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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에디터김의 워킹데이즈

위대한 탄생 Top5에게 주선하는 책 소개팅 (4) ~ 셰인 편

참 오래 버텼다. 이제 고지가 멀지 않았다. 조금만 더 지나면 최후의 1인이 결정된다. 잔혹한 서바이벌 게임에서 이만큼 버텨낸 이들에게 축하의 뜻을 담아 이쯤에서 책 선물을 해야겠다. 책? 책이라고? 생방이 낼모렌데 책 읽을 정신이 어디 있나? 차라리 ‘샾 버튼 누르고’ 문자를 보내라! 라고 외치고 싶은 그 심정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인생은 위탄보다 길다. 위탄이 끝나도 멘토는 쭉 필요하다. 이 재주 많은 청춘들이 위탄 이후의 삶에 불현듯 찾아올 공허감을 메우고 새로운 멘토로 삼을 수 있도록 각자에게 적절한 책을 찾아보았다. 물론 반비의 책 소개팅은 언제나 일대일 맞춤 서비스다.


다양한 장르의 책을 추천하는 반비 편집자! 이번엔 과연 어떤 책들을 추천할 것인지?
 

위대한 탄생 Top5에게 주선하는 책 소개팅 
(1) 백청강 편 / (2) 데이비드 오 편 / (3) 이태권 편에 이어서...



셰인


저 집안의 족보를 한번 뒤져봐야겠다. 셰인의 조상 중에는 분명 그 옛날, 일찍부터 세계화를 몸소 실천하며 캐나다까지 건너간 어느 동양인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파란 눈의 청년이 어떻게 이렇게 아시아적일 수가 있는가?

셰인은 한국 노래가 참 잘 어울린다. 위탄 초반에 영어 노래를 안 부른 것도 아닌데, 한국 노래를 부르는 모습만 기억에 남는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아시아적 ‘삘’이 셰인의 노래에 묻어 있다. 심사위원들은 음정 이탈이 거슬리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는데, 나는 어색한 한국어 발음이 거슬리지 않는 것이 더 신기하다. 된소리를 내지 못해 시종일관 부드러운 소리만 내는 그 발음이 셰인의 미성과 묘하게 어우러져 한국어의 새로운 면모를 보는 느낌이다. 정말이지 그 족보가 의심되는 청년이다.

기왕 한국에서 조상의 피(?)를 발견한 김에 셰인에게 동양의 감성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청화백자나 사군자를 들이댈 수는 없는 법. 좀 더 세련된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거듭하다 불현듯 사석원이란 이름 석 자를 떠올렸다.

사석원은 동양화에서 시작했지만 화려한 서양물감을 더 많이 쓰는 화가다. 하지만 그 시원시원한 붓질, 물감보다 까만 먹물의 자취, 자주 등장하는 소와 닭, 넘실대는 풍자와 해학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분만큼 동양화의 매력을 잘 보여주시는 분도 드물 것 같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의 그림들은 정말 까무라칠만큼 사랑스럽다! 

사석원의 그림이 들어간 책은 많지만, 셰인에게는 그중에서도 <꽃을 씹는 당나귀>를 추천한다. 사석원의 다양한 그림이 많이 들어가 있고, 소와 닭과 원숭이와 강아지 등 12간지에 나오는 다양한 동물들을 접할 수 있는데다 사석원의 재미난 이야기까지 곁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사석원의 아이 같은 관찰력과 순수한 시선은 어린왕자를 닮은 셰인과 잘 통할 것 같다. 하지만 한국어가 아직 서투르니 일단은 그림을 주로 감상하다가 천천히 하나씩 읽어나가도 좋겠다. 아마 그림만 보고도 셰인은 크게 감탄하며 “(이 그림) 필링, 대박!”이라고 그 소감을 전할 것이다.


셰인의 족보에 들어가신 동양인이 어느 나라 출신이신지 모르니, 한국 작가만 소개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그래서 대만의 작가 지미 리아오를 다음 타자로 골랐다. 지미는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여서 영어 번역본을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추천하는 것은 지미의 책 중에서도 글자가 별로 없는 <지하철>(영어제목: Sound of colors)이다. 외국의 어느 서점에서 발견하고 첫눈에 반해 바리바리 싸들고 왔을 정도로 아름다운 책이다. 진작에 번역된 줄 알았더라면 괜한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테지만 후회는 없다. 아름다우니까! 

지미도, 이 책도, 셰인의 개인사와 닮은 점이 있다. 지미는 셰인처럼 한때 암을 앓았더랬다. 혈액암의 투병 경험은 뛰어난 예술가들이 흔히 그렇듯, 지미의 예술 세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데에 기여했다. 그 유려한 작품 중에서도 독보적인 <지하철>은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지하철을 나올 때마다 이 눈 먼 소녀 앞에 펼쳐지는 멋진, 따뜻한 황홀경! <지하철>에서 어쩌면 셰인은 병을 앓지 않은 다른 독자들의 눈에는 쉽게 띄지 않는, 지미가 셰인 같은 특별한 친구들을 위해 따로 숨겨 놓은 어떤 고독과 인내, 삶에 대한 애착과 위로를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비밀리에 맺어지는 아시아적(?)인 위로와 공감대가 노래하는 셰인을 감성을 더욱 촉촉하게 적셔 주리라 믿는다. 

한국과 대만을 찍었으니 마지막에는 일본으로 가야겠다. 사실 맞춤으로 책을 고르다 보면 대략 남자에겐 남자 작가의 책을, 여자에겐 여자 작가의 책을 권하게 되는데 셰인에게는 수많은 일본 작가 중에서도 유독 한 여자 작가의 이름이 매칭된다. 그 이름도 유명한 요시모토 바나나.

요시모토 바나나 역시 세계적인 작가라 영어 번역본이 많을 테니 안심하고 한 권을 고르자면 비교적 최근에 나온 <데이지의 인생>이다. 일단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 크나큰 매력이다. 표지에 그려진, 땅에서 마치 새싹처럼 고개를 삐죽 내민 꼬마의 얼굴을 본 순간, 그대로 이 책을 집어들고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

셰인을 처음 봤을 땐 어린왕자가 떠오르지만 계속 보다보면 나라 요시토모의 대표 캐릭터인 이 아이가 슬그머니 떠오른다. 이 무표정하면서도 어딘가 엽기적인 장난질을 궁리하고 있을 것만 같은, 속을 알 수 없는 하얀 얼굴이 어쩐지 셰인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데이지의 인생>에는 셰인을 닮은 이 아이가 열 몇 번쯤 등장한다. 나라 요시토모의 팬에게는 그의 작품을 ‘싼값에’ 소장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그렇다고 소설이 재미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알고 보면 꽤나 유명한 이 아이, 아무데나 쉽게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자기 마음에 드는 괜찮은 작품, 예를 들면 <데이지의 인생> 같은 작품에만 출연하신다. 이 소설은 <키친>만큼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소설이랄까?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스물 다섯 데이지의 추억이 시냇물처럼 맑게 흐른다. 상처와 이별, 죽음이 차례로 등장하는 추억인데도 참 맑다. 그 물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짐짓 철학자인 양 세상에 대해서 그럴 듯한 깨달음 한 조각을 선물하는 어른스러운 데이지를 만날 수 있다. 주인공이 스무살이 넘은 소설에도 성장 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다면, 셰인 같은 청년에게 어울리는 성장 소설은 <데이지의 인생> 같은 소설일 것이다. 언젠가 셰인도 새싹처럼 땅위로 솟아올라 ‘셰인의 인생’이란 제목을 단, 맑디맑은 노래를 불러주기를.


어떠셨나요? 셰인에게 어울리는 책 추천인 것 같나요? ^^ 이제 다음 손진영 편으로 '위대한 탄생' TOP5에게 추천하는 책 소개팅은 마무리를 짓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책을 추천하고 싶은지 듣고 싶습니다!


* 셰인 사진 출처 : 셰인 미투데이 http://me2day.net/Shayne_or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