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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도서관 기행 (完)

한국 도서관 기행 (6) ~ 자연과 도서관 ①

기다렸던 분 계실까요? 기다렸다고 빈말이라도 좀... ^^ 카테고리명의 [연재] 말머리가 무색하게 몇 개월만의 포스팅으로 돌아온 한국 도서관 기행 코너입니다. 

(0) 한국 도서관 기행 연재 예고 
(1) 이진아 도서관 
(2) 광진구 정보화 도서관 
(3) 여행자의 도서관 - 제주도 달리 도서관 
(4)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 : 도서관 그리고 나이 먹기 (aging) 

(5) 국립 디지털 도서관

편에 이어 여섯 번째로 소개하는 주제는 '자연과 도서관'입니다.  '자연과 도서관'편은 세 도서관에 관해 4회에 걸쳐서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지난 포스팅은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자연과 도서관 ①


by 강예린 & 이치훈 

자연녹지지역 그리고 도서관

도서관을 방문하면 하나같이 외곽의 공원이나 산언저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특히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는 대부분 녹지에 있다. 접근하기 쉬운 도심 보다 자연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에서는 도서관 문화가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 이미 웬만한 도시구조가 짜여 진 다음으로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비싼 도시 중심부에는 이미 상업 업무 시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으므로, 빈 땅을 찾기도 힘들고 도서관처럼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 공공건물이 감당할 만한 지가의 자리는 더더군다나 없다. 그래서 대신 택한 것이 관이 접근하기 힘든 대신 외곽의 녹지 지역이나 공원의 한 귀퉁이다.  

도서관이 오래전부터 발달한 서양의 여러 나라의 경우, 개발의 소용돌이에 빠지기 훨씬 이전부터 도시 중심부에 이 공공건물이 또아리를 틀 수 있었다. 또 다른 사례로 영국의 경우는 1940~90년대 런던 내·외곽에 지어진 신도시에 도시기반시설로 정착시키며,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지역에 자리를 잡은 경우도 있다. 이 중 가장 성공적인 신도시라고 하는 밀턴 킨즈의 경우 쇼핑단지, 기차역, 종합병원과 같은 공공시설과 거의 같은 시기에 도서관이 지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 입지는 도시의 중심을 차지 할 수 있었다. 도서관 옆에는 쇼핑센터, 시청, 교회가 위치했다. 일상의 결절지에 도서관이 있다. 

서울만 보더라도 중심지에 도서관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중심에 있다고 해도, 남산 도서관처럼 산 위에 올라가 있어서 접근성은 떨어진다. 한국의 도서관 옆에는 나무와 풀 그리고 산이 있다.  


서울시 주요 일반도서관 중 공원녹지 지역에 위치한 도서관



자연 속에 있으면 ‘그만(而已)’인 집

허경진 선생이 쓴 「조선시대의 르네상스인 중인」에 따르면, 골짜기가 많은 인왕산에는 중인 출신 지식인들이  올라가서 자신들만의 서재를 짓고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책을 읽고 시를 짓고 문학을 했다. 천수경의 ‘송석원(松石園)’, 장혼의 ‘이이엄(而已广)’, 임득명의 ‘송월시헌(松月詩軒)’, 이경연의 ‘옥계정사(玉溪精舍)’, 김낙서의 ‘일섭원(日涉園)’, 왕태의 ‘옥경산방(玉磬山房)’이 그렇다.

자연 속에서 시문을 누리는 집은 보통 지붕과 바람을 막는 정도의 집[엄 广], 지붕 아래 넓은 창이 있는 집[헌 軒]이거나 담장 정도로 주위와 구분되는 집[원 園]처럼, 엄격하게 체계를 갖춘 집보다는 눈·비·바람 정도 피하는 정도로 단출하다. 덧붙이는 것이 별로 없으니, 자연을 가까이 끌어들일 수 있는 집의 유형이다. 검박한 처소를 짓고 자연을 느끼며 책 읽고 문학하는 것이 하나의 삶의 유형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중인을 가르치던 장혼이라는 사람은 옥류동 계곡에 ‘이이엄(而已广)’이라는 집을 짓고 자연과 천명에 따라 살면 그만(而已)인 삶을 지냈다.  


“홀로 머물 때에는 낡은 거문고를 어루만지고 옛 책을 읽으면서 그 사이에 누웠다 올려다보면 그만이고, 마음이 내키면 나가서 산기슭을 걸어 다니면 그만이다. 손님이 오면 술상을 차리게 하고 시를 읊으면 그만이고, 흥이 도도해지면 휘파람 불고 노래를 부르면 그만이다. 배가 고프면 내 밟을 먹으면 그만이고, 목이 마르면 내 우물의 물을 마시면 그만이다. 추위와 더위에 따라 내 옷을 입으면 그만이고, 해가 지면 내 집에서 쉬면 그만이다. 비 오는 아침과 눈 내리는 낮, 저녁의 석양과 새벽의 달빛, 이같이 그윽한 삶의 신선은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말해 주기 어렵고, 말해 주어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1)  


생활이 소박해지면 깨달음에 가까워지고, 책과 삶의 정중앙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인가? 그는 이런 집에서 반드시 읽어야할 ‘맑은 책 100부’를 선정하고 ‘맑은 경치 열 가지’를 지정해서 자연의 맑음과 배움의 맑음을 함께 추구하였다. 이 맑은 책 100부에는 주역, 고려사, 삼국사 등 역사책부터, 시집, 이야기책, 의서 등 골고루 포함되어 있다.     



서양에도 장혼이 있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월든 숲속에서 오두막을 짓고 자연에서 최소한 자신을 가리며 머리와 마음을 비우는 삶을 살았다. 소로우는 우리의 정신이 가장 또렷또렷한 시간을 바쳐가면서 발돋움해서 서 듯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단순한 독자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틈틈이 주위의 자연을 관찰할 수 있는 소요의 시간,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어쩌면 제일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안하면서 주변 풍광을 보고, 햇볕을 느끼는 시간이다.     

동서양 모두 자연에서 소요하며 책을 읽는 것은, ‘그냥 책 읽는 것’의 차원보다는 조금 더 높은 경지에 닿고 싶어 하는 마음과 통한다. 자연에서 머리를 맑게 헹구고 책을 읽는 것은 내용의 독해보다는 마음을 닦는 일에 가깝다.


현대에도 자연과 더불어 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있다. 산에, 숲 속에,  논밭 위에 서가를 마련해두고, 자연이 주인인 도서관을 만들고 있다. 도서관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외연을 넓혀주는 도구에 가깝다. 자연을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길을 일러주든지, 자연을 천천히 둘러 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든지, 자연과 도서관이 통해있음을 알려주는 매개로 도서관은 존재한다.

서울 숲 도서관은 ‘책 읽는 공원문화’를 보급하려 한다. 관악산 숲 도서관은 1-200년 만에 생활터전에서 멀어진 숲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 한다. 농부네 텃밭 도서관은 불과 30-40년 만에 깡그리 잃어버린 땅을 살림하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책을 통해 자연을 간접적으로 읽어내는 것 못지않게 숙인 머리를 들고 주변 자연을 직접 체험하라고 말한다.


②편에서 이어집니다. 짐작하시겠지만 ②~④편은 각각 서울 숲 도서관, 관악산 숲 도서관, 농부네 텃밭 도서관 얘기입니다. ^^

* 2편은 5/31(목) 늦은 오후에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1) 허경진, ‘조선의 르네상스인 중인’, 램덤하우스, 2008, pp.79-80p.




반비 블로그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도서관 기행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도서관 산책자
두 책벌레 건축가가 함께 걷고 기록한, 책의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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