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나이테
부산시민도서관의 외부의 인상에서는 언뜻 세월이 가늠되지 않았다. 물론 100년의 역사에서 이 건물은 1/3만 차지하고 있으니 중후한 근대건축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새것 같다. 얼마 전에 적갈색 타일로 외부를 도배해서다. 새 소재를 덧붙이면 건물에 시간이 배어드는 느낌이 없어진다. 유달리 새 건물만 좋아하는 사회인데, ‘응당 노인인’ 도서관마저 자연스럽게 늙도록 내버려 두지 못한 사회 분위기가 못내 아쉽다. 또 다른 순환 후에 도서관의 리노베이션이 다시 필요할 때에는, 부산도서관이 가진 나이의 위용을 드러내는 방법으로의 전환을 기대해본다. 도서관의 세월은 외부보다는 내부에서 볼 수 있었다. 원래 도서관 건축을 만들었을 때의 도서관과 지금 도서관의 정의와 쓰임새가 달라지면서 그 공간이 변형-이용되는 모습이 눈에 뜨인다. 부산시민도서관이 설계될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사서를 통해서 책을 출납하는 폐가식 도서관이었다. 즉 사서들의 공간이 이용자의 공간과 책의 공간 사이를 매개해주었다. 책은 사서들의 손을 타고 사용자들에게 전해졌다. 지금과 같은 열람실과 떨어진 서고는 건물의 뒤편으로 배치되었다.
5-6년쯤 지나자 도서관의 서가를 여는 개가식으로 도서관 전체가 변했다. 출판업계가 발달하면서면서 책을 보관하는 역할보다는, 책의 잦은 이용을 강조하는 도서관의 역할이 더 강조되었다. 이제 사용자들이 책에 막 바로 다가갈 수 있게 되고, 서가와 이용자들의 열람 공간이 통합되었다. 초기 도면을 보면 이용자의 공간과 서가의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데, 지금은 모든 서가를 홀을 통해 직접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여기에 더불어 관외 대출이 시작되면서 책이 도서관을 빠져나가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현재 1층 입구에는 ‘대출실’이라는 도서관을 드나드는 책의 입구가 생겨났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바코드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다른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책도 디지털 관리의 영역으로 들어섰고, 책은 물리적인 문이 아닌 바코드인식기라는 가상(virtual)의 문을 통해 드나들게 되었다. 도서관을 빠져나가는 책의 문은 대출실을 거치지 않고 서가에서 이미 관리된다. 인문ㆍ사회 과학실, 자연ㆍ기술과학실, 어ㆍ문학실 등 주요 열람실이 있는 부산시민도서관의 2층의 휴식의 공간은 바코드영역으로 둘러있다.
이렇게 되니 오히려 도서관의 바코드체계 밖에 있는 외부 책이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골칫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출실은 도서관 외부 책을 맡기고 들어가는 물품보관실로 바뀌었다. 도서관을 나가는 책이 아니라 들어오는 책을 관리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책을 이용하는 방식도 다채로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증가된 자료 검색. 스캔. 복사. 노트북 이용공간은 홀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만들어질 당시에는 짐작할 수 없던 이런 변화는 기존의 공간을 다르게 정의하고 이용함으로써 채워지고 있다. 도서관 건축이 사용자들의 필요에 따라 해석되면서 부단하게 그 모습을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적인 필요에 맞춰서 내부 공간의 이용방식을 변형시킨 모습이 나이테처럼 느껴진다.
⑤편에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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