '미'와 상관없는 말이었습니다. 영어로 하자면 by means of sensation이라는 뜻입니다. 감각적인 것을 통해 받아들임, 이라는 뜻이죠.



ⓒ pixabay



  옛날 사람들은 우리에게는 생각하기 위한 두 가지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thinking’이라는 생각하는 능력, A는 B보다 크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이것과 다르게 ‘아이스테시스’라는 능력이 있습니다. 붉은 것, 차가운 것 감각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죠. 이 둘이 결합해 우리의 지식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 시대부터.


  감각적인 것을 수용한다는 게 아이스테시스인데, 이것이 근대에 와서는 예술을 독점해버립니다. 예술이 무엇인지 묻자면 아이스테시스에 대해 물어야 하는 시대가 근대입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이 가진 하나의 능력, 아이스테시스, 감각을 받아들이는 능력에서 미의 본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예술품 안에도, 대상 안에도 미는 있지 않다, 그것은 바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능력 안에서 성립한다는 것이지요.



René Descartes ⓒ wikipedia



  보통 현대적이다, 현대철학의 출발점이다, 라고 하면 모두 데카르트를 이야기합니다. 제일 유명한 명제가 있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모든 지식, 앎의 척도는 나한테 있다. 이것이 이 말이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입니다. 이 말과 더불어 '인간이 세계의 척도로 출현'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참된 것은 왜 참되었는가, 내 생각과 이것이(대상이) 일치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명제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미의 척도는 자연 안, 또는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나의 감수성, 외부의 감각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감성', 아이스테시스에 있다는 것을 근대인들은 발견했습니다. 진리의 척도가 '생각하는 나'가 됐다면 아름다움의 척도는 '감각하는 나'가 된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가 문화로 파악되었다. 인간의 행위 자체가 보존되고 연구되어야 할 것으로 파악되었다는 뜻입니다.



ⓒ pixabay



  예전에는 박물관이 없었고 왕의 보물창고가 있었지요. 현대인들은 박물관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행위가 박물관에 보존되고 연구될 가치가 있다고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을 가치 있는 것으로, 세상의 흐름에 기록되고 역사에 남겨야 될 것으로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중심이라는 생각이 이 바탕에 있습니다. 인간 행위 자체가 중요하게 된 거죠.


  벌써 두 가지만 이야기했는데도 답이 나왔는데요. 인간이 중심이고 인간이 주체이다, 이것이 근대성의 핵심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 pixabay



  그렇다면 다음으로 탈신성화에 대해 알아볼까요?


  하이데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이라는 것이 심리적인 문제가 되었다. 그러면 세상에서 신들은 사라져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말은 종교와 관련이 있습니다. 신이 우리가 의례를 하고 출항할 때 기원을 하는 등 우리 삶의 형식 안에 배어들어 있지 않게 되고, '기도'하는 심리적인 활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이데거 말처럼 이것은 '세상 안에서 신이 사라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현대에 와서 숲은 더 이상 정령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목재를 생산하는 공간이 됩니다. 신은 나의 심리적 상태에서 출현하게 됩니다. 신앙의 형태로 신이 자리를 잡았을 때 자연 안의 신들은 모두 사라져버립니다. 자연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목재를 공급하는 등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됩니다. 여기서도 인간이 중심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pixabay



  근대 학문과 기계 기술, 테크놀로지를 보죠. 근대의 기술 밑에 있는 근대 과학이라는 이 학문, 이것이 '모던'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세상 안에 진입시켜 공간을 열고 그 안에 들어오는 것만을 지식의 대상으로 삼는 것'. 대표적인 것이 수입니다. 수에 기반한 것이 근대의 뉴턴 물리학입니다. 뉴턴 물리학의 세계 안에 들어오는 대상은 '물리학적 법칙 안에 종속된' 대상으로만 파악이 됩니다. 더 이상 저 세계에 대해 내가 느끼는, 신이 깃들어 있을 것 같은 기분 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몇 헥타르의 농지 등이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한강의 경우 ‘한민족의 정신’ 등으로 접근할 수도 있지만 이건 오늘날 시적 영역이 되었습니다. 물리학적인 법칙에 종속된 대상으로만 출현하는 방식, 뉴턴 물리학에 종속된 세계에 기반해 근대 기술이 출현했습니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이야기하는 근대성의 특징입니다.



서동욱 교수 ⓒ banbi



  하이데거적 정신을 잘 보여주는 게 원령공주, 모노노케 히메라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철강 산업이 급격히 발달해 자연이 훼손되고 인간의 유용성 아래 굴복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근대 과학기술의 어두운 부산물로서 환경오염 등의 주제와 관련이 있지요. 근대인의 출현과 더불어 자연은 인간의 자원이 되고 옛 신들은 떠나가버립니다. 세계를 더 이상 정령이 깃든 곳이 아닌, 두려움과 무서움의 공간이 아니라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합리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근대인의 특징을 요약하는 말이죠. 근대의 핵심 정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주체가 되었다."



Pensiero di Kant ⓒ wikipedia



  다음으로 헤겔만큼 유명한 철학자, 칸트의 말입니다. 



우리는 대상에 대해 우리가 집어넣은 것만을 알 수 있다.

 칸트



  우리가 세상에 대해 인식하는 것은 우리 마음속 12가지 범주가 적용된 결과라고 칸트는 말합니다. 물리학자들이 법칙을 발견하는 것을 봐라, 먼저 이성 속에서 가설을 세웠다, 라는 것입니다. 그다음 그 가설을 가지고 가서 자연이 대답하도록 했다는 것이지요. 자연이 그 가설에 대해 응답한 결과가 법칙, 물리학적 지식입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인간 이성이 능동적으로 먼저 법칙을 가설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서 자연에게 실험을 통해 물어봄으로써 근대인들은 지식을 얻었다는 겁니다.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이성이 묻고 자연이 응답해서 얻어진 것이 근대의 지식입니다. 자연에 대한 지식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이성으로 생각할 줄 아는 인간입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던졌던 질문, 도대체 현대철학이란 무엇인가, 현대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에 대한 답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이 세계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03. 이성에 대한 비판으로서 철학

에서 계속…




[참고도서]


 

 

 『프랑스 철학의 위대한 시절』 바로가기

 『철학 연습』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